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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km 이상

호남정맥 506km 3부 (저 산이 내게 도착하다)

작성자배병만|작성시간26.04.02|조회수311 목록 댓글 8

야생이 펄펄 살아있는 산림을 걸으며 
양지와 음지에 사는 식물이 다르고
모든 식물이 다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걸 느낀다.
장거리 산행이라는 정글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둔재로 가는 길에 본 무등산
내일 오전에 도착할 호남의 첫 1천 m 고지의 무등으로
강원도의 설악산이나 한양땅 북한산처럼 골산(骨山)이 아닌 육중한 토산(土山)을 바탕으로 곳곳에 입석대, 서석대, 규암 같은 바위를 둔 국립공원이다.

218km 지점

공원 화장실 지붕 위에 친구가 숨겨놓은 물과 여러 가지 찾아들고 일단 물부터 실컷 마시고 
김밥 두 줄이 있었는데 산에서 어찌 될지 몰라 김밥은 양봉하는 집의 강아지에게 던져주고
도로 아래 마을 정자로 찾아간다.
 

마을 정자에 핫팩 하나로 잠자리 준비해 두고
핫앤쿡으로 저녁 식사하고 8시 무렵에 잠자리에 든다
3월 17일 (여덟째날)  천고지의 무등에 올라야 하기에 조금 서둘러 새벽 3시에 일어나
친구가 가지고 온 물품 배낭에 쓸어 담듯 넣으니 이러다 무등산 올라가다 어느 등로에서 쓰러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아까워 버릴 수도 없고 무등으로 올라가는 길에 배속에 넣어 보기로 하고 짊어지니 허리가 휠 지경이다.
 

구자창을 지나고

남백정재를 지나

무등이 너무 먼가?

북산도 지나고
장불재까지 5,1km는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길

신선대에서
유네스코 지질공원이다
조망 좋은 곳에 앉아 배낭 무게도 줄일 겸 핫앤쿡 라면에 물 부어 놓고 한라봉과 음료수 하나 배속으로 넣고
신선대 갈림길에서 북봉이냐! 규봉암이냐!  망설이다가 무등산 산허리를 감싸는 좌측 등로 따라 규봉암으로 향한다.

무등에서 경치가 가장 빼어나다는 규봉암에 도착
아주 견고한 성위에 절집을 지은듯한 모습으로 일주문을 보면 무등산 규봉암이라 쓰여있고
무슨 소원이든 금방 들어주실 것 같은 절집이다.
 

무등산 광석대 주상절리를 배경으로 만든 규봉암
이곳에서 수행정진 하게되면 모든 스님들이 득도를 해서 도솔천으로 올라가셨을것으로 보이고
절 집 담장에서 보면 지리산 천왕과 반야가 잘 보이는데 날씨가 뿌연 게 지리가 보이지 않는데
산정에서 푸른빛의 하늘이 아직 갈길이 멀어 너무 헛된 희망을 품지 말라는 듯하다

규봉암 대웅전
해발 950M의 규봉암은 운주사, 백아산. 고인돌과 함께 화순 8경에 드는 곳으로 신라시대  의상대사께서 창건한 절로써
전국 어딜 가나 원효 아니면 의상이니 "그런갑다"할일이다
원효와 함께 당나라로 가서 공부하고자 요동까지 갔으나 고구려군에게 첩자로 몰려 갇혀 있다가 어찌 풀려나 신라로 돌아왔다가
두 번째로  당나라로 가기 위해 백제국 항구로 가던 중 어느 토굴에서 해골물 마시고 대오(大悟)한 원효는 신라로 돌아가고
의상만 당나라 간다. 유학을 마치고 온 의상은 화엄종의 시초가 되었는데 의상이 창건한 절은 어느 지역 어디에 자리잡았던 모두  빼어난 풍경을 하고 있다
이곳 역시 경치가 워낙 좋아 규봉암에 다녀가지 않고서 무등에 다녀왔다고 말하면 안 될 정도로 경치가 좋은 곳이고
무등산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동복천 지류인 화순군 이서면으로 흐르는 이서천이며  서쪽 서석대에서 발원하는 광주천으로  영산강으로 흘러간다

