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심령의학

<쾌유력> 심령술 책으로 나는 변했다(심령의학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작성자작약|작성시간12.11.06|조회수155 목록 댓글 4

 

 

한권의 책과의 만남이 나를 크게 변화시켰다. 그 책을 계기로 나는 병치료의 여로에 올랐다. 그리고 우연히 '氣'를 만났다. 결과적으로는 행복한 만남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책은 '난치병은 원령怨靈(원한을 가진 영혼)에 의한 것'이라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그간의 나의 삶이나 내가 공부해 온 것과는 무관한 장르였다. 또한 한번도 흥미를 가진 적이 없던 분야라 왜 그때 그 책을 손에 들었는지 나 자신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우연이라는 한 가닥의 실로 이어져 있었던 것 같다.

 

병원을 개업한 지 1년여쯤 지나 내 나이 마흔 한살 때였다. 의사가 된 이후 처음 2년간은 마취과에 몸담고 있었다. 수술 전 환자에게 마취를 시키는 일이다. 그 후 내과로 옮겨 대학원에서 면역을 공부한 뒤 내과의로 개업하기 전까지 병원 근무를 계속 했다.

 

특별히 내놓을 것도 없는 경력이지만, 한가지 특징적인 것은 중증 환자와 난치병 환자를 많이 담당했다는 점이다. 덕택에 나는 환자의 귀중한 인명 대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유익하게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병원을 개업하기로 결심했다.

 

개업을 하자 전에 다니던 병원의 환자들이 대거 나를 따라왔다. 낫기 어려운 환자들만 따라 와서 무조건 '고쳐 달라, 고쳐달라'고 떼를 쓰는 형편이었다. 하나 아무리 떼를 써도 류머티즘은 낫기 어려운 병의 대명사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돼 있다. 기껏해야 약을 주든가 기능회복훈련(rehabilitation) 지도를 하든가, 외과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다.

 

부작용이 따르는 약물 치료는 가급적 줄이고 싶었다. 뢴트겐 검사도 문제가 있어 별로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병원 경영이 엉망이 될 판이었다. 애초의 뜻과 달리 개업을 하자마자 불시에 커다란 모순을 끌어안고 만 것이다. 그럴때 이 책을 만난 것이다.

 

책을 펼쳐보니 "병은 원령(원한이 있는 영혼) 탓이므로 그것만 제거하면 된다" 고 나와 있었다. '웃기는 소리하네!'라는 생각을 하는 한편, '이게 진짜라면 끝내주는 얘기'라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저자가 규슈에서 강연회를 한다기에 가보기로 했다.

 

저자는 기공사氣功士였다. 맨 앞줄 중앙에서 보고 있으려니까 "지금부터 10분간 기氣를 보내겠다"면서 명상을 시겼다. 그러자 태반의 사람들이 '기를 느꼈다'고 손을 들었으나 나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게 뭐람, 겨우 요 정도란 말인가' 하고 실망감이 들었으나, 혹시나 하고 돌아오는 길에 책을 몇 권 사들고 돌아왔다. 그 가운데 그의 제자가 쓴 책이 끼여 있었다. 한 심령술사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그 책을 읽고 나니 이번에는 문제의 심령술사를 만나고 싶어졌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난치병 환자 투성이인 나의 가족 중에 나 혼자 건강한 까닭은 무엇일까 늘 궁금히 여기던 차여서 심령술사가 뭐라고 답변할지 궁금했다. 이 심령술사를 만나려면 2년은 걸린다고 했으나, 다행히도 나는 중간에 다리를 놓아 금세 만날 수 있었다. 나는 히로시마까지 심령술사를 만나러 갔던 것이다.

 

 

내가 찾아본 심령술사는 주택 단지에 사는 보통 주부였다. 소개한 사람과 함께 밤 10시쯤 도착해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차를 날라왔다. 두세 마디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가 갑자기 "잠깐만요, 전화가 울려서요"하며 방을 나갔다. '전화벨이라니...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그러나 잠시후 정말로 전화 벨이 울렸다. 기절할 듯 놀란 나는 등줄기가 오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돌아온 그녀는 내 얼굴을 보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지켜 주는 사람이 있군요."

 

나는 이 한마디를 듣고자 예까지 온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나를 감싸고 있던 두꺼운 껍질이 스르르 벗겨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가족의 병 이야기를 들은 그녀가 말했다. 전에는 당신네 가족 모두에게 햇살이 비쳤으나 조상을 소홀히 여기고 신앙심이 약한 탓에 그늘이 지기 시작, 지금은 모두들 병이 들었다. 건강한 사람은 당신 혼자뿐인데, 그 이유는 조상님이 지켜주셔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 일가족에 대해 내가 미처 몰랐던 일까지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아직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였다. 나는 어머니 병환에 대해서도 물어 보았다. 그러자 "당신 어머님은 위험하세요. 그렇지만 그 분을 지켜 주려는 사람들이 있네요."라면서 몇몇 사람의 이름을 적어 내려갔다. 믿어지지 않는 일은, 집에 돌아가 그 메모를 어머니께 보여드렸더니 중국 칭타오 여학교 시절의 친구와 지금도 절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의 이름으로 모두 다 실존 인물이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다시금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또 이런 이야기도 했다.

 

"조상님 묘를 잘 돌보세요. 돌아가신 친척 한 분이 그 사실을 연신 가르쳐 주십니다."

 

혹시나 하고 가봤더니, 그녀의 말대로 묘석은 두 동강이 나 있었다. 그녀의 얘기로는 할머니 유골을 납골할 때 묘석을 움직이다가 금이 가서 깨졌는데, 그 일을 맡았던 숙부가 죽은 뒤 우리 가족에게 그 사실을 알리려 했다 한다.

