コレアの壁と歴史空間
全羅南道の旧家
전라남도의 고택
大きく湾曲した棟から雪崩れ落ちる本瓦が美しい。右手の切り妻は恐ろしく贅?な寺院の造りである。貧しい
農民にこれだけの屋根が葺けるわけはないから由?正しい家系なのだろう。笑顔が美しいご主人は人柄がよさそ
うだった。
활처럼 크게 휜 용마루에서 미끄러지듯 흘러내리는 기와곡선이 아름답다. 오른쪽의 맞배지붕은 굉장히 사치스
러운 사찰지붕과 동일한 구조다. 궁핍한 농민이 이런 지붕을 올렸을 리는 만무하고, 꽤 유서 깊은 가문이었던 모
양이다. 미소가 아름다운 집주인은 인심이 넉넉해 보였다.
060802
「家は夏を旨とすべし。冬はいかなるところにも住まる」とは13世紀の徒然草の建築論である。南の庭に向
かう障子を撥ね上げたら風の道ができる。こんな家なら扇風機ひとつで夏がたのしい。長い年月をかけて足の裏
で磨かれた厚い板張りの床の上では、何世代もの家族が暮らしたのであろう。今は小学生の息子さんが、せっせ
と床磨きをしている。
「집은 여름을 날 수 있도록 지어야 한다. 겨울은 어떤 곳에서도 살 수 있다. 」란 말은 13세기의 즈레즈레쿠사에
나오는 건축론이다. 남쪽 정원을 향한 장지문을 들어 올리면 바람이 드나드는 통로가 생긴다. 이런 집이라면 선풍
기 한 대로도 즐겁게 여름을 날 수 있다. 오랜 세월 발바닥에 닳고 닳은 두꺼운 마루바닥 위에서는 과연 몇 세대
나 되는 가족이 살았을까? 지금은 초등학교 아들이 열심히 마루를 닦고 있다.
右はご主人、左は町長
息子さんはお姫さまと座敷で遊ぶ
洋酒も弁護士も毛穴が開いた
오른쪽은 집주인, 왼쪽은 면장
아드님은 공주님과 거실에서 놀고 있다.
양주 선생도 변호사도 모공이 활짝 열렸다.
板に書かれた「負忠徳世」の文字がよく似合う。犬走りの上に基壇が置かれ、柱が立ち、 弓の稽古だってでき
そうな縁側が走る。セオリ通りのコレアの旧家だ。充分な広さをもつ庭に誘われたのか、座敷に招かれた洋酒が
縁側に腰を下ろした。柱にもたれた弁護士は事務所とちがう顔を見せる。
나무 판자에 쓰인 부충덕세라는 문자가 잘 어울린다. 섬돌 위에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운 뒤, 활 쏘기 연습이
라도 가능할 것 같은 툇마루가 내달린다. 전형적인 코리아의 옛집이다. 널찍한 정원에 마음이 끌렸는지, 안으로
들라는 주인의 청을 받은 양주 선생이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기둥에 기댄 변호사는 사무실과는 사뭇 다른 표정을
보여주었다.
建築家によると縁側は、内部空間でも外部空間でもない中間領域であるということだが、そんな理屈っぽい話
は別にして、農家の伜たる自分はスイカの種を飛ばしたくなった。夏の夕方、親戚にもらったスイカを、井戸で
冷やして、たらふく食ったら胃が痛くなる。縁側で横になって、もがいているうちに痛みが引き、だんだん暗く
なって虫が鳴くというわけだ。庭先のナスビを輪切りにして虫かごに入れたっけ。異国の風景を見て、少年期の
記憶にタイムスリップした。
건축가의 말에 의하면 툇마루는 내부 공간도 외부 공간도 아닌 중간 영역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이론적인 이
야기는 제쳐두고, 농부의 자식인 나는 수박 씨를 날리고 싶어졌다. 여름날 해질 무렵, 친척이 가져온 수박을 시원
한 우물물에 담가 두었다가 배부르게 먹고 나면 배가 살살 아파왔다. 툇마루에 누워 이리저리 뒹굴다 보면 어느
새 통증은 가라앉고 점점 어두워지면서 벌레가 울어댔다. 그러면 텃밭의 가지를 따서 어슷하게 썰어 벌레 상자에
넣어주었다. 이국의 풍경을 보며 어릴 시절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新旧の石壁
고택의 석벽
おもしろいのは新旧の石壁だ。右手の古い石壁の中央部は、傾きに方向性のある「行って来い積み」になって
いるのだが、新しい壁の石組みは敢えて秩序を乱している。コレアの石工は、技術の問題ではなく、美学として
人為を嫌う。「オヤジの代で、行って来いにしたけれども、どうもしっくりこない。やっぱり元の乱積みにしよ
うか」というようなやりとりがあったではなかろうか。これが日本の職人なら石組みに幾何学を持ち込み、角に
は鋭い線とソリを入れるはずだ。石の隙間にはカミソリも入らないだろう。技のちがいではなく、あくまで美学
の問題である。
옛 석벽과 신축 석벽이 흥미롭다. 오른쪽의 낡은 석벽 중앙부는 비스듬하게 방향성이 있는 지그재그 쌓기로 되
어 있는데, 신축 벽은 굳이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코리아의 석공은 기술의 문제가 아닌 미학으로서의 인위를
싫어한다. 아버지 대에서는 지그재그 쌓기를 했겠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되질 않는다. 역시 원래의 천방지축 쌓
기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는 대화라도 주고받은 것이 아닐까? 아마 일본의 장인이라면 돌 쌓기에 기하학을
도입하여 예리한 각과 꺾임을 넣었을 것이고, 돌 틈에는 면도날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미학의 문제인 것이다.