백마능선
장불재에서 낙타봉, 안양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2,5KM의 능선이 보이고

가야 할 안양산과 잡목으로 유명한 별산

장불재에 배낭과  축축한 침낭은 햇살에 널어놓고 잠시 입석대와 인왕봉에 다녀온다.
배낭 없으니  다리에 힘이 빠져 걷다가 자빠질 듯...

입석대

서석대
 

인왕봉에서 산객분을 만나 한 장 담고
시간 지나면 남는 건 사진뿐이다.
 

다시 장불재로 돌아와 보따리 정리하고
결로 현상으로 젖었던 침낭이 햇살과 바람에 잘 말라 배낭 속에 넣고
배낭을 메고 나고 허리가 자동으로 휘어진다.
오늘은 묘치에서 노숙해야 하는데 내일 비 온다 하니 걱정이다.
 

백마에서 안양으로 가는 길에

안양산
국립공원 무등산에 속하지만 이름하나 얻고 당당히 서있다
마치 설악산 국립공원의 안산 같은 품격으로

전국 120곳 정도 있다는 풍력발전기가 보이는 별산으로 가는 길에
별산에서 화순읍 앞으로 흐르는 화순천 발원지가 별산이다

무등산 편백 휴양림에 와서 자판기에 음료수 두 개 꺼내 원샷하고 
 

여름에 오면 고생할 구간

규봉 고개 도착
별산으로 오르는데 8부 능선부터 잡목이 제법 있는데
그렇게 까칠하거나 힘든 곳은 아니다.
다만 호남길에 있어 별산이나 보성땅 광대코재에서 존재산 오름길은 조금 거시기하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별산에서 본 지나온 무등산
이 길을 지나면 80km 정도거리에 떨어진 장흥땅 가지산이나 제암산까지 멋진 산도 없고 어떠한 특징도 없이 이어진다.
 

화순 팔경에 속하는 하얀 거위(白鵝)라는 뜻으로 백아산이 보이고 
동복호를 품고 있는 동복천은 모후지맥 분기점 인근에서 화순 백야면 송단리를 지나 이서면, 동북호, 동북면, 사평면 복교리에서 주암호에 담기면서 보성강이란 이름으로 바뀌는 54KM의 하천이다.
 

248km 지점 묘치 삼거리 도착
비 올 듯 바람이 차갑고 길바닥에 앉아 열나는 발부터 깨끗이 씻고
바로 옆 컨테이너 박스 옆에 노숙할 준비 하는데 오고 가는 차량이 노숙자로 신고할까 걱정이 되어
해빠지길 기다렸다가 비닐로 막고 은박돗자리 깔고 잘 준비한다
초저녁에 잠깐 잠이 들었으나 10시 무렵 비 오는지 비닐 위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시골 양철지붕 위에 떨어지는 비 소리보다 더 듣기 좋은 비닐 위에 떨어지는 소리
이런 비 오는 밤에는 한산의 목화솜이불속에 뒹굴뒹굴해야 하겠지만...
18일 아홉째날 새벽 3시 30분 무렵에 일어나 좁은 비닐 안에서 꼼지락거리며 배낭 정리하는 도중에도 비가 제법 온다.
휴대폰에 빗물 들어갈까 봐 사진은 몇 장만 찍는다
어둠 속 산길을 걷다가 어느 문중의 3단 무덤가 바위에 앉아 아침 먹고 진행하는데 강아지 몇 마리와 어미개들이 야단이다.
얼른 지나 산으로 올라갔는데 무슨 일인지 비슷한 강아지와 어미개를 또 만난다.
무슨 일이야! 온 산에 똥강아지라니 별일도 다 있네 했더니 빽 해서 다시 되돌아 내려왔다
그래서 강아지들이 다시 돌아가라며 밖으로 나와본 듯하다
"귀신에 홀린 건가?"
 
