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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이게 웬 물고기?

작성자김혜진 (해림)|작성시간24.10.20|조회수51 목록 댓글 6


토요일 오후 3시 반경 집을 나섰다. 으례히 산책을 갈 때면 오늘은 어떤 설렘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자못 기대가 된다.

인디언 썸머의 여파로 겉옷에 걸친 조끼조차 더워 귀찮게 느껴졌다. 산책로 오솔길의 낙엽들도 바싹 말라서 밟으면 먼지를 풀풀 날리며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오늘은 별다른 인생 샷이라든지 혹은 특별한 경험 없이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나 보다 생각했다.

바로 그때 강가에서 꽤 큰 물고기를 낚은 할아버지 한 분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다지 깊어 보이지도 폭이 넓지도 않은 이 탬즈강에서 저런 물고기를 낚다니... 나는 그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봤다. 그는 대충 포즈를 형식적으로 취해 주고는 대뜸 내게 물고기를 원하는지 물어봤다.
갑자기 큰이모님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제 고등어구이 얘기를 하셨는데 왠지 이모님께 특별한 보양식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원한다고 바로 대답했다. 내가 원한다고 하지 않았으면 그는 곧바로 강에 놓아주려 했다.
문제는 어떻게 그 물고기를 멀리 있는 집까지 가져올 것인가였다.
그 할아버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나뭇가지로 작대기를 만들어 물고기의 입에 넣더니 아가미를 관통해 내가 들 수 있게 꿰어주었다. 아가미를 통해 선홍색 피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고맙다고 인사를 드리고 할아버지의 이름과 물고기의 이름을 물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은 Hosea이며 물고기는 Croaker 종류이며 스튜를 해먹으라 하셨다.

그 물고기 꼬챙이를 들고 걷는데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의 살려는 필생의 몸부림이 나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길을 걷다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나를 쳐다보며 어디서 난 물고기인지 의아해하며 물어봤다.
필사의 몸부림치는 물고기를 두 손으로 붙들었다. 낚시꾼들이 말하는 소위 ' 손맛 '이라는 게 이런 거려니 짐작했다. 마음이 아파졌다. 괜히 물고기 눈이 나를 빤히 보는 것도 같고 선홍색 흘러나온 피도, 살려는 몸부림도 가슴이 저려오고 심장이 빨라지고 땀이 나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래도 큰이모님 보양식 해드릴 생각에 안간힘으로 손을 부들부들 떨며 녀석이 꼬챙이에 꿰어져 벌떡이는 사투의 몸부림을 견뎌냈다.
오는 길에 어떤 남자가 나를 훑어보더니 물고기가 어디서 났냐고 물었다. 강가에서 낚시꾼 할아버지가 줬다고 대답했다. 그 남자는 만약에 경찰이 지금의 네 모습을 보면 벌금을 물릴 거라고 했다. 받은 물고기라도 네가 라이센스가 없어서. 괜히 그 말에 쫄아서 남들이 볼세라, 지나가는 경찰이 볼세라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25분여만에 드디어 이모님 댁에 도착했다. 집 앞 우편함을 확인하시던 큰 이모부님이 놀란 표정을 지으셨다. 난 애써 태연하게 "강가에서 제가 잡았어요."라고 농담으로 허풍을 떨었다.
싱크대에서도 헐떡이던 녀석이 금세 잠잠해졌다.
나는 몇 번 해보지 않은 서툰 솜씨로 비늘을 앞뒤 꼼꼼하게 쳐냈다. 칼날이 서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워낙 두툼한 살집 탓인지 토막을 내어 손질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간신히 냄비에 올리고 조기 매운탕을 끓였다. 알도 들어있었고 제법 고기가 실했다. 무가 없어 대신 감자를 두 어개 썰고 어묵, 두부, 파, 생강, 마늘 파우더에 국간장 고춧가루 고추장으로 맛을 냈다. 마침 오늘 산 고수를 마지막에 한 움큼 넣어 끓였다. 두 분은 고수가 한국 미나리같이 맛있다 시며 국물까지 다 드셨다. 살 속에 박힌 잔가시가 좀 많아 성가셨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모님 댁에는 조미료가 거의 없어 한식의 맛을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저 짜지도 너무 맵지도 않게 심심하게 음식 간을 두 분 취향에 맞춰드리니 매식사 때마다 입맛이 난다시며 맛있게 드신다. 나도 덩달아 다행이라 여기며 마음이 흡족하다.

오늘은 이모님이 한 달여 만에 처음으로 배고픈 허기를 느끼셨다고 했다. 한 달여의 병원 생활을 하실 땐 전혀 허기를 모르셨다고 하신다. 차츰차츰 입맛도 돌아오고 회복이 되시는 것 같아 내가 좀 고생스러워도 보람이 있다. 밤 12시를 훌쩍 넘기고 자는 밤 부엉이 같은 생활습관을 가진 나인데 이른 아침 8시경에는 아침을 준비해서 먹어야 하니 그게 제일 힘들다. 세끼 식사 준비, 이곳저곳의 묵은 생활 때를 지우고 청소하고, 운전해서 장보고, 빨래하고, 산책하고... 하루가 바쁘다.
그래도 보람되다. 언제 내게 또 이런 기회가 있겠는가...
두 분이 티격태격하시면서도 서로 마음 깊이 위해주는 모습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건강하게 장수하시기를 빌어본다.

맛있게 먹느라 사진 찍는 걸 잊어버려 먹다가 막판에 간신히 건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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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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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김혜진 (해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10.21 평안하신지요, 소교님.
    밴쿠버 곳곳이 홍수로 인한 피해로 몸살을 앓고 있는 소식을 접합니다. ㅜㅜ
    무탈하신지 궁금합니다.
    이모님 내외분, 염려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곳 런던 온타리오는 너무나 쾌청한 가을 날씨 속에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
  • 답댓글 작성자Mary 허난희 | 작성시간 24.10.30 김혜진 (해림) 해림님
    밴쿠버 돌아오시면 다음번 캘리그라피 크라스에는 함께 해요.
    해림씨가 있을줄 알았는데 없어서 빈자리가 썰렁해요.
    아마도 제가 누군지는 모르실거에요.ㅋ
  • 답댓글 작성자김혜진 (해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11.01 Mary 허난희 안녕하세요, Mary 님.
    기억이 날 듯 말 듯...ㅎㅎ
    포스팅하신 멋진 사진들 속의 모습을 봬도 알쏭달쏭...
    예정보다 좀 당겨서 11월 10일 밤 비행기로 밴쿠버 도착해요. 우리 또 만나요. 다음번에 어디서든지 마주치면 서로 꼭 인사해요. ^♡^
  • 답댓글 작성자박오은(소교) | 작성시간 24.11.01 김혜진 (해림) 허난희님 …^*^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김혜진 (해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11.01 박오은(소교) 감사합니다, 소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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