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피상피’와 ‘위입서궁’이라는 말
제가 저 자신을 위한 덕담으로 택한 것은 원효대사의 유명한 ‘발심수행장’에서 뽑은 ‘구피상피’와 ‘위입서궁’이라는 말을 가지고 미국에서 강의를 했더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반응이 좋았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새기는 의미에서 이 글을 올립니다.
원효대사의 ‘발심수행장’은 한국 불교사에서 출가수행과 발심수행을 직접적으로 권고하는 글로 현존문헌 가운데 최초의 글이라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 최고(最古)일 뿐만 아니라 최고(最高)의 글입니다.
불과 706자의 짧은 문장의 글이지만 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가히 명문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원효대사의 문학적 소양에 대해서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비유를 잘 하지요?
여러분들이 잘 알다시피 원효대사는 불교신앙을 일반대중들에게 쉽게 알리고자 하여, 다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 외치며 누구나 불교에 귀의할 수 있다고 가르친 분이지요. 저는 우리나라 불교에 원효대사가 있어, 중국의 혜능이나 마조 등 어느 스승에 비할 수 없는 위대한 스승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원효 대사 이전에는 신라에서 불교는 귀족들의 종교였거든요. 우선 일반 대중은 글을 읽을 수가 없잖아요. 원효 대사는 민중 속에 불교를 보급하려고 애썼지요. 그는 “인간은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마음의 근원을 회복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지요. 사실 그것이 부처님이 가르치신 바이고요.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말이 참 재미있어요. ‘아미타’ 부처는 대승불교에서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을 설한다는 부처이고, ‘나무’는 귀의(歸依)한다는 뜻의 산스크리스트어입니다. 그러니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 부처님께 돌아가겠습니다.’라는 뜻이 되니, 부처님께 돌아가 부처가 되겠다는 말입니다. 누구나 부처가 되는 겁니다. 당시 일반 민중은 당연히 글을 몰라 경전공부를 할 수 없었지만 이 한 마디로 누구나 불교신자, 나아가 부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반대중과 달리 수행자는 단순히 ‘나무미타불’만 외치는 것으로는 부족하지요. 원효대사는 민중이 불교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수행자의 수행이 중요하다고 보고, 올바른 수행을 위한 ‘발심수행장’을 쓴 것입니다.
‘발심수행장’에서 제가 올해의 경귀로 뽑은 것이 다음의 구절입니다.
行者羅網(행자라망)은 狗被象皮(구피상피)요.
道人戀懷(도인연회)는 蝟入鼠宮(위입서궁)이니라.
제가 불교의 전문가는 아니잖아요. 제가 이 글을 쓰면서 여러 글을 참고하였고, 가장 많이 참고하고 도움이 된 글은 일타 스님의 ‘발심수행장’에 대한 강의였음을 밝힙니다. 그래도 단순히 일타 스님이나 다른 분들의 글을 인용하기보다는 제 나름대로 해석하고 묵상하기도 한 것입니다.
우선 첫줄에 대한 해석입니다. 행자는 ‘수행자’을 말하고, 라망은 ‘비단을 그물처럼 걸쳤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구피상피는 말 그대로, ‘개가죽, 코끼리 가죽’이지요. 그러니 앞줄의 뜻은 “수행하는 사람이 비단 옷을 걸치는 것은 개가 코끼리 가죽 덮어쓴 것과 같다.”가 되겠지요.
개가 코끼리 가죽을 덮어 쓰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에게는 사자가 동물의 왕이지만 인도에서는 코끼리가 동물의 왕입니다. 코끼리 가죽이 뜻하는 바를 헤아리기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가죽만 입었다고 개에게서 코끼리의 권위가 나옵니까?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지요. 개가 사자의 가죽을 덮어 쓰고 나타나니, 뭇짐승들이 다 겁을 냅니다. 그런데 그만 개가 말을 합니다. “내가 바로 동물의 왕, 사자다. 어흠. 그런데 사자 소리가 안 나고 개 소리가 나는 겁니다. 멍멍.” 처음에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사자의 모습만 보고, 겁을 내던 짐승들이 개 소리를 듣고 피식 웃는 겁니다. “자슥, 말이나 하지 말지.” 하하.
