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광민님
주 안에서
잘 지내시는지요.
님의 질문에 대해
마음은 빠른 시간에 답변을 드리고자 하였습니다만,
이제서야 답글을 올리게 됨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님은 하나님의 자녀는 '성도'라고 불리우는데, 목사를 '주의 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를 궁금해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목사는 따로 세움을 받으며, 그러기에 그러한 자는 주의 종으로만 허락되었기 때문에 주의 자녀, 곧 목사가 아닌 성도로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인지를 알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궁금해 하면서도 님이 말한 대로 이러한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왜 그런지를 이제 다음과 같은 답변의 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성도에 대하여 설명을 드립니다.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소유, 곧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성도는 어느 한 개인의 개념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가 아닙니다. 이 성도의 개념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란 공동체의 개념을 띠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란 공동체의 개념은 구약 시대에서의 하나님의 백성과 신약 시대에서의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총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나오게 되는 ’교회‘로 서 나갑니다.
성경에서 성도라고 할 때는 그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한 무엇인가가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구원이 들어와 있는 사람을 성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구원을 언약이란 방식에 의해서 자기의 택한 백성에게 주시는데, 이 언약은 약속과 성취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의 중심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니 말이죠. 성도란 하나님의 언약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들어와 있는 사람, 그래서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분의 거룩하심 속에 들어와 있게 됨으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 라고 하신 관계성이 맺어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이러한 관계가 맺어질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구속하실 것을 작정하시고 또한 우리를 택하신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구원의 유일한 아들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대신 죽게 하시어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아들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를 하늘에 있든지 땅에 있든지 사방에서 불러 모아 영원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에베소서 1:3-12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님이 ‘하나님의 자녀=성도’ 라는 등식의 개념으로 성도가 어떠한 자인지를 이해하고 있는 것은 틀리지 않으며, 따라서 옳습니다.
이 성도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는 모든 믿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게 된 것은 그분을 혈과 육에 의하여서, 즉 인간의 육신의 생각으로 알게 되어서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게 해주신데 따른 것임을 마태는 전하였습니다(마 16:17). 또한 요한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는 것은 -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은 - 인간의 혈통과 그 욕망이나 인간의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곧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요 1:13).
예수 그리스도를 이름을 믿는 자, 곧 그분의 이름을 영접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종종 곡해되어서 잘못 말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다는 것을 마치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아가는데 큰 권세를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며, 잘못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하셨다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 곧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진 사실을 알게 해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곡해하며 왜곡시키고 악용하는 악한 죄에 있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성도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는 모든 믿는 자들입니다. 여기에는 교회를 구성하는 믿음의 공동체의 모든 자들을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이죠. 목사를 비롯하여서 교회를 섬기는 어떤 직분으로 있든지 간에, 그들이 목사의 직분을 맡고 있든, 장로의 직분을 맡고 있든, 집사의 직분을 맡고 있든, 또는 교회의 이런 저런 기관의 어떤 일에 봉사를 하는 직분에 있든, 또는 성도로서 그들이 어른이든 또는 소년이나 어린이든, 남자 성도이든 여자 성도이든, 함께 교회를 이루고 있는 모든 신자들이 ‘성도’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우리 주변에서 목사를 주의 종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흔치 않게 들으며 또한 보게 됩니다. 이들은 ‘주의 종=목사’ 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성도’로부터 구분과 구별을 가지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일에 그렇다면, 그래서 그러한 생각으로 목사가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말하며, 성도들에게 그렇게 부르도록 한다면, 이것은 그 표현 자체부터가 틀린 것이며, 그렇게 말하는 것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이렇게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성직 개념이 자리잡고 있어서 교회를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분하여서 보고 있는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목사란 평신도와 구분하고 또한 이들과는 구별되는 계급에 의한 성직 개념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교회 역사에서 이런 인식이 오랫동안 가져오고 있었습니다. 카톨릭교회에서 만이 아니라, 여기에서의 종교개혁 운동 이후 500년 가까이 되는 개신교에서도 말입니다.
