방장님은 왜 호남 국공 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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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호남 국공가서 고생하는데 방장님은 왜 호남 국공 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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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질문의 답을 해 드린다. " 제가 하기에는 좀 짧지 않나요" ^^
천리길 15번째 이번 천리길은 산악 천리길이며 낙동정맥길로 가려다 지난해 의성 산불 영향이 너무 컸던 만큼 낙동길 인근 각 지역의 산불방지기간이라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산불의 영향과 거리가 먼 호남정맥을 택한다.
호남정맥은 그리 녹록(碌碌) 하지 않아 남한 9 정맥 중에서도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곳으로 백두대간이 호남에 와서 "아이고!형님"하고 돌아갈 정도로 전북과 전남지역을 알뜰살뜰 구석 구석 파고드는 파워가 크게 느껴지는 곳이다.
호남정맥 506km
내게 심장을 떼어줄 정도의 거친 품격으로 오롯이 즐기게 해 준 최고의 산길이며, 남한의 여타 정맥길이 강과 관련 있다면 호남은 지역명으로 되어 있어 강 이름과 관련이 없는 유일한 산줄기다.
전북 진안에서 전주-임실-순창-담양-광주-화순-장흥-보성-순천-광양 망덕포구까지 500km 걷는 동안 크고, 작은 오르막 680여 개가 키 순서에 상관없이 기다리고 있으며 최고봉인 백운산(1,228M)과 국립공원 무등산(1,187M), 내장산(763M) 그 외 500m급의 산들 60개가 "어서 오라"한다.
그리고 차가 다니던 그렇지 않던 호남정맥을 관통하는 임도와 도로길이 100개 이상 있지만 물 보충할 곳은 몇 곳에 지나지 않고, 쌀 구경 못한 날도 많았고 3일에 한 번씩 도심으로 내려가 보충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러함에도 좋았던 길이다.
준비물:무지원이라 3일간 양식
닭 가슴살, 물 2리터 2개와 500ml 6개, 햇반 몇 개, 전복죽 몇 개, 단백질 우유 6개,한라봉 8개, 렌턴 2개, 배터리 6만, 핫팩 4개
비상용 약품, 갈아입을 옷, 양말 7개, 침낭, 기타...
지난 대간 때는 코로나 영향과 단백질 부족으로 고생했기에 이번에는 단백질 종류로 준비
3일에 한번 인근 도심으로 나가서 위와 같이 보충을 해야 하기에 배낭 무게는 늘 20kg 수준으로 맞춘다.
이번 천리길에 앞서 가끔 대구 앞산에 오를때 2리터 생수 10개를 배낭에 넣고 왕복 2번씩 하고 집으로 왔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번 호남길에 만들어 온 지나간 경로
사진을 많이 담아 왔으나 후기 쓰는데 너무 많은 사진이 들어 갈것 같아
일부구간은 불필요한 사진을 첨부하지 않으나 빠진 부분은 트랙으로 대신 ...
3월 10일 점심 무렵
대간길이던 정맥길이던 산길 여행이지만 어떻게 보면 지역을 아우르는 물길 여행이 시작하는 수많은 동, 식물의 번식과 고통이 함께하는 삶의 능선이다.
산은 산일뿐이고 물은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라...
물의 본성은 평온함과 무서움이니 물은 배를 띄우게도 하지만 때로는 뒤집기도 한다
임금이 하는 짓이 시원찮으면 백성이 임금을 갈아치운다는 뜻으로 전국시대 때 조나라의 "순자"가 한 말이다
호남 정맥 능선은 기본적으로 좌측의 섬진강 (223KM)을 기본 축으로 하고, 서쪽으로 "전주, 익산의 만경강", "정읍, 김제의 동진강", "담양, 광주의 영산강", 남쪽으로 "장흥, 강진의 탐진강", 순천 동천, 광양 동,서천을 이루는 수계다.
섬진강 수계는 모두 283개가 있으며 대표적으로 제암산에서 발원하는 보성강, 내장산에서 발원해서 순창군 쌍치면으로 흐르는 추령천, 장수군 산서면 오수천, 장안산에서 남원 고을을 적시는 요천, 만복대에서 구례로 흐르는 서시천이 있고 그 외 호남정맥을 바탕으로 한 남해로 흐르는 하천은 140개가 있다.
