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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감상실

[詩]조지훈, 이형기 / 낙화

작성자박오은(소교)|작성시간24.04.23|조회수102 목록 댓글 2



낙화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떨어지는 꽃의 마지막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보며 느낀 삶의 무상함과 쓸쓸함을 차분하고 나지막한 어조로 노래한 시이다. 바람이 아니더라도 피어난 꽃은 언젠가 지기 마련인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소쩍새가 우는 쓸쓸하고 적막한 밤, 별빛이 하나 둘 사라지고 어둠에 잠겨 있던 먼 산이 모습을 드러내는 새벽 무렵, 화자는 꽃 지는 그림자가 하얀 미닫이문에 은은하게 비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그 붉은 색은 지상에서 사라지는 꽃의 마지막 아름다움이 드러난, 쓸쓸하고 서글픈 빛깔이다. 이처럼 꽃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슬퍼하는 고운 마음을 지닌 화자는 세상을 멀리하고 묻혀서 사는 이이다. 

그는 자신의 그런 여린 마음을 누군가 알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현실과 단절되어 홀로 지내던 그에게 하나의 즐거움이었을 꽃이 떨어지는 순간, 그는 허망함과 서글픔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사계절의 순환이 뚜렷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계절의 순환 현상을 통해 인생의 한 단면을 유추해 보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시는 ‘무성한 녹음’의 계절을 예비하면서 떨어지는 꽃송이를 통해 인생사에서의 이별과 더 나아가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일깨워 준다.
이별을 노래하지만 그 절절함과 아픔이 과잉된 정서로서가 아닌 메타포를 통해 절제된 형태로 드러난다.

시인이 노래하는 이별은 ‘격정을 인내’하고 ‘샘터에 물이 고이듯 성숙한’ 형식의 그 무엇이다. 이별의 감정이란 절절할 수밖에 없고 또 그것이 정서 과잉을 불러일으켜 욕망의 찌꺼기를 남기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시인의 이러한 꽃의 비유를 통한 이별의 절제된 형태는 매우 모던해 보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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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이명희 작성시간 24.04.23 백남준 아트 센터에서 1984년도에
    KBS 아나운서가 인터뷰한 동영상을 보았는데,
    불과 40년 전의 아나운서 억양이 북쪽 사람 같아 놀랐는데, 60년대 영화관의 '대한 늬우스' 같은
    두 시인의 '낙화'에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헛헛~
  • 작성자박오은(소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24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여기서 따 온 "박수 칠 때 떠나라."

    요즘도 회자되는 명 귀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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