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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km 이상

호남정맥 506KM 2부(호남의 물 줄기 위를 걸으며)

작성자배병만|작성시간26.03.31|조회수341 목록 댓글 17

물 한 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지면 낙엽 위, 나뭇가지 끝, 거미줄 위 어디던 소리없이 떨어진다

넓을 것 같지만 엄밀히 따지면 면도날 같은 산길 능선 위에서 빗물은 어디로 떨어지느냐에 따라 좋은 부모(江)를 만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부모를 만나 아래로 아래로 흘러간다.

물은 떨어진곳에서 좌측이던 우측이던  제갈 길 찾아가지만 산 능선은 물을 가르는 분수령이 되어 아래로 흘러 세상 만물을 살리며 바다로 흘러든다.

무등산에서 

호남정맥 주화산에서 좌측으로 전북 진안-임실- 순창-곡성-화순-무등산

우측으로 전주,정읍,장성,광주 무등산 230KM 지점

까치봉에서 본 내장산 모습

새들도 먹을 게 없으면 떠나기 마련

단풍철이라면 산객들로 미어터지겠지만 계절이 계절인지라 산객이라곤 개미 한 마리 없고

산 위는 산객들의 웃음소리도 사라진 지 오래되어 조용하기만 하다.

 

 

금줄 넘어가다 보니 좋은 길은 저짝으로 질러가고

마루금 찾아 들어서니 빳빳이 고개쳐든 조릿대가 가득하여 한바탕 일전을 치르며 지난다

 

오래된 망루인 듯

조망 좋은곳에 터를 잡았는데 용도를 모르겠다

다만 정읍시 부귀면이나 입암면 넓은 들판으로 조망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산죽과 생과사의 일전을 치르며 올라오니 안테나 봉에 동진강과 영산강 수계를 나누는 곳에 도착하고

국립공원 내장산을 사이에 두고 남도의 젖줄이라는 영산강 글귀가 반기는데 영산강 최장 발원지로는 장성군 입암산 자락에서 발원하는 황룡강이 담양군 용면 주전자봉에서 발원하는 용소골의 영산강 발원지가 보다 조금 더 길다

 

백암산 상황봉

같은 내장산임에도 내장산과 서로가 싸운 듯 등을 돌린 형상을 하고 있으며 정상에서 보는 북, 서쪽으로 고창의 방장산이 우람하게 보이고, 남쪽으로 담양의 병풍산을 멋지게 담아낸다

백학봉 명품 소나무

사람은 올 곧게 서야하고 나무는 이렇듯 등이 굽고 절송(折松)이  되어야 명품으로 인정 받는듯

 

담양의 병풍과 불태산 방향

멀리 무등산이 보일 듯 말듯하고

우측으로 가인봉이 우람하게 보인다.

눈에 보이는 곳으로 흐르는 하천은 모두 광주로 향하는 황룡강 수계이다.

내려오고 보니 줄이...

지나야 할 산길과 추월산 방향

좌측으로 평야지대로 흐르는 하천은 순창군 쌍치로 흐르는 추령천이고 

낮은 곡두재와 백양사 수목장으로 지난다

내려온 길

명지봉의 시그널

강선마을로 내려서서 감상굴재 지나

대각산으로

지나온 산길

짧은 산길을 오르면

대각산을 지나고 칠립재를 지나 산길을 한번 더 

올라

 

임도길을 지나

순창에 살고 계시는 지인분께서 어은재에서 임도 따라오신다니 잠시 짧은 1,7km 산길은 포기하고 임도 따라 진행하여 지인분을 만난다

 

122km 지점인 어은재 노거수 앞에서

일정을 정리하고 차 타고 가까운 지인댁으로 찾아가는 길에 식당에 들러 오늘 첫 쌀구경하고

추령천이 흐르는곳 인근의 지인분 댁에서 잘 자고

다섯째 날 새벽에 일어나 밥 한술 뜨는데 며칠 만에 처음으로 아침밥이란 걸 먹어본다.

