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면 두 가지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중에 하나가 포기다.
포기해야 할 때...
...
모든 게 무너진다.
만덕산 아래 백련사는 고려시대 때 여덟 분의 국사를 배출한 곳이었으나 고려말 강진으로 들어온 왜구에 의해 폐철되었다가 이후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대웅보전에 들러 부처님께 절하고 나와 현판글은 추사와 쌍벽을 이루던 원교 이광사 선생이 쓴 글로써 대웅보전, 바로 앞의 만경루 , 명부전 글 3점이 있다.
백련사 붉은 동백은 아직 피지 않았고 다산초당으로...
다산초당
예전에 다산 선생이 살던 초가집은 세월을 이기지 못해 흔적 없이 사라지고
그의 외가 집안인 해남 윤 씨 후손들이 새로 지은 초당이다.
다산 선생께서 한양에서 유배온 초당까지 의금부 노정기를 보면 전라도는 대략 56곳의 유배지가 있고 하루평균 85리 정도 대략 35킬로를 걸어야 하셨고
전날에도 장흥에서 편안하게 자고 오늘 밤도 편안하게 자고 일어나
21일 열두번째 새벽에 다시 갑낭재에서 시작한다
어둠 속 짧은 오름길 올라오면 680미터의 작은산에 도착하고
제암산에 올라오니 서서히 밝아진다
위에 정상석이 있고
조금 아래 제암산 정상석을 담고
정상에 임금재(帝) 자 모양의 큰 바위가 솟은 모습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는 제암산
이곳 제암산 남쪽 계곡에서 보성강 최장발원지가 발원하며 섬진강이 만나는 구례까지 이어진다
보성강은 섬진강 제1지류로써 보성군, 장흥군, 순천시를 흘러 곡성군에서 섬진강에 합류하는 120km의 강
발원지로는 호남정맥길 일림산 용추계곡과
제암산 동남쪽 웅치면 대산리를 발원지로 하는 두 가지가 있다.
두 곳 다 발원지 표시석이 있지만, 인공위성 자료를 찾아보며 호남정맥길의 조망 좋은 남도의 철쭉산인 일림산과 사자산,
제암산을 모두 보성강 발원지로 보고 그중에서 가장 긴 빗물꼭짓점 코스를 찾으니 제암산 정상에서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계곡이 가장 길다.
보성강은 1 급수에 산다는 다슬기가 많이 있지만 수질은 그렇게 깨끗한 편은 아니다.
호남정맥이 그동안 굽이 굽이돌고 돌아 남쪽으로 이어져 왔다면 사자산에서부터 동쪽으로 향한다.
장흥땅으로
하늘문
이문을 통해서 어떤 선녀가 내려올지
볼거리 만든다고 벌목도 해두었고
곰재 사거리
보성군 웅치면 사람들이 장흥 장(場)으로 가기 위해 넘던 고개
아침 식사하시죠
오늘은 기럭재 내일 22일은 석거리재까지
그다음 날 23일 조계산 넘어 문유산에서 좀 더 지나면 임도가 나오는데 순천시 승주읍 도정리 인근에 창원 전국구님 지인분의 농막에서 자고 가도 된다 하고
그다음 날 24일은 백운산 한재까지 가서 자야 해서 쌀 구경은 힘들 것 같다. 이제 며칠만 걸으면 끝나는데 누적거리가 500km 넘을 것 같다
굽이치는 산과 들판이 있으나 자연 앞에 직선은 없고 거칠듯 하나 자유로운 경계만 있을 뿐인 월출네와 국사봉 방향 지나 멀리 목포나 무안 방향이다
천관산 방향과 사자산 두봉과 억불봉 방향
사자가 우러러본다는 사자머리다.
전날 이곳까지 와서 자야 했지만 철쭉이 많은 곳은 뫳선생 영역이라 노숙을 포기했더니
철쭉 군락지 등산로따라 새벽부터 뫳선생들께서 모든 인력을 동원해서 커다란 바위돌까지 들춰가며 노가다 공사를 했는데 등로가 엉망이다
철쭉밭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 녀석들 잡아다가 시골집 노부 부분들이 밭일하실 때 한 마리씩 보내드려 밭 갈게 했으면 좋겠다.
사자봉
사자의 심장에 해당하는 곳으로 보인다.
억불봉과 사자머리봉 가운데 장흥군
일림산 방향으로
등로는 뫳선생이 밭을 갈아두었는데 이 녀석들은 이곳에서 최고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일림산까지 잔잔한 산길이 이어지니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다
골치재 등로 좋은 곳에 퍼질러 앉아
저기 테이프는 잠자기 전 비닐을 고정시키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데 편리하고 좋다.
