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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라운지

박완서님의 명복을 빌며 '마중물'을 올립니다...

작성자(13회)박혜숙|작성시간11.01.25|조회수80 목록 댓글 7

어린 시절 마당가엔 샘이 있었다.

 비스듬하게 빨랫돌을 놓았고 중앙에 펌프가 있다. 동네에서 물맛 좋기로 유명한 물이었고,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수량이 줄지 않았다. 뒷산에 물탱크를 만들고, 집집마다 수도가 들어올 때,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 물맛이 최고라며 이 물을 퍼 올리기로 했다. 수량이 어찌나 풍부한지 30여 호의 물을 충분히 댈 수 있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미지근해 집집마다 수도꼭지를 통해 배달되는 우리 집 물이 동네사람들의 생명수가 되었다.

 

 이렇게 객관적인 인정을 받고 나서야 우리 집 물의 수원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 의견이 분분했는데, 우물을 판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근방에서 제일 높은 한절산 쪽으로 수맥이 뻗어 있다고 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길가 집이어서 행인들이 물 한 대접을 청해 마시곤 했다.

 

 그 날도 사냥꾼 몇 사람이 마을을 지나다 들렀다. 그들은 개에게 카스테라를 먹이고 있다. 나는 어쩌다 맛보는 것을 몇 개씩 먹는 개가 부러웠고, 개에게까지 귀한 빵을 먹이는 훌륭한 사람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분이 아버지께 찬물 한 대접을 청했다.

 

 나는 물 한 바가지를 펌프에 붓고, 펌프질을 했다. 하지만 저 아래 있는 물을 마중하여 끌어올리지 못하고 피이익 소리를 내며 삼켜 버렸다.

 "아 큰일 났다. 저 대단한 사람들이 이 물을 기다리는데 어쩌지?"

 부엌으로 달려간 나는 다시 물 한 바가지를 퍼서 아까보다 더 힘차게 펌프질을 한다. 울컥울컥 물이 나오더니 팔뚝 같은 물줄기가 쏟아진다.

 하지만 바로 퍼 갈 수가 없다. 한 양동이를 퍼내야 쇳내가 가시고, 차가운 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분명히 시원한 물 한 대접을 달라지 않았던가? 한 양동이를 퍼낸 후 대접에 물을 받는다. 그런데, 어쩌랴. 대접 아래 모래가 있다. 버리고 다시 받는다. 지저분한 물을 드릴 수가 없다. 다시 받아도 마찬가지다. 마음은 바빠 부엌으로 다시 달려가 스텐 대접을 가져온다. 물을 가라앉혀 모래를 버리고 따라드리기 위해서다. 

 "물 안 가져오고 뭐 해."

 아버지의 고함 소리를 듣고, 그릇을 옮겨 달려 나가다보니 물은 반 대접도 안 된다.

 "이제 들고 오면서 물이 요것뿐이냐?"

 또 불호령이다. 존경스러운 그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것이 지금까지도 분하다.

 

 나에게 도시에 대한 동경이 시작된 것이 그 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동서남북 어디를 보아도 산이 버티고 있는 산골에서 자라다 그 곳을 지나는 교양미 넘치고 많은 것을 갖춘 것 같은 사람들을 보며, 언젠가 나도 이곳을 벗어나리라 꿈을 키웠다.

 

 나를 도시로 데려다 줄 것은 공부밖에 없다.

 고등학교에 붙기만 하면 이 곳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더구나 아버지는 선거 끝난 벽보를 통째 떼어 가지고 와서 박순천 여사를 가리키며 여자지만 국회의원이 되었다. 너도 저렇게 될 수 있다. 더구나 똑같은 박가라며 나를 부추겼다.

 

 이렇게 출발하여 도시인이 된지 사오십 년이 되어 간다. 어린 시절의 꿈은 바닥에 뒹구는 낙엽이 되었다. 피안의 세계에서 빛을 발하던 도시인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냉정하고 이기적인 조금만 잘못하면 보복이 돌아오는 칼날 위를 걸으며 살고 있다.