지인분께 물 몇병 받아 넣고 차로 어둠 속을 달려 어은재에서 04시에 다시 이어가는데 생각보다 등로는 좋은데 별 특징 없는 도장봉과 생화산을 지나서 대나무밭과 짧게 벌목한 곳에서 희미한 길 찾아가는 것도 그런데 벌목한 곳에서 미친 듯 돌아다니니 헛웃음도 나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그러함에도 즐겁다

호남이네 왔으니 당연 완주하겠지만 다음 산악 천리길은 낙동으로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이런 미친 생각도 잡목 속에서 짧게 꿈꾼다.

영산강과 황룡강을 가르는 

병풍지맥 분기봉에 도착할 무렵 해가 뜬다

 

올라야 할 생여봉

생여봉에서 본 병풍산 방향으로

며칠만에 보는 아침일출

담양땅 방향으로

담양땅에 들어서면 유독 눈에 들어오는 미인나무가 도로가에 줄비하게 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1970년대 무렵 전국 가로수 정비사업을 하며 심은 한아름 크기의 메타쉐콰이아 나무가 양쪽에서 반기는데 그 무렵  메타세콰이아 나무를 심었던 군수는 지역 주민들로부터 쓸데없는 나무를 심는다고 욕만 얻어먹었다고 한다.

지금도 과연 그럴까? 그렇게 욕하던 사람들이 군수를 다시 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

한국의 아름다운 도로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빼어난 가로수 2차선 도로가 이어지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품길이다

나무란 본디 굵어지거나 높게 크거나 하는 것이니 앞으로 해가 갈수록 더욱 위풍당당하고 대단한 모습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는데 대락 450ㅡ500그루 정도가 길가에 무람하게 서있다.

밀재 도착

이제 추월산(秋月山)이 지척이고

추월산은 담양과 순창의 경계산으로 전남 5대 명산인데 가을이면 산정상으로 보름달이 닿을 듯해서 추월산이라 부르고 산세가 거친 듯하나 걸어보면 부드러운 면도 있는 명산이다.

추월산 도착

동,남쪽으로 가면 상봉이 있고 그 아래 보조국사가 창건하신 보리암이 나오는데 오래전 보조국사께서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솔개 세 마리를 날렸는데 한 마리는 조계산 아래 송광사, 한 마리는 백암산 아래 백양사 마지막 한 마리는 이곳 추월산 아래 보리암에 앉았다는 전설이 있다.

 

어디든 걸어 가야할 산들과 아래는 영산강이 흐르는 담양호가 있고

지나온 산길이나 길 위에 서서 가다 보면 무수히 많은 갈림길이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앞서간 나를 잡아두고, 뒤따라 오던 나를 멈추게 하고

이리저리 헤매듯 선답자들의 시그널을 확인하며

찾아가는 정맥길

어디로 가던 

어디에 머물던

그길이 낯설 때도 익숙할 때도 있는게 산길이니 길 찾는다고 너무 고심할 필요 없겠다.

 

산아래 가인 연수원이 보이지만 언제 가나...

1894년 음력 11월 전봉준이 이끌던 동학 농민군이

공주 우금치와 정읍시 태인에서 몇 만이 거의 전멸하듯 전사했고 이곳 추월산 인근 순창군 상치면 계룡산(옛 이름 복흥산) 아래 피노리 마을에 숨어 있다가 동료 김경천의 고발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어 5차례? 정도 재판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정읍이나 순창에 오면 생각나는 분으로 사형받기 전 태양을 닮은 고추장에 쌀밥이라도 실컷 드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깃대봉에서

아침은 먹었지만 배가 고파 전복죽 하나로 해결하고

 

심적산

순창에 와서 꼭 만나고 싶었던 산이 있다면 전라도의 중심이라 했던 복흥산(福興山)이다.