골치산 작은 봉이며 일림산 1km 전 한치재 5,6km 전이다.
골치산 지나 산죽길이 좋고
아마도 보성강 발원지를 알리는 듯한데
일림산에서 발원해 심병이골을 지나 용추를 지나는 하천으로 제암산 서쪽에서 내려오는 하천보다 7백 미터가량 짧고
이정표가 잘 되어있어 좋고
일림산 정상의 김해김공과 나주 오 씨 합장묘인 듯하다.
나주오 씨는 신라시대 때 중국에서 건너온 성씨로 알려졌는데 이 높은 곳 조망 좋은 곳에 산소를 쓰기까지 후손들이 고생 좀 하셨을 것 같고 문중에서 관리를 하는지 산소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후손들이 모두 다 잘 되셨기를 바라며
어르신께 "구경 좀 하고 가겠노라" 인사드리고
가야 할 산길 속에 조계산이 보이는데 언제 가냐...
그동안 길을 걸으며 뿌연 미세 먼지와 참나무, 대나무 숲을 지나며 특별히 볼 것이 없었는데 무등과 일람에서 제대로 된 경치에 푹 빠진다.
똑같은 하늘에 항상 같은 모습이라면 미치게 만들었겠으나 가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산아래를 내려다보니 마른나무에 꽃이 핀듯한 느낌이다
인증 담고
마냥 앉아 있을 수 없고
해지기 전까지 어디든 가야 하니
한치재 일림산을 지나와
뭔가 이상해서 지도를 보니 이곳은 마루금이 아니다.
다시 올라갈 수도 없고 왜 이곳으로 등로를 만들었는지
마루금 따라 내려가면 개인사유지가 있어 통제가 되어 이곳으로 길을 돌려놓았는지
어쨋던 도로 따라 아래로 내려가며
도로 따라 삼수마을에서 마루금을 이어가는데
도로 건너에 마루금으로 개인사유지가 자리하는 게 보인다.
보성군에서 한치재로 등산로를 만들면서 정맥꾼들이 이길로 다니는 것 같다
카페에 들러 음료수 2병 사들고 나와
왕새고개 활성산 방향으로
잔잔한 오름길이라 좋고
활성산 정상
한때는 산성이 있었던 곳인데 흔적이 보이지 않고
활성산에서 내려오는 길의 등로는 조금 거친데
한여름에는 고생 좀 할 듯하다
보성 차밭인 명량 다원
이 녀석들은 낮은 자세로 사철 푸른 옷을 입고
참나무, 단풍나무처럼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차나무다
이 푸르름을 잃지않은 차나무 많아도 너무 많으니
어디가 모르게 답답함도 보인다
남들 다 떨궈낼 때 홀가분하게 벗는 법도 알았으면...
산길에 가끔 떨어진 벌레 먹은 밤을 볼 수 있는데 밤은 삼정승을 상징하며 제사상에 꼭 올라가는데 예전에 불화가 생긴다 하여 집터에 밤나무를 심지 않고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마을 어귀에 밤나무를 심었다 전한다.
보성 녹차밭인 명량 다원을 내려오니
높이 3미터 정도의 높은 장벽이 막혀있고 어디로 가느냐!
문아래 뜯어진 곳이 보여 배낭은 깨질 게 없어 담장밖으로 던지고
누워서 기어 나가니 지나가던 사람이 웃는다.^^
"예~~~ 차 도둑은 아닙니다."
봇재
건물이 많이 보여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을까 했는데
사방을 둘러봐도 밀가루 냄새는 고사하고 흔한 자판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
커다란 건물에 들어가면 뭐라도 팔겠지 하며 올라가니 산행에 도움 될 것은 팔고 있지 않고 커피숍 여직원께 물 몇 병 보충해서 나온다.
오늘 자게 될 기럭재 9KM
등로가 너무 좋아 진행이 빠르다.
득량만의 오봉산 방향으로
봉화산 정상에서
봇재 5,4KM
기럭재 4,7KM 지점이다.
등로가 너무 좋아 평속 4km 속도로 온듯하다
보성땅 득량만과 오봉산 방향
그동안 솜주먹님
조망 좋은 곳에 앉아
혼자 다니다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주로 클럽 관한 생각인데 혹시라도 안전사고 날까 싶어 늘 잔소리 또 잔소리다.
그러함에도 일부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주로 상대를 걸고넘어진다.
특징 없는 배각산을 지나
좌측으로 보성군청이 지척인 곳이다.
초록으로 물드는 세상이고 저 넘어 방장산인 듯 보인다.
