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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의 형제(Brat'ya Karamazovy) (하)- 제 4부, 제 11편 이반 표도르비치.ㅡ 1, 그루센카의 집에서(A)

작성자레아|작성시간14.10.21|조회수348 목록 댓글 3

                                           1, 그루센카의 집에서(A)

 

 

  알료샤는 그루센카를 만나려고 상인의 아내인 모로조바의 집을 향해 소보르나야(소보르의 형용사. 소보르는 러시아어로 사원을 뜻함) 광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루센카는 아침 일찍이 그에게 페냐를 보내어 자기 집에 꼭 들러 달라고 했던 것이다.   알료샤는 페냐에게 이것저것 캐물어 본 결과 그루센카가 그 전날 부터 왠지 모르지만 몹시 불안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미챠가 체포된 이후 두 달 동안 알료샤는 종종 모로조바네 집에 들른 일이 있었는데,  때로는 자의에 의해서, 때로는 미챠의 부탁을 받고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미챠가 체포된 지 사흘째 되던 날 그루센카는 심한 병에 걸려 거의 5주일이나 병석에 누워 있었다. 그중 한 주일 동안은 의식을 잃었을 정도였다.

이제 그녀는 지난 2주 사이에 바깥 출입을 할 수 있을 만큼 몸이 회복되었으나 얼굴은 여위고 누리끼리해져서 딴판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알료샤의 눈에는 그것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는 그루센카의 방에 들어갈 때마다 그녀의 시선과 마주치는 것을 좋아했다.  그 시선 속에는 무언가 의미 있는 확고한 신념 같은 것이 깃들어 있었다.  거기에는 어떤 정신적 변화가 나타나 있었고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는,  겸손하면서도 훌륭하고 단호한 결의가 깃들여 있었다.

양미간 사이에 나타난 가느다란 한 줄기 주름살은 그 아름다운 얼굴에 깊은 사색의 그림자를 던져 주고 있었기 때문에 언뜻 보아서는 엄숙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전의 경박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가지 알료샤에게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은 이 가련한 여자가 거의 약혼할 그 순간에 남자가 무서운 범죄 혐의로 체포된 그 무서운 불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자기 병과 앞으로 미챠에게 내릴 거의 불가피한 유죄 판결이 그들을 위협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자다운 명랑함을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예전엔 교만하기 짝이 없던 그 눈에 지금은 조용한 빛이 깃들어 있었다. 하기는 그 눈엔 이따금 어떤 불길한 불꽃이 다시 타오르기도 하였다.  그런 때는 옛날의 불안감이 그녀를 엄습하여 사그라지기는 커녕 오히려 그녀의 가슴속에서 더욱더 증대되어 가는 것이었다.

 

  이 불안의 대상은 언제나 똑같이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였다. 그루센카는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에도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를 생각하고 헛소리까지 했던 것이다.  알료샤는 그루센카가 미챠 때문에, 이젠 수인이 된 미챠 때문에 그녀를 무섭게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마음만 있으면 어느 때라도 옥중에 있는 미챠를 찾아볼 수 있는데도 한 번도 찾아간 적이 없었다.  이런 것이 모두 알료샤에게는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루센카가 제 마음을 털어놓고 언제나 조언을 구하는 사람은 알료샤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이따금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걱정에 쌓여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집에 와 있었다. 이미 반 시간 전에 미챠를 만나고 돌아왔던 것이다. 그를 맞으려고 테이블 앞 안락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는 그녀의 재빠른 동작을 보고 알료샤는 그녀가 자기를 초조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테이블 위에는 카드장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바보' 게임을 하기 위해서 나누어 놓은 것이었다. 테이블 옆에 있는 가죽  소파 위에는 막시모프가 잠자리를 펴고 잠옷에 무명 모자를 쓴 채 반쯤 누워 있었다.  그는 유쾌하게 웃고는 있었으나 병이 들어 쇠약해 보였다.  이 집없는 노인은 두 달 전에 그루센카와 같이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후로 그녀의 집에 그대로 눌러 앉아 있었다.  그때 그는 그녀와 같이 진눈개비를 맞으며 도착하여 흠뻑 젖은 몸으로 겁에 질려 소파에 앉아서 아무 말 없이 애원하는 듯한 미소만 띄운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루센카는 비탄에 빠져 열병의 초기 증세를 나타냈을 뿐 아니라 도착 후 30분 동안은 여러 가지 마음 써야 할 일 때문에 그 노인의 존재를 거의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가련하고 의기소침한 얼굴로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히죽 웃었다.  그녀는 페냐를 불러 그에게 먹을 걸 갖다주라고 일렀다. 그날 하루 종일 그느 거의 꼼짝 않고 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덧문을 닫았을 때 페냐는 주인 아씨에게 물었다.

  "아씨, 저분도 여기서 묵으실 건가요?"

  "응, 소파에 자리를 만들어 드려." 그루센카가 대답했다.

 

  그루센카가 그에게 좀더 자세히 물어 본 결과, 그는 정말로 오갈 데 없는 신세임을 알았다. 

  "내 은인 칼가노프 씨도 앞으로 나를 더 이상 돌봐줄 수 없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면서 5루블을 주더군요"라는 것이었다.

  "저런, 그렇다면 여기 계세요." 그루센카는 슬픔 속에서 연민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미소에 노인은 가슴이 뭉클했다. 그의 입술은 고마움으로 해서 떨리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그때부터 이 떠돌이 노인은 그녀의 집에 머물게 된 것이다. 그녀가 아플 때도 그는 이 집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페냐와 부엌일을 하는 페냐의 할머니도 그를 쫒아 내지 않고 계속해서 먹을 것을 주고 소파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나중에는 그루센카도 그에게 익숙해져서 미챠에게 갔다와서는(그녀는 몸이 완전히 회복되기도 전에 미챠에게 면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울적한 기분을 풀 겸 '막시무쉬카'와 대좌하여 여러가지 잡담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단지 자기의 슬픔을 잊으려는 목적에서였다.