 

어딘지?

천왕산에서
이름만 천왕이고

지나온 천왕산 방향

광주 학생교육원에 들어가 잠시 쉬며

천운 2봉

소나무길도 지나고

천운산 
비는 그칠 줄 모르고
1,8km 가면 돗재다

돗재 도착

태악산
지나오면서  500 고지를 여러 개 지났지만 눈에 뵈는 게 없어 힘든 줄 모르고 지난다.

비 오는 날

비 오는 날 풍경
한 녀석은 이끼를  또한 녀석은 운지버섯을 훈장처럼 달았고

태악산 인근의 습지 같은데 물은 고여있지 않으나 분명 고산습지로 보이는데
이런 곳과 비슷한 곳이 함안의 방어산 능선에도 있었는데 지형이 꺼진 곳이다

생강꽃도 피고

노인봉도 지나고
오르막 내리막을 수도 없이 지나 비구름이 가득하닌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고
다만 오름길이 그렇게 길지 않은 건 분명하다.
 

성제봉

말머리재

촛대봉 지나 임도길 하나 올라와

두봉산 가는 길

280km 지점
비 그 칠 무렵 개기재에서 일정 마무리하고 젖은 옷 갈아입고 화순으로 나간다.
 

날 궂이한 날은 얼큰한 짬뽕이 최고일듯해서 여관에 들어가 씻고 젖은 옷을 방바닥에 널어놓고
화순읍 향정리 간이역 짬뽕전문점
지금까지 먹어본 짬뽕 중 최고였던 것 같다
화순 지역번호 372 ㅡ0502번
여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일 필요한 것들 중 보충할 것도 사 오고 
휴대폰 배터리 충전시키고 젖은 신발 말리고
 

19일 열 번째 날 새벽에 3시에 택시로 개기재로 향하며
계당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하나는 외롭지만 여럿이 모이면 야경이 되고
세상속내야 어찌 되었던 그저 편안하게 보이는 새벽풍경이다
 

계당산 정상에서
화순-나주땅으로 흐르는 지석천(드들강)은 이곳 계당산지나  570봉에서 발원해서 영산강에 합류하는 56km 강이고
정상에서 좌측땅은 보성땅이며 우측 쪽은 화순땅 빗물이 어느 쪽으로 떨어지느냐에 따라 섬진강을 거처 남해로 흘러들거나,
영산강을 거처 서해로 흘러드는데 지석천에 제방을 쌓으면서 자꾸만 무너져 산사람을 함께 묻어야 한다고 해서  이곳에 사는 드들이란 처녀를 제물로 물었다고 전한다.
처녀를 제방에  묻고 난 후로는 무너지지 않았다고...
그리고 지석천 발원지로는 계당산 정상에서 남쪽과 북쪽 모두 발원지로 알려져 있지만 570봉이 가장 길다.
하천 따라 거석(巨石) 문화의 대표지와 함께 없어서는 안 될  당대를 대표했던 선비의 표상이라 일 컸던 조광조 선생의 유배지와 초장지(初裝地)가 있으며, 조광조 선생께서 유배온 능주면 유배지 초막에는 선생께서 이제나 저제나 해배(유배 풀어주는 것)가 될까 하여 밤, 낮으로 방문을 열어두고 지냈는데 1개월 후 사약이 내려와 죽임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계당산 아래 쌍봉사 대웅전
멀리 백두대간 속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법주사의 팔상전과 비슷하게 보이는 건물로
원래는 보물 163호였지만 1984년 어느 날 스님께서 기도를 드리는 중에 대웅전에 화재로 소실되어 보물로써 기능이 상실되었다는 건물이다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보물 제170호
지나는 길에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아 올려 본다.
그리고 지석천 따라가다 보면 우리나라 대표 거석문화를 자랑하는 화순 고인돌 군락이 나오는데