369KM 지점 기럭재에 도착해서 오늘 일정 정리하고
안치마을 정자에 자야 해서 마을 분께 허락을 구해놓고
투명한 유리창이기에 지나가는 분들이 볼까 하여
해 빠질 때까지 기다린다
배낭은 정자에 벗어두고 잠시 해넘이 구경하고
그러고 보니 전북 진안에서 임실, 순창, 곡성. 화순. 장흥
보성까지 많이 내려와 있고 이제 남은 도시는 순천과 광양까지 130km 정도 남아있다
밤에 조금 춥긴했으나 22일 열 세번째날 안치마을에서 새벽 3시 조금 넘어 밖으로 나와
초입의 편백나무 숲에서 길을 못 찾아 무작정 올라가다가 허벅지 터지는 고통이 찾아왔고
등산로에서 살짝 벗어난 대룡산에 올라와서
오도재
국사봉 1,3KM 이 방장산 6,0KM 방향으로
등산로는 도로 따라 조금 진행하면 나온다.
도로가에 앉아 식사하고
이 짓도 할 짓이 못되니 회원분들은 지원받고 편안하게 하셨으면
국사봉
파청재를 지나
방장산
특별한 조망도 없고
고인돌 바위라고
고인돌은 아닌 것 같다.
주월산에서 허리가 굽은듯
오래전 11월 이던가 해안길 걸으며 저녁에 득량면 해평마을을 지나다 어느 식당에 들어가 장어땅 한 그릇 얻어먹고 나왔던 날이 기억나는데
배고픈 나그네에게 밥 한술 내밀어 주던 여주인께서는 바닷가를 배경삼아 잘 계시는지
조망 좋은 주월산 정상
좋은 길은 저짜로 갔고
이제 잡목길이 잠시 반긴다.
잡목길
여름에 오면 고생하겠지만
누구나 고생할 길이 호남길이다
철쭉 군락지를 지나와서 고흥지맥 분기점
지나온 주월산과 느재에서 잡목 속을 헤집고 존재산에 올라와서
느재에서 존재산 오름길은 잡목이 다소 있었으나 하천길 칡, 미역줄 덩굴에 비하면 순한 양처럼 느껴졌고
존재산... 군부대가 있어 자세한 글은 쓰지 않는다
...
ㅊㅈㅁ돌아서 ㄱㅇㄷㄱ 인사나누고 나가면 임도길이 이어진다.
존재산이 보이고
임도따라 가는데 우측 마루금에도 지뢰 매설지역이라 출입금지 구역이다
도로 따라와서 산길로 접어들어 주릿재로 들어간다.
산객이 많이 다니지 않아 손목 굵기의 소나무가 빼곡하게 자라는데 배낭에 긁히고 목 위에 온통 부러진 소나무 잔가지 투성이다.
주릿재에 생뚱맞게 존재산 정상적이 있고
동소산 방향으로 올라
호남정맥 방향으로 진행
도로 하나 건너서
석거리재 4KM 전
주인장이 산객을 위해 문을 열어 놓으신 듯
내일 새벽에 오를 백이산이 보이고
402km 지점 석거리재에서
평일이라 그런지 식당문은 닫혀있고 앞으로 3일간 진행할 것도 준비 못하고 무엇보다 너무 일찍 와서 노숙하기도 애매하다
내일부터 망덕포구까지 끝날 때까지 100km 아무것도 없어 인근에 별교읍에 나가서 밥 먹고 먹을 것 준비해야겠기에 벌교로 나간다
네이버로 버스 시간 검색하니 1분 후에 차가 지나간단다.
점잖게 앉아 기다리니 곧바로 차가 오고
벌교에 와서 꼬막정식의 비참한 현실 일단 혼자 가면 팔지 않는단다. 몇 군데 퇴짜맞고
인근 국밥집에서 국밥으로 대신한다.
벌교 꼬막은 최근 10년 동안 너무 무분별하게 잡은 것도 있지만, 중금속 오염, 수온상승, 집단폐사 등으로 99%가 죽었고 한때 매년 2만 톤 잡히던 꼬막이 지금은 200톤으로 추락되었다.
여수에서 돈자랑 말고
순천에서 인물 자랑 말고
벌교에서 주먹자랑하지 말라했기에 조용한 밤을 보내려고 일찍 여관을 찾아간다.