익산과 전주의 만경강 수계는 70여개 이며, 대표적은 전주천(삼천천)과, 소양천이 있고
정읍 김제, 부안의 동진강 수계는 87개로 대표적으로 정읍천, 고부천, 원평천 있고
장성, 담양, 광주, 화순 나주, 영암 영산강 수계는 168개 있으며 황룡강, 지석천, 고막원천, 함평천, 하순천이 있다.
영암에서 장흥, 강진으로 흐르는 탐진강 수계는 36개
영산강 서해권 수계는 170여 개 정도이다.
산길 따라 지나며 잡목과 울창한 산림이 있겠지만 전북 지역에 참나무숲이 있다면 전남지역은 사철 푸른 편백나무숲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고 보면 될듯하다.
가야 할 만덕산으로
이 길이 끝날 때까지 좌측은 진안군 백운면 천상데미 서쪽계곡 데미샘에서 발원하는 섬진강 수계이며, 우측으로 만경평야를 관통하는 만경강 수계인 소양천인데 모악산이 보였다가 뒤로 사라질 무렵까지 만경강이고 그다음은 김제땅이니 동진강 수계로 들어선다.
만경강,동진강 줄기 따라 우리나라 10대 평야 중 가장 큰 김제(호남) 평야가 자리하니 두 강은 비록 짧지만 그 위상은 실로 대단하다 할 수 있는 강으로 김제평야(호남)는 전체 넓이의 30%을 차이하며 가로 50km 세로 80km 전체넓이는 약 3,500㎢이다
완주군 동상면 소양면 산 164번지가 만경강 발원지의 주소이며, 완주군 밤재에서 시작하여 완주-전주-김제- 익산-군산-새만금 사업으로 가로막은 서해 바다까지 대략 80km 정도 흘러간다.
웅치고개(전북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에서 전북 완주군 소양면으로 넘어가는 고개)
1592년 7월 7일 새벽 호남정맥 웅치고개에서 김제군수 정감이 이곳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으나 장렬히 전사한 곳이다
호남의 운명을 건 싸움의 서막은 웅치고개 아래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에서 왜군 선발대와 1진을 지키던 황박과 의병들의 몸에 칼날과 창끝이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전투에서 많은 이들이 전사했고 동틀 무렵 왜군 본대가 밀려와 산중턱의 2진을 지키던 나주판관 이복남도 죽을 각오로 싸우다가 결국 후퇴한다.
1진이 무너지고, 2진이 무너지고 마지막 김제군수 정담이 이끄는 주력군이 웅치에서 해질 때까지 사력(死力)을 다해 싸웠으나 정담을 비롯해 3진에서 싸웠던 모든 군사가 순절하였고 1차 방어선을 지키던 황박은 대둔산 고갯길 이치전투 1차 방어선에서 싸우다 순절했으나 시신을 찾을수 없으셨고
웅치와 전주 안덕원과 이치에서 황진장군과 함께 싸웠던 이복남 장군은 통영대로인 슬치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꼭 읽어 보시고
호남정맥 산꾼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지만 이곳이 웅치고개이며 소양면으로 넘어가던 고갯길이다.
왜군들이 조선군들의 충성심과 용맹함에 감동하여 조선군들의 시신을 묻은 곳이건만
대부분의 산꾼들이 무덤인지 모르게 밟고 지나간다.
웅치고개에서 전사하신 조선군관과 의병들 돌무덤 앞에 가지고 온 막걸리 3잔을 따라 놓고
"고립무원의 고갯길에서 서러운 마음을 고이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시길 간절하게 바라며" 2배 올린다.
웅치고개를 넘은 왜군은 지금의 소양천 따라 속도를 내어 전주부성으로 향했을 텐데 조선군은 그저 웅치에서 하루동안 전쟁을 조금 늦췄을 뿐...