영조때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 보면 마이산 한 줄기가 주화산 서남 쪽으로 내려가다가 임실과 전주 사이에서 갈라지는데 한 줄기는 서쪽으로 가서 금구면(지금의 김제) 모악산이 되었다가 만경강과 동진강 사이에서 그치고 다른 한 줄기는 서남쪽으로 즉 호남 정맥으로 내려가서 순창 복흥산과 정읍의 노령이 된다.

노령은 영산기맥길에서 만나는 고갯 마루인데 정읍과 장성을 오고 가던 고개이며 예전에 고려 헌종이 거란의 침략을 피해 나주로 피난했던 길이며 한양에서 땅끝으로 가는 삼남길이다.

복흥산은 순창에 있는 산으로 지금의 순창군 쌍치면 금성리 마을 뒤산을 계룡산으로 추정을 하는데 이곳에 순창군 복흥면이란 행정 명칭이 남아 있다.

그리고 택리지에 복흥산 동쪽에는 임실 순창. 남원, 구례가 있고 모두 산골에 있는 고을이고, 복흥산 남쪽 줄기(추월산)가 창평(담양의 옛 지명)을 지나면 광주 무등산이 되고,무등산 동쪽에 옥과를 비롯한 곡성, 동복이 있으며 서남 쪽에는 광주와 화순 나주가 자리한다고 적었을 정도로 복흥산이 중요한 지명이다

복흥산은 전라도 중앙에 위치하며 양쪽에 산을 끼고 들판이 펼쳐져 큰 동네를 형성하고 시내(금성천)가 동쪽으로 흐른다. 사람들이 성읍(城邑)을 설치할 만한 터라 말하고 숙종 임금 때 이곳에 병영을 설치하려 하였으나 성사되지 않았다.고 적었다.

지금의 녹두장군 기념관이 있는 피노리 뒷산이 계룡산이며 앞으로는 넓은 들판과 금성천이 흐르고 뒤로는 계룡산이 소쿠리처럼 둘러 쌓여있다.

 

 

5일 만에 처음으로 산객을 만나

인증 담고 보니 뱃살이 조금 빠진듯하다

집에서 나올 때 85kg이었는데 산행 마치고 나면 75kg까지 빠질 듯

무거운 배낭으로 장거리 하게 되면

첫날과 둘째 날은 몸에 큰 변화는 없다

셋째ㅡ다섯째 이때부터 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데

새벽에 늘 같은 시간대에 일어나는 것부터 힘들고 온몸이 거부한다.

여섯째 날부터 몸에서 수분이 많이 빠져나가는데 입술이 마를 날 없어 갈라 터지기 시작하고

그다음 날부터 몸이 적응하는지 위장이 줄어들었는지 하루 한 끼 정도 먹어도 갈 만큼 가고 오르막길도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는데 다만 수분부족으로 산에서 물 한번 마음껏 마셨으면 하는 생각뿐이다(입술 터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십일 정도 지나면 몸은 적응했지만 발가락 물집과 발이 부었는지 살이 빠졌는지 내리막길에 발바닥 쓸림으로 발가락이 빠질듯한 고통이 찾아온다

그러다 보면 날머리에 선다

가벼운 배낭에 지원받고 걸으면 이런 일까지 생기지 않을 것 같은데 저는 무지원이 좋고 지원산행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편이다.

내가 가지고 간 만큼 걷고

없으면 민가로 내려가 보충하고

 

 

가인 연수원에 도착

빈 물병 보충하고 다시 산길로 오르는데

봄 햇살은 따갑고 좋으나 어딘가 모르게 불편함이 있으며 오늘은 어디까지 가야 하나 이 생각뿐이고

어느 농가 비닐하우스를 지나 경사진 오르막을 오르는데 허벅지나 종아리가 터질 것처럼 느껴지고

몸이 적응할 때까지 오르막이 나오면 멘탈이 탈탈 털릴 지경이다.

천치재

천치재 도로 어느 농막에 일하시는 노부부가 계셔서 아주머니께 물한병 얻어들고 진행한다.