그리고 벌교 하면 꼬막도 유명하지만 좌, 우 대립을 바탕으로 한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참고로 벌교는 이른 새벽에 카카오 택시가 안되니 미리 확인하셔야 함
대도여관 주인분께 새벽에 석거리재까지 2만원에 합의하고 들어가 잠을 자고 나와
23일 열 네번째날 새벽에 밖으로 나와 오늘은 조계산 지나 문유산까지 36km 정도 걸어야 하고
전국구님 지인분 농막까지 가면 편안하게 잠잘 수 있다
그렇다고 배낭 무게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망덕포구가 지척에 있고 다음날 백운산 아래 한재까지 가서 노숙해야 하고 다음날 백운산 지나 망덕포구까지 가야 하니 3일 치 식량과 물은 그대로 가져간다
조망 좋은 백이산에 올라
바람 좋고 야경 좋고
백이산(伯夷山)은 산봉우리에 배를 맨 자욱이 있어 배이산으로 불렀다가 백이산으로 부르게 되었고
중국 은나라 백이, 숙제가 주나라에서 나는 그 어떻한 것도 먹는게 부끄러워 수양산으로 고사리 뜯으러 간 유래와 함께 백이산에도 고사리 심어 군락지가 있다.
보성땅으로
이곳도 뫳선생 천국으로 밭갈이 한번 시윈하게 해 놓았는데 산아래 힘 좋은 트랙터와 붙어도 절대 지지 않을 파워를 가진듯하다.
산에서는 만날 일 없기를 바라며
빈계재(牝鷄)
우측도로 따라가면 순천낙안 읍성이 나오고
좌측으로 가면 보성강 지류인 송경천이 흐른다
원래 이름은 분계재로 지역을 나누는 뜻이었는데
지금은 빈계재로 알려졌는데 암탉을 뜻하는 말인듯하다
어둠이 물러갈 시간
산길을 지나다가 해가 뜨고
이번 산길에 일출은 생여봉, 제암산과 이곳에서 보는 일출이 최고인 듯
등로가 아주 좋아 고동산까지 진행하기 편한 구간
조계산 지나 접치재까지 14,6km
지나온 존재산 방향
고동산 조망 좋고
이곳부터 순천 동천 지류인 이서천 유역 32km 시작하는곳
조계산 장군봉 6,6km를 가리키고
멀리 지리산이 보이는데 이제 거의 끝나가고
예전 백두할때 덕유산 대봉에서 지리가 보일 때 눈물이 그렇게 나더니 호남은 날머리를 지척에 두었으나
찐한 감동은 밀려오지 않는다
오치고개에서
조계산 정상까지 얼마 남지 않았고
조계산 기다리라!
조계산 장군봉
읽어 보시고
하나의 산에 두 개의 본사(本寺)가 자리한 세 곳 중의 하나인 조계산 서쪽의 송광사와 동쪽에는 선암사
국립공원 팔공산 동화사와 은혜사,
국립공원 지리산 화엄사와 쌍계사가 두 개의 본사가 존재하는데 하나같이 대단한 사찰이다
부처님을 모신 송광사 대웅전
이곳 송광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삼보종찰의 하나인 승보종찰의 근본 도량으로 한국불교와 역사를 함께해 온 유서 깊은 곳이다.
신라말 혜린선사께서 창건하시고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스님께서 9년 동안 중창불사를 통해 절의 규모를 확장하셨고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한 근본 도량으로 참선을 중요시하는 선종(禪宗) 사찰로 탈바꿈하며,
이후에 보조국사 지눌 스님을 포함해 열여섯 분의 국사들께서 주석했던 선종사찰로 오늘에 이르렀다
삼보종찰 佛, 法, 僧은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며 최고의 절집으로 알려져 있다
승보종찰 송광사 :보조국사 등 16명의 국사(國師)를 배출했다고 해서 승보 사찰이라 부르며
법보종찰 해인사: 고려 백성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8만 1천352장의 대장경이 소장된 수다라장과 법보전이 있는 곳
불보종찰 통도사:자장 율사께서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가져와 지은 절이기에 부처의 법신을 상징하는 곳이다
조계산 서쪽에 송광사가 있다면 맞은편 선암사가 있는데
한국불교 태고종의 유일의 수행 총림인 선암사 대웅전과 삼층 석탑(보물)
선암사는 백제 성왕 때 아도화상께서 비로암을 짓고 신라 경문왕때 도선국사께서 창건하셨는데 유서 깊은 절이며
주위 전각들이 많고 일반 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 八자 걸음으로 걸어야 될 것 같은 안동의 어느 지체 높은 가문의 양반집처럼 느껴진다.
