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입양 일기방

[한결이 이야기] 무릎 강아지가 된 한결이

작성자피피(일산)|작성시간13.11.11|조회수488 목록 댓글 19




한동안 한결이 임보일기를 쓰지 못했네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베티 생각하면 한결이 잘 지내고 있다고 글 올리기가 미안해서요. 그래도 혹시 한결이 이야기 궁금해하시는 분이 계실지 몰라서 오늘은 원고 마감한 뒤 이렇게 한결이 이야기를 씁니다. 완전 무릎 강아지가 된 한결이는 지금 제 다리 위에서 완벽한 도너츠를 만들며 자고 있고요. ^^


*


오래 전에 방영된 건데, 저는 얼마 전에야 보았던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MBC 스페셜'에서 방영되었던 '노견 만세'라는 프로그램이에요. 평생을 함께 해온 늙고 병든 강아지의 마지막을 지키는 사람들...... 사람도, 동물도, 숨이 끊어지는 게 쉽지 않은 건 매한가지인지 그 아이들의 황혼은 더없이 힘겨웠습니다. 


그중에서도 평생을 맹인 안내견으로 살아온 리트리버 '대부'의 이야기가 특히 마음 아팠어요. 사람을 위해 봉사하느라 자신의 본성은 항상 억압당해야 했던 아이. 자연스러운 욕구를 분출해보지 못해서인지 마지막엔 치매에 걸려 방 안에 가만히 누워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하던 아이.  


사람을 위해 살아온 아이에게 그래도 마지막까지 지켜주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만 깜빡일 수 있을 뿐 스스로는 발가락 하나 까딱거리지 못하는 대부에게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여주고, 똥오줌을 받아내주고, 욕창이 생기지 않게 몸을 뒤집어주는 가족이 계셨거든요. 그 분은 대부 때문에 외출 한 번 마음대로 할 수 없었지만 그 모든 것을 그냥 '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것이 '하고 싶은 일'이었다면, 그 강아지의 마지막을 지키는 것은 '해야 하는 일'이겠지요. 그렇게 보면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은 언제나 함께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원했기에 책임져야 하고, 내가 선택했기에 그 선택을 완성해야 하는 것. 그것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기본자세임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한결이 털이 제법 많이 자랐지요? 얼마 전 한결이 데리고 산책 나갔다가 귀가 복실복실한 스탠다드 푸들을 만났는데 무척 예쁘더라구요. 한결이도 털이 더 자라면 하루님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할 거예요. 스탠다드 푸들의 견주되시는 아주머니와 5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아이도 열두 살로 꽤 나이가 많았어요. 전혀 그렇게 안 보였는데 말이죠. 12년을 함께 해온 아주머니와 그 강아지의 동행이 참 아름답더군요.   



그 다큐멘터리를 볼 때도 한결이는 제 다리 위에서 지금처럼 도너츠를 만들며 자고 있었습니다. 다큐멘터리가 끝날 때쯤 한결이를 내려다봤는데 살짝 굽은 한결이의 등뼈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한결이 이야기에 관심 가져주셨던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한결이 또한 추정나이가 열살 전후로 적지 않습니다. 한결이도 한때는 지금보다 더 작고 여린 아기 강아지였겠지요. 누군가는 한결이가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고 웃었겠지요. 안타깝게도 저는 한결이의 그 빛나는 순간들을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저뿐 아니라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런 한결이의 모습을 보지 못했지요. 


한결이에게도 저런 사람이 나타나줄까? 

그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꼭 나타나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간절한 나머지, 오히려 정말 그렇게 될 거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한결이에게도 저런 사람이 나타날까. 아기 때부터 한결이와 웃고 울었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제부터의 한결이 삶을 지켜줄 수 있을까.


저는 한결이에게 아직도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다고 믿습니다. 그 다큐멘터리에 나온 노령견들만큼 산다면 한결이에게도 6,7년 정도의 세월이 더 남아 있을 겁니다. 우리의 인생 전체에서는 긴 시간이 아닐지 모르지만, 강아지들의 견생에서는 아주 긴 시간입니다. 


