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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갈 전시 리뷰

Ugly As Art - MoA

작성자尋然(심연)|작성시간17.03.19|조회수248 목록 댓글 6

MoMA 아닙니다.  MoA 입니다.  

서울대 미술관에서 전시중인 '예술만큼 추한' 전시입니다.   


도슨트와 이야기중 미술관에 무엇을 보러 오느냐는 말을 하더군요.   Art 라는 단어를 잘못 번역한 것이 '미술' 아니겠느냐고 답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추함 속에서 예술을 찾는 전시라 합니다,


전시 서문을 옮게 보겠습니다.


- 이 세상에 추한 것은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이미지는 관습적이거나 슴관적이다.  이미지는 시대에 따른 권력에의 의지와 함께 보편과 객관으로 가장한 관습의 역사를 만들고, 인간은 그 관습의 시각에 서서히 익숙해 지면서 습관적으로 그 익숨함의 편안함에 안주한다.  때문에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추한 것'은 없다.  단지 '추한 것'과 '추하지 않은 것'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상대적일 따름이다.

  서구 르네상스인들이 바라본 '고딕(Gothic)'은 추한 야만인들의 양식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이상주의적 절대가 그들의 모토이었으므로, 고딕은 상대적으로 '추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를 계승한 19세기의 영국인들이 바라본 아프리카 역시 '원시'와 '순수'의 '추함'이었다,

  절대적 가치가 이상적이라면, 상대적 가치는 현실적이다.  쿠르베(Gustave Courbet)의 사실주의 (Realism)는 당대의 현식을 직시하여 계급간의 차이를 상대적으로 바라본 결과였다.  당시의 아카데미에 익숙한 프랑스인들에게 쿠르베의 그림은 추함 그 자체였다. 뒤샹(Marcel Duchamp)과 피카소(Pablo Picasso)는 이러한 '추함'의 개념적, 관습적 정의에 더욱 노골적으로 대든 장본인들이다.  <아비뇽의 처녀들>(1907)이 그렇고, '모나리자의 수염'과 '변기' 조각이 그렇듯이, 이들은 이미지의 배반을 통하여 사물과 현실의 '진실(truth)'이 무엇인지를 되물어본다.  이제 '추함'은 상대, 절대의 시각적 이분법의 가치를 넘어 인간의 활동과 그들의 심리에 관한 보다 깊고 함축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기재로서 작용한다.

  예컨대, 인간은 '추함'을 통해 보다 본질적인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으며, 보다 강한 흡인력으로 사물과 현실의 내연을 순간적이나맘 격정적으로 맞이할 수도 있다.  때문에 '추함'을 통한 현실에서의 이미지적 일탈, 왜곡은 지극히 의도적인 작가들의 전략으로서 보다 강한 충격으로 본질에 접근하려는, 예를 들어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이와 같은 것이다.

  기존의 상대적 이미지들과 비교하여, 여기 모인 각 작가들의 이미지들은 우리의 시각에 익숙하지 않아 ㅇ일차적으로 낯설고 불편하다.  그렇다고 좀 더 들여다 보면 그 불편함이 나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메스껍거나 혐오스러울 정도의 거부반응을 느낄 것이다.  그 불편함과 혐오를 독자들게서 느껴보는 것, 그 자체가 이번 기획전의 컨셉이다. 

                                                                                      --- 정영목


자세한 설명보다는 사진을 보시죠




작품이 암울합니다,   작가가 힘들고 어려울 때 그린 것이라 합니다.  -  오치균



벽과 바닥에 무작위로 걸리거나 놓여있는것들이 작품입니다,   쓰레기를 소재로 했다네요.     --  함진



'개사람'이란 작품이라는데 인간을 개로 비유해서 암울한 세태를 풍자했다고 하는데 좀 기가 막혔습니다.  구경꾼을 자처하는 화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이 작가는 소위 잘먹고 잘사는 사람인데 세태가 뭐 그리 험악하다고 느껴졌을까...  남산골 샌님 아니신가 싶기도 하고요.      -- 서용선



