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1세(1157-1199)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중세 기사였고, 전형적인 군주였죠. 이 사람은 10년동안의 재위기간동안 영국에는 딱 3달동안 머물렀습니다. 그 이외의 기간에는 항상 다른 나라에서 전쟁하고 있었죠. 평생을 전쟁으로 보낸 인물이었습니다.
로빈 후드같은 영화에서는 사자왕 리처드1세를 아주 훌륭한 왕으로 다루고 있는데...... 실제로는 별로 훌륭한 인물이 아니었죠.
리처드 1세는 플랜태저넷 왕조의 창시자 헨리 2세의 아들입니다. 헨리 2세는 아들이 4명 있었는데 리처드는 셋째 아들, 존은 넷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형님 2명이 빨리 죽는 바람에 리처드가 맏아들이 되죠. 헨리 2세는 결혼 등의 방법을 이용해서, 잉글랜드 이외에도 프랑스에 엄청난 영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아퀴탱, 앙주, 노르망디, 가스코뉴) 그런데 헨리 2세는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서, 프랑스 왕녀와 리처드를 약혼시킵니다. 그리고 인질을 삼기 위해, 리처드는 프랑스에 가서 살게 하고 프랑스 왕녀는 영국에 가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리처드는 여자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고, 남자에게만 성욕을 느끼는...... 그런 취미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황태자이며 미남이었던 필립을 집요하게 유혹하게 되었고... 리처드의 끈질긴 유혹에 지칠대로 지친 필립은 결국 자기 몸을 내줬다는........ ㅡ.ㅡ; 한편 헨리 2세는 자기 아들의 며느리가 엄청 이쁘다는 걸 알고....... 역시 며느리를 XX해 버립니다. (이런 걸 콩가루 집안이라고 하죠.) 하지만 정작 자기 약혼녀를 아버지에게 빼앗긴 당사자인 리처드는 그런 사태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필립의 엉덩이를 공략하는 일에 바빠서요. ㅡ.ㅡ;
그 후, 자기 아버지가 빨리 죽어야 왕이 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헨리 2세가 죽지 않으니까 화가난 리처드는 동생 존(로빈후드에 단골로 등장하는 존 왕자말입니다)과 연합해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반란은 성공해서 헨리 2세는 죽고 리처드는 국왕 리처드 1세가 됩니다. (재위기간 1189-1199) 왕위에 오른 후, 리처드 1세는 곧장 외국으로 달려가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그리고 제3차 십자군 전쟁에 참가해서 열심히 싸워댔죠. 십자군 전쟁에서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불꽃 튀기는 전투를 벌인 덕분에 리처드는 "사자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영국 국내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싸움터에서 어떻게하면 영광스럽게 보일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자기 성욕을 채울 수 있을까 고민했죠.
왕이 된 후 리처드 1세는 연인이었던 프랑스의 왕 필립 2세에게 다시 애정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필립 2세는 게이가 아니라 노멀이었던 겁니다. 황태자 시절에는 리처드에게 속아서 남자하고 XX했지만, 왕이 되어서 많은 여자들과 성관계를 가지고 보니, 남자보다 여자쪽이 훨~~씬 좋았더랍니다. 그래서 필립 2세는 쌀쌀맞게 리처드 1세의 애원을 거부해버리죠. 거기에 화가 난 리처드 1세는 프랑스로 쳐들어가서........ ㅡ.ㅡ;
이렇게 매일 매일을 전쟁으로 보내던 리처드 1세는 1199년, 42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그리고 왕위는 존 왕이 물려받게 되죠. 존 왕은 소설 속에서는 아주 아주 사악한 인물로 나오는데........ 최근의 평가로는 그렇게까지 나쁜 왕은 아니었답니다. 무엇보다 존 왕은 리처드 1세와는 달리, 영국 국내의 통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언제나 영국 국내에만 머물렀으니까요. 하지만 존 왕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프랑스 내부의 영토들 대부분(아퀴탱-노르망디)을 빼앗겨 버렸고, 대외전쟁의 패배-존 왕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귀족들을 달래기 위해 마그나 카르타를 인정해야만 하는 처지에 몰린 왕입니다.
즉, 리처드 1세는 재위기간 대부분동안 항상 외국에서 살았고, 인생 거의 대부분을 전쟁으로 소비했던 군주였습니다.
출처는여... THIS IS TOTAL WAR 고여...
글쓴이는여... creios님 이네여...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파스크란 작성시간 05.02.19 그리고 살라딘과의 전투에서 크게 두번의 전투가 있었는데, 하나는 아크레 함락전이고, 또하나가 아르수프 전투인데, 아크레 함락전에는 몇달동안 포위만 하고 제대로 공격도 못하는 뤼지냥 (라틴왕국의 왕)대신 공격을 했는데 순식간에 함락을 시킬 정도였고, 여러 전투에서도 선두에서 기사들을 이끌고 직접 전투했습니다
-
작성자파스크란 작성시간 05.02.19 또 하나는 아르수프 전투인데 리처드의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자 살라딘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아르수프에서 공격을 감했했는데 리처드는 저녁때까지 반격을 금지하다 자신의 후위부대인 구호기사단으로 총공격을 가해 대파시킵니다. 십자군 전사자는 700인데 반해 살라딘은 7000의 병력을 잃었죠.
-
작성자파스크란 작성시간 05.02.19 그후에 살라딘은 절대로 리처드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일이 없어졌구요, 그밖에 소전투에서도 진적이 없는 무패의 인물이죠. 성격이나 정치적인 면에 대하면 좀 그렇지만... 아무튼 기록화에도 리처드국왕이 메이스를 들고 선두에 서서 무슬림들을 쳐부수는 것도 있습니다. 멋있는 장면이죠.
-
작성자범서 작성시간 05.02.19 파스크란님 설명이 맞습니다. 사람은 공과과가 같이있고 잘한면과 못한면이 함께 양존 합니다. 나누어서 평가할수 있는 그런 안목을 지녀야 겠습니다. 요즘 한참 시끄러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비슷한 예겠죠.
-
작성자윤덕희 작성시간 05.02.20 리처드 1세가 당대 어떤 지휘관보다도 용맹했으며 군사적으로도 탁월한 재능을 갖췄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잔혹했으며 사생활이 문란했지만 그것 때문에 군사적인 재능까지 묻혀서는 안되죠. 다만 참회의식을 치렀다고 해서 무조건 용서받았다고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