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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학이야기

더런 청소질? 남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일?

작성자최혜경(함부르크)|작성시간09.04.04|조회수175 목록 댓글 15

 

내가 사는 집에 일주일에 한 번씩 계단을 청소하는 청소부 두 명이 온다.

우리 집은 한국식으로 치면 연립주택 같은 것이겠다.

네 동이 연결되어 있고 한국식으로 3층까지 있다.

 

두 청소부는 흑인이고, 청소용역회사 직원인 듯 하다.

아마도 자기 나라에서는 나처럼 인텔리로 대학까지 나왔을 것이고,

아프리카인들의 경우에 주로 그렇듯이 정치적인 이유로 망명의 길에 오른 사람들이라 생각된다.

이 물설고 낯선 곳에 와서 밥벌이를 하려니, 독일어도 못하고, 결국은 막일을 해야 한다.

동병상린의 그 느낌이 그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가슴을 울렸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짜증이 난다. 청소를 그렇게 더럽게 할 수가 없다.

먼지를 닦아낸다기 보다는 먼지를 바닥에 골고루 퍼뜨리고 가는 것 같다.

우선 그 사람들이 오면 유별나게 시끄럽게 문을 열고 난리가 난 듯이 요란하다.

월요일 아침 9시 쯤에 오기 때문에 강의가 없는 날 집에 있으면 벌써 문 소리만 들어도 아, 왔구나 싶을 정도다.

그런데 어쩜 그렇게 번개처럼 소리 없이 빨리 사라지는지...

조용해져서 나가보면 계단이 물천지다.

그 물기가 마르고 나면 먼지 골고루 펼친 것이 먼지빛 잿빛으로 드러난다.

바닥이 검은 타일이라 더욱 더 선명하고 아름다운 붓질이 아니라 걸레질이 보인다.

 

우리 집에는 애기 있는 가족이 살고 있고, 애기의 유모차가 항상 현관문 옆에 있다.

그런데 이 청소부들이 청소하는 동안 유모차를 바깥에 내다 놓고, 청소가 끝나면 들여다 놓는 것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비는 또 왜 그리 자주 내리누... 몇 번 말을 했더니만 그 후로는 다른 흑인들이 온다. 그런데 별 다름이 없다.

그런 것이 '흑인정신'인지라는 인종주의적 생각이 다 들라고 할 정도다.

 

하기사 '밥벌이'로 청소 할래니 정말 괴롭겠지. 언능 시간 때우고 돈 받으믄 되니까...

 

*

 

독일어로 청소부는 Putzfrau다. 청소 아짐마... 여기도 그런 일은 여성전용이었던 듯하다.

요즘은 외국인 전용이다. Putzausländer라는 단어가 새로 생겨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요즘 새로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Putzperle, 풋쯔페얼레, 청소보물.

Die Perle는 진주, 소중한 것 등등의 의미를 지닌다.

 

그 풋츠페얼레에 대한 야그를 좀 해야겠다.

 

그 사람의 이름은 Linda Thomas이고 아마도 지금쯤 거의 50 중반은 넘지 않았을까?

도르나흐 괴테아눔의 청소아줌마다.

10 여년 전에 여기 함부르크에서 청소에 대한 강의를 한 적이 있어서 알게 되었다.

괴테아눔 청소 아짐마가 친환경적인 청소에 대한 강의를 한다니 궁금해서 가 보았는데,

금발 머리에 키가 훤칠한 미인이 돋보기 안경을 끼고, 빨간 쟈켓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위스 출신인 그 양반이 20대 말에 아이 셋을 두고 남편과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일이야 뭐 여기서 세 끼 식사보다 자주 있는 일이니 별로 신기 할 것이 없었다.

애 셋을 발도르프 학교에 보내려니, 애 아빠가 주는 생활비로는 감당을 할 수 없어서 일자리를 찾았고,

마침 괴테아눔에서 청소부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을 하였다.