‘행자라망은 구피상피’라는 말은 수행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불교에서는 스님, 가톨릭에서는 수도자, 사제들은 비단 옷이 아닌 신분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옷도 단순히 의복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이고, 분수에 맞는 행동거지를 해야 하는 거지요.
제가 라망은 ‘비단을 그물처럼 걸쳤다.’라는 뜻이라고 했는데, 이 ‘라망’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까 재미있는 말이예요. 단순히 ‘비단 옷을 입는’다는 좁은 의미보다는 더 넓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올바를 것 같아요. ‘라’자가 그물 ‘라’자거든요. 유명한 말,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이 떠오릅니다.
그렇습니다. ‘라망’은 비단옷이라는 그물에 걸리는 상황, 부자유를 말합니다. 사실 개가 코끼리 가죽을 뒤집어쓰면 얼마나 무겁고 부자유스럽겠습니까?
수행자가 무엇 때문에 수행합니까? 근본적으로 자유롭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물론 내적인 자유이지요.
일타 스님은 ‘라망’을 애욕의 망으로 보고, 수행자가 애욕 망에 걸리는 것은 바로 마치 새가 그물망에 걸리는 것으로 해설하시는데, 일부 공감하지만, 저는 단순히 ‘애욕의 그물’보다는 조금 더 넓은 의미의 ‘부자유’로 보고 싶은 것입니다.
원효대사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라망’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잘 아시다시피 요석공주가 원효대사를 사랑하잖아요. 요석공주가 원효대사를 위해 비단 옷을 지어 드립니다. 정말 사랑의 마음, 기도하는 마음으로 실을 한 바늘 뜨고 한 번 절하고, 또 한 바늘 뜨고 다시 절하면서, 다시 말해, 온 마음의 정성을 다해 비단 옷을 지어 선물로 줍니다.
원효대사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직 높은 수행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다면, 당연 “저는 수행자이고 제가 비단 옷을 입는 것은 ‘구피상피’이니 받을 수 없습니다. 도로 가져가십시오.”라고 했겠지요.
그런데 원효대사가 누구입니까? 거의 부처님의 경지에 다다른 도인이잖아요. 그는 선뜻 받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공주님, 성불 하십시오. 대단히 감사합니다.” 수행자에게도 자기 수행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상대, 그 사람의 마음, 정성을 헤아리는 일입니다.
원효대사는 요석 공주가 보는 데서 그 비단옷을 직접 입어 보면서 아주 좋아하십니다. 공주가 기분이 짱해서 “스님, 거룩해 보이십니다.”하니까 스님이 “아, 정말 좋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요석 공주가 기쁨으로 가득 차서 부처님한테 절 한번 하고 떠납니다.
요석공주를 보내고 나서 그때서야, 원효대사는 비단 옷을 벗어서 자기 상좌인 ‘심상’이라는 스님에게 줍니다.
심상에게는 정말 비단옷이 ‘구피상피’이지요. 그런데 심상은 처음에 그것도 모르고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좋아하면서 으쓱거립니다. 그래도 심상은 나중에 깨달음에 이르게 되고, 나중에 일본의 화엄종 종주가 된 훌륭한 분이지요.
이어서
“道人戀懷(도인연회)는 蝟入鼠宮(위입서궁)이니라.”를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도인이란 수행자나 마찬가진데, 도인은 신참이 아닌 수행자, 다시 말해, 어느 정도는 수행을 하여, 도를 조금 닦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문학적으로 같은 말을 반복해서 다시 쓰지 않으니까 수행자의 다른 말로 봐도 무방할 겁니다.
‘연회’라는 말은 불교에서 보통 ‘분별심’을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가톨릭, 특히 이냐시오 영성에서는 ‘분별심’이 아주 꼭 필요한 좋은 말이고 중요한데, 불교에서는 ‘분별심’을 경계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같은 용어를 쓰지만 그 의미가 조금 다른 것이지요.