기원전 5-6세기경 청동기 시대 때 만들어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
전남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고개 넘어 춘양면 대신리에 약 600 여기의 고인돌이 있으며
인근 핑매바위산이나 만지산에서 지석묘 덮개돌을 운반하여 묘 덮개로 사용했다
 

계당산에서 등로가 아주 좋아서 그런지 산악 오토바이가 많이 다니는 곳이다.
그러함에도 아침은 싱그럽고
 

예재
좌측은 보성땅 노동천이 보성강으로 흐르는 곳
우측은  화순땅으로 흐르는 지석천 유역이다

시리산의 삼각점이 보이고

봉화산

마루금을 휀스로 막아두었지만 들어가도 될듯한 통로? 가 보여 개인 사유지로 당당하게 들어와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면 주인과 실랑이할 듯
그럼에도 "산객인데 잠시 지나가겠다"며 인사드리고
 

잔잔한 오름길에 만나는 고비산과 시그널
이제는 어지간한 오르막은 평지처럼 느껴지고
힘들지 않다.
몸무게가 대략 5KG 정도 빠진 듯

장흥땅으로 들어오니 산이 조금씩 거칠어지는 느끼이 들고 산악 오토바이가 다녀 길은 좋으나 움푹 파인곳이 많아졌고
내일 새벽에 제암산에 올라 일출 볼수 있을 것 같다

큰골덕재에 도착하니
조선시대 종 4품 무관직 벼슬하신 "부호군 죽산 안정댁공"의 묘 입구를 알리는 비석이 눈에 들어오는데
요즘으로 치면 중령급이며 대대장급이다
 

멀리 제암산이 보이는데 
백두대간 따라 금강이나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 그 외 북한땅 칠보와 묘향, 합천의 가야산, 봉화의 청량산을 두고 이중환 선생이 빼어난 명산이라 했는데 호남정맥 산길 제암산과 일림산 그리고 땅끝으로 향하는 길에 월출네도 그에 못지않은 명산이다.
호남의 제암산이나 일림산이 백두대간 속 이름난 명산에  견줄 바는 못되지만 이중환 선생이 5월 철쭉으로 온 산정을 연분홍으로 물들인 날 산정에 와보셨다면 분명 명산이라 한 줄 적었을듯한 산이다.
다만 택리지 이중환 선생은 전라도와 평안도는 내가 가보지 않았고 함경도 강원도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는 많이가 보았다. 내가 본 것을 토대로 하고 들은 것을 참고하여 다음과 같이 쓴다. 이렇게 적었다.
한양의 북한산 도봉산, 계룡의 계룡산 어지간한 명산은 모두가 바위를 기본으로 하는 골산(骨山)이지만 제암이나 일림산은 토산으로 철쭉을 기본으로 품는 산인데 큰 사찰을 품고 있지 않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군치산에서 

봉미산을 지나고

308km 지점인  화순땅과 장흥군을 연결하는 곰치재에서
오후 4시 조금 지나 도착
인생은 길따라 흐른다는
새길이 뚫리면 구 길은 죽어버리는데 이곳도 그러한곳이다

텅 빈 휴게소를 나 홀로 지키시는 할머니께 인사드리고 
 

라면 하나 시켜놓고

예전에 터널이 생기기 전에 곰치재 위로 4차선 도로가 생기려 할 때 도로공사와 모텔, 휴게소 측에서 지나치게 부른 땅보상 문제로 타협점을 찾지 못하자 도로공사 측에서 "그래! 그럼  니 마음대로 하시죠 "라며 비용이 더 들더라도 터널을 뚫어 버렸고 이후에  신축이나 다름없던 모텔은 문을 닫아 영업하지 않고 휴게소에도 산꾼들과  가끔 지나가는 몇몇의 나들이 객들만 찾는 곳이 되어 지금은 을씨년스러운 곳이 되었다
적당히 받고 팔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일찍 도착했기에  좀 더 가서 백토재에서 자려다 마침 장흥으로 나가는 시내버스가 오기에 나도 모르게 몸을 싣는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가볍게 올걸 괜히 짊어지고 온 듯
 

