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하마님
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
한동안 더위와 열대야에 시달렸던지라
내리는 비가 참 좋습니다.
안 그래도 비 자체를 좋아하는데.....
하마님은
이 비가 더 없이 좋겠습니다.
하마님은
물 없이는 안 되잖아요?? ㅋㅋ
하마님,
주 안에서 잘 지내시죠?
님은
프란체스코의 기도에서
다음과 같이 한 말의 의미를 질문하였습니다.
“주여,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게 해주시고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체념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를 보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아래 있는 것이며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다 선하지 못한 것인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해야 할)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당연하게 받아 들였던 것에 새삼 의문이 생깁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답변을 드립니다.
우선,
님이 질문한 내용은
프란체스코가 한 여러 기도에서 보게 되는 것에서 취한 기도문의 한 부분,
곧 일부분입니다.
프란체스코가
“주여,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게 해주시고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체념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라고 기도한 것에서
그가 말한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의 생각으로 한 것인지는
그렇게 말하여 기도한 당사자인 프란체스코만이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것에 대한 설명을 일일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니,
그 속마음을 어찌 그 외의 사람이 알 수 있겠는지요.
그럼에도,
그의 다른 기도에서와 그의 생애와 사상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그렇게 기도한 진의에 얼마나 가까울지는
나로서는 알지 못합니다.
저는 이 답변을 해나가는 것에서
두 가지 면에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프란체스코의 또 다른 기도에서 그 해답을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의 의미에서입니다.
먼저, 프란체스코가 한 기도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란체스코는
“주여,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게 해주시고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체념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프란체스코는
“주여,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게 해주시고”
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그가 한 기도에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알고 있는
유명한 기도인 ‘평화의 기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여기서 프란체스코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주께 구하였습니다. 그것은, 자신으로 하여금 당신의 평화를 지키는 사도가 되게 해 달라는 것이며, 증오의 밭에는 사랑의 씨앗을 뿌리게 하여 주시고, 무례한 자를 용서하게 하여 주시고, 불신자로 하여금 믿음에 있게 해주시고, 절망의 밭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게 해 주시며, 어둠에는 빛이 들게 해 주시고, 슬픔에는 기쁨이 되게 해 주실 것을 구하였습니다. 그는 영혼의 주인에게 계속해서 구하기를, 자신의 아픔을 위로 받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로 하게 해 주시고, 자신이 남에게 이해 받기보다는 남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자신이 남에게 사랑 받기보다는 남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남에게 줌으로써 얻으며, 남을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자신이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프란체스코의 이러한 기도는 그가 기독교 신앙 속에서 살아온 환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변에서 늘 보게 되는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약한 사람을 대하게 될 때 자신이 아버지의 부에 업고 그 재물을 가지고 그들을 도왔으나, 산상설교에서 보게 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함으로써 이 세상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부정되고 낮아지는 것에서 자신의 존재를 보았기 때문이며, 예수께서 가난하고 각양 병든 사람들과 그리고 또한 자신을 배척하는 자들과 함께 하며 그들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신 것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그는 자신이 예수님처럼 살 수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마음과 용기를 주께서 주실 것을 구함으로 주님의 은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이 “주여,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게 해주시고” 라고 여겨집니다.
한편, 프란체스코는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체념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라고 하였습니다. 프란체스코의 기도를 보면, 대개가 서로 상반되는 표현의 문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령, 앞서의 평화의 기도도 그렇거니와, 또 다른 기도인 프란체스코가 장애와 병을 가진 이를 위하여 한 감사의 기도문을 보게 되면,
“큰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건강을 구했는데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어 기도했는데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습니다
삶을 누릴 수 있게 모든 것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삶 자체를 주셨습니다
구한 것 하나도 주시지 않았지만
내 소원 모두 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 한 삶이었지만
내 마음 속에 진작 표현하지 못한 기도는
모두 들어 주셨습니다.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라는 표현의 묘사입니다.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체념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란 표현은,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게 해주시고”에 대한 상대적 개념에서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이는 말이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 주실 뿐만 아니라, 반대로 자신이 할 수 없는 것, 곧,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연약함, 병, 가난, 실패, 이런 저런 것은 하나도 구하지 않았는데 그 모두를 허락하신 주님의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에 있게 해 달라는 의미에서 한 말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런 그는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라고 주께 구하였습니다.
프란체스코는 자신이 한 기도에서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기도에서 한 자신의 말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높이 평가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님은 이러한 프란체스코의 기도를 보면서,
다음의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아래 있는 것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선하지 못한 것인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해야 할)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라면서,
“당연하게 받아 들였던 것에 새삼 의문이 생깁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아래 있는 것이며”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을 님께서는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님이 궁금한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선하지 못한 것인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해야 할)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라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말이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선하지 못하다”는 것은요
사람이 그 육체에서 나오는 것(욕망)은 선한 것이 없다는 것에서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생각이 항상 악할 뿐이며,
그 악한 생각에서 갖는 행동 또한 악으로 규정이 됩니다.