그러함에도 남원을 지키러 갔던 황진 장군이 임실군(오수, 임실, 관촌) 슬치재 (전주천 따라 완주군 상관면 전주천 ) 전주부성을 지나 안덕원 (덕진구 고려병원자리)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남원성에서 임실ㅡ슬치재ㅡ전주성까지 실거리 62km 정도이니 하루 30km 걷는다면 이틀 정도 거리다
호남정맥길은 오르고 내리길 무한 반복하는데 680여개의 크고 작은 오르막이 차례로 줄지어 기다릴 것이며, 그 길에 빨리 가겠노라 조바심 낼 필요도 없고 가다 보면 반갑고 그리운 님 만나듯 모두 만날 수 있다.
좌측은 진안군 부귀면이고 우측은 완주군 소양면땅이다.
곰티재는 예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일제 강점기 때 전주와 진안을 연결하며 만든 임도길이며 이곳에 웅치전투 전적비가 있다.
실제 김제군수 정담장군이나 의병장 황박이 지키고 싸웠던 현장이 곰티재가 아니라 북쪽 산길 따라 2KM 정도 더 가야 웅치고개인데 전적비가 세워진 년도가 2012년도 무렵이라고 하니 웅치고개로 잘못 알고 전적비를 세웠거나 아니면 웅치고개에 세울 자리가 없어 곰티재에 세웠는지 알길 없다
읽어 보시고
곰티재
모든 길이 그렇듯 대간길이던 정맥길이던 수많은 도로들 때문에 신음하는 한반도의 산줄기다.
호남도 그렇지만 한남정맥길은 전국 최고의 땅값 정맥답게 이곳보다 더 심하게 개발되어 일부구간은 차 타고 가도될 정도로 산줄기 훼손이 심하다
산 경사면으로 눈이 쌓여있는데 앞으로 보름뒤에 도착할 광양땅에는 진달래가 곱게 피어 반길 것 같고
남녘으로 꽃소식이 들리지만 동지섣달 그믐날 뜨근한 아랫묵을 지키는 향긋한 메주가 무척 부러운 시간이 이어진다.
만덕산(萬德山) 정상에서
고구려 시대 때 보덕이라는 승려가 창건한 만덕사(萬德寺)에서 유래된 산이다.
이곳 만덕산 북쪽 계곡에서 발원하는 소양천은 완주군 소양면을 지나 만경강에 안기는 27KM의 하천 발원지인 곳이고
가야 할 산하
서로 마주 보며 서 있는 금실 좋은 원앙 같은 산이건만
서로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는 듯
등 돌린듯한 산
마주 보는 산
저마다 깊은 속내를 알길 없다
길이란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이 좋고
그다음 이웃과 이웃을 이어주는 정감 넘치는 길이 좋고
또 다른 이를 기다리는 산길이 있어 좋고
한반도의 동과 서를 나누는 백두대간이 산과 물의 아름다움이라면
정맥길은 역사의 숨결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고
생강꽃이...
세상 만물은 계절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데
한번 간 사람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그래서 더 그립고 보고 싶은 건지
정맥팀이 지나가며 달아놓은 시그널
밤하늘에 북극성이 있다면
사철 시들지 않은 꽃잎같이
산길을 밝히는 건 시그널이다
이번 산길에도 수많은 분들이 달아놓은 시그널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걸을 수 있었는데
그분들께 감사드리며 무엇 보다 호남정맥 전구간 트랙을 보내주신 산너머 대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혼자 있으니 참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
내 앞에 내가 걷고 있는 것 같고
내 뒤에 또 다른 내가 따라오는 것 같아
뒤돌아 보니 아무것도 없고
앞으로 일몰을 몇번 더 봐야 할지
여러 날 동안 서로 잘 어울릴 것 같은 모습으로
남도로 길 찾아 떠난다.
슬치재에서
첫날은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해서 25km 지점에서
하루일정 마감하며
인근 모텔 앞 자판기에 음료수와 컵라면이 보기 좋게 있었지만
천 원짜리가 없어 그림의 떡이다.
인근 불 켜진 주유소에 들서가서 생수 두병 받아나와
슬치마을 정자에 들서가서 따뜻하게 잠자고 일어나
새벽 04시에 출발한다.
