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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의 탈출 / 김혜진 ( 해림 )

작성자김혜진 (해림)|작성시간23.09.05|조회수151 목록 댓글 12

한 움큼이라도 더 얹어주고픈 마음
한가득 정성 어린 음식으로
넉넉하게 베풀며 쌓아온 인심
지난 6년여의 세월
그다지 이윤을 남기진 못했지만
좋은 사람들이 곁에 남았다
 
이젠 어떤 정겹고 반가운 이들을 만날까 기대하는 일상의 기쁨보다
육신을 옥죄어 오는 아픔이 더 크다
오랜 시간 서 있어 하지정맥으로 저리는 다리와 발끝, 그리고 손가락 마디마디
커피를 마시는 순간에도 한없이 졸리고 피곤한 삶
늘 1분 1초를 다투는 치열한 삶이 지치고 짜증이 밀려드는 건
이제는 마감해야 할 때임을……
 
그동안 우리 가족이 영혼을 갈아 넣어 열정으로 지켜온 이 업장이
머지않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잊히고
근방 최고 평점의 일식집이라는 구글의 한 페이지에서도 사라질까 두렵다
나에겐 출애굽 같은 탈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설렘 가득했던 6년여 전의 나처럼
새로운 시작
무한한 가능성의 열린 창
뭐든 해낼 것 같던 그때의 넘치는 용기와 배짱은 지금 어디에……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함이다. ”
이 상도를 무던히 애써 실천한 지난 세월
사람을 남기는 장사
이제 덩그러니 남겨질 단골손님들의 얼굴과 추억이 하나하나 겹친다
매일 매 순간 매 고객에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
스시 스테이션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우리의 음식을 기억해 줄까
 
업장 문 닫기 일주일여 전부터 넘쳐나던 땡큐 카드, 은퇴 축하 카드들
부엉이 와인, 코냑, 난초와 장미 화분, 마음을 담은 팁 $$$, 마지막 5 스타 리뷰,
나를 위해 준비했다던 프랑스산 와인과 자신의 컬렉션인 일본 위스키,
갖가지의 크고 작은 초콜릿 선물상자들, 멕시코산 색색의 사탕 종류들,
애정하는 치즈타르트 선물상자와 집에서 직접 구운 사워도우 빵,
하이네켄 맥주 세트, 차와 커피, 건강식품,
로제 와인과 고급 위스키, 초콜릿 선물, 더치 치즈 두 덩이와 크래커,
직접 낚시한 연어로 만든 훈제연어 저키,
텃밭에서 공들여 키운 온갖 종류의 고추와 허브, 직접 만든 페퍼 쨈까지
넘치는 사랑과 아쉬운 작별의 눈물
참 고마운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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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김혜진 (해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9.09 저희는 월남국수할 베트남 🇻🇳 사람이 인수했어요. 저희도 재고 처리하느라 ...

    맘 편히 쉬지도 못 해요.
    토론토에 계신 가족이 위중하시거든요.ㅠㅠ

    관심어린 댓글 감사합니다. 🙏
  • 작성자김경난 | 작성시간 23.09.20 아이구 여행 다녀오느냐 이제사 보게 됐네요
    그간 정성스레 온힘을 기울인 가게 인데 시원 섭섭 하시며
    이제는 리렉스한 모처럼의 휴가를 즐겨 건강좀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건강처럼 중요한게 더 있겠어요?
  • 답댓글 작성자김혜진 (해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9.21 정말 건강이 제일 중요하지요. ^^
    일 안하고 푹 쉬니까 몸이 좀 좋아진 기분이 들어요.
    운동하고 살 빼는 게 급선무인데 쉽지는 않네요.

    반가웠어요.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 되시길...
  • 작성자노동근(밴돈) | 작성시간 23.09.30 노밴에 사시는 선배의 단골집이라 몇 번 방문했었지요. 가족분들이 운영하시며 따뜻한 정감의 가게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제 동문들과 산행을 하고 모처럼 오는 일요일 노밴에 가서 저녁을 함께 하자고 해서 예전에 방문한 스시집에 가자고 했더니
    크로즈 했다고 해서 섭섭한 마음이었는데~,
    이제 글을 보니 그집 사모님이 김해림 필명의 회원이신것을 이제사 알게 되었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 되시고 앞으로도 카페에서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혜진 (해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9.30 사실 이름은 잘 모르는 단골 한인 고객들도 많았어요.
    저희 가게를 그렇게 따뜻하게 기억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드려요.
    가게 앞의 클로징 노트를 보고 섭섭한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돌리셨을 많은 고객분들께 죄송한 마음이에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대면 모임에서 뵐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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