노부부의 두런두런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니

어릴 적 따뜻한 양지쪽에 앉아 밭일하시며 자식 걱정과 얼마 되지 않는 농사 걱정으로 말씀 나누시던 부모님 생각이 나는데 노부부 뒷모습에서 부모님 뒷모습도 함께 그려본다.

전치재에서 임도길을 두고 산으로 올라오니

또 다른  농막이 있어 잠시 허름한 의자에 앉아 쉬었다가 제법 경사진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배낭이 무거워 죽을 지경이다.

얼마나 먹고살겠다고 이러나 생각도 들고

내 편하자고 가지고 왔으니 끝날 때까지 짊어지고 가야겠는데...

 

오르막길 힘들게 올라와

주전자 걸어둔 주전자봉 찾아가는 길에

낙엽이 길을 만든 곳으로 낙엽을 신발로 쓸듯 지나니 바스락 소리가 쩌렁쩌렁하다.

내장산에서 발원한 추령천이 흐르고 그 뒤로 어제 지났던 길의 추령봉이 고개를 들었는데

이렇듯 뒤돌아 보니 남는 건 산이름 하나뿐

오래전 영산강 발원지 찾아 올라가며 걸어둔 주전자에 글이 쓰여있다

누군가 다 마신 막걸리병도 넣어 두었고

막걸리병과 주전자는 궁합이 찰떡이라 보기 싫지 않으니...

이곳 주전자봉 남쪽 계곡에서 영산강이 발원되어 용소, 담양호. 담양. 광주, 광주시 광산구에서 최장발윈지인 입암산에서 흘러온 황룡강과 만나 나주, 무안, 목포까지 흘러가니 아셨으면 좋겠다

 

치재산 정상

오전까지는 힘이 넘치는데

오후가 되면 힘이 빠지니

무슨 일인가

서너 명 인력으로 들어 올리기에 힘들 것 같은 3층탑

누가 올려놓은 건지

 

용추봉

북쪽 계곡으로 흐르는 물은 지천이며 섬진강으로 흘러들고

앞으로 흐르는 물은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물이다

어느 고갯마루에서

조릿대길이 길게 이어진다.

515봉

담양에서 보면 누워 계시는 스님의 모습을 한 추월산자락이 길게 이어지고

그러고 보니 많이 걸어온 것 같다

순창군 구림면 오정자재 가는 길에

동물 접근 금지 전기휀스가 보이고

잡목이 제법 있다.

152km 지점인 오정자재에 도착 

인근에는 잘 만한 곳이 없어 도로 따라 오정마을 앞 버스 승강장을 찾아가는데

산길은 낙엽으로 인해 편안하지만 도로길은 그렇게 걸어도 적응이 안 된다.

 

버스 승강장 의자가 따뜻해 앉아서 해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인적이 뜸할 무렵에 잠 잘 준비한다

노숙도 단계가 있는데

기본이 산에서 별다른 도구 없이 자는 거고

그다음 푸세식 화장실 (거의 죽음)

남자 화장실( 찌린네 나서 머리 아픔  )

여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은 냄새가 안 나서 좋으나 조심해야 함)

그다음 단계로 버스 승강장인데 여름에는 모기. 겨울에는 주민분들이 얼어 죽을 수 있다며 못 자게 함

최상으로 마을 정자 동네 이장님께 허락받아야 하는데 못 자게 할 가능성이 있으니 타협해야

 

전기 의자는 7시 넘어 자동으로 꺼지니 순식간에 찬기운이 가득하다

비닐로 승강 안으로 들어오는 찬바람 철벽방어 하고

얇은 은박돗자리 깔고 핫팩 하나 발아래 넣고 꿀잠을 청한다

이번 걸음에 깔판으로 사용하는 등산용 매트리스를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호남길에 매트리스를 배낭에 달고 왔다면 진행에 방해가 되고 버리는 건 시간문제다.