 

장남인 나는 이를 계기로 전에 살던 곳에 버려두고 온 묘를 이장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불가사의한 체험을 맹목적으로 믿을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의문 쪽이 더 컸다.

 

왜 조상이 우리 일족에게 재앙을 내리는가. 그분들이 우리한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이 세상에 여한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도움을 바라는 것은 오히려 그분들이 아닌가. 하지만 자손에게 질병과 같은 재앙을 내린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럴 리가 없다.

 

다만 깨진 묘석은 바로잡는 것이 좋다. 내팽개쳐 두는 것은 자손된 도리가 아니다. 그러니 이 기회에 가까운 곳으로 이장하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묘지 이장을 결심했을 무렵, 나는 또 한번 기겁을 할 일에 부딪혔다.

 

도쿄의 한 발명가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의 일이다. 어떤 책에 소개된 발모제 발명가였는데, 책을 읽은 나는 급히 그 약을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발명가에게 전화를 걸어 용건을 마친 뒤 막 끊으려는 찰나에 불쑥 그가 말했다.

 

"묘지 이장 말인데요. OO날이 좋아요."

 

하도 엉뚱한 얘기에 내 귀를 의심했다. 그가 그 일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그때는 어안이 벙벙한 나머지 전화를 끊고 말았으나, 사나흘이 지나도 영 궁금증이 풀리지 않기에 눈 딱 감고 다시 전화를 걸어 그 연유를 물어 보았다.

 

"확실히 묘지 이장을 계획중입니다만, 일면식도 없는 선생께서 어떻게 그 일을 알고 계시는지요?"

 

그의 대답은 점점 더 수수께끼 같았다.

 

"이제 슬슬, 당신이 아셔도 좋을 시기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저는 그저 알려드리는 것 뿐입니다."

 

도깨비에 홀린 듯 뭐가 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묘지는 그가 말한 날짜에 이장했다. 실은 묘지 건보다도 '이제 슬슬 알아도 좋을 시기가 되었다....'던 그의 말이 더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그도 심령술사였던가 보다. 묘지 문제를 일단락 지은 뒤, 할아버지 대부터 게을리해 온 법회를 히로시마 심령술사의 주선으로 그가 아는 절에서 갖기로 했다.

 

스님이 독경을 하는 중이었다. 별안간 내 두 다리가 바위 덩어리처럼 마비돼 오더니 아예 하반신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러자 심령술사가 말했다.

 

"지금 막 한 어린애가 나타나, 기쁜 얼굴로 나갔습니다."

 

강물에 빠져 죽은 아이 귀신이 나한테서 빠져나갔다면서 '이제 괜찮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나는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물에 빠져 어른들마저 '이젠 틀렸다'고 포기했던 내가 이상한 인연으로 목숨을 구했던 기억이었다.

 

그런 사실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왜 물에 빠진 아이 귀신이 나한테서 빠져나가야 하는지 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익사하지 않은 것은 시노하라 가문에는 '당신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 뿐이었다.

 

그때였다. 내가 앉아 있는 다다미방 바닥에서 물방울이 튀어 올랐다. 그러자 다시 심령술사가 말했다.

 

"홍법대사(평안시대 초기의 중으로 진언종의 시조)님이 오셨습니다."

 

이쯤 이르고 보니 내 머리 속은 뒤죽박죽이다 못해 거의 패닉상태였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뒤 나는 냉정하게 이런 생각을 했다.

 

죽은 사람의 원념은 남는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도 존재하며 오감으로 느끼지 못하는 세계도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심령술사의 설명도 한마디로 황당무계하다고 몰아붙일 수만은 없다. 오히려 내게는 진실 그 자체로 비쳐져 오랫동안 가슴 속에 체끼처럼 걸려있던 것이 쓰윽 내려간 기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상이 저주를 한다든가, 죽은 아이가 이러니 저러니 하는 이야기는 완전히 어폐가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조상이 못다한 일이 있다면 그것을 대신 이루어 주기를 바랄 터, 자손들이 조상의 몫까지 살아 그 여한을 풀어 주면 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쳐들더니 날이 갈수록 거세져 갔다.

 

그 무렵, 반야심경을 몇백 몇 천번인가를 바치면 '어머니의 목숨을 구한다'기에 불공을 부탁했다. 확실히 어머니는 그 후 한때 회복 기미를 보였으나 끝내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강력한 힘을 엿보는 동시에, 그 세계의 한계도 안 사건이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작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1.06 심령의학의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두자는 것이지 그것의 효능을 맹신하고 맹종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심령술사라는 분들을 만났을때 그 분들이 나만 아는 것들을 자신이 본 것 처럼 얘기하는 신통함을 보인다 하더라도 그분들의 말을 다 믿고 따르지는 말고 그분들과 인간이 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함께 탐구해 나가는 자세로 임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이 있습니다.
  • 작성자우리민족333 | 작성시간 14.05.10 한결같은 훌륭한 인품이 느껴지는 작약님...
    눈물없인 하루가 넘어가기 힘든시절을 우리가 살고 있네요...
    요즘,전 날마다 소주 한 병을 비우지 않으면 가슴 속 돌덩이를 감당하기 힘이 듭니다...
    그래도 그래도 우리 작약님께선 늘 평화로우시길 두 손 모아 빕니다.
  • 답댓글 작성자작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5.10 감사합니다(_ _)
  • 작성자요시가와 | 작성시간 14.06.01 좋은정보 감사드립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