무엇보다 한결이는 건강하고 밝고, 생에 대한 의지가 강한 아이입니다. 한결이의 최초 구조요청자인 사비나님이 말씀하셨듯이 길거리에 살 때 한결이는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동구협에 입소한 뒤에는 그곳 수의사 선생님을 무척 따랐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결이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을 구제해줄 사람이 나타날 거라는 믿음을 놓지 않았던 게 아닐까. 다시 누군가의 품에 안겨 사랑 받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게 아닐까. 저는 한결이의 그 희망이 절대 배신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한결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챙겨줄 때, 외출했다 돌아온 저를 보고 온몸으로 기뻐하는 한결이를 안아줄 때, 잠자리에 들기 전 한결이의 몸이 폭 싸이도록 담요를 덮어줄 때, 그때마다 그런 믿음이 더 강해집니다. 귀여운 아기 강아지 시절의 한결이를 못 봤던 사람이라도, 한결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웃고 울었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토록 사랑스러운 한결이를 평생 보듬어줄 분은 반드시 계시다고요.   




사실 피피나 한결이나 다른 강아지들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에요. 산책 나갔을 때 보면 피피는 아예 다른 강아지를 피하는 편이고, 한결이는 피하지는 않지만 있든지 말든지 신경 안 쓰는 쪽이고요. 그래도 둘이 매일 붙여놓았더니 제법 같은 방석에서 몸을 맞대고 있기도 합니다. 피피가 불편한지 자리에서 막 일어나는 중이네요. ^^





피피는 다시 자리를 고쳐앉고 한결이는 제 쪽으로 돌아보고 있어요. 요 녀석, 얼굴만은 완전 베이비페이스예요. ^^




지난 주말 맥주 한 잔 하자며 근처 사는 동생이 놀러왔어요. 강아지를 오래 키운 친구라 한결이를 보자마자 안아줬는데 한결이는 저 표정으로 오매불망 제 얼굴만 쳐다봐요. 친구가 그러네요. "언니, 한결이는 나 말고 언니한테 안기고 싶은 거야."



 

제 다리로 옮겨줬더니 바로 실신 모드로 잠들어버리는 한결이. '그래, 이 다리야'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ㅎㅎㅎ

사실 요즘 한결이가 무릎 강아지가 되기는 했어요. 푸들 중에 말괄량이 아가씨들이 많다지만 한결이는 꽤 얌전한 편이라 다른 것에 대해서는 조르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요즘은 무척 안겨 있고 싶어 하네요. 제 다리를 늘 한결이에게 양보하는 피피에게 미안하고... 그래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피피(일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1.11 치즈님, 정말 그래요. 유기견 아이들에게 막연한 연민만 가지고 있을 때랑, 막상 한결이를 임보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아주 많이 다르더라구요. 단 한 아이라도 온전히 마음을 주고 나면 다른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까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지금도 한결이는 제 다리에 올라와 있는데 이 녀석, 제 다리를 베고 눕기만 하면 금세 잠들어버려요. ㅎㅎㅎ
  • 작성자띨이네(아산) | 작성시간 13.11.11 한결이가 표정이 한결 편해졌네요...털도 제법 자라서 미모도 더 돋보이고요...
    좋은 소식이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 답댓글 작성자피피(일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1.11 띨이네님, 한결이 축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동안 멍했지만 한결이에게 좋은 일이라면 저도 좋아요.
  • 작성자행복 맘(해운대) | 작성시간 13.11.11 한결이 입양소식이 들리네요..좋은일임에도 피피님이 먼저 생각나네요. 앞으로 한결이 임보일기는 못보게 되는걸까요?!!
  • 답댓글 작성자피피(일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1.11 행복맘님, 행복이랑 잘 지내고 계시죠? ^^ 그냥 차분히 기다려보려구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