슬치재는 통영대로 길이며 통영, 고성, 사천, 진주, 산청, 남원, 임실 사람들이 전주를 통해서 한양으로 오고 가던 길로 써 1597년 정유재란 때 원균의 지휘하에 조선수군은 거의 전멸하고, 섬진강 따라 올라온 왜군이 8월 남원성을 공격하자 명나라 장수 양원은 도망가고 웅치, 이치에서 싸웠던 이복남 장군이 남원성이 적의 수중에 떨어지자 짚단을 쌓고 불을 지른 후 스스로 불길 속에 뛰어들어 자결하셨고 민관군 1만 명 전멸했다
남원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전주성을 지키던 장수들은 모두 도망가 버렸고 일본군 우군도 황석산성을 피바다로 만든 후 전주로 무혈입성하니 전국최고의 곡창지대가 왜군본에 의해 점령당한다
슬치에서 급박하게 말을 달리던 병졸의 애타는 말발굽 소리를 상상하며 잠이 든다
달을 밝고
어느덧 이틀째 되는날 새벽 정적을 깨는 닭울음소리가 들리고 조심스레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공기가 차갑다
도로 따라 조금 가다 산길로 들어서며 전주천이 발원되는 실치재를 지나는데 전주시내를 지나 완산구에서 모악산에서 흘러온 삼천과 합류한 뒤 만경강으로 흘러드는 전주천은 전주가 아끼고 사랑하는 하천이다
날이 밝아
어둠이 물러가니 이렇게 좋을 수가
한오봉
지나온 만덕산 방향인가
날씨가 어째 꾸무리한게 미세 먼지가 심해
조망이 별로다
잠시 고생 봇따리는 두고
그러고 보니 이 짓도 굶어가며 할 짓은 아닌데
왜 이러나 싶다가도
한편으로 매일 먹는 쌀 하루 안 먹는다고 해서 숨 넘어가는 것도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고
고래 뿔을 닮았다는 뜻의 경각산(鯨角山)과 모악산 방향
등로 가운데에 자리 잡은 복수초
"이보슈! 내가 자리 잘못 잡은것 맞쥬"
"사는 게 왜 이리 힘이 드냐"며 울음을 터트릴 여인의 한스런 모습으로 느껴지는데
누군가의 발길에 밟힐 것 같았지만 봄날에는 그렇게 안될 거야 라며 다독여 주고
지나온 한오봉과 산줄기
하루 평균 42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어야 쉴 수 있을 것 같고,
까칠한 오르막 오를 때마다 배낭이 무거워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터질듯하다.
터질듯한 종아리 통증도 며칠 정도 지난다면 적응되니 그때까지 고통이 따를 것 같다.
경각산으로 가보자
누군가 정성껏 쌓은 돌탑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먼 길 떠나는 이에게 "조금 늦어도 괜찮으니
당신의 속도로 가라"며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경각산
좌측으로는 임실군 상관면 땅이고 우측은 완주시 땅이다
한 마리의 고고한 학(鶴)인양 자태가 아름다운 소나무가 등로를 지키고 있는데
칠흑같이 어두운 밤 아무도 보지 않은시간에 홀연히 하늘로 승천할 것만 같은 모습이다
모악산(母岳山) 정상이 지척이고
모악산 정상 부근에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바위가 있어 모악산이라는데
여자에게서 어미가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서말 서되의 피를 흘리고 여덟 말의 젖을 물려야 하는 어머니
조선 왕실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용의 고향,
전주시내를 흐르는 하천은 크게 두 가지로 호남정맥 슬치재 인근에서 흘러온 전주천과 모악산 서쪽에서 흐르는 삼천(三川)이 있다.
삼천의 유래는 "모악산 북, 동쪽의 독배천, 고덕산 옥녀봉의 덕적천, 모악산 서쪽에서 흘러온 본류 이 세 가지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으며, 전주시내를 관통하는 전주천과 삼천 두 하천은 경각산-고덕산을 사이에 두고 흘러와 완산구 서신동에서 합류한다
모악산에서 발원하는 삼천이 흐르는 곳에 구이 저수지의 작은 섬은 무덤
고래를 닮은 이곳 구이저수지는 최대수심 16미터이며 가운데 자라섬으로 불리는 섬이 있는데 일명 무덤섬이다.