장흥으로 나가서 자고
20일 열한번째날 새벽 03시에 나와 오늘은 제암산 직전의 갑낭재까지 가고 시간이 남으면  탐진강 끝자락 강진땅으로 가서 몇곳 찾아보고 올까 한다.

오늘 가야 할 곳 

삼계봉

국사봉

가지산 방향으로
 

새벽이 밝아오고

깃대봉
 

땅끝 사자봉으로 향하는 지맥길이며 그 끝에는 남해와 서해의 경계지점이기도 한 곳이다.
이곳은 서해로 흐르는 영산강과 남해로 흐르는 탐진강 분기점이며 장흥, 강진으로 흐르는 탐진강 유역이기도 한 곳이다.
탐진강은 호남정맥(장흥군 유치면 430봉)에서 분기해서 해남 송지면 사자바위 아래인 땅끝으로 이어지는 지맥길인 궁성산 인근  성터샘 썩은 물  즉 달뜨는 마을 영암땅에서 태어났으나 산세가 아름다운 장흥땅을 거쳐 갯내음 물씬 풍기는 강진에서 바다 품에 안기는 54KM의 하천이다
 

삼계봉
곰치재에서 잔잔한 오름만 이어지다 삼계까지 올라와 이제 가지산에 올라가면 멋진 조망이 나올 것 같다
 
 

뫼山자를 닮은 가지산이 지척이고

멀리 화순군 청풍의 화악산으로 풍력 발전기가 보이고
 

월출네와 지맥길에 만나는 활성산 풍력 발전기와 전국에 아흔아홉 개 있다는 국사이 보이는데 옛 지명이 덕룡산(德龍山)이라 하였으나 북쪽 깊은 골에 자리 잡은 쌍계사(雙溪寺)에서 고려시대에 나라의 큰 스승이 "열두 분 중 그중 두 분이 배출되었다"하여 국사봉이라 붙여진 지명이다
앞으로 흐르는 하천은 장흥과 강진만으로 흘러가는 탐진강 유역이다
첩첩 산중속에서 강원도의 산들은 하나같이 그 속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까칠하고

경북의 산들은 착한 듯 순하고 장흥의 의 산들은 덩치는 작아도 당돌한 산이 많다. 

정상보다 조금 아래 자리 잡은 정상석
산아래 가지산 보림사가 있는데  9산선문 중 가지산문이라 붙여진 이름이고
 

산아래 9산선문중 하나인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 말사의 절이며 통일 신라말기의 절집 가지산문의 보림사가 보인다
 

산아래에서 본 가지산

보림사 대웅보전
금동석가여래상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협시불을(문수와 보현)모신곳
 

구산선문 종찰 가지산 보림사 일주문
신라 9산선문 중에서 재일 먼저 개산(開山)한 가지산파의 중심 사찰이다.

9산 성문은 대표적으로
황해도 광조사의 수미 산문.
문경  희양산문의 봉암사 
보령 성주사의 성주산문
장흥 보림사의 가지산문
남원 실상사의 실상산문
강릉 굴산사의 굴산산문
영월 법흥사 사자산문
곡성 태안사의 동리산문
창원 봉림사의 봉림산문이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림사 절이 보이는 바위에 앉아 
아침밥은 이렇게 먹고ᆢ.