그러기에 말이죠.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좇아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 어떤 선함을 발견할 수 있겠는지요. 없습니다. 결코 전혀 없습니다. 사람에게서 무슨 선함이 나올 수 있겠는지요.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이러한 사람을 규정하기를, “의인은 없다. 단 한 사람도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행한 어떤 선을 가지고, 그래서 율법을 따라 행한 어떤 선을 가지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요. 이는 천국에 들어갈 ‘의’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의’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하나님의 자비(긍휼)에 두시고서 죄에서 구원하여 죽음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로 옮기는 ‘하나님의 의’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의’를 힘입는 것이며, 이것으로만 ‘천국의 의’에 있게 됩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선하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서 오해가 없어야겠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선하지 못하지 그 어떤 일(행위)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행한 그것으로 ‘구원의 의’요 ‘천국의 의’로 삼아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죠. 우리가 행한 그 모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의를 입히시며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그분만을 자랑하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분만이 존귀하시다는 것이죠.
님이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해야 할)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라고 하셨습니까?
도대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해야 할)이란 어떤 것이 있겠는지요. 프란체스코의 기도에서 보게 되는 것인, 큰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그가 구하는 힘을 주지 않고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건강을 구했는데,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어 기도했는데,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프란체스코는 다음의 사실을 깨달아 기도했습니다. 삶을 누릴 수 있게 모든 것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삶 자체를 주셨다고 말입니다. 구한 것 하나도 주시지 않았지만, 내 소원 모두 들어 주셨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 한 삶이었지만, 내 마음 속에 진작 표현하지 못한 기도는 모두 들어 주셨다고 말입니다. 그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해야 할)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하고자 하는,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하고 싶은, 여기에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말이죠. 그 어떤 제약이 있을 없으며 주님 안에서 갖는 그 자유한 마음을 억압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 안에서 하고자 하고, 주님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머뭇머뭇하여 주저하지 말고 주님 안에서 원껏 다 하십시오. 그리고 그 한 일에서 자신을 자랑하며 그 선함(의)으로 구원의 공적, 천국의 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요 주님께서 어떻게 자신과 함께 하시며 그 일을 해나갈 수 있는 능력을 공급하셨는지를 아시고서 주님만을 자랑하며 주님으로부터 오는 의를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하지 못할 일)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프란체스코의 기도에서 보는 대로 너무 많죠. 우리가 원하며, 그래서 구할 수 있는 전부잖습니까? 힘, 건강, 행복, 성공....을 구했더니, 주님은 그 구하는 것을 주시지 않고 전혀 반대인 겸손, 병, 가난, 실패에 있게 하여 육체의 무너짐에 있게 하신..., 그러니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 하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며 무가치한지요.
그런데 그러한 우리에게 주님이 주신 것은 그 하나하나에서 우리의 전적 무능력함을 알게 하시는 것이요,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며,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죽음으로써 영생에 있게 하신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입니다.
님이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를 알고자 하는지요. 그래서 그 아는 것에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마음에 있는지요.
그렇다면 말입니다. 여기에 항상 전제되고 또한 선행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입니다. 우리가 모든 믿는 자들의 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지닌 본의(本意)를 십자가의 피로 나타내신 하나님의 구속에 의해서 알고 그 믿음에 견고히 잘 서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님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에서, 그래서 님이 해 나가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구속의 피를 흘리신 복음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님이 하는 모든 일에서 전파되어 가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어야 합니다.
님이여.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님이 질문한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고서 한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 님이 질문한 의도의 답변이 아니면, 그래서 님이 원하는 답변이 된 글이 아니면, 기회를 갖고 교제를 나누어보지요. 글에서 설명이 제대로 전달 안 된 부분이 있을 수 있는 것이 함께 얼굴을 맛대고 말을 주고받는 것에서는 쉽게 이해할 수 있기도 할 것이니 말입니다.
답글을 마친 시점인 지금 언뜻 보니 비가 그친 것 같기도 한데,
오늘 내일도 계속 온다고 하니
잠시 일시적으로 그친 것이겠지요.
님이 활동하는데 불편과 지장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하마(허 승호) 작성시간 10.08.25 오늘 완전 물 만난 하마가 되었습니다. 목사님도 하마과 이시군요. 비 오는게 참말 좋습니다. 일년내내 비가 오는곳에 가 살고 싶습니다. 이제 저도 정리를 좀 해 봐야겠습니다. 꽤 많은(?) 분들이 답글을 달아주셨네요. 다들 쉽게 생각하는 문제를 혼자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하나님이 인간을 협력자로 쓰신다는 것과 그래서 인간이 순종하고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다른 방법으로 그 일을 이루시겠지마는 제가 너무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하는건지 모르겟습니다만 ...그래서 저(사람)의 할일과 역할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겁니다.
-
작성자하마(허 승호) 작성시간 10.08.25 사실 저의 할 도리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지만 지킬 자신도 없는 위선적인 저의 모습입니다.제가 정리되고 이해하지 못하는 질문을 해도 잘 이해하도록 답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따 뵐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