교회에서 이렇게 계급에 의한 성직 개념을 갖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교회의 목사와 성도를 구분하고 구별시키는 것도 비성경적일 뿐만 아니라, 성도를 평신도로 여기는 것도 비성경적입니다. 그러니까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결코 말씀하시고 있는 바가 아닙니다. 성경은 성도 간에 계급 개념, 곧 성도 간에 차이나 차별을 두는 개념을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은 그리스도와 하나 된 몸, 곧 ‘한몸’으로서 그리스도의 각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성도들을 ‘믿음의 형제(자매)’로 호칭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믿음의 주는 한 분이십니다. 그 한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분에게서 모든 믿는 자들이 나왔으며, 그래서 모든 믿는 자들은 한분 그리스도를 섬깁니다. 믿는 자들이 섬기는 주가 다르지 않으며, 그래서 믿음의 주가 각각이지 않습니다. 믿는 자들은 모두 한분 주님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서 각각의 차이와 차별이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어떤 자는 ‘주의 종=목사’이고, 어떤 자는 ‘성도’란 말입니까? 참으로 천부당만부당한 생각이요 말입니다.
그런데 ‘주의 종=목사’란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개념은 유난히 목사에게서 강합니다. 이것은 목사가 자신 스스로를 권위 있는 자로 여기는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주의 종’이란 말이 여러 곳에서 사용되었습니다만, 그것을 목사에게만 국한적으로 임의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주의 종=목사’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종’이란 말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개념으로서 불려지고 있는 용어인데, 이것이 담고 있는 직접적인 대상은 하나님이 화자(話者)가 되는 ‘나의 종’에서 보게 되는 메시야(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인 데다가(행 3:13 등), 또한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하시는 일인 복음을 맡아 교회를 세워나가시는 일에 참여함을 받은 사도들과 그 사도성에 속하는 자들에게서 불려지는 것으로 ‘하나님의 종’ 또는 ‘예수의 종’, ‘그리스도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병행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행 16:17; 빌 1:1; 딛 1:1; 약 1:1; 벧후 1:1; 유 1:1). 그런데다가 사도가 자신과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한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표현한 것은 대개가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서두에 쓴 교회에 문안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는 지금 교회에 보내는 서신을 쓰는 자신이,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한 주의 복음에 매인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리고 교회에 있어서 어떤 자들인지를 교회에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표현을 한 것이지, 지금 자신들이 '주의 종'이니까 교회가 자신들을 이렇게 호칭하여 불러야 한다는 것으로 이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분의 복음을 맡은 자로서 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여 복음, 곧 그들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모든 사람들 앞에 나타내는 일을 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에서 사도와 사도에 속했던 자들이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종’, 곧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렸던 것처럼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종’이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의 개념으로 ‘주의 종’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교회에 보내는 서신의 서두에서 자신과 그리고 자신과 함께 자들을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말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과 함께 그 종이 그들의 주인과 함께 당할 일에서 입니다. 그것은 ‘고난 받는 종’입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그리스도의 종이면 또한 그들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가 당한 고난도 함께 당할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줌이 되고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신 것(롬 4:25; 히 9:28)의 동일한 고난이 종에게도 함께 할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한다면 또한 그리스도가 받으신 고난도 그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의 종’이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인 성도가 그들이 주께로부터 받아 맡은 일인 주의 복음을 전하는 것과 관련해서 그리스도의 종으로 있는 그들에게는 그리스도가 죽음을 당하신 고난과 동일한 고난 속에 있는 의미에서 입니다.
이 운명에 놓인 자가 교회 곧, 성도이며 또한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그 말씀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의 믿음에 있게 하는 직분인 목사로 교회를 섬기는 자입니다. 교회는 곧, 온 성도와 이들을 섬기는 목사는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고난에 있는 운명에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들이 주의 복음을 전하는 것에는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싫어 버림 바 되어 죽음을 당하시는 것으로 배척을 받으신 그 배척이 뒤따릅니다. 죽음을 당한다는 것은 목숨을 잃는다는 것이니 목숨까지도 내어놓는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질 것이 교회, 곧 성도와 이들을 섬기는 목사의 운명입니다.
