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 글 방

똥싸개의 추억/장명자

작성자고쿠락|작성시간23.04.30|조회수23 목록 댓글 1

똥싸개의 추억/장명자 

 

 

한 때 시댁이 있는 의성군 쌍계국민학교에 부임 한 적이 있다

국어 시간에 받아쓰기를 하는 중이었다

뒤에 앉은 아이들이 웅성거리더니 영식이가 벌떡 일어나서 외치는 것이었다

“선생님! 철수가 똥 쌌어예”

이게 무슨 소리냐 싶어 가 보았더니 마침내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철수가 설사를 해도 너무 많이 해서 의자까지 버려놓고 냄새가 진동을 했다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막 도망을 치고 여기저기서 괴성이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나도 당황을 해서 어찌 할 줄을 몰랐다

우선 걸레를 갖다가 주변을 치우고 아이들을 살펴보았다.

겨울이다 보니 바지를 두 개 입은 아이가 있어 급한 김에 그 아이를 살살 달래서 바지 하나를 벗겨냈다. 그리고 난로에 물을 올려놓고 장작을 더 넣었다. 물이 따듯하게 데워졌다

데워진 물통과 친구 바지를 들고 샘으로 가서 똥 싼 바지를 벗겨내고 녀석의 아랫도리를 씻겨내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어쩔 도기가 없었다. 지금처럼 고무장갑도 없던 때라서 나는 그냥 맨 손이었다 녀석도 떨고 나고 같이 덜덜 떨었다

친구 바지를 입히고 나서 사시나무처럼 떠는 아이를 꼭 안고 교실로 다시 돌아왔다

난로 가에 아이를 세워놓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다가 보니 수업은 더 할 수가 없게 되어서 아이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

 

다음 날 출근을 해서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똥싸개 철수가 왔는가 걱정돼서 둘러보았더니 자리에 앉아 있다. 반가웠다

그 때였다. 나랑 눈이 마주친 녀석이 벌떡 일어나더니 깡충깡충 뛰어 나온다

시멘트 봉지 같은 누런 봉투에 지푸라기로 동여 맨 것을 달랑달랑 흔들며 내게 불쑥 내 민다

“ 우리 어무이가요 이거 선생님 갖다 주라고 했어예”

손에 말랑거리는 느낌을 받으면서 풀어 보았더니 무시루떡 두 장이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었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사회에 첫발을 딛고 나온 교직생활 환경이 열악한 것이지만 숨길 것도 없는 인간관계가 너무 따듯해서 나로 하여금 큰 힘이 되었다

그 곳에서 2년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대구 시내로 나오게 되었지만 평생을 두고 똥싸개 철수를 비롯한 토끼 같은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쯤은 어디서 60대쯤 살고 있겠지!

장명자 시집<내가 만든 꽃신>중에서 

 

장명자 프로필

1938년 생으로 개성의 부유한 지주의 맏손녀로 내어난 뒤 출산 9개월 만에 생모가 돌아가셨다 

1.4 후퇴 때 아버지가 계시는 대구로 가서 살았다 

1958년 대구사범학교 본과를 졸업하고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1978년 20년 동안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서울 영훈초등학교에서 퇴직했다 

지금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건강하게 살고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이명희 | 작성시간 23.05.01 똥싸개 철수가 있었다면
    피아노 건반 위에 먹은 음식을 잔뜩 토한 용감이도 있었지요. 학원을 운영할 때 바지에 똥 싸고 뭉개고 있던 애, 간장+참기름+김+밥을 먹고 체했는지 그 양이 어마어마 했는데 구역질보다 고소한 내음을 맡으며 건반을 닦아 내고, 아이의 입을 닦아 주고 안정을 취하게 했어요. 자식 둔 어미는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