もっと面白いのは新旧の壁土だ。申栄勲著「韓国の民家」法政大学出版p234の一節を引用する。「山から掘り
出した白土はまだ生き生きしている。そのとき測定した色調が19歳の少女の肌の色と同じということである。
測定器に同じ数値で現れたと研究員たちも不思議がっていた。土を敷いて何年か経った庭を測定した数値は中年
女性の皮膚の色と同じだという。慶福宮後園の奥まったところの気が抜けた白土は、その色が死人の肌の色と同
じだという。驚くべきことであった」19歳の孫娘とおばあちゃんが肌を並べて同居する。ここでは壁さえ大家
族だ。
더욱 재미있는 것은 신구의 벽토다.
「산에서 막 파낸 싱싱한 백토의 색조를 측정한 결과 열아홉 살 소녀의 피부색과 같았다. 측정기에 동일한 수치
가 나왔다고 연구원들도 의아해 하고 있었다. 흙을 마당에 깔고 몇 년이 지난 후에 측정해 봤더니 중년여성의 피
부색과 같은 수치가 나왔다. 경복궁 후원의 후미진 곳의 기가 빠진 백토는 그 색깔이 죽은 사람의 피부색과 같았
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이었다.」열아홉 살의 손녀딸과 할머니 피부가 함께 동거를 하고 있다. 여기서는 벽조차
도 대가족이다.
石壁の正しい崩れ方
제대로 무너진 석벽
重機でたたき壊して、トラックに積んで、産業廃棄物として処理するといった恐ろしい言葉を使う理由は何も
ない。崩れたら直せばよい。力持ちの若者が過疎だから、思うに任せないかもしれないが、多少の手間賃を払え
ば元通りになる。目にやさしく、ねぐらを見つけた蛇さえ喜ぶ石壁である。昔の壁は皆このようであった。
중장비로 때려 부셔서 트럭에 싣고 산업폐기물로 처리한다는 무서운 말을 사용할 이유가 전혀 없다. 무너지면
다시 쌓으면 된다. 힘센 젊은이가 귀하기에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약간의 품삯을 지불하면 원래
대로 된다. 보기에도 좋고 보금자리를 찾아낸 뱀도 기뻐할 석벽이다. 옛날 벽은 모두 이러했다.
060909助村栄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장동환 작성시간 06.09.13 우선 그 기왓집의 그 주인은 원래 그 집 자손이 아니고, 괸리해 줄 자손이 없어 고가에 관심이 있는 그 친구가 관리인 겸 거주자로 그 집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신영훈의 선생의 "한국의 민가"가 일어본이 있다니 다행입니다. 그 인용표현이 재미있군요. 나는 그 고가를 보면 겨울 설날에 제사 지낼 때 마루 뒷끝에 서서 구멍난 양말 사이로 찬 바람을 맞으며 추워 발을 동동 구르던 기억이 납니다. 면도날이 들어가지 않는 일본의 석축도 보고 싶군요. 10.20-23. 오사카로 갑니다. 교토에서 한 번 확인해야 겠군요. 그리고 다음 기회에 그 한옥을 지키는 사람의 마음을 알기 위하여 아산 외암민속마을의 종부나 종가댁을 만나 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