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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런데 교회가 하는 설교는....

작성자이천우|작성시간10.07.26|조회수801 목록 댓글 1

산상설교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여러 가르침을 주시는 것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이 구절은,

 

(1)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다

(2)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경히 여길 것이다.

(3)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를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에게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주인이시며 사람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임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분명히 하시면서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물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의 형상으로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이 계명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하나님 외에 우상을 주인으로 섬기며 사랑에 있다면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에서 드러내시고 있는 하나님의 뜻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끊임없이 우상을 숭배하여 왔습니다. 이스라엘이 늘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한 것은 사람이 그러한 존재임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참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끊임없이 나타내시는 일을 하시며 그 편에 서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며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상 숭배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잘 말해줍니다. 사람은 말이죠. 심지어는 하나님을 가지고도, 또한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가지고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합니다. 이는 말이죠. 자기를 위하는 육의 본능적인 욕구에 따른 것입니다. 십계명에서 “너희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도 섬기지도 말라”는 계명에 사람을 두심은 ‘자기를 위하여’서라면 우상을 만들고 그것들에게 절하며 섬기는 존재가 사람임을 항상 드러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욕망은 멈추지 않습니다. 만일 사람에게서 욕망이 멈췄다면, 그 사람은 죽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육이 살아 있는 한에는 ‘자기를 위하는’ 욕망은 멈추지 않으며, 따라서 끊임없이 욕망은 분출되고 발휘가 됩니다. ‘자기를 위하는’ 이 욕망은 땅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는 ‘탐심’이며, 이는 우상 숭배로 규정됩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이 탐심으로서는 하늘의 것을 결코 바라볼 수 없으며,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그렇기 때문에 버려야 할 땅에 있는 지체입니다.

 

사람은 말입니다. 자신이 먹고 싶은 충동을 갖는 그 ‘먹음직스러움’에 가치를 둡니다. 사람은 말입니다. 자신이 보는 것에 그 ‘보암직스러움’으로 가치를 둡니다. 사람은 말입니다. 자신을 지혜롭게 할 만큼 그 ‘탐스러움’으로 인하여 높은 점수를 주며 그 가치를 인정합니다.

 

이것은 말입니다. 사람이 소유하는 모든 것에 확대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를 위하여’ 소유욕을 발휘하며, 그 욕망한 대로 되어진 것을 인하여 즐거워하고 행복해 합니다. 그 소유함이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지요.

 

사람이 추구하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이 자기에게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어느 사람이 대통령의 야망을 가지고 정치학을 공부하고 정치인으로 입문하고 정치가로서 활동하고 해서 마침내 그 대통령이 되기 위하여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을 거는 것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자기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건강하고, 잘 살고, 성공하고, 등 등에 있거나 그와 같은 소유함에 있음으로 행복해 하는 것은 그것이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이든, 자녀이든, 남에게든, 좋은 교육의 여건 속에서 좋은 학교를 다니며 좋은 실력 속에서 사회의 인정을 받아 좋은 직장을 다니며 좋은 대우를 받아 성공하고 그래서 잘 살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가치 없는 것이라면 그것에 그렇게 힘을 쏟고 노력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까닭이 없습니다.

 

아! 이게 육인 사람의 본능이요 본성입니다.

 

아! 이게 육인 사람의 욕망입니다.

 

누가! 이 탐심에 있지 않고, 누가 이 우상 숭배에 있지 않고, 참되시고 살아계신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주로 섬길 수 있단 말입니까?

 

오늘날 교회에서 전해지는 설교의 내용은 이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이름을 가지고 그 권능을 가지고 성도들에게 부자 되는 복, 그래서 잘 사는 복, 성공하는 복, 행복 하는 복 받으라고 합니다.

 

세상에나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는데, 사도들이 예수께로부터 받은 복음을 전한다는 목사의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성도)들에게 하나님 외에도 재물 - 세상 - 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하다니요! 이것에서 복 받은 자가 되고 이것에서 행복한 자가 되라고 하다니요!

 

이들은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종교에 불과합니다. 부자가 되는 것에서, 잘 사는 것에서, 성공하는 것에서, 행복하는 것에서 복 받은 자가 위해 필요한 종교 말입니다. 이 종교를 통해서, 이 종교를 이용해서 ‘재물’ - 세상 - 을 사랑하겠다고 하며, 주로 섬기겠다고 합니다. 이들은 말입니다. 결코 하나님과 재물, 이 둘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이들은 말입니다. 재물을 중히 여김으로 하나님을 업신여깁니다.

