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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의 형제(Brat'ya Karamazovy) (하)- 제 4부, 제 11편 이반 표도르비치.ㅡ 7, 스메르쟈코프와의 두번째 면담(A)

작성자레아|작성시간14.11.14|조회수294 목록 댓글 4

                                     7, 스메르쟈코프와의 두번째 면담(A)

 

 

 

  그때는 스메르쟈코프도 이미 병원에서 퇴원한 후였다.  이반 표도르비치는 그가 거처하는 새 집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현관 입구을 경계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 기울 대로 기운 초라한 통나무집이었다.  한쪽에는 마리야 콘드라치예브나와 어머니가 살고 다른 한쪽에는 스메르쟈코프가 거처하고 있었다.  그가 어떤 조건으로 그들 모녀의 집에 동거하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돈을 내고 있는지, 아니면 그대로 신세를 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야 세상 사람들은 마리야의 약혼자의 자격으로 신세를 지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어머니도 딸도 몹시 그를 존경하여 자기네들보나는 한 층 높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반은 노크를 하고 현관에 들어서자 곧 마리야 콘드라치예브나의 안내를 받았다.  그는 곧장 스메르쟈코프가 거쳐하고 있는 왼쪽의 '깨끗한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벽돌로 된 페치카가 있어서 난방이 잘 되어 있었다. 벽마다 하늘빛 벽지가 발라져 있었으나 여기 저기 찢어져서 그 속 틈바구니로 바퀴가 떼를 지어 기어다니면서 쉴 새 없이 바스락거리고 있었다.  가구도 초라했다.  양쪽 벽 밑에 벤치가 두 개 놓여 있고 테이블 옆에는 두 개의 의자가 있었다.  테이블은 흔해빠진 목재로 된 것이었지만, 그래도 장미빛 무늬가 든 테이블보가 씌워져 있었다.

 

  두 개의 조그만 창가에는 제라늄 화분이 하나씩 놓여 있고, 한쪽 구석에는 성상이 든 함이 안치되어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구리로 만든 울퉁불퉁한 소형 사모바르와 찻잔 두 개가 놓인 쟁반이 있었다.  그러나 스메르쟈코프는 이미 차를 다 마신 뒤였으므로 사모바르의 불은 꺼져 있었다.  스메르쟈코프는 테이블 뒤 벤치에 앉아서 수첩을 들여다보며 펜으로 뭔가를 쓰고 있었다.  그 옆에는 잉크 병과 스체리안 양초가 꽂혀 있는 나지막한 쇠촛대가 놓여 있었다.

 

  이반은 스메르쟈코프의 얼굴을 보자 곧 그의 병이 완쾌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얼굴은 전보다 살이 올라 훨씬 명랑해 보였고,  앞 머리도 깨끗이 빗어 넘기고 관자놀이에도 기름을 바르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무명 가운을 걸치고 앉아 있었는데, 그 가운은 낡을 대로 낡아 몹시 해져 있었다.  콧잔등에는 안경이 얹혀 있었다.  이반은 전에는 그가 안경을 낀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이 대수롭지 않은 사실이 갑자기 이반의 비위를 몇 배나 더 건드리고 말았다.

  '저 녁석이 건방지게 안경을 다 끼다니!' 하고 이반은 속으로 생각했다.  스메르쟈코프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들어온 손님을 안경 너머로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는 조용히 안경을 벗고 벤치에서 일어났으나, 어쩐지 공손한 데라곤 하나도 없고  '그저 접객에 필요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뿐이다.' 하는 식의 태도였다.  이반은 대번에 이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가슴속에 죄다 접어 넣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분이 나빴던 것은 스메르쟈코프의 눈초리였다.  확실히 증오에 찬 불쾌한 두 눈에는 오만 불손한 빛까지 어려 있었다. '무엇 때문에 건들거리고 나타났어? 얘기는 그때 다 끝났을 텐데 무엇하러 왔지?' 하는 듯한 눈치였다.  이반은 간신히 자기 자신을 억제했다.

  "여긴 덥군."  그는 선 채로 이렇게 말하고 외투 단추를 끌렀다.

  "벗으시죠."  스메르쟈코프가 말했다.

