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과 그림책 1
모든 것은 기억이다. 그림책을 통한 양육도 마찬가지
행복한 순간에 대해서
작년 ‘아동발달’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어렸을 적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아래 글은 그 중 한 학생이 써낸 글입니다.
행복한 순간에 대해서
보들보들한 빨강색, 엄마 목소리, 엄마의 슬리퍼
저의 행복했던 순간은 어렸을 때 보들보들한 빨강색 옷을 입은 엄마 품안에서 엄마가 읽어주던 ‘엄마의 슬리퍼’라는 동화책을 들을 때였습니다. 그 동화책을 너무 좋아해서 너덜너덜해 질 때까지 읽고 없어지면 하루 종일 찾아다니곤 했습니다. 엄마가 일 때문에 바쁘셔서 엄마와 함께 있던 시간이 별로 없어서인지 엄마에 대한 기억은 항상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학생의 글 속에는 그림책 경험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사실들이 들어 있지요. 보들보들 촉감과, 빨강이라는 시각적 자극, 그리고 맨 마지막 문장에 ‘엄마가 일 때문에 바쁘셔서 엄마와 함께 있던 시간이 별로 없어서 인지 엄마에 대한 기억은 항상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라는 말은 기억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 주는 지를 잘 보여줍니다. 엄마랑 함께한 시간은 별로 없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엄마가 읽어주었던 ‘엄마의 슬리퍼’의 공유경험이 엄마에 대한 기억과 동일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여러분의 기억 속에도 아마 이런 부분이 존재할 것입니다.
엄마의 슬리퍼
[엄마의 슬리퍼]는 오줌을 싼 아이가 이불이 마르는 동안 엄마의 슬리퍼를 신고 동물나라로 가서 온갖 동물들과 같이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다가 코끼리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예요. 그 학생이 어릴 때 읽었던 거라 지금은 쉽게 찾기는 어렵습니다. 1981년 일본 프뢰벨과 계약해서 국내 출간한 전집 시리즈 중 한 권이었지요. 제가 아직도 그 책을 가지고 있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책을 꼭 한 번 찾아보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몇 주 그 학생은 겉장이 너덜너덜해진 아주 오래된 그 [엄마의 슬리퍼] 책을 가슴에 꼭 안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책을 제게 내밀면서 해맑게 웃던 그 얼굴은 마치 행복한 4살짜리 여자아이 같았지요. 아마 그 책은 무의식적으로 지금까지 그 학생에게 힘이 되어 왔던 것처럼 나머지 인생에도 지속적으로 긍정의 힘의 원천이 되어줄 것입니다. 한 권의 그림책이 한 사람의 인생에 이렇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경이롭지 않으십니까?
몸의 기억을 만드는 그림책
그림책은 특히 어린 시절일수록 삶의 토대가 되는 중요한 기억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림책과 양육을 연결시키게 되는 이유입니다. 엄마의 빨간 슬리퍼와 보들보들한 엄마의 빨강색 옷은 어린 시절 그 학생에게 지워지지 않는 강력한 몸의 기억을 남겼습니다. 기억은 어떤 형태로 저장되느냐에 따라 신체 감각 기억(동작적 표상), 시각적 이미지 기억(심상적 표상), 언어 기억(상징적 표상)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이 세 가지는 발달적 순서와도 일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릴수록 기억은 몸속에 감각과 동작으로 저장됩니다. 언어로 저장되는 것은 가장 나중이지요. 아이들이 신체감각과 동작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코를 킁킁](원제 The happy day)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킁킁 냄새 맡는 동작을 하고, 또 달려가고, 맨 마지막 장면의 노란 색이 눈앞에 펼쳐지는 느끼게 됩니다. 또 [사과가 쿵]을 떠올리면 빨간 색 사과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더 예민한 분들은 사과가 쿵하고 떨어질 때 땅의 흔들림도 느낄 수 있다고 하네요. 이 모든 것이 머리가 아닌 몸의 기억 때문입니다. 아이가 어릴수록 그런 그림책을 공유하면서 아이와 동일한 몸의 기억을 만들어 보세요. 그 책은 아이의 삶에 엄청난 긍정의 에너지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이에게 그림책을 주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 아닌지요? 또한 [엄마의 슬리퍼]의 그 학생처럼 아이 마음속에 엄마아빠에 대한 좋은 상도 함께 만들어 줄 수 있답니다. 자녀 양육에 있어서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두 딸을 가진 양띠 엄마 신혜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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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루씨 작성시간 21.07.10 엄마 또한 아기를 무릎위에 앉히고 품에 안은 채 그림책읽는 시간이 매우 행복하네요:) 자기전 둘이 같이 누워 뒹굴뒹굴하며 보는 그림책도요! 감사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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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뚜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1.07.10 모든 상호작용과 마찬가지로 양육 역시 양방향이지요. 주고- 받고- 주고- 받고 touching -tuning -turntaking . . . 체온 미소 팔흔들림 목울림 고개돌림 칭얼거림 울음 한 단어..뭐든
양육이란
아기에겐 parenting
부모에겐 reparenting...
다시 부모되어주기! 의 기회
자기 자신에게 -
작성자천천히 작성시간 21.07.24 아이에게 언젠가.. 불러 일으켜지는 몸의 기억이
될 수 있다 생각하니, 그림책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네여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