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가 병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를 좀더 보기로 하자. 내가 잘 아는 사람 중에 1년365일 배싸개를 하고 다니는 깡패 두목이 있다. 깡패들이 배에 두르는 헝겊은 얇은 표백 무명천이 보통인데 유독 그만은 두툼한 배싸개를 두르고 다닌다. 그 까닭은 위장이 약해서라 한다.
어릴때 어머니로부터 "넌 위가 약하니 늘 배를 따뜻이 싸고 다니라"는 당부의 말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하여간 자신의 약점은 배요, 그것을 보호하는 길은 배싸개뿐이라고 미신처럼 믿고 있다. 만약 배싸개를 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금방 배탈이 나리라.
'나는 감기에 잘 걸린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 평생 감기를 달고 살기 십상이다. 성공 철학에서는 '계속 생각하는 것은 실현된다'고 하거니와, 질병도 또한 이와 같아서 '병이 날 것 같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병이 난다.
가령 목욕을 하고 나와서 "어라, 목욕물이 너무 찼나본데..."하면 영락없이 감기에 걸린다. 방바닥에서 새우잠을 잔 뒤 "야단났네, 감기가 오려나보네"하면 십중팔구 그대로 된다. 또 텔레비전에서 '올해는 독감이 대유행'이라는 방송이 나오기가 무섭게 콜록거리는 사람이 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나는 진작부터 감기 바이러스 설에는 큰 의문을 느껴왔다. 왜냐하면 감기 바이러스가 목욕탕이나 방구석에 얌전히 웅크리고 있으리라고 여기자 않기 때문이다. 물론 바이러스는 존재하며, 그것이 감기 증상을 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으뜸가는 유발요인은 그 사람의 이미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특별히 건강체도 아닌 할머니가 감기에 걸리자 않는 것은 '나는 감기가 안드는 체질'이라는 의식 때문이다. 한편 정기 행사처럼 여름 감기를 앓는 젊은이도 '난 이맘때면 감기에 걸린다'고 으레 단정하고 있는 탓이다. 이와 같이 사람이 생각하는 바는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간에 종종 현실화된다. 병을 대할 때 우리가 무엇보다도 알아두어야 할 점은 병 또한 '생각한 것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병원에 아이를 데리고 온 어머니들끼리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곧잘 이런 잡담을 한다.
"우리 애는 어찌나 감기에 잘 걸리는지...."
"요맘때가 되면 번번히....."
이런 광경이 자주 눈에 띄는데, 그런 말은 절대로 삼가는 것이 좋다. 아이 마음속에 '난 감기에 잘 걸린다'는 고정관념을 부지런히 심어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추운 계절이 다가오면 감기에 대한 화제가 자주 언론에 오르내린다. '금년 독감은 홍콩형과 소련형 두가지가 있다'는 식으로 텔레비전은 보도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가는 자칫 두 감기를 다 앓기 십상이다.
같은 값이면 '난 감기에 잘 안 걸린다' '걸려도 가볍게 넘어간다'고 생각할 일이다. 기가 쏠리는 방향이 180도 달라지는 까닭이다. 그리고 이런 사고 방식은 비단 감기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병에도 적용된다.
혈압을 잰 뒤 "혈압이 높으시네요" 했더니 " 그럴리 없대이, 내는 혈압이 낮은기라" 고 부득부득 우기는 막무가내형의 환자도 있다. 그래서 혈압이 높아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경우가 현실적으로 있다.
또 이런 사례도 있다. 병원에 아이를 데리고 온 한 어머니가 있었다.
"선생님, 저희 애는 아토피성 체질로 고생하고 있는데, 여러 병원을 다녀도 소용이 없길래 소문을 듣고 왔어요."
어머니는 심각한 얼굴로 호소하고 있는데, 정작 아프다는 아이는 기운이 펄펄해서 병원 안을 천방지축 휘젓고 다닌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건 어머니 쪽이시군요." 내가 말했다.
"천만에요. 쟤는 밤만 되면 여기저기 긁느라고, 더는 딱해서 못 보겠어요."
"하지만 가려움증 때문에 죽었단 사람은 없는걸요. 그래 남편께선 밤에 어떠신가요, 잘 주무십니까?"
"네, 코를 골며 잘 자요."
"그럼 역시, 아토피는 어머니 병입니다."
아이 어머니는 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으나,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런 뜻이었다.
확실히 아이는 밤중에 가려워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 밤도 얘가 가려워하면 어쩌나'하고 지레 겁을 내는 어머니의 이미지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어머니의 이미지가 그대로 전달돼 아이 마음속에 '가려움'의 씨앗을 뿌릴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모자가 합작해서 아토피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불안한 어머니의 얼굴이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틀림없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어머니가 든든한 바위처럼 태연한 모습을 보이면 아이도 그다지 가려움을 느끼지 않고 지나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평온한 얼굴보다 더 좋은 약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작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9.03 진정스승님도 '더 아픈 사람이 진짜 환자'라고 한 말이 있는데, 수도자는 세상의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니 그것을 고쳐야 될 의무가 또한 수도자들에게 있다는 것과도 연관되는 것 같습니다.
-
작성자빛돌 작성시간 12.09.04 이또한 부모와 자식사이에 존재하는 악연의 고리에서 시간을 타고 띄엄띄엄 나타나는 사건들이겠죠?
그것을 고칠려는 의사와 그것을 유지할려는 악연의 고리와의 싸움입니다.정답은 있으나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게되죠
결국 의사는 악연이 끝난 상처를 치료할뿐이라 생각합니다.
ㅎㅎ 너무 비관적 인가요? -
답댓글 작성자작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9.04 일리가 있는 말씀이라 생각되는데요 판단내리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