그래서 안 가지고 왔더니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입 돌아갈 지경이다

덜덜덜

 

15일(여섯째) 새벽 3시 넘어 일어나 산행준비 하는데 결로 현상으로 침낭이 축축하다.

우유하나 마시고 새벽산행하며 올라오니 왕자봉 삼거리에 쉽게 도착하고

순창 강천산 왕자봉

새벽 일출을 기대했으나 일출은 어디 가고

순창은 강천산 단풍도 붉지만 고추장 역시 유명하고 붉다. 고추장은 너무 유명해서 국가 브랜드라고 할만한데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언제던가 태조 이성계가 순창 만일사에서 기도를 올리던 무학대사를 만나려고 방문한 마을에서 맛본 고추장을 잊을 수가 없어 진상하도록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햇반에 고추장 넣어 비벼 먹고 가면 좋을 시간이다.

강천산 금성산성

우리나라 산성 2천300개 중 하나이며 보전 상태가 아주 좋은 곳

북문

금성산성은 고려말에 쌓아 조선시대에 들어와 허물어진 곳을 고쳐 쌓아 사용했으며

전쟁이 일어나면 인근 고을사람들 수천 명이 피신했다가 적이 물러날 때까지 방어하던 산성으로

두꺼운 돌을 판자모양으로 다듬어 험준한 지형에  차곡차곡 쌓은 것이 특징이다.

 

산성길 따라가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성을 쌓았는지

무얼 그토록 지키고자 만들었는지

삶과 죽음의 문턱을 지키고자 만들었을 성벽길을 조심스럽게 돌며

성 쌓던 사람들과 돌을 날랐을 고된 삶도 그려본다

 

산성길과 광덕산

사는 것도 바쁜데

이곳에 와서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한테 도움 청하고

...

성 쌓던 분들은

주위에 도와줄 사람이 없다.

그저 다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셨기를...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한양 도성길 18km

연인원 50만 명

농번기. 더위, 추위를 제하고 98일간(만 3년) 걸쳐 완성한 성인데 이곳 금성산성은 몇 년 걸렸을지

 

멀리 광주의 무등산이 겨우 고개를 내밀었는데

내일쯤 저곳 언저리에 도착할 것 같다

어깨는 빠질듯하여 잠시 앉아있으며 생각해 보니

20년 동안 어딜 갔다 이곳에 다시 서게 된 건지 결국 강남 갔던 제비처럼 다시 산정에 섰는데 몸은 예전 몸이 아니나 마음은 그대로다.

좌 왕자, 우 광덕

계곡 아래로 경천이 흐르며 경천은 순창군청 앞을 지나 풍산면 두승리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물이 맑고 주위 경치도 좋은 하천이다

 

광덕산에서

 

한때 클럽에 몸 담았던 분들이 만든 참산꾼 분들이 붙여둔 미봉에서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분들의 얼굴들

지금은 어디서 잘 계시는지

 

덕진봉에서

산아래 마을 이름인듯하다

매화는 곱게 피고

방죽마을 시장 가시는 아주머니와 이야기 나누다가

아주머니 한분이 "잘생긴 총각이라며 내하고 같이 살자"며 유혹하는데 어쩌나...

아주머니의 유혹도 유혹이지만

호남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곳이라 정신 바짝 차리고

호남고속도로를 피해 가며

고지산에 도착

배고픈 날 아침

산에서는 밥보다 과일이 좋아

배낭에 비상식량으로 소고기 육포 몇 봉지 

육포는 100gㅡ40g의 단백질로

밥과 빵은 2시간이라면

육포는 최소 4시간 정도 버틸 수 있다.