정맥길에 전북 구간이 참나무숲 구간이었다면 
전남 구간인 장흥, 보성, 구간은 편백나무숲이 많이 있다

피재로 가는 길에 어느 문중의 산소를 지나니 태양광이 길게 자리하고

피재도착 병무산으로 오르고
오늘 산행은 어제보다 쉽고 진행이 빠른 편이다
 

어디던 바람 부는 곳에 앉아

병무산 도채
갑낭재 9,8km 지점이고 높은 산이 없어 진행하기 좋고

앞에 내일 새벽에 오르게 될 제암산이 보이는데 정상에 커다란 제암바위가 유독 눈에 띄고
그 옆에 사자머리봉이 길게 보인다.

산길에 뭔 일인가?  궁금하여 나온 개구리
인사 나누고
"니가 조심할 건 뱀뿐이니 그 녀석에게 걸리지 말고 살라"하고
 

장흥의 수인산 방향으로
장흥을 싸고도는 산으로 서쪽에 수인산, 옥녀봉, 수리봉
남쪽에 억불과 천관산,
동쪽에 제암과 일림산이 있는데 하나같이 당돌한 미인형의 산들이다

멀리 지나온 무등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데 일림산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고 진행할수록 무등과 모후산과 함께 보인다

편백 군락지를 지나

334km 지점
갑낭재 도채
일찍 도착했기에 진행할까 말까
진행한다면 사자봉에서 자야 하는데 뫳선생들의 등살에 잠잘 곳이 못되어 이곳에서 정리한다.
택시 불러 강진땅 황대중 장군의 말무덤을 찾을까
다산초당이나 백련사를 찾을까 이순신장군께서 백의종군할 때 따라다니셨던 황대중장군이냐!

참고로 양건당(兩蹇堂) 황대중 장군은 양쪽 다리 모두가 절름발인데 왼쪽 다리는 어머님 병환이 깊어지자 본인의 왼쪽 허벅지 살을 도려내 어머니께 고아서 드렸고, 1594년 거제 전투 때 오른쪽 다리마저 다쳐 양쪽 모두 다쳤다. 그래서 양건당이라는 호는 이순신 장군께서 내렸다고 전한다
1597년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하셨는데 시신은 장군의 애마(馬)의 등에 올려져 남원에서 강진으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걸어 도착했으며 주인의 장례를 치른 후 3일 만에 숨을 거두자 후손들이 논 가운데 묻어줬다
강진땅에 오면 작천면의 "양건당 애마지총"이 있는 곳을 찾고 싶어 고민하다 택시가 오자 말무덤 주소를 몰라 다산초당으로 가본다

택시 올 때까지 기다리며
4부는 다음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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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배병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03 비오는날도 뿌연날도 날씨에는 그렇게 신경쓰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시간 지나고 보니 힘든것도 기억되는것도 그렇게 얷구요
    대장님 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치토스2 | 작성시간 26.04.02 인생은 길을 따라 흐른다...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아..쫀득 할 4부...
  • 답댓글 작성자배병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03 내일 오실때 운전 조심해서 오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래선생 | 작성시간 26.04.03 뫼산山 닮은 가지산 신기합니다.^^ 우중산행은 난감하죠! 막상 비가 오면 우비입고 걸어야 겠지만 그 또한 낭만이라 생각한다면 즐겁게 걷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힘들면 환장하죠!ㅋㅋ 비 피할 곳이 있으면 잠깐 쉬겠지만... 고생하셨습니다.
    어깨의 무게가 그냥 중력에 의한 무게로 몸이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ㅠㅠ
  • 작성자젊은미소(조성민) | 작성시간 26.04.03 멋진 무등산 구간을 지나가시고 우리도 주간에 지나곳은 생생한데
    야간에 지난곳은 희미한 기억이 산과 봉우리를 인증한것 밖에 안나네요.
    방장님의 장거리 힘들고 어려운 그길은 지나면서 무슨생각을 하시면서
    진행할까하는 마음도 듭니다.
    비도 오고 춥기도한 한방의 호남 3부산행도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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