성도는 성도로 호칭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들이 믿는 믿음의 주께 대한 복음의 비밀을 깨달아 알고 있는 자들로서 성령께서 기회를 주시는 대로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기에 항상 그 준비 속에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 중에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함으로써 성도를 섬기는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그 은사를 주시는 것으로 목사의 직분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목사로 호칭되는 것입니다. 성도란 명칭에, 그리고 목사란 직분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보는 ‘하나님의 종’과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사도들에게서 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무엇을 의미하며 말하는 것인지가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로 불려지고 목사로 불려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주의 종=목사’란 생각을 가지고서 목사가 자신 스스로서나 사람들에게서나 주의 종으로 불려지기를 바라고 그렇게 불려지는 것을 좋아하다니요!. 이것은 그들 자신이 지금 교회 속에서 어떤 존재로 있는 것인지를 알기 때문에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불려지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탐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주의 종’으로 특별히 선택을 받아서 많은 성도들 중에서 자신이 따로 ‘주의 종’으로 세움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럼으로써 성도들과 차이를 갖고 차별을 두고자 합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성도들 위에 군림하면서 성도들로부터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말입니다. ‘주의 종’이란 용어를 사용하여서 자신 스스로를 권위 있는 자로 만들려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하는가 하면 ‘주의 종’이란 권세를 등에 업고서 행사하려고 하고, 그것으로 재물을 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의 종’으로 불려지기를 바라는 많은 목사들이 주님이 주신 복음을 순전함으로 전하지 않고 다른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만 합니다. 그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교회 신자들을 주의 종의 권위에 두고서 그 권위에 복종케 하여 자기를 따르는 사람으로 만듦으로써 소위 목회 성공, 교회 부흥을 꾀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를 통해서 이들은 자기들의 배를 불리는 일을 합니다.
이것은 말이죠.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에게서 보는 ‘주의 종’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요!. 목사가 ‘주의 종’이라고 불려지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목사라고 하는 것조차도 철저하게 부인되어야 하는, 곧 목사의 직분을 맡음으로써 그들 자신의 목숨이 성도들을 위하여 그들을 대신해서 희생되어져야 하는 것인데, 그 반대로 이렇게 불려지는 것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고 그 맛의 재미로 살려는 것이니 어찌 ‘주의 종’일 수 있는지요!.
님이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들이 누구인지 그 정체성과 본질을 알려 주시고 있는 가장 좋은 호칭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입니다. 그리고 목사는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통하여 성도를 섬기는 직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봉사의 직무를 하는 것에서 성도들에게서 목사로 불려지는 것입니다.
그러한데, 목사가 자신이 교회에서 성도를 섬기는 일과 관련해서 목사로 불려지는 것을 두고서 이렇게 불려지고자 하지를 않고 목사란 것에 주의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을 강조하고 심어주기 위해서 ‘주의 종’으로 불려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주의 종’이 아닙니다. 그는 거짓된 교훈을 전하고 불의한 힘을 행사함으로 사람을 미혹케 하는 일을 하는 ‘거짓 선생’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지금까지 설명 드린 것에 의해서 님이 질문한 “목사를 주의 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요?”에 대한 답변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드립니다.
“목사를 ‘주의 종’ 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만일 목사를 부득불 꼭 '주의 종'으로 표현하여서 말해야 할 상황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목사의 권위 의식에서가 아니라, 목사의 직분이 주님의 복음과의 관계성에서 갖는 사역의 성격상에서여야 할 것입니다.