 

이들이 이처럼 소유하고자 하는, 그래서 부자가 되고, 잘 살고, 성공하고, 행복하고자 하는 ‘재물’은 헬라어로는 ‘맘모나스(Mammonas)’, 영어로는 ‘맘몬’(Mammon)이라고 불려지는 것입니다. 영어성경에서는 NIV, 한글성경에서는 개역성경 및 개역개정성경, 공동번역, 쉬운성경, 한글킹제임스, 현대인의성경, 표준새번역, 바른성경에서는 ‘재물’이라고 번역하였고, 현대어성경은 ‘돈’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킹제임스흠정역은 ‘맘몬’이라고 번역하였으며, 표준새번역은 ‘재물’이라고 번역해 놓고서는 여기에 대한 설명을 붙이기를 “그, ‘맘몬(돈이나 부를 뜻하는 셈어)’라고 하였습니다. 헬라어 ‘맘모나스(Mammonas)’, 또는 영어 ‘맘몬’(Mammon)은 아람어 ‘맘모나’(Mammona)에서 유래된 것으로, 원래 이 단어는 ”사람이 신뢰하는 무엇“ 혹은 그와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만, 사람이 신뢰하는 대상이 대부분 재물(재화)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것은 기본적으로는 ‘재물’이라는 의미를 가지나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모든 물질적인 재산, 즉 소득, 부, 돈 등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이 단어를 단지 그 의미상의 이해에서만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하나님과 대비되는 것에서 상징적으로 의인화하여서 말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맘모나스’(맘몬)은 단지 ‘재물’을 가리키는 것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대비되는 의인화된 존재, 그러니까 말이죠 참 신이신 하나님 외의 다른 신으로서 ‘맘몬’이 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참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없는 자는 그 마음에 ‘맘모나스’(맘몬) - 재물 - 의 욕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것의 탐심, 곧 우상 숭배로 있습니다. 이것의 탐심, 곧 우상 숭배로 있는 것은 이것 외에는 더 존귀한 가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는 ‘맘모나스’(맘몬) - 재물 - 가 최고의 가치이며 존귀한 대상입니다. 이들에게는 이것이 자신을 부자가 되게 하고, 잘 살게 하고, 성공하게 하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신뢰할 만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맘모나스’(맘몬) - 재물 - 은 이들에게 주(主)가 되고 있으며 이들은 이것에 온 마음을 쏟습니다.

 

그러한 것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에게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그에게서 아무런 가치 있는 것이 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가치란 것이 그리스도의 존귀함 앞에서는 그야말로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신뢰해온 모두를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주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알게 된 것이 너무나도 존귀해서 말이죠. 이것과 비교하면 그가 몸에 지녀온 다른 모든 것은 다 무가치하게 여겨질 뿐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한 분만을 얻기 위해서는 그 모두를 내버렸습니다. 어떻게 해서 인가 하면, 그 모두가 필요 없다며 길에 내다뿌려 버려서가 아니며, 무소유의 삶을 실천해서도 아니며, 자신의 모든 소유를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거나 또는 모두 헌금해서 더 이상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바울은 말이죠. 자신이 신뢰해온 대단히 가치 있다고 여겨온 그것으로 더 이상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으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서 입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서 ‘맘모나스’(맘몬) - 재물 - 가 하나 둘 이 아닌, 나를 둘러싸고 덮고 있는, 그렇게 많아도, 그래서 아무리 많아도, 그 모두는 주이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들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한 분을 신뢰하고 의지합니다. 그가 그렇게 신뢰하고 의지한대로 그리스도는 그를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두시고서 그의 생명을 보살펴 안전히 지키십니다.

 