황해도 연안(延安)을 본관으로 하는 "연안 이 씨"의 무덤이며 무덤은 60년 전만 해도 육지에 붙어 있었으나 저수지 공사로 인해 지금은 물 위에 핀 연꽃인양 홀로 떠있다.
불재에 도착해서
임실과 완주땅을 이어주는 고갯마루
어느 농막에 들어가 물 동냥하고 나니 숯가마 하는 곳에 식사가 된다며 가보란다.
숯가마 식당에 들어오니
아주머니 두 분께서 어서 오라며 반긴다.
밥 달라고 삐약 삐약 거리며 있으니...
넉넉하게 담아주신 미역국과 밥
아마도 내일까지 이런 밥상은 구경하기 힘들듯
숯가마
활공장에서 본 모악산과 구이저수지
삼천(三川)은 모악산 동봉에서 대략 700m를 지나서 삼계천(계월천) 최고 상류지점인 산죽 밭으로 들어서며 시작되어 구이저수지를 지나 전주천을 만나기까지 32KM를 흘러간다.
치마산을 지나고
오봉산으로
가야 할 박죽이산
그 뒤로 줄사탕처럼 산들이 줄지어 기다린다
저곳까지 삼천이 흐르니 만경강 유역이고 그뒤로 동진강 유역이다
내려가는 길에 짧은 암릉이 있었지만 조심해서
대추나무재
오봉산으로
경사가 제법있는 암릉으로 내려와
다시 박죽이로 오르는데
오름길이 지루하니 숫자 500까지 세며 땅바닥만 보며 오른다
힘들게 올라온 박죽이에서 곧바로 경사진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낙엽이 많아 어떻게 내려왔는지
오봉 3봉의 무덤
어느 가문의 무덤인지 모르겠으나 잠시 쉬고 있으니
전 세계에 약 90%인 70만 마리가 우리나라에 산다는 고라니 한마리가 휘리릭 지나간다.
중국 펜더
호주 코알라
한국 고라니가 있는데
뿔은 없으나 용도를 알 수 없는 송곳니가 있고
특히 새벽이나 초저녁에 웨엑~ 웨엑~거리는 소리는
소름이 돋을 정도다
섬진강 푸른 물에
붕어섬이 보이고
섬진강은 진안군 백운면 원신암 마을 위쪽의 상추막이골이 섬진강 발원지이며
데미는 봉우리를 뜻하고 샘동쪽의 천상데미(1,080m)는 하늘로 오르는 봉우리란 의미다.
그곳에서 출발한 물이 원신암 마을을 지나 마령, 관촌, 운암댐(섬진강댐), 임실 덕치. 남원 대강. 곡성, 구례, 하동, 광양만까지 흐르는 도중에 크고 작은 지류 283개와 합류하면서 전북, 전남, 경남 12개郡(군)을 거쳐 223km 총 530리 섬진강 물길을 이루며 남해 바다로 흘러든다.
오봉 정상에서
해질 무렵에
하루 종일 미세 먼지로 뿌옇게 변한 날씨
지금 내 마음 같은 날씨이기도 하다
힘이 드니 괜히 왔나 싶기도 하고...
2003년도에 호남 하면서 지난 곳이건만
그때와 지금의 몸 상황은 많이 다르니
정신이 어지럽다
도로 따라가도 되지만 트랙을 만들려니 산으로
기어오른다.
초입에는 시그널이 많이 있었지만 정작 산길에는 잡목만 무성하다
잡목이 제법 있는데 한여름에 오면 고생 좀 할듯 하니 그냥 도로 따라가는게 마음 편할것 같다.