한편, 님은 “목사는 따로 세움을 받아서 주의 자녀 되는 것을 허락 하지 않고 주의종으로만 허락 한 것인가요?” 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위에서 지금까지 설명 드린 것에서 이것에 대한 답변도 어느 정도 이야기는 되었습니다만, 간략하게 말씀드립니다.
먼저, “목사는 따로 세움을 받아서”에 대한 답변입니다. 목사는 따로 세움을 받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모든 성도 중에서 어느 누구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은사(목사의 직분)가 주어지면 그는 목사의 사역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그에 관한 교육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과정이 주어지겠지요. 따라서 목사 될 사람은 따로이 선택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목사는 따로 세움을 받아서 주의 자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주의 종으로만 허락한 것인가요?”에 대한 답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앞에서도 답변 드렸듯이 ‘목사는 따로 세움을 받아서’ 그에게만 ‘주의 종으로만 허락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성도 중에서 어떠한 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를 섬길 은사에 있는지를 보고서 그가 그 은사를 교회를 위해서 사용할 것을 원하고 본인도 자신이 교회를 위해서 섬길 수 있는 은사를 알고 있고 기꺼이 교회의 뜻에 따르면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 목사의 과정 - 신학 수업과 목사 후보생의 과정 - 을 밟아 목사의 직분으로 교회를 섬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로 교회를 섬겨온 그가 이제 교회의 한 일원인 성도의 신분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면, 그는 언제라도 그가 해온 목사의 직분을 다른 분이 맡아 수행케 하고 그 자신은 성도로 돌아가서 다른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어떤 장애나 부정적인 요인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원하는 것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가 원하는 것을 교회는 도와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목사로 세움을 받는 일에 교회가 함께 하여 도왔던 것처럼 그가 목사의 직분에서 성도로 돌아가는 것에도 교회는 그와 함께 하여 그를 지원하고 도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목사의 직분은 교회가 존재하는 한에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주님의 교회로 서나가는 일에 있어서 교회와 함께 항시 존재하는 직분으로 교회와 함께 하는 직분인 것이지(교회헌법에서는 이것을 '항존직'(恒存職)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 이것이 개인의 직분으로서 종신직이며 영구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잘못 알고 있어서 목사의 직분을 교회와의 여부를 떠나 개인의 직분으로서 종신직이며 영구직인 것으로 삼아 나가는 잘못된 폐단에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실정입니다.
님이여,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목사의 직분이 교회를 섬기는 직분으로서 바르게 사용되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고 자기 의를 이루는 것으로 잘못 사용하고 있기에 그 문제성이 다루어지다 보니 답변에 좀 과한 표현도 있었습니다만, 그렇게 표현하는 말을 함으로써 말하고자 한 의도를 잘 이해하시고 용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답글이 님이 궁금해 하며 바르게 이해하여 알고자 것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주 안에서
잘 지내시는지요.
님의 질문에 대해
마음은 빠른 시간에 답변을 드리고자 하였습니다만,
이제서야 답글을 올리게 됨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님은 하나님의 자녀는 '성도'라고 불리우는데, 목사를 '주의 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를 궁금해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목사는 따로 세움을 받으며, 그러기에 그러한 자는 주의 종으로만 허락되었기 때문에 주의 자녀, 곧 목사가 아닌 성도로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인지를 알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궁금해 하면서도 님이 말한 대로 이러한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왜 그런지를 이제 다음과 같은 답변의 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성도에 대하여 설명을 드립니다.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소유, 곧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성도는 어느 한 개인의 개념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가 아닙니다. 이 성도의 개념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란 공동체의 개념을 띠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란 공동체의 개념은 구약 시대에서의 하나님의 백성과 신약 시대에서의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총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나오게 되는 ’교회‘로 서 나갑니다.