장 뒤뷔페의 '아버지의 충고' 입니다.  리움에서 빌려왔다고 합니다.   장 뒤뷔페는 물감에 현실에서 접하는 재료를 섞었다고 하며 그래서 질감을 나타냈다고 하는군요.   뒤뷔페는 늦게 그림에 뛰어들었지만(41세때) 나름대로의 예술론을 명확하게 갖고 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어디서 뒤뷔페 사후 그의 예술론 원고가 발견되었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한 양이었고 아직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국립 현대 미술관에 뒤뷔페의 '집지키는개' 라는 조각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듯 추함에 대한 원리적 접근도 꽤 오랜동안 꾸준히 이어져 온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미술(美術)이란 단어가 잘못 만들어진 단어이기에 나를 포함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술, 추함, 아름다움 등에 대해 이해의 어려움을 겪었을까 생각해 보면 좀 약이 오르기도 합니다.   미술관 2층에 참고서적들을 전시해 놨는데 그자리에서 책읽기는 좀 어렵고 제목만 좀 알아두었습니다,  전시 좋고 승용차만 있다면 접근성도 좋고 입장료및 주차료도 저렴하니 추천하는 바 입니다.


추가:   전시보러 혼자 방문했었는데 도슨트분을 잘 만나서 더욱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혹 도슨트의 설명이 선입견을 주기때문에 싫어하시는 분들도 꽤 많으신 것 같은데 저는 도슨트 설명을 즐겨 듣고 물어보는 경우도 많거든요.  설명을 워낙 찬찬하게 잘 해주셨는데 (게다가 아름다운 여성분이시기도 했어요!)  고마워서 해설 끝난 후 성함을 여쭤보니 저와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비슷한 시기에 도슨트 과정을 마치시고 활동했던 분으로-- 저의 다음 기수분이었어요! -- 얼굴만 모르고 이름까지는 서로 알고 있던 분이었지요.  그래서 더 반가왔던 전시관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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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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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장님네 흑백티비 | 작성시간 17.03.20 모더니티란 전통적 미의식의 부정이죠. 근현대 미술 자체를 저는 ugly as art 라고 봅니다. 전통적 시각에서 볼때는 미의 범주가 아닌 것들을 수용함으로써 미와 일상 또는 미와 추의 경계와 구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니까요. 미술 또는 미술감상은 우리에게 무언가 의미있는 것을 주기 때문에 존재할 것입니다. 오치균의 저어두운 작품들에서 누군가는 예술적 공감이나 위로와 정화를 얻을 것입니다. 함진의 작품이 주는 의외성과 참신성은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의 정서를 환기시켜 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주제를 접할 때면 디사나야케의 예술은 인간에게 미적 쾌감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떠오르고 그런 생각에 더 끌립니다.
  • 작성자에스프리 | 작성시간 17.03.19 저는 도슨트 설명을 들으면 하나라도 확실히 더 알게 되서 좋아요~~ 그래서 늘 관람동안 설명이 있으면 살짝 붙어 같이 듣지요^^/ 추하다면, 쓰레기나 배설물을 생각하는데 순환고리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거 잖아요,,, 그래서 뭐가 더럽다 추하다 를 통해 이해되고 해소되고 감동을 전할 수 있다면 그런 표현을 하는 작가를 진정 예술가라고 믿게됩니다. 어찌보면 자기를 포기해야 되는 건데 예술에 자기를 바치는 순교자같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렇다고 추한걸 늘 좋아하긴 힘들지만 그래서 더 존경하게 되는 거 같아요,,
  • 작성자아스킬 | 작성시간 17.03.20 3월 정모를 하려고 했던 곳이였습니다~ 전시가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거든요~^^
  • 답댓글 작성자尋然(심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3.20 그렇잖아도 전시보면서 우리 지기님 생각 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보드리 | 작성시간 17.03.20 3월에 정모 하면 꼭 참석해야 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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