 

그런데 그 양반은 하라는 청소는 하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청소부가 된 이후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석회질로 더러워졌던 화장실 변기가 반짝 반짝 빛나기 시작했고,

화장실에 화병이 놓여 지고,

구석구석 수십 년간 쌓인 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화학 세제들 대신에 대대로 내려오던 청소방법을 새로이 발견해 내어서 하니 청소비도 줄어 들었고,

차츰차츰 모든 청소용품들을 친환경제품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괴테아눔 건물 전체를 흡사 자기 몸인냥 사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연히 괴테아눔 방문자들도 변화를 느꼈고, 도대체 누가 청소를 하길래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관심이 높아지고, 그 토마스 여사와 청소에 대한 야그도 하고, 그러면서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청소 제대로 하려면 괴테아눔에 토마스 여사한테 물어 보라고.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강연을 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 왔고,

매년 한 번씩 유럽의 큰 도시를 돌아 다니면서 이른바 '청소철학'에 대한 야그를 하기 시작했다.

괴테아눔의 '청소보물' 토마스 여사 스스로는 결코 '철학'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풀어 가는 것을 보면 물론 옆집 아짐마의 잼난 청소 야그다.

하지만 더런 것을 적당히 치우는 야그가 아니라, 대상물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야그다.

그냥 적당히 법정노동 시간 8시간 때우고, 더런 것 화학세제와 더불어 적당히 바닥에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얼마나 그 대상물을 사랑하고, 그 대상물에 걸맞는 아름다움을 주기 위해서 노력하는지에 대한 것을 들을 수 있다.

 

*

 

사람들은 광범위한 의미에서 '밥벌이'를 하기 위해서 일을 하러 간다고 여긴다.

그런데 슈타이너는 오늘날의 사람들이 실은 노동을 하면서 '완전한 사랑'을 무의식적으로 실천한다고 하였다.

핸드폰 공장에서 부속품을 끼워 넣고 월 130만원 받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은 무엇인가?

그 돈 받아서 먹고, 살고, 애들 학원비 내기 위해서라고 여기지 않는가?

 

슈타이너는, 부속품을 끼워 넣어서 상품 한 개가 완성 될 때 마다,

그 상품을 사용하는 어떤 무명의 고객을 위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 하였다.

 

소비자의 시각에서 노동자의 노고를 인식하려는 태도는 이미 상당히 널리 퍼져있다.

먹거리를 아이에게 보여 주면서, 그것을 위해서 구슬땀을 흘린 농부를 생각해야 한다고 상투적으로 말들 하지 않는가?

아이에게 청바지를 사 주면서 그 청바지가 생산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동이 들었는지,

목화재배에서부터, 목화공정, 직조, 염색, 디자인, 재단, 바느질, 판매 등등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슬땀을 흘렸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다.

 

그런데 생산과정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 노동이 무명의 고객을 위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생각은

오늘날 아무도 하지 않는다.

 

사회문제는 겉보기에 그렇듯이 결코 '밥'의 문제가 아니다. '의식'의 문제다.

노동자가 자신의 '밥벌이'를 위해서 노동력과 시간을 판다고 여기는 태도로 노동을 할 때의 사회상태와

지구의 어느 구석에 있는지 모르는 그 무명의 고객을 위해서

상품의 부속을 올바로 끼워 넣고 싶다고 여기는 태도로 노동을 하는 사회상태, 그 양자 간에는 천국과 지옥 만큼의 차이가 있다.

 

일 주일 중에 엿새동안 공장에서 노동을 하고 주일에 교회/절에 가면 그런다. "이웃을 사랑하라, 웬쑤를 용서하라~"고.

이런 식의 설교가 오늘날에는 더 이상 필요 없다.

그런 설교는 오늘날의 종교가 얼마나 상황파악을 못하는지를 보여 줄 뿐이다.