성경에서 성도라고 할 때는 그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한 무엇인가가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구원이 들어와 있는 사람을 성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구원을 언약이란 방식에 의해서 자기의 택한 백성에게 주시는데, 이 언약은 약속과 성취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의 중심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니 말이죠. 성도란 하나님의 언약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들어와 있는 사람, 그래서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분의 거룩하심 속에 들어와 있게 됨으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 라고 하신 관계성이 맺어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이러한 관계가 맺어질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구속하실 것을 작정하시고 또한 우리를 택하신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구원의 유일한 아들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대신 죽게 하시어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아들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를 하늘에 있든지 땅에 있든지 사방에서 불러 모아 영원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에베소서 1:3-12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님이 ‘하나님의 자녀=성도’ 라는 등식의 개념으로 성도가 어떠한 자인지를 이해하고 있는 것은 틀리지 않으며, 따라서 옳습니다.
이 성도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는 모든 믿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게 된 것은 그분을 혈과 육에 의하여서, 즉 인간의 육신의 생각으로 알게 되어서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게 해주신데 따른 것임을 마태는 전하였습니다(마 16:17). 또한 요한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는 것은 -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은 - 인간의 혈통과 그 욕망이나 인간의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곧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요 1:13).
예수 그리스도를 이름을 믿는 자, 곧 그분의 이름을 영접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종종 곡해되어서 잘못 말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다는 것을 마치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아가는데 큰 권세를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며, 잘못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하셨다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 곧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진 사실을 알게 해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곡해하며 왜곡시키고 악용하는 악한 죄에 있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성도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는 모든 믿는 자들입니다. 여기에는 교회를 구성하는 믿음의 공동체의 모든 자들을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이죠. 목사를 비롯하여서 교회를 섬기는 어떤 직분으로 있든지 간에, 그들이 목사의 직분을 맡고 있든, 장로의 직분을 맡고 있든, 집사의 직분을 맡고 있든, 또는 교회의 이런 저런 기관의 어떤 일에 봉사를 하는 직분에 있든, 또는 성도로서 그들이 어른이든 또는 소년이나 어린이든, 남자 성도이든 여자 성도이든, 함께 교회를 이루고 있는 모든 신자들이 ‘성도’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우리 주변에서 목사를 주의 종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흔치 않게 들으며 또한 보게 됩니다. 이들은 ‘주의 종=목사’ 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성도’로부터 구분과 구별을 가지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일에 그렇다면, 그래서 그러한 생각으로 목사가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말하며, 성도들에게 그렇게 부르도록 한다면, 이것은 그 표현 자체부터가 틀린 것이며, 그렇게 말하는 것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이렇게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성직 개념이 자리잡고 있어서 교회를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분하여서 보고 있는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목사란 평신도와 구분하고 또한 이들과는 구별되는 계급에 의한 성직 개념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교회 역사에서 이런 인식이 오랫동안 가져오고 있었습니다. 카톨릭교회에서 만이 아니라, 여기에서의 종교개혁 운동 이후 500년 가까이 되는 개신교에서도 말입니다.
교회에서 이렇게 계급에 의한 성직 개념을 갖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교회의 목사와 성도를 구분하고 구별시키는 것도 비성경적일 뿐만 아니라, 성도를 평신도로 여기는 것도 비성경적입니다. 그러니까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결코 말씀하시고 있는 바가 아닙니다. 성경은 성도 간에 계급 개념, 곧 성도 간에 차이나 차별을 두는 개념을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은 그리스도와 하나 된 몸, 곧 ‘한몸’으로서 그리스도의 각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성도들을 ‘믿음의 형제(자매)’로 호칭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믿음의 주는 한 분이십니다. 그 한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분에게서 모든 믿는 자들이 나왔으며, 그래서 모든 믿는 자들은 한분 그리스도를 섬깁니다. 믿는 자들이 섬기는 주가 다르지 않으며, 그래서 믿음의 주가 각각이지 않습니다. 믿는 자들은 모두 한분 주님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서 각각의 차이와 차별이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어떤 자는 ‘주의 종=목사’이고, 어떤 자는 ‘성도’란 말입니까? 참으로 천부당만부당한 생각이요 말입니다.