산행이 어찌되던 끝날 때까지 집으로 다시 가지고 오는 비상용으로 사용하는 물건 중 생수 한 병과 육포다

다만, 길가에 배고픈 강아지가 있다면 육포던 물이던  아낌없이 주는 것 들이다

 

호남정맥 마루금에 일편단심이라 쓴 간판이 고단한지 옆으로 누워있고

시그널은 모두 좌측으로 향했는데

마루금으로 가본다

마루금으로 왔으나 고속도로가 만리장성처럼 앞을 막아서고

예전 같으면 돌아가기 싫어 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해서 갔겠지만 나이 들고 보니 객지에서 골로갈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아 잠시 돌아간다

 

고속도로 위 시멘트 제방길 따라 다시 돌아가며

고속도로 굴다리 찾아 다시 마루금으로 붙어가며

대나무 숲도 있고

이목고개

 

별 특징은 없으나 이름만 거창한 봉황산

좌측은 경천 지류인 사천이 흐르며

우측은 영산강 방향이다

 

담양군 금성면 일목고개 내려가기 전 어느 대단한 문중인고!

가선대부(嘉善大夫) 김사룡公과 그의 숙부인(淑夫人) 옥천조 씨 묘인데 후손들이 관리를 잘해 놓았고

옥천 조 씨는 순창을 관향으로 하는데

순창 조 씨와 같은 문중인지... 모르겠다.

옥천 조 씨 조상으로는 고려 때 문하시중(조선시대로 보면 영의정)을 지낸 "조창"을 시조로 하는 명문집안이다.

그리고 가선대부는 조선시대 종 2품 당상관 벼슬 하셨던 분이고 숙부인은 처(妻)에게 내리는 작호로 대단한 집안의 묘를 지난다

가선대부는 지금 벼슬로 치면 도지나나 중앙의 차관급 벼슬이다

금과면 일목고개

금성면 상신기 마을을 지나 500 고지도 안 되는 서암산 오르막을 오르는데 퍼지기 직전이고

서암산 짧은 왕복은 그만두고 서흥고개로 향한다

아직 살만 한가배!~

182km 지점 담양군 무정면 서흥고개에서 

오늘 일정 정리하고 

앞으로 이틀간 노숙해야 해서 담양읍으로 나가서

씻고 양식 보충하러 간다.

16일 (일곱째 날)

새벽에 시흥고개로 올라와 다시 산길로 들어서며 오늘은 무등산 직전까지 가야하는 날

서흥산을 지나 등로가 아주 좋고 갈림길 정자에 배낭을 벗어놓고 900m, 가량 떨어진 설산에 후다닥 다녀온다.

 

설산 오르기 전의 여성의 **모습을 닮은 동굴 샘터에서 물한병 보충하고

조망 좋은 설산이건만 바람도 심하고 나무테크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다.

조망이고 뭐고 이 새벽에 보일리 만무하니

추워서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간다

괘일산에서

지금까지 고추장나라 순창을 지났는데 이제 지리산 서쪽의 동악산을 품은 곡성땅이니 옥과천이 흐르는 유역이 아닌가!

옥과천은 성덕산에서 발원해 섬진강으로 흐르는 하천으로 심청전 설화와 깊은 연관이 있는 하천이다.

 

바위 암릉에 앉아 아침 일출 기다리는 것보다

진행하는 게 좋을 듯하여 

 

괘일산과 옥과면 방향

별 특징 없는 무이산도 지나고 

봉래산도 지나고

손으로 꾹꾹 눌러쓴듯한 희미한 비석에

가선대부(嘉善大夫) 황공과 그의 정부인(貞夫人)

의성 *氏로 쓰여있다

한때는 그위상이 대단하셨을 집안의 종 2품 벼슬하신 분 묘를 지나며 가볍게 인사드리고

과치재로 가는 길에 지나온 공장?

좌측은 곡성땅 우측은 담양땅으로

11번 국도와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아래를 지나는데

좌측으로 흐르는 물은 곡성군 옥과면으로 흐르는 옥과천이 흐르고 우측은 영산강 지류인 오례천이 흐른다.