노인은 알고보니 때로는 퍽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여 이제는 그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그루센카는 알료샤 이외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매일같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오더라도 언제나 잠깐 동안밖에 머물지 않았다.

 

  그녀의 늙은 상인은 이때 중병을 앓고 있었는데, 읍내에 떠도는 말에 의하면 이미 '황천으로 가고' 있었다. 사실 그는 미챠의 공판이 있은 지 1주일 만에 죽고 말았다. 죽기 2주일 전에 그는 마지막 순간이 다가옴을 느끼고 자기 아들들을 비롯하여 며느리와 손자들을 자기의 2층 방으로 불러들여 다시는 자기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그 순간부터 그루센카는 절대로 집에 들이지 말 것이며, 만약 찾아오더라도 '부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고, 나를 깨끗이 잊어 달라' 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러나 그루센카는 거의 매일 같이 사람을 보내어 그의 용태를 물어 보았다.

  "이제야 오셨군요!"  그녀는 카드를 내던지고 반갑게 알료샤를 맞으며 소리쳤다. "막시무쉬카가 어쩌면 당신이 안 오실 거라고 해서 얼마나 걱정했다구요.  당신은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몰라요!  자, 테이블로 가서 앉아요.  무얼 드시겠어요, 커피?'

  "좋습니다." 알료샤는 테이블 쪽으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몹시 시장하군요."

  "저런. 페냐, 페냐, 커피 가져와!"  그루센카가 소리쳤다.  "벌써 부터 끓고 있어요.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만두도 가져오고, 뜨겁게 해서. 잠깐만 알료샤, 그 파이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소동이 일어났어요.  내가 그이한테 주려고 파이를 감옥으로 가져갔더니,  글쎄 그이는 그것을 나한테 도로 집어던지며 먹지 않겠다는 거예요. 한 개는 바닥에 내팽개쳐 발로 짓밟아 버리기까지 했어요. 그래서 나는 '간수한테 이걸 맡기고 갈 테니 저녁때까지 먹지 않으면 당신은 심술만 먹고 사는 사람인 줄 알겠어요!'라고 말하고 돌아와 버렸어요.  우린 또 싸우고 말았죠. 안 믿어지죠?  내가 가기만 하면 언제나 말다툼이에요."

 

  그루센카는 흥분하여 단숨에 이 말을 주워섬겼다. 막시모프는 곧 기가 죽어 눈을 내리깔고 웃고 있었다.

  "이번엔 무엇 때문에 다투셨나요?"  알료샤가 물었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일로 그랬어요! 글쎄, 그이는 나의 '옛 사람'을 질투하는 거예요.  '왜 그자를 보살펴 주는 거야,  당신 그자를 먹여 살리기로 했지?"  하잖아요. 그인 언제나 나 때문에 질투에요! 자면서도 질투,  밥 먹으면서도 질투죠. 심지어 지난 주일에는 쿠지마 노인과 나 사이까지 질투를 했어요."

  "하지만 형님은 '옛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잖습니까?"

  "알지요. 처음부터 오늘까지 다 알고 있죠. 그런데 오늘 난데없이 벌떡 일어나더니 욕을 퍼붓기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차마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말이었죠. 정말 바보에요! 내가 나오자 라키친이 그이한테 들어가더군요. 라키친이 그 사람을 자주 부추기는 게 아닐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형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건 정말입니다.  무척 사랑하고 있어요. 그런데 오늘은 마침 신경이 날카로웠던 게죠."

  "하긴 신경이 안 날카로울 수도 없겠죠. 내일이 공판 날이니. 내가 오늘 그이를 찾아간 것도 실은 내일 일에 대해서 말해 둘 것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알료샤, 내일 일이 어떻게 될지 생각하기조차 무서워요!  당신은 그이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을 거라고 말했지만 나 역시 얼마나 초조한지 몰라요.  그런데 그 폴란드인의 얘기가 웬 말이에요!  바보 같으니!  설마 여기 이 막시무쉬카를 질투하진 않았겠지요."

  "우리 집 사람도 질투가 대단했었지요?"  막시모프가 한 마디 했다.

  "당신을요?"  그루센카는 마지못해 웃었다.  "당신과 누구 사이를 질투했단 말입니까?"

  "집에서 일하는 계집애들이었죠."

  "에이, 그만두세요. 막시무쉬카. 지금 내가 웃게 됐어요?  남은 화가 나 죽겠는데. 그리고 파이에 너무 눈독 들이지 말아요.  안 드릴 테니까.  당신에겐 해로워요.  보드카도 안 돼요.  난 이 사람을 돌보는 데도 꼭 양로원을 하는 것 같아요."  그녀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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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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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모나리자 | 작성시간 14.10.21 그루센카가 조금 일찍 미챠에게 이런 애정을 보였더라면 좋았을 거 같네요...
  • 작성자하늘 | 작성시간 14.10.21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순수 | 작성시간 14.10.22 지금의 그루센카에게는 막시모프같은 노인네라도 곁에 있는게 낫겠군요!

    때로 감당하기 힘든 사건과 상황에 있을때는, 의식이 자꾸 안으로 파고들어가 끝없이 자책이나 절망감만 잡고있게끔 하기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바깥의 대상에 의식을 동반하게끔 하는것이 훨씬 도움되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불행에서 빠져나오는 길 중에 봉사라는 길이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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