그런 그에게 말이죠. 그가 소유한 ‘맘모나스’(맘몬) - 재물 - 란 것은 그 소유의 많고 적음으로 행복과 불행이 결코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에 있는 자유를 결코 억압하지 못합니다. ‘맘모나스’(맘몬) - 재물 - 가 지닌 가치의 위력이란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에 있는 자유에 어떤 영향의 행세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그리스도 한 분만이 주님(주인)이시며, 섬김과 사랑에 있습니다. 이렇게 그에게서는 ‘맘모나스’(맘몬) - 재물 - 는 전적으로 부정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교회에 자신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사는지를 말합니다. 바울의 주위에는 그를 돕는 자가 많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사실 그분들을 고마워하였으며 또한 그 은혜로운 일 속에 있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러한 바울은 자신은 부요함에 있든지 또는 가난함에 있든지 자신이 사는 일체의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합니다. 그것은 말이죠. 자신 안에 있는 그리스도에게 있으며 그분에게서 나오는 능력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주로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 곧 ‘맘모나스’(맘몬) - 재물 - 을 주로 섬기며 이것을 사랑하는 자는 그들이 살아가는 비결을 그들이 소유한 재물의 많음과 그 부요함에서 보며 이것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비결을 말합니다. 재물의 적음과 그 가난함에서는 결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이것으로도 항상 행복할 수가 없으며 항상 아침 이슬과 같아서 곧 사라지며, 여전히 불행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사는 비결은 ‘맘모나스’(맘몬) - 재물 - 에 있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 소유의 많고 적음에서 행복과 불행을 겪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가진 것이 많으면 그 부유를 누릴 줄 알았고 가진 것이 적으면 그 가난을 이겨낼 줄을 알았습니다. 그런 그는 가난에 있을 때나 부유에 있을 때나 어떤 경우에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으며, 따라서 그에게는 매일반입니다. 그는 어떤 경우에 처해 있든지 간에 자신 안에 있는 그리스도와 그분에게서 나오는 능력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바울이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복음 전파에 진력해 나간 것은 ‘맘모나스’(맘몬) - 재물 - 에서 나온 힘에서가 아니라, 그가 주로 믿고 섬기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능력에서입니다. 그래서 내가 사는 것은 나에 의해서가 아니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느끼며 그 믿음에 있는 그는 ‘맘모나스’(맘몬) - 재물 - 를 온통 주인으로 섬기며 사랑하고 있는 자로 가득한 세상에서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만이 유일한 주(주인)이심을 드러냄에 있었습니다.

 

그렇듯이 주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에 있는 우리는 그분의 능력의 휩싸임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영이시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세상 끝 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며 자신의 권능의 충만 속에 우리를 두시고서 사로잡고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에게서 성령의 권능이 충만하지 않은 때가 없습니다. 달리 표현하여 말하자면, 우리는 언제든지 항상 성령 충만함 속에 있습니다. 그것은 말이죠. 우리가 어떤 경건의 상태에 있든지 간에, 또는 그렇지 않은 상태에 있든지 간에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이 충만하지 않은 때가 없으며, 그 권능에 있어서 충만하지 않은 때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 충만이란 우리 상태에 의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어떤 염려스러운 변덕에 있든지 간에 우리를 자신의 온전함 속에 두시고서 자신이 뜻하신 일을 권능있게 해 나가십니다.

 

그에 따라서 바울은 자신의 몸을 쳐 복종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전파해 나감에 있었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렇게 바울의 몸을 쳐 복종케 하는 것에서 그에게 있는 ‘맘모나스’(맘몬)가 부셔져나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그의 몸이 깨지고 부서져 나갈수록 그의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더욱 찬란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 내 몸이 그렇습니다.

 

아! 나와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교회의 온 지체 또한 그렇습니다.

 

육의 몸인 나 - 지체 - 는 점점 쇠약해져가며 점차 멸해져갑니다. 이제는 몸 이곳 저곳에서 갈라져 틈이 생기며 그 정도가 심해져 어느 때에 이르면 힘없이 맥없이 부스러져 나가고 마침내 폭삭 주저앉게 될 것입니다. 이와 함께 탐심인 ‘맘모나스’(맘몬)도 멸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욕망으로 꿈틀거렸던 ‘맘모나스’(맘몬)란 것은 주이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과연 아무 것도 아니었음이 여실히 증명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멸해질 그 몸에 영원한 새로운 몸을 입히실 것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산산이 부서져 무너진 ‘맘모나스’(맘몬)가 차지하고 있던 그 자리에는 주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의와 희락과 평강이 충만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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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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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루디아 | 작성시간 10.07.26 ㅠㅠ.............
    바라기는.. 원하기는.. 진정 바울사도의 고백과 같이 그리스도 예수만 존귀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얼마나 많이 "복"을 드러내는지요.
    포장은 믿음이요 말씀이요 예수님으로 하고서 말입니다.

    그 앞에서 제 영혼이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복"을 추구하는 무리와 제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소원이 그러한 것은 결코 거짓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제 삶의 모습은 그것을 추구해 나가는 것임을 인하여 저 자신에 대해 절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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