통영지맥 분기점도 지나고 연산도 지나고

 

올라야 할 만덕산인 듯

방아재에서 만덕산으로

만덕산 할미봉

정상에 무덤이 하나 있는데 평소에 덕을 베풀던 산아래 살던 정 씨 할매가 잠들어 계신 곳이어서

만덕산이라는 지명과 할미봉이라 부른 곳이다

벌초오신 후손분께  이야기 한 자락 듣고

밥 한술 공양받는다

밥은 언제나 야전에서 먹는 밥이 최고인데

돼지수육과 고등어 그리고 국도 있고

맛있게 한술 얻어먹고 정 씨 할매의 은덕에 감사드린다

이제 200km 지점을 지난다

호남정맥 중간지점이라

요 앞 어디를 기준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중간지점이라니 조금만 더 가면 끝난다 생각하니 좋고

구미에 사시는 두건님께 호남정맥  전체거리와 100KM로 나눈 거리표 부탁드리고

집에서 나올 때 460KM 정도로 예상했는데 491KM라고 하신다.

이래 저래 500KM 안되니 500 넘게 늘릴 수도 없고 

 

선돌고개

임도 따라 올라가다가 남의 집 텃밭을 지나

천리길(400km)을 걸으며

도로길은 가볍게 걸으면 매일 70km 이상 걸어야 하고

배낭이 무거우면 60km

산길 32km

해안길 43km가 기본이다.

하루 이틀은 쉬운데 결코 쉽지 않다.

 

잔치 국수봉에서

잠시 앉아 쉬며

통정대부 인동장공과 숙부인 전주이 씨 묘

장석은 잘 세웠는데 묘는 관리가 안되는 듯 잡목이 심해 언제 적 벌초했는지 모르겠다.

 

담양군 장평면 외동리 소 키우는 목장인데 커다란 독수리 백여 마리 되는 듯 온통 독수리가 날거나 앉아 있고

흐르는 물은 남천이며 물은 목장의 소똥을 한차례 담아내는  상외동 저수지에 고였다가 동복천으로 흘러가 동복호에 안기는데 방목하는 소들이 싸는 분뇨가 모두 동복호로 흘러드는 곳이다.

동산한옥길 노가리 고개에서

진압산 450미터 올라가다가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와 숨 넘어가는 줄

보따리 던지고 싶었던 곳이다.

 

그러함에도 꾸역꾸역

마치 바퀴벌레 약 맞고 방바닥 기어가는 것처럼 체력 방전될 무렵에 올라온 진압산 정상이며

무등산 직전의 유둔재까지 8,5km, 남았는데

해가 빠질 듯하니 걸음을 빨리한다

3부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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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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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두건(頭巾) | 작성시간 26.04.01 그 바쁜 와중에 까치봉도 가시고 설산도 가셨네요~ㅎ
    덕분에 까치봉에서의 내장산 멋지게 봅니다.
    뫼봉은 ㅗ가 지워져서 미봉이 되어 버렸네요.
    영산기맥분기점 가는길 산죽 정말 엄청나죠?
    첫길에 식겁하고 다시는 그쪽으로 안간다는 ㅋㅋ
    수고하셨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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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배병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03 그리 멀지 않다면 찾아보고 하는데 나중에는 힘이 빠지니 다 귀찮더군요
    훗날 다시 한 번 호남으로 갈 수 있을지 아마도 더 이상의 호남정맥은 없을 듯 하며 4월 어느 날 낙동으로 갈 것 같습니다. 두건님의 낙동과 낙남정맥 안전한 산길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치토스2 | 작성시간 26.04.02 노숙의 기본 단계...ㅎ 현실로 꿈꾸어 봅니다...
    정상에 바퀴벌레가 궁금해서 3부로 고고씽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배병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03 ㅎㅎㅎ 아마도 화장실부터 가서 노숙해야 할 것 같고 차츰차츰 동네 앞 정자 위로 올라오시면 될 듯합니다. 내일 즐거운 마음으로 뵙기로 하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치토스2 | 작성시간 26.04.03 배병만 네..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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