그런데 ‘주의 종=목사’란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개념은 유난히 목사에게서 강합니다. 이것은 목사가 자신 스스로를 권위 있는 자로 여기는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주의 종’이란 말이 여러 곳에서 사용되었습니다만, 그것을 목사에게만 국한적으로 임의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주의 종=목사’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종’이란 말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개념으로서 불려지고 있는 용어인데, 이것이 담고 있는 직접적인 대상은 하나님이 화자(話者)가 되는 ‘나의 종’에서 보게 되는 메시야(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인 데다가(행 3:13 등), 또한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하시는 일인 복음을 맡아 교회를 세워나가시는 일에 참여함을 받은 사도들과 그 사도성에 속하는 자들에게서 불려지는 것으로 ‘하나님의 종’ 또는 ‘예수의 종’, ‘그리스도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병행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행 16:17; 빌 1:1; 딛 1:1; 약 1:1; 벧후 1:1; 유 1:1). 그런데다가 사도가 자신과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한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표현한 것은 대개가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서두에 쓴 교회에 문안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는 지금 교회에 보내는 서신을 쓰는 자신이,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한 주의 복음에 매인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리고 교회에 있어서 어떤 자들인지를 교회에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표현을 한 것이지, 지금 자신들이 '주의 종'이니까 교회가 자신들을 이렇게 호칭하여 불러야 한다는 것으로 이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분의 복음을 맡은 자로서 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여 복음, 곧 그들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모든 사람들 앞에 나타내는 일을 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에서 사도와 사도에 속했던 자들이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종’, 곧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렸던 것처럼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종’이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의 개념으로 ‘주의 종’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교회에 보내는 서신의 서두에서 자신과 그리고 자신과 함께 자들을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말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과 함께 그 종이 그들의 주인과 함께 당할 일에서 입니다. 그것은 ‘고난 받는 종’입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그리스도의 종이면 또한 그들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가 당한 고난도 함께 당할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줌이 되고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신 것(롬 4:25; 히 9:28)의 동일한 고난이 종에게도 함께 할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한다면 또한 그리스도가 받으신 고난도 그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의 종’이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인 성도가 그들이 주께로부터 받아 맡은 일인 주의 복음을 전하는 것과 관련해서 그리스도의 종으로 있는 그들에게는 그리스도가 죽음을 당하신 고난과 동일한 고난 속에 있는 의미에서 입니다.
이 운명에 놓인 자가 교회 곧, 성도이며 또한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그 말씀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의 믿음에 있게 하는 직분인 목사로 교회를 섬기는 자입니다. 교회는 곧, 온 성도와 이들을 섬기는 목사는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고난에 있는 운명에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들이 주의 복음을 전하는 것에는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싫어 버림 바 되어 죽음을 당하시는 것으로 배척을 받으신 그 배척이 뒤따릅니다. 죽음을 당한다는 것은 목숨을 잃는다는 것이니 목숨까지도 내어놓는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질 것이 교회, 곧 성도와 이들을 섬기는 목사의 운명입니다.
성도는 성도로 호칭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들이 믿는 믿음의 주께 대한 복음의 비밀을 깨달아 알고 있는 자들로서 성령께서 기회를 주시는 대로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기에 항상 그 준비 속에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 중에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함으로써 성도를 섬기는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그 은사를 주시는 것으로 목사의 직분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목사로 호칭되는 것입니다. 성도란 명칭에, 그리고 목사란 직분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보는 ‘하나님의 종’과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사도들에게서 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무엇을 의미하며 말하는 것인지가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로 불려지고 목사로 불려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주의 종=목사’란 생각을 가지고서 목사가 자신 스스로서나 사람들에게서나 주의 종으로 불려지기를 바라고 그렇게 불려지는 것을 좋아하다니요!. 이것은 그들 자신이 지금 교회 속에서 어떤 존재로 있는 것인지를 알기 때문에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불려지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탐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주의 종’으로 특별히 선택을 받아서 많은 성도들 중에서 자신이 따로 ‘주의 종’으로 세움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럼으로써 성도들과 차이를 갖고 차별을 두고자 합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성도들 위에 군림하면서 성도들로부터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말입니다. ‘주의 종’이란 용어를 사용하여서 자신 스스로를 권위 있는 자로 만들려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하는가 하면 ‘주의 종’이란 권세를 등에 업고서 행사하려고 하고, 그것으로 재물을 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의 종’으로 불려지기를 바라는 많은 목사들이 주님이 주신 복음을 순전함으로 전하지 않고 다른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만 합니다. 그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교회 신자들을 주의 종의 권위에 두고서 그 권위에 복종케 하여 자기를 따르는 사람으로 만듦으로써 소위 목회 성공, 교회 부흥을 꾀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를 통해서 이들은 자기들의 배를 불리는 일을 합니다.