‘연’은 사모한다는 말이고, ‘회’는 품는다는 말이니까, 언뜻 “사모하는 마음, 그리워하는 마음’을 품는다.”로 읽히지만, 단순히 수행자가 ‘연모하는 마음을 지닌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까 실제로 많은 분들이 그렇게 잘못 읽고 해석하고 있는데, 한문 문법으로 맞지 않는 해석이지요.
일타 스님의 해설이 단연 돋보이고, 올바른 해석입니다. 일타 스님의 해석에 의하면, ‘연회’란 편안한 것을 생각하고 재물을 생각하고, 권세를 생각하고 명예를 생각하는 등이 모두 다 ‘연회’라고 합니다.
‘연회’는 한문에서의 문법으로 ‘연’을 ‘회’하는 것이 아니라, ‘회’를 ‘연’한다고 읽어야 하지요. ‘연’은 단순히 ‘사모하고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뜻보다는 ‘생각’이라는 뜻으로 보아야 하고, ‘회’는 ‘품을 회’ 자이니까 ‘연회’는 “다른 마음을 지니는 것을 생각하고, 연연해하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연회’란 수행자, 나아가 도인이 수행이 아닌, 다른 생각을 품는 것을 말합니다.
“위입서궁이니라.”
‘위’는 고슴도치‘를 말하고, ‘서’는 쥐이고, ‘궁’은 구멍이니까, 고슴도치가 쥐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뜻이지요.
고슴도치가 쥐구멍에 들어갈 때는 온몸에 돋아 있는 가시를 눕히고 쉽게 들어가지만, 뒤로 나오려면 다시 세우진 가시에 걸려서 못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한 번 ‘도’가 아닌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거기서 빠져 나오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말입니다. ‘위입서궁’, 정말 기가 막힌 비유 아닙니까?
“도인연회는 위입서궁이니라.”
도 닦는 사람은 도 닦는 일에 정진해야지, 다른 일에 빠지면, 그 근본을 잃고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연회’도 ‘라망’처럼 바로 부자유를 말합니다.
부자유, 그것이 바로 ‘라망’이고 '연회‘입니다.
유명한 탄허 스님은 ‘연회’를 “客懷(객회)”로 해석하는데, 좋은 해석이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객회’라는 것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니, 바로 그런 뜻입니다.
수행자가 수행이 아닌, 다른 생각이나, 일에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수행자, 불교에서는 스님, 가톨릭에서는 수도자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고슴도치가 쥐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니, 거기서 빠져 나오지 못하니, 바로 죽음의 구렁텅이입니다.
저는 저에게 ‘라망’과 ‘연회’, 다시 말해, 부자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제가 만일, “나는 그래도 책을 여러 권 쓰고, 번역하고, 그런대로 열심히 산 괜찮은 신부야.”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저를 사로잡는 그물이겠지요.
그물에 거리지 않는 바람이고 싶습니다.
늘 그렇지만 바람처럼 자유롭고 싶습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록은 작성시간 18.07.01 狗被象皮(구피상피)는 蝟入鼠宮(위입서궁)이니라~
각자에게 부자유란 무엇일까 생각해볼 거리입니다. -
작성자나미 작성시간 18.07.02 나를 돌아 보며 성찰해 봅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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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날쌘돌이 작성시간 18.07.03 그물에 걸리지않는바람~류신부님
꼭 그렇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
작성자황금연못 작성시간 18.07.03 상대의 마음과 정성을 헤아리는 일이
곧 자기 수행의 정수이거늘.....
원효대사의 사랑에 가만히 머물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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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소금 작성시간 18.07.04 이 글을 집근처 스님께
보여드렸네요ㆍ
제주에 오시면
보이차한잔 하자고 하셨지요ㆍ
저역시 심상 상좌를 가만히
상상해 봅니다ㆍ
예루샬렘 부인들
신부님들 옆에서
많이 보는 광경이지요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