대웅전 앞마당을 지키는 탑이 두기가 보란 듯 서 있는데 탑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는 처소로써 신도들에게는 예배의 대상으로
건립 연대는 신라 후기의 것으로 추정하며 1996년에 탑을 해체하면서 동쪽의 탑에서 사리 1 과가 들어있는 금동사리함과 백자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를 주존불로 모셨으며 , 세계 유네스코에 한국이 신청한 산지승원, 산사(산寺)로써 경남 양산의 통도사, 영주 봉황산 부석사, 안동 천등산 봉정사, 속리산 법주사. 공주 태화산 마곡사, 해남 두륜산 대흥사와 함께 등재되어 있다.
보물로 지정된 선암사 일주문
정면 현판에는 "조계산 선암사"지만 뒤쪽은 "고청량산 해천사"로 쓰여있다.(산이름은 청량산 절이름은 해천사)
*참고로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된 일주문 다섯 곳 부산의 범어사, 선암사 일주문, 문경 희양산 봉암사 봉황문,
팔공산 동화사 봉황문, 지리산 천은사 일주문이 있다
산아래 송광사에 보조국사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절 안의 이 나무는 내가 죽은 후에 반드시 말라버릴 텐데 만약 가지와 잎이 새로 하거든 내가 다시 살아난 줄 알아라고 하였다. 천년이 지났으나 잎은 나지 않고 있다.
사람은 한번 떠나고 나면...
조계는 중국 광동성에 있으며 당나라 때 혜능 조사가 불법(佛法)을 크게 일으킨 곳으로 소국사가 법안 선사에게 "무엇이 조계의 한 방울입니까?"라고 묻자 법안 선사는 "이것이 바로 조계의 한 방울 물이다"라고 대답했는데 소국사가 크게 깨달았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선종의 진리를 비유한다.
888장군봉 정상석이 마치 커다란 조개 모양을 닮았다
조계에서 보는 만복대와 반야 그리고 천왕
지리산아!
지리산에서 눈물 흘려본 사람 얼마나 될까!
시간이 아깝지 않은 맑은 정신으로 백두대간을 연속으로 한다면 꼭 진부령에서 지리까지 해보라 하고 싶다.
"언젠가 가겠노라"
"지원 받으며 가겠노라" 말하지 말고 짐싸서 당장 떠나야 후회하지 않는다.
멀리 지나온 무등과 강우 관측소가 보이는 화순땅의 모후산 보이고 앞으로 보이는곳은 섬진강 1 지류인 보성강 유역이다
인증 담고
좋은 옷이 없어 장롱 속에 보관할 일도 없고
남루한 옷으로 나선 호남길
나뭇가지에 긁혀 위에 옷은 훈장처럼 구멍이 났고
두 장 남겨보고
422km 지점 접치도착
도로가에 주막하나 있나 했더니 텅 빈 도로가에 앉아
허기진 배로 석개에서 조계 올라 접치까지 왔더니 체력 방전되는 속도가 마치 쓰다만 싸이펜 뚜껑 닫지 않고 오래 둔 것 같다
배낭을 열어 닭고기 하나 입에 물고 앉아 "스스로 이 정도는 해야 재미있지"라며 위로하고
지금 당장 아니면 "언젠가"라는 말로 스스로 위로하진 않는다.
다음 5부는 마지막까지...
호남 끝나면 고생스러운 장거리는 그만둬야지 했으나
저짝에 하나 남은 게 있어 용한 점쟁이 찾아가 좋은 날 잡아 가야겠다는 미친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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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배병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03 400km 넘는게 눈에 들어와서
걷다 왔답니다.
이제 낙동정맥 무지원만 해보고 저도 좀 쉴까 합니다.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토미 작성시간 26.04.03 후기 쭉 보는데 호남정맥 길은 국내 명산으로 지정된 곳을 정말 많이 지나는 것 같습니다
9정맥 중에 다들 호남이 가장 힘들다고 하는데 대단하십니다
후기 잘 보았습니다
훗날 걸을때 방장님 생각 많이 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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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배병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03 ㅎㅎㅎ
호남 하실때 이길을 무지 고생하며 지나간 사람이 있었다고 기억해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토미님의 호남길 응원 드리며 여름날은 피해서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두건(頭巾) 작성시간 26.04.03 다와가네요~ ㅎㅎ
야윈 모습 보니 짠하기도하고
지금은 많이 회복하셨을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
작성자젊은미소(조성민) 작성시간 26.04.03 많이도 진행하셨습니다.
날머리 망덕포구를 향해 마지막을 향해
힘든길 오로지 몇날 몇칠을 산에서 집생각도 그리고 먹고싶은것
빨리 마무리해 쉬고싶다는 그런 마음이겠지요.
이렇게 할수 있는 산꾼이 우리나라에 몇명이 있을까요.
그저 대단하다는 말밖에 그리고 산은 그자리에 변하지않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즐기는산행도 생각해 보세요.
수고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