머리를 반쯤 내민 삼각점이 보이고
해질 무렵
또 다른 봉의 삼각점
운암 삼거리와 내일 새벽에 넘을 조망없는 묵방산
오늘은 운암 삼거리에서 노숙해야 하는데
도로에 내려서니 바람은 차갑게 분다
평일이라 인근 식당과 커피숍은 일찍 문을 닫았고 잠잘 곳을 찾아 이리저리 움직이는 동안 해는 서산으로 넘어섰다
운암 삼거리 부근 비닐하우스에서 바람을 막고 잠 잘 준비를 하고
오늘은 어찌 보냈지만 내일은 또 어찌 견디나
침낭에 핫팩 하나 넣고 새우 잡는 꿈을 꾸며 잠시
눈은 감는다.
새벽 04시에 고라니가 정적을 깨트리는 시간에 일어나
잠을 잔 건지, 못 잔건지, 안 잔건지
알길 없다
묵방산으로 가는 길에 낙엽 쌓인 등로에 잠시 누웠 있다가 별을 보고 점을 치는 점성술가나 과학자가 아니지만 누구나 시인이 되게 만드는 별이 눈앞에 가득하다.
이런 시간이 참 좋고
이번 걸음에 반 타이즈와 반바지 2개를 가지고 와서 추워서 고생 했지만
그대신 먹을걸 많이 가지고 다녔던 길이다.
묵방산 도착
먹방?
여우치 마을로 내려서서 여우치 샘터를 찾아볼까 하다 그만두고
동진강의 최장 발원지는 정읍에서 가까운 호남정맥 내장산의 까치봉 북쪽에서 발원하여 정읍시로 흐르는 정읍천이며
국토지리원 5만 대 1 지도에는 동진강의 원(源) 발원지를 정읍시 산외면 상두리 국사봉( 상두산이란 상두(象頭) 코끼리 머리) 남쪽 계곡이 발원지로 표기해 두었다
그리고 상두리보다 조금 더 긴 물줄기는 호남정맥 묵방산 남쪽의 여우치 샘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최장 발원지와 원(源) 발원지만 알면 될 것 같다.
물은 내장산의 영산강과 동진강 분기점까지 동진강 수계로 이어진다.
준희 선배님을 뵙고
가는정 고개 마루에서
버스 승강장에 앉아서 때 이른 아침식사로 미숫가루 한잔하고
성옥산에서
어깨, 무릎 그리고 허기진 배에서 신호를 보내지만 어쩔 수 없다
긴 걸음은 고통이 따라야 하니
장거리 산꾼에게 이것도 행복?이라면
물 길은 고이거나 막히면 다른 곳을 뚫기 마련인가
옥정호의 푸른 물이 안개되어 스멀스멀 하늘로 오르고
안개로 인해 뿌옇게 변한 세상
때론 안 보일 때가 더 좋을 때
내면을 봐달라 하지만 내면보다 더 깊은 멋진 모습이다.
715 지방도로 두월 상두길
두월리 마을 느티나무
오래된 고목임에도 보호수로 지정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데 호남정맥에 이런 큰 느티나무가 많이 보인다
두월리 마을을 지나니 잡목밭이 이어지고
잠시 묵은 밭을 지나
마루금이라 생각되는 곳으로 무작정 기어올라
한라봉 8개가 가지고 왔는데 3일 치 간식으로
산에서 과일이 최고인 듯해서 3일에 한번 씩 인근 마트에 가면 꼭 사오는게 한라봉과 수입산 포도다
왕자산에 도착
정맥길을 지키는 예덕고개 당산나무
속살은 오랜시간동안 모두 벌레에게 내어주고 텅빈 모습이다.
호남정맥길에 만나는 최고의 당산나무로써 오랜 세월을 이 자리를 지켰으며 앞으로도 수많은 산꾼들에게 사랑받을 것으로 보인다.
예덕길 도로 끝에 자리하는 고갯마루의 당산나무를 지나
편의점표 전복죽으로 오늘 처음 식사를 하고
열량이 높지 않아 오르막 하나 오르면 소화되고
지나온 무명봉
하루평균 42개의 크고 작은 봉을 지나야
하루 일정 끝난다
구절재
정읍시 산내면과 칠보면을 이어주는 고개로 장금이의 고향이란다
장금이표 거창한 요리는 고사하고 고갯마루에 라면집이나 하나 있다면 구중궁궐 속 수라간 음식보다 더 좋다고 칭찬하겠건만...
