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싸개의 추억/장명자
한 때 시댁이 있는 의성군 쌍계국민학교에 부임 한 적이 있다
국어 시간에 받아쓰기를 하는 중이었다
뒤에 앉은 아이들이 웅성거리더니 영식이가 벌떡 일어나서 외치는 것이었다
“선생님! 철수가 똥 쌌어예”
이게 무슨 소리냐 싶어 가 보았더니 마침내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철수가 설사를 해도 너무 많이 해서 의자까지 버려놓고 냄새가 진동을 했다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막 도망을 치고 여기저기서 괴성이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나도 당황을 해서 어찌 할 줄을 몰랐다
우선 걸레를 갖다가 주변을 치우고 아이들을 살펴보았다.
겨울이다 보니 바지를 두 개 입은 아이가 있어 급한 김에 그 아이를 살살 달래서 바지 하나를 벗겨냈다. 그리고 난로에 물을 올려놓고 장작을 더 넣었다. 물이 따듯하게 데워졌다
데워진 물통과 친구 바지를 들고 샘으로 가서 똥 싼 바지를 벗겨내고 녀석의 아랫도리를 씻겨내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어쩔 도기가 없었다. 지금처럼 고무장갑도 없던 때라서 나는 그냥 맨 손이었다 녀석도 떨고 나고 같이 덜덜 떨었다
친구 바지를 입히고 나서 사시나무처럼 떠는 아이를 꼭 안고 교실로 다시 돌아왔다
난로 가에 아이를 세워놓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다가 보니 수업은 더 할 수가 없게 되어서 아이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
다음 날 출근을 해서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똥싸개 철수가 왔는가 걱정돼서 둘러보았더니 자리에 앉아 있다. 반가웠다
그 때였다. 나랑 눈이 마주친 녀석이 벌떡 일어나더니 깡충깡충 뛰어 나온다
시멘트 봉지 같은 누런 봉투에 지푸라기로 동여 맨 것을 달랑달랑 흔들며 내게 불쑥 내 민다
“ 우리 어무이가요 이거 선생님 갖다 주라고 했어예”
손에 말랑거리는 느낌을 받으면서 풀어 보았더니 무시루떡 두 장이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었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사회에 첫발을 딛고 나온 교직생활 환경이 열악한 것이지만 숨길 것도 없는 인간관계가 너무 따듯해서 나로 하여금 큰 힘이 되었다
그 곳에서 2년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대구 시내로 나오게 되었지만 평생을 두고 똥싸개 철수를 비롯한 토끼 같은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쯤은 어디서 60대쯤 살고 있겠지!
장명자 시집<내가 만든 꽃신>중에서
장명자 프로필
1938년 생으로 개성의 부유한 지주의 맏손녀로 내어난 뒤 출산 9개월 만에 생모가 돌아가셨다
1.4 후퇴 때 아버지가 계시는 대구로 가서 살았다
1958년 대구사범학교 본과를 졸업하고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1978년 20년 동안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서울 영훈초등학교에서 퇴직했다
지금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건강하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