이것은 말이죠.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에게서 보는 ‘주의 종’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요!. 목사가 ‘주의 종’이라고 불려지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목사라고 하는 것조차도 철저하게 부인되어야 하는, 곧 목사의 직분을 맡음으로써 그들 자신의 목숨이 성도들을 위하여 그들을 대신해서 희생되어져야 하는 것인데, 그 반대로 이렇게 불려지는 것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고 그 맛의 재미로 살려는 것이니 어찌 ‘주의 종’일 수 있는지요!.
님이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들이 누구인지 그 정체성과 본질을 알려 주시고 있는 가장 좋은 호칭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입니다. 그리고 목사는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통하여 성도를 섬기는 직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봉사의 직무를 하는 것에서 성도들에게서 목사로 불려지는 것입니다.
그러한데, 목사가 자신이 교회에서 성도를 섬기는 일과 관련해서 목사로 불려지는 것을 두고서 이렇게 불려지고자 하지를 않고 목사란 것에 주의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을 강조하고 심어주기 위해서 ‘주의 종’으로 불려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주의 종’이 아닙니다. 그는 거짓된 교훈을 전하고 불의한 힘을 행사함으로 사람을 미혹케 하는 일을 하는 ‘거짓 선생’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지금까지 설명 드린 것에 의해서 님이 질문한 “목사를 주의 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요?”에 대한 답변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드립니다.
“목사를 ‘주의 종’ 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만일 목사를 부득불 꼭 '주의 종'으로 표현하여서 말해야 할 상황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목사의 권위 의식에서가 아니라, 목사의 직분이 주님의 복음과의 관계성에서 갖는 사역의 성격상에서여야 할 것입니다.
한편, 님은 “목사는 따로 세움을 받아서 주의 자녀 되는 것을 허락 하지 않고 주의종으로만 허락 한 것인가요?” 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위에서 지금까지 설명 드린 것에서 이것에 대한 답변도 어느 정도 이야기는 되었습니다만, 간략하게 말씀드립니다.
먼저, “목사는 따로 세움을 받아서”에 대한 답변입니다. 목사는 따로 세움을 받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모든 성도 중에서 어느 누구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은사(목사의 직분)가 주어지면 그는 목사의 사역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그에 관한 교육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과정이 주어지겠지요. 따라서 목사 될 사람은 따로이 선택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목사는 따로 세움을 받아서 주의 자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주의 종으로만 허락한 것인가요?”에 대한 답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앞에서도 답변 드렸듯이 ‘목사는 따로 세움을 받아서’ 그에게만 ‘주의 종으로만 허락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성도 중에서 어떠한 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를 섬길 은사에 있는지를 보고서 그가 그 은사를 교회를 위해서 사용할 것을 원하고 본인도 자신이 교회를 위해서 섬길 수 있는 은사를 알고 있고 기꺼이 교회의 뜻에 따르면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 목사의 과정 - 신학 수업과 목사 후보생의 과정 - 을 밟아 목사의 직분으로 교회를 섬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로 교회를 섬겨온 그가 이제 교회의 한 일원인 성도의 신분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면, 그는 언제라도 그가 해온 목사의 직분을 다른 분이 맡아 수행케 하고 그 자신은 성도로 돌아가서 다른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어떤 장애나 부정적인 요인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원하는 것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가 원하는 것을 교회는 도와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목사로 세움을 받는 일에 교회가 함께 하여 도왔던 것처럼 그가 목사의 직분에서 성도로 돌아가는 것에도 교회는 그와 함께 하여 그를 지원하고 도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목사의 직분은 교회가 존재하는 한에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주님의 교회로 서나가는 일에 있어서 교회와 함께 항시 존재하는 직분으로 교회와 함께 하는 직분인 것이지(교회헌법에서는 이것을 '항존직'(恒存職)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 이것이 개인의 직분으로서 종신직이며 영구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잘못 알고 있어서 목사의 직분을 교회와의 여부를 떠나 개인의 직분으로서 종신직이며 영구직인 것으로 삼아 나가는 잘못된 폐단에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실정입니다.
