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만 <이>를 죽인 것뿐이야, 소냐. 무익하고 추하고, 해로운 <이> 말이야.」
-죄와 벌 5부 中
어쩌면 라스꼴리니꼬프는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항상 속으로는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조롱하고 있지만 소심함이라는 벽에 부딪쳐 그런 성질이 드러나지 않다가, 그가 저지른 <죄>로 인해 소심한 벽이 깨어져 원래의 모습이 나타나게 된 것은 아닐까. 단순히 성격이 변화했다고 보기에는 그 변화가 너무 뚜렷하고 극적이어서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니 말이다. 5부에서는 처음으로 라스꼴리니꼬프가 먼저 그 사건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소냐에게 토로한다. 마지막에 그의 죄가 밝혀지고 벌이 내려질 때까지 본인은 함구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누구도 아닌 소냐에게 가장 먼저 사실을 털어놓았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상당한 반전이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위에서 인용한 라스꼴리니꼬프의 대사였다. 처음 소설이 시작될 때부터 라스꼴리니꼬프는 노파를 죽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던 상태였다. 그리고 실제로 범행을 저지르고,이야기의 막바지인 5부에 이르기까지 라스꼴리니꼬프가 왜 이바노브나를 죽였는지, 그 원인이나 동기는 밝혀진 바가 없다. 단순히 물건을 낮게 저당잡아서 그랬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을텐데 그 이유가 여지껏 드러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 5부에서 그 실마리가 약간 잡혔다고 생각한다. 라스꼴리니꼬프가 평소에 품고 있던 사회에 대한 불만이 전당포 노파에게 일순간 쏠린 것이다. 세상은 어지럽고, 형편도 어려워 평판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도 나아지지 않는 생활에 라스꼴리니꼬프의 불만은 쌓여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돈을 빌리기 위해 노파를 찾아가게 되고, 자신과는 달리 생활에 아무런 문제도 없어보이는, 오히려 세상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 모습에 아마 라스꼴리니꼬프의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라스꼴리니꼬프에게 있어 그가 저지른 <살인>은 더러운 세상을 더욱 더럽게 만드는 <이>를 처단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4부가 상당히 지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5부에서 라스꼴리니꼬프의 이야기가 아닌 뾰트르의 이야기를 다른 시각에서 먼저 보여줌으로써 독자의 지루함을 환기시켜준 것 같다. 물론 분량이 분량인지라 아예 지루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4부에서보다는 이야기의 전개가 뚜렷해 그나마 읽기가 수월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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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13신은솔 작성시간 13.11.04 <이>라고 말하는 라스꼴리니꼬프가 너무 소름끼쳤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는 일만큼 끔찍한 일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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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13김난이 작성시간 13.11.04 나 또한 소냐에게 직접적(?)으로 말할줄은 몰랐다. 여태까지 라스꼴리니꼬프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지 아닌 여지를 주고 돌아다녔지만 정작 자신이 의심을 받으면 그 위기를 나름대로 잘 빠져나갔다. 그런 점에서 라스꼴리니꼬프의 저 말은 내게도 엄청난 반전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속으로 안달이 났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