산업화되고 분업화 된 현대 사회에서는 모두들 이미 '완전히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사랑을 실천하느라고 수고하였소~ 얼마나 피곤하오. 교회 오지 말고 집에서 푹 쉬시요~"라는 칭찬이 필요할 뿐이다.

 

구시대에서는 여러가지 상황으로 인해서 스스로 생산해서 스스로 소비하면서 '자족적'으로 살 수 밖에 없었다.

오늘날에는 철저하게 '타족적'으로 밖에 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시대의 습관에 따라 '자족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흡사 무슨 커다란 이상이라도 되는 양 여기면서,

-우리의 아름답고 좋은 전통이라는 명목하에 - 퇴행적 농촌문화 운동이 발생하는 것이다.

 

오늘날 인류가 타족적으로 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한국이나 독일에서 바나나 한 개라도 얻어 먹을 수 있을까?

청소부든, 공장 노동자든, 혹은 고상한 교사든, 교수든,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간에

오늘날 인류는 '완전히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타족적' 생활을 이미 실천하고 있다.

바로 그 점을 그저 인식해야만 할 뿐이다.

 

우리 집에 오는 청소부들은 그 점을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노동을 자신의 밥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게 되고,

될 수 있으면 자신을 아끼고, 적은 시간 동안 적당히 노동하려는 태도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평생 자신이 더러운 청소일을 한다는 열등감에 찌들어 살 것이다.

괴테아눔의 청소보물은 외부에서 지시된 노동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과 노동을 내적으로 연결하고, 타인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

사물에 걸맞는 아름다움을 주기 위해서, 즉 일 자체에 대한 사랑으로 그 일을 하는 것이다.

 

흡사 사랑을 나누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는 태도로 '사랑을 나눕시다~'라고 상투어를 내 뱉을 이유가 없다.

자신의 노동이 이미 얼마나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지를 인식하기만 한다면,

아마도 부속품을 끼워 넣는 그 손길에 훨씬 더 많은 따뜻함을 담을 것이며,

청소하는 빗질이 훨씬 더 다정하고 세심하게 될 것이고,

아이들이 없으면 학교생활이 정말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도 더 이상 하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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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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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최혜경(함부르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4.05 발도르프 학교 샌님들은 저 좋아서 빡세게 준비하지요. 교장이나 교육감도 없고 월간교육안이라는 것도 없고, 저마다 자유롭게 아이들의 상태에 따라서 수업준비하니 신나서 하지요. 거의 workerholic 수준들이예요. 월급만 생각하면, 그 돈 받고 왜 저 미친짓을 하는가라고 할 거예요. 일반학교 교사들이 그 상황에 있다면 금새 '열악한 노동조건' 운운 하믄서 데모하거나 병가 내겠지요. ㅋㅋㅋ
  • 답댓글 작성자천봉남 | 작성시간 09.04.06 매년 이중장부를 씁니다.... ㅎㅎ 교장샘에게 제출할 것...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년차가 늘면서 차차 차이가 적어지곤 있지만요... 맨날 미친짓입니다... 앗~~~~~~~ 개별화 누가 대신 써줘요... 제출용 개별화 죽어도 쓰기 싫어 미루고 미루고 미루어 이 밤을 헤맵니다.
  • 답댓글 작성자최혜경(함부르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4.06 아, 울 봉남 샌님... 언제 슈타이너 핵교에 올거야요? 너무 늙을 때까지 공교육의 촛불로 지내다가 촛불 꺼질까 두렵소. ^^
  • 답댓글 작성자천봉남 | 작성시간 09.04.06 제 의욕의 레파토리가 죽어가고 있어 탄생을 맞을 준비를 하려나 봅니다. 2009년은 아직 저에게 가을인가봅니다. 가을을 지나 겨울에서 씨앗을 준비할 시간을 주세요!!
  • 답댓글 작성자최혜경(함부르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4.06 겨울은 안으로 깨어나는 시간이지, 그려어 푹 깨어나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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