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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생명말씀

2026.6.16.화 새벽예배(시 66:18, 기도심층연구(45) 죄를 품은 기도의 결과!)

작성자최선을다하는삶|작성시간26.06.16|조회수124 목록 댓글 1

*2026.6.16.화 새벽예배 설교

*본문; 시 66:18

*제목; 기도심층연구(45) 죄를 품은 기도의 결과!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66:18)

 

 

 

1. 죄를 응시하고 애지중지하는 상태: 아웬 라아이티(אָוֶן רָאִיתִי) - 죄와의 위험한 동거

 

시인은 기도가 막히는 원인을 단순히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고, 매우 의미심장한 동사를 사용합니다.

 

'죄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웬(אָוֶן)'은 도덕적 타락, 우상 숭배,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악한 의도를 포괄합니다. '품었더라면'의 원어는 놀랍게도 '보다, 주목하다, 응시하다'라는 뜻을 가진 '라아(רָאָה)'입니다.

 

본문을 직역하면 "만일 내가 내 중심에서 죄악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면"이 됩니다. 이는 어쩌다 실수로 죄에 넘어진 상태가 아닙니다. 그 죄가 주는 달콤함과 유익을 끊어내지 않고, 마음에 품은 채 지속적으로 묵상하고 즐기며 애지중지하고 있는 상태(라아이티)를 뜻합니다.

 

 

2. 감추어진 내면의 밀실: 베립비(בְּלִבִּי) - 드러나지 않은 영적 이중성

 

이 죄악의 응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철저히 숨겨진 장소에서 일어납니다.

 

'마음에'를 뜻하는 '베레브(בְּלֵב)'는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 즉 아무도 보지 못하는 '생각과 의지의 밀실'입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입술로는 유창하게 대표기도를 하고, 새벽 제단에 나와 주여 삼창을 외치고 있을지라도, 그 마음의 밀실(베립비) 한구석에는 여전히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시기, 세상의 음란함, 정직하지 못한 탐욕을 들이마시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시인이 경고하는 영적 이중성입니다.

 

 

3. 철저한 거절과 외면: 로 이쉬마 아도나이(לֹא יִשְׁמַע אֲדֹנָי) - 멈추어 버린 하늘의 응답

 

마음에 죄를 품고 드리는 기도의 비극적인 결말은 명확합니다.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듣다'의 히브리어 '샤마(שָׁמַע)'는 단순히 귀로 소리를 인지하는 것을 넘어 '요청을 수용하고 응답하기 위해 주의 깊게 경청하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단호한 부정어 '로(לֹא, No)'가 붙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없어서 우리를 돕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의 거룩한 공의의 성품상, 죄와 동거하면서 드리는 기도는 결코 샤마(경청)하실 수 없습니다. 죄를 품은 기도는 하나님 보좌에 상달되지 못하고, 영적 허공을 때리는 소음이 될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기도의 불을 지피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 이 새벽 제단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밤낮 부르짖으며 "주여, 내 기도에 응답하소서! 왜 내 삶의 장벽을 걷어주지 않으십니까?"라고 간구하곤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눈물의 부르짖음 뒤에, 하늘 문이 놋쇠처럼 단단히 닫혀 있는 것 같은 영적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답답한 기도의 병목 현상을 뚫어버릴 강력한 영적 진단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주님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고, 우리의 죄가 그 얼굴을 가리 가브리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아웬 라아이티 베립비)." 이 말씀 앞에서 우리의 중심을 정직하게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혹시 내 기도가 상달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있는 '마음의 밀실 속 죄악'은 무엇입니까? 입술로는 용서와 사랑을 말하면서, 마음 중심에서는 여전히 형제를 향한 칼날 같은 미움과 원망을 품고 그것을 묵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이 주는 탐욕과 정욕의 달콤함을 끊어내지 못한 채, 한 손에는 죄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만 간절히 주님의 손을 잡으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화려한 기도의 문장에 속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기도의 제목보다 기도하는 '내 인생의 중심'을 먼저 보십니다. 다윗이 박살 난 심령으로 통회했을 때 그 죄를 단번에 멀리 옮기셨던 주님은(시 51:17, 시 32:5), 반대로 죄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움켜쥔 채 드리는 기도는 철저히 외면하십니다(로 이쉬마).

오늘 이 새벽, 기도의 응답을 구하기 전에 먼저 거룩한 영적 청소를 시작합시다. 내 마음의 밀실에서 주님 몰래 바라보며 즐기던 그 어두운 죄의 정체를 십자가 앞에 밝히 드러내십시오. 그리고 "주님, 내가 이 죄를 미워합니다. 이 죄를 끊어내기를 원합니다"라고 결단하며 자복하십시오.

우리가 마음의 죄악을 품는 것을 멈추고 보혈로 정결함을 입을 때, 닫혔던 하늘 문은 활짝 열리게 될 줄 믿습니다. 이 아침, 우리의 심령이 정결케 됨으로, 시인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참으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라는 기적의 찬양이 여러분의 삶에 터져 나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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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최선을다하는삶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6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 기도를 귀히 여기시고 응답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이유는 오늘 본문에 보면 "두 마음"을 품고, 죄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주께서 응답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응답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응답하셔도 우리가 듣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제거하고 기도합시다. 그래야 기도가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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