인증 담고
무릎이 견딜까?
발바닥이 견딜까?
무엇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질까 걱정이다.
아프거나 물집이 생긴다면 어찌 참을 수 있겠지만
제발 마음이 무너지지 않기를
가다가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소장봉을 지나와 사자산으로 가는 길에
사적골재에 내려서서 잠시 임도길 따라...
좌측으로는 섬진강 지류인 추령천이며 추령천은 내장산 서쪽계곡에서 흘러 순창군 쌍치면을 고루 적시며 이곳 정읍시 산내면까지 와있다.
절에 다녀오시는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는데
석탄사에 가면 밥 준다며 빨리 가 보시란다
우야꼬! 가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부처님을 뵙는 길에 밥 한술 공양받는 건 좋으나
불전함에 만원짜리 한 장이라도 넣어 드려야 하는 게 기본이라
가지고 온 현금이 없어 산길로 오른다
사자산 (獅子山)에 올라와
구산선문(九山禪門)중 하나인 화순의 쌍봉사 도윤선사의 사자산문(獅子山門)과 관련 있는지 모르겠으나
강원도 영월에도 사자산 아래 법흥사가 있는데
이곳 정읍에도 사자산 아내 석탄사가 있다.훗날 석탄사에 한번 가게되면 알아볼 일이고
내려가는 산죽길 경사면으로...
빼곡한 산죽길
스칠 때마다 강호의 초절정 고수의 칼날을 온몸으로 받아내듯 스륵스륵 소리가 좋고
이런 대밭은 발이 알아서 칮아가는 길이다.
노적봉
뭔 시그널이 이리 많은지 나무가지가 부러질 지경이다.
고당산 도착
고당산을 지나 방산리 방향으로
음침한 대숲도 지나고
오늘은 이곳 개운마을 고개 92km 지점에서 마치고
카카오 택시 불러 놓고 길가에 앉아 기다린다.
정읍시에 나가서 씻고 휴대폰 배터리 충전하고 3일 먹을 양식을 사 와야 하니 어릴 적 어머니 따라 시장 갈 때보다 더 좋은 길
그리고 뜨끈한 국밥에 흰쌀 밥을 말아먹을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왼쪽으로 흐르는 물은 모두 추령천으로 흘러들고 우측으로 흐르는 물은 정읍천으로 흘러든다.
모텔에서 편하게 자고 새벽 3시에 나와
편의점에 들러 새벽에 먹을 단백질 우유 하나 사서 나온다
날이 밝을 무렵 추령고개에 도착할 테니 그곳에서 쌀 구경 할 수 있겠지라며...
새벽길 진행하는데 등로가 별로이고
망대봉 정상은 군부대? 방송국 기지? 가 있어 들어가지 못하고
길게 이어지는 임도길을 따른다
돌고 돌아 추령봉에 도착하니 태양은 고개를 내밀었지만 어디로 간 건지
섬진강 지류인 추령천의 최장 발원지는 국립공원 내장산 까치봉 인근 호남정맥 길에 만나는 690봉 헬기장이나 원(源) 발원지는 이곳 순창군 복흥면 서마리 내장산 추령봉 동쪽 계곡이다.
내장산이 지척이고
추령고개
이른 시간에 모닝커피나 콩나물 해장국에 쌀밥을 가득 말아먹을까 기대했건만 문 연 곳은 없고
혹시나 해서 문 연 곳이 있나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찾아보다가 포기하고 내장으로 향한다.
국립공원 내장산이 있는 정읍하면 평야를 지나는 동진강이 대표적이며, 동진강 하면 전봉준의 동학 농민운동이 떠 오를 정도로 대단한 곳이다.
동진강 유역은 금강(논, 경 평야)- 만경강과 함께 김제(호남) 평야를 이루며 무엇보다 고종 31년(1894년) 동학혁명이 된 주 무대 이기도 하다
정읍의 동학혁명은 고부군수(정읍시 고부 군은 두승산 아래 자리하는 군이름) 조갑병이 만석보를 쌓고 수세를 너무 많이 거둬들이면서 촉발된 농민혁명이다.