 

  이반은 외투를 벗어 벤치 위에 내던지고 떨리는 손으로 의자를 테이블 옆에 갖다 놓고 앉았다.  스메르쟈코프는 이반보다는 먼저 벤치에 자리잡고 앉았다.

  "우선 묻겠는데, 여긴 우리밖에 없겠지?  이반은 엄한 어조로 성급히 물었다 저기서 엿듣는 사람은 없나?"

  "아무도 듣지 못합니다. 보시다시피 사이에 현관이 있으니까요."

  "내 말을 들어. 저번에 내가 병원에서 나오려고 할 때 넌 뭐라고 말했지?  네가 간질 발작의 흉내를 잘 낼 수 있다는 걸 내가 말하지 않는다면 너도 나와 대문 옆에서 주고받은 말을 예심 판사에게 전혀 말하지 않겠다고 그랬지?  '전혀'라는 건 뭐야? 도대체 무슨 뜻에서 그때 그런 말을 했지?  나를 위협 한 건가,뭔가?  내가 너하고 무슨 한패거리라도 된단 말이냐?  내가 널 무서워할 줄 아니?"

 

  이반은 자기가 일제의 모호한 표현이나 빈정거리는 말을 피하고 노골적으로 대든다는 것을 일부러 상대방에게 알리려는 듯이 맹렬한 기세로 이렇게 말했다.  스메르쟈코프의 두 눈이 독기를 품고 번쩍 빛나더니 왼쪽 눈이 깜박이기 시작했다.  그 눈은 자기 습성대로 자제하는 듯한 침착성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래도 곧 이렇게 대꾸하고 있었다. ㅡ '깨끗이 털어놓기를 원한다면 어디 한번 깨끗이 털어놓아 봅시다.'

  "그때 전 이런 뜻에서 말씀드렸던 겁니다. 제가 그런 말을 한 것은 도련님이 그때 아버지가 살해되리라는 것을 미리 아시고도 그냥 내버려 두고 떠나셨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당신의 마음씨에 대해서 좋지 않은 말을 할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그 밖의 다른 일에 대해서도  억측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때 당국에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거죠."

 

  스메르쟈코프는 자기 자신을 억제하며 천천히 말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의 음성에는 단호하고 끈덕지고 간악하며 뻔뻔스럽고 도전적인 억양이 섞여 있었다.  그는 오만불손한 눈으로 이반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반은 처음 한순간 눈이 가물거릴 정도였다.

  "뭐가 어째? 넌 지금 제정신이냐,  아니냐?"

  "전 완전한 제정신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럼 넌 그때 내가 살인이 있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말이지?"

 

  이반은 마침내 이렇게 외치고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그 밖의 다른 일'이란 건  또 무슨 소리냐?  어서 말해, 이 악당아!"

 

  스메르쟈코프는 아무 말 없이 여전히 그 뻔뻔스러운 눈으로 이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말해, 이 고린내 나는 악당아!  '그 밖의 다른 일'이라는 건 뭐냐 말이다!"

  "제가 지금 '그 밖의 다른 일'이라고 말씀드린 건, 도련님 자신도 그때 아버지의 횡사를 무척 바라고 계셨으리라는 뜻입니다."

 

  이반은 벌떡 일어나 있는 힘을 다해서 그의 어깨를 내리쳤다.  그는 벽쪽으로 나가 떨어졌다.  그의 얼굴은 어느새 온통 눈물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도련님, 약한 사람을 때리다니 부끄럽지도 않으세요?"라고 말하면서 코를 푼 청색 줄무늬 손수건으로 눈을 가리더니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1분 가량이 지났다.

  "자, 됐어!  그만 해둬!" 이반은 다시 의자에 앉으며 명령조로 말했다.

  "나를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만들진 말란 말이다!"

 

  스메르쟈코프는 그 걸레 조각 같은 손수건을 눈에서 뗐다.  그의 주름잡힌 얼굴 전체가 방금 당한 모욕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이 악당아,  그럼 너는 그때 내가 드미트리와 함께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니."

  "저는 그때 도련님의 생각을 알 수 없었습니다."  스메르쟈코프는 화가 난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그때 대문으로 들어가시는 당신을 멈춰 세웠던 겁니다.  이 점에 대해서 당신의 마음을 떠보려구요."