님이여,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목사의 직분이 교회를 섬기는 직분으로서 바르게 사용되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고 자기 의를 이루는 것으로 잘못 사용하고 있기에 그 문제성이 다루어지다 보니 답변에 좀 과한 표현도 있었습니다만, 그렇게 표현하는 말을 함으로써 말하고자 한 의도를 잘 이해하시고 용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답글이 님이 궁금해 하며 바르게 이해하여 알고자 것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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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CRYSTAL 작성시간 08.11.27 저도 루디아님이 말해준거 들었습니다. 꼭 '님'자를 붙이지 않아도 된다는...물론 개인적으로 ~님 하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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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천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8.11.28 직분은 그 자체에 높임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보에 기도하시는 분의 이름을 알릴 때 아무개 목사, 아무개 장로, 아무개 집사 라고 기록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분을 호칭할 때 직분에 '님'자를 붙이는 것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언어 사용에 있어서의 표현으로 굳어 있습니다. 이는 직분에서만이 아니라 성도를 부를 때에도, 믿음의 형제나 자매를 부를 때에도 성도, 또는 형제, 자매 라고 하지를 않고 그 뒤에 대개가 '님'자를 붙여서 호칭해야 편한 느낌과 마음을 갖습니다. 이런 언어적 습관이 있는데다가 연배가 아래인 사람이 웃연배의 사람을 호칭할 때 단지 아무개 목사나 아무개 장로나 아무개 집사로만 호칭하는 것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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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천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8.11.28 자칫하면 받아들일 수 있는 느낌에 경박감이 있을 수 있기에, 사용할 수 있는 여부를 떠나서 경어를 사용하여 공손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굳이 '님'자를 붙여 호칭하는 것에 부정적인 의식을 가질 것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호칭은 교회 예배 집회에서의 하나님 앞에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며, 그러기에 예배 여부를 떠나서 성도는 항상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그분 앞에서 누군가를 호칭할 때 가령 김광민님이나 루디아 님이나 저에게 '목사님'이라고 불러주셨으며, 저 또한 두 분에게 이름이나 닉네임 뒤에 '님'자를 붙여 호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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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천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8.11.28 이렇게 서로 존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호칭하는 것에 그 누구도 부담을 갖지 않고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면 굳이 문제로 여길 일은 아닐 것입니다. 문제는 예배 기도에서 기도자가 (담임 또는 설교하시는)목사를 위하여 기도할 때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이냐 하는 것인데, 그래서 '주의 종'으로 부르는 것도 그렇게 또 '목사(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고, 어떻게 호칭하여 부르는 것이 옳은지 하는 문제인데, 이것은 교회에서 봉사의 직분으로 맡은 대로 목사이면 목사(님)로, 장로이면 장로(님)으로, 집사이면 집사(님)로 부르는 것이 가장 적합한 표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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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루디아 작성시간 08.11.28 목사님, 잘 알았습니다. 답글을 보니 제 맘이 편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