들이 넓고 곡식이 많이 난다고 해서 모두가 배 부른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김제와 만경평야에서 나는 쌀은 김제나 정읍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나라의 것이었다. 가을철 쌀수확이 모두 끝나고 나면 어김없이 세금 공출로 탐관오리만 배가 불렀으며 이에 농민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1894년 고종 31년에 전봉준을 필두로 봉기한 갑오 농민 운동, 만석보를 허물고 들불처럼 일어나 농민 혁명이다.
정읍시 동진강에서 꼭 찾아봐야 할 곳은 만석보 비석과 백산면의 앉으면 죽산이요 서면 백산이라는 곳이니, 동진강을 이야기할 때 동학이란 말이 떠오른다.
이른 새벽이라면
내장사에서 새벽을 깨우는 범종 소리가 가슴을 울렸겠으나 늦게 왔더니 범종소리는 고사하고 스님들 목탁소리도 듣지 못했다.
조용한 절 집에 사는 스님네야 스스로 면도날 같은 마음으로 수행정진만 하면되니 급할 게 없으실 테고 우리처럼 조급증도 성급함도 없으니 시간에 집착하지 않겠고, 시계를 볼일 없으니 모든 시간은 목탁소리와 종을 쳐 알리기에 절 집에서 시간은 늘 차분하고 소리로 전해진다.
아직 살 빠진 모습은 아닌 듯
깊은 산속 절집에 고요를 깨트리는 은은한 범종과 목탁소리가 있다면
새벽 4시 인시 무렵에 들리는 시골 마을의 수탉의 힘찬 목소리
그리고 봄날 산속을 청아하게 깨우던 산새소리가 듣기 좋았던 시간도 지나고
천리길 어디가 가장 힘들까?
백두대간 745km
호남 정맥 500km
부산 서울 왕복 879km
위의 3가지는 길이가 조금 길어도 그럭저럭 할만하다.
하지만 서해안길 400km는 적응이 안되니 감히 갑이라 할만한곳이다.
조망없는 내장산 정상에서
신선봉은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선유 하였으나 봉우리가 높아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아 신선봉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리고 신선에도 여러 등급이 있으니 그중에서 최고 등급이라 할 지선(地仙 옥황상제를 모시는 신선), 천선(天仙 하늘의 신선)이 있겠다.
내장산과 백암산은 서로가 마주하나 등을 돌리고 있는 형상이라 서로가 속내는 보이지 않고 뒤돌아 앉은 모습이다.
1부는 이것으로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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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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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배병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3.31 ㅎㅎㅎ 넵 언제될지 모르지만 낙동때 바리바리 싸들고 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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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이디(김금옥) 작성시간 26.03.31 누가시킨것도 아니고 과거시험보러 가는것도아닌데...
무거운등짐지고 굶어가시며~
하루하루 발품판걸음 길기도 합니다~
그리고 구구절절 지나온길 기억하고 옮기고 팔자이십니다ㅎ
누가뭐래도 나만의 행복과 자부심은 최고이실듯 합니다.
10년만 더젊었다만 따라다닌다고 하고싶네요~
(내또한 그런 역마살이 있었으니)
59세에 23키로~25Kg지고 7일동안 걸어봤죠~
(몽블랑 둘레길 170Km (2~3일에 한번씩 국경에 내려와서 장봐서 내는더걷고 싶은데 일행에 맞춰)
그리고 마지막에 몽블랑정상에도 오라갔고.
최고의 호남정맥을 한방에 무탈하게 마치심 최고이십니다.
*저도 등짐사진 소환해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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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배병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03 등짐장수 허리 휠 지경이었고
다 끝나고나니 하룻밤의 꿈인듯 합니다
누님 봇따리도 최고 -
작성자치토스2 작성시간 26.04.03 장편 판타지의 서막를 2부로 연결 해봅니다...
조금의 설레임으로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배병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03 감사합니다.
내일 합천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