  "뭘 떠봐, 무엇을!"

  "아버님이 한시 바삐 살해당하길 바라시는지 어떤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지요."

 

  무엇보다도 이반을 격분하게 하는 것은 스메르쟈코프가 그 후안무치한 어조를 끝까지 고집하며 버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네가 아버질 죽였지!"  갑자기 이반은 이렇게 소리쳤다.

 

  스메르쟈코프는 경멸하듯이 히죽 웃었다.

  "제가 죽이지 않았다는 건 도련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현명한 사람이라면 두 번 다시 그런 말을 꺼내지 않을 줄 알았는데요."

  "그럼 넌 왜 그때 나한테 그런 의심을 품었지?"

  "아시다시피 그저 무서운 나머지 그런 의심을 품었던 겁니다.  저는 그때 공포에 떨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나 다 의심하게 마련이었죠.  그래서 도련님의 마음도 떠보기로 했던 거구요.  만일 당신이 드미트리 형님과 똑같은 것을 바라고 계시다면  '모든 일은 다 끝났다. 나도 함께 파리처럼 살해당할 것이 분명하다'하고 생각했던 겁니다."

  "이봐 넌 두 주일 전에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병원에서 도련님과 얘기 할 때도 역시 이렇게 말씀드릴 생각이었습니다만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아도 다 알아들으시려니 생각했던 거죠. 또 도련님은 매우 현명한 분이시니까 너무 노골적인 대화는 좋아하시지 않을 줄 알고......"

  "이 녀석이 못하는 말이 없군! 하지만 대답을 해,  대답을!  난 꼭 네 대답을 들어야겠다. 어째서 너는 그때 그 비열한 마음속에 그따위 비굴한 의심을 품었느냐 말이다!"

  "살인을 한다는 건 도련님으로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고 또 그런 건 생각조차도 못하셨을 겁니다.  그러나 누가 딴사람이 죽여 줬으면 하는 생각은 하셨을 겁니다."

  "아주 태연하게 그런 소릴 하는구나! 내가 왜 그렇게 되길 바랐다는 거지?  내가 그걸 바랐을 이유가 뭐야?"

  "이유가 뭐냐구요?  거기에는 유산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스메르쟈코프는  마치 복수라도 하는 듯이 독기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도련님 삼형제는 각각 4만 루블 정도씩 상속받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지요.  그렇지만 만일 주인 어른께서 그 여자와, 그 아그라페나 알렉산드로브나와 결혼이라도 해보세요.  그 여자는 결혼하는 즉시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자기 명의로 바꿔 놓고 말 겁니다. 이만 저만 약은 여자가 아니니까요.  그렇게 되면 도련님 삼형제한테는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단돈 2루블도 손에 들어오는 게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 결혼이 과연 불가능한 일이었을까요? 그야말로 위기일발이었지요.  그 여자가 새끼손가락만 한 번 움직이는 날이면 아버지는 당장 혀를 내밀고 그 여자를 따라 교회로 달려가셨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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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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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사포 | 작성시간 14.11.14 잘 읽었어요~
  • 작성자하늘 | 작성시간 14.11.14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순수 | 작성시간 14.11.16 같은 사실을 상반된 각도에서 바라보고
    같은 사람을 상반된 각도에서 단정짓고
    같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상반된 각도에서 접근하는 일들....

    이처럼 동전의 양면같은 두가지 사고의 흐름을 바라보며 소름끼쳐했던 일이 사년전에 일년 내내 제가 겪었던 일이지요. 믿음이냐 믿음부재냐 긍정이냐 부정이냐 신념이냐 미혹이냐...

    그것을 극복하고자 부단히 애썼지만 제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고 주님의 일이었다는걸 훨씬 나중에야 깨달았지요. 또한 그때 제가 죽고 저와 대치되었던 사람들이 모두 현실적으로 성공을 달리게 된것도 정말 잘 된 일이란것도 지금에사 확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 작성자레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11.16 그래요,..사람의 힘으론 그 무엇도 완전히 극복되는 것이 아닌 모양이야요. 하기사 삶 자체가,..생 자체가,..모두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뒤 늦게 깨닫게 되는 것이 또한 인생인 모양입니다.
    까라마조프 가의 비극 또한 전능자의 계획과 섭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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