 

 도시인에 대한 동경은 반려자를 택할 때도 드러났다. 3대째 내려오는 서울 토박이. 그것도 사대 문안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장충동 귀한 집 도련님이라는데 모든 악조건을 용서하고 결혼을 했다.

 

 그런데, 그가 나를 택한 이유는 더욱 기가 막혔다. 친가 외가가 서울 사람인 그는 방학이 되면 시골에 가는 친구들이 제일 부러웠단다. 그래서 자기는 꼭 시골여자를 얻어 아이들이 포근한 외갓집을 갖게 하겠다며 시골에 대한 동경이 가득했다.

 

 인간은 꿈을 먹고 산다던가! 정반대의 세상을 동경하다 만난 우리의 결혼 삼십 년을 돌아본다. 나는 서울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않고 배반을 일삼는 도시를 향해 혈투를 벌이고 있다.

 서울 토박이 남편은 대관령 골짜기에 오두막을 짓고 산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강원도에서 노후를 보내는 게 진정한 삶이야."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반박한다.

 "여기까지 오는데 사십 년이 걸렸는데, 힘들어도 시골은 가기 싫다. 겉은 평화로워 보일지언정 모든 것을 손수 일궈야 하는 시골의 불편을 익히 안다."

 

 여기까지 우리를 끌고 온 마중물은 시치미를 떼고 아이러니한 인생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자신이 먼저 신뢰의 마중물을 부으면, 고여 있던 샘물이 솟아올라 물줄기가 되듯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강물을 이뤄야 한다.

 

 마중물은 버려지는 물이 아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물도 아니다. 단 한 바가지의 물이지만 땅속 깊은 지하수를 끌어올려 펑펑펑 쏟아지게 하는 고맙고 귀한 처음물이다. 사람 마음에도 그 처음물이 필요하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잠긴 듯 고여 있는 사랑의 정수를 퍼 올릴 생명수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방향을 같이 보는 것이라는데, 우리 부부도 신뢰로 사랑의 마중물을 퍼 올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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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이관훈/16회 | 작성시간 11.01.31 "힘들어도 시골은 가기 싫다. 겉은 평화로워 보일지언정 모든 것을 손수 일궈야 하는 시골의 불편을 익히 안다."
    그래서 저도 시골로 갈까 말까 망설여집니다^^
  • 작성자(13회)박혜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2.14 시골은 낭만과 고통이 함께 있는 곳이지요~~~
    멀리에서 바라보면 평화롭기만 한데..... 그래도 그리움은 하늘만 하니!!!
  • 작성자11회김영식 | 작성시간 11.05.26 T V 드라마가 잘되었다고 하는것은 TV 를 보는 시청자 대부분이 어쩜 내 삶과 같아 하고 느낄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중물을 읽고 내가직접 45년전 어는 무더운 여름날 친구들과함께 목도고개를 넘어오다 목이타서 계담가계뒤편에 있는 우물가에서 수동펌푸로 직접퍼서 바가지로 떠먹는 느낌입니다.(그때도 모래가!!!) 아름다운 글 계속 기대합니다.
  • 작성자5회 조성례 | 작성시간 11.06.15 오랫만에 들려서 후배님의 좋은 글 한편 잘 보았습니다.
    우리에겐 늘 마중물이 필요하지요.
    아니 마중물과 같은 존재가 되고싶은 것이지요.

    젊어서는 도시를 많이 동경했지만 요즘은 도시를 가면 답답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않는 것 같더군요.
    내가 많이 늙은 것인가 합니다.
  • 작성자(13회)박혜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6.26 선배님들 반갑습니다~
    그 샘물이 있던 집을 팔고 떠났는데, 얼마전 초등학교 천렵을 사실강으로 가다보니!
    마당에 녹음방초만 가득해 가슴이 아렸습니다.
    지하수는 그 아래서 건강하게 퍼올려지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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