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히 나오신다”
(The Holy Spirit is eternally proceeding from the Father and the Son).
영광의 영(벧전 4:14)은 ‘지금도’ 계속 나오신다! 그는 영원히 나오신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대언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를 변호하시는 분으로 자기 백성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내주하시는 ‘파라클레토스(paravklhto")’ (보혜사)이시다. 우리 속에서 부르짖는 분, 우리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시는 분, 우리 영과 더불어 ‘압바(ajbbav)’ ‘아버지’라고 친히 부르짖으시는 분이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히 나오시는 이 ‘성령의 영원한 나오심’은 불꽃같은 영광으로 가득한 하늘의 영광 무한한 영광 속에 계시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에게서 나오시는 불같은 성령의 강물, 그 장엄한 영광의 광채가 너무 커서 감히 쳐다볼 수 없다.
문답 1. 성령은 나오시는가?
그렇습니다. 나오십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영원히 나셨고 성령은 영원히 나오십니다. ‘나심’은 아들에게만 있는 속성이고 ‘나오심’은 성령에게만 있는 특성입니다.
‘나오신다’는 말은 그 근원이 있음을 내포하는 말이다. 근원이 없이는 나올 수 없다. ‘나오신다’의 원어 ‘에크포류에타이’의 ‘에크(ejk)도 그 누구로부터, 또는 그 무엇으로부터 나온다는 것, 곧 근원이나 원천이 있음을 보여준다.
문답 2. 성령은 어디로부터 나오시는가?
성령은 어떤 근원이나 ‘원천’(fons, fountain)으로부터 나오십니다.
성자의 ‘나심’(generation)에도 그 근원이 있는 것처럼 성령의 ‘나오심’에도 원천이 있다. 이러한 원천에 관하여 교부들은 물론, 종교개혁자 칼빈은 성부 하나님을 신성의 원천이라고 했다. 만물의 근원은 존재 ‘자체’ 또는 그 ‘하나’가 아니라, ‘그 한분’이다. 그 한분이 누구신가? 창세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들, 곧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는 그 신성, 이 신성을 아는 가장 빠른 길은 그 근원이나 원천을 아는 것이다.
문답 3. 신성(神性)과 만물의 원천(源泉)이 누구이며, 유신논증(有信論證)으로 만물의 제일 원인(第一 )을 알 수 있는가?
신성의 원천은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논증으로는 알 수 없고, 오직 성령계시에 의존해야만, 만물의 원천 또는 제일 원인 곧 성부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아퀴노의 토마스는 만물의 근원을 ‘제일 원인’이라고 하며 근원을 찾다보면 신을 찾게 된다고 했다. 이렇게 신을 존재하는 논증을 ‘유신논증’이라 하는데, 망원경으로 우주 전체를 살피면서 만물의 근원을 찾는 ‘우주론적 논증’, 현미경으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의 결정체를 들여다보듯 근원을 찾는 ‘목적론적 논증’, 사람의 의식 속에 신이라는 생각으로 신의 존재를 찾는 ‘본체론적 논증’, 도덕적 (실천이성의) 요청으로 신의 존재를 찾는 ‘도덕적 논증’등의 논증으로는 참된 하나님이 누구신지 밝혀지지 않는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성령과 진리 안에서 예배할지니라”(요 4:24)라며 성령으로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서 예배하라고 가르친다.
문답 4. 진리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 곧 복음이 진리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요 8:37)
주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진리에 관하여 증거하신다. 그는 진리이시고 선지자이시므로 항상 진리를 말씀하신다.
문답5. “엘로힘” 하나님은 고독한 하나님이신가?
“엘로힘” 하나님은 고독한 하나님이실 수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홀로 외롭게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아버지’라는 칭호가 이미 고독한 분이 아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엘로힘’의 ‘임’은 히브리어에서 복수를 나타내는 어미이므로 ‘엘로힘’은 ‘신들’이라는 뜻이다. 우리 ‘엘로힘’ 하나님은 결코 외로운 분이 아니다. 영원한 아버지시고, 영원한 아들이시고, 영원한 성령이신 엘로힘은 서로 의논하시고, 사랑하시고, 하시는 일을 서로 기뻐하신다.
문답 6. 성령은 아버지에게서 ‘만’ 나오시는가?
아닙니다. 성령은 ‘아버지에게서’나오십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 15:26)
예수께서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라고 말씀하신다. 진리의 영, 곧 대언자(보혜사)는 아버지로부터 나오신다.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다. 성령이 ‘아버지에게서’ 나오신다. 그러나 ‘아버지에게서만’ 나오시는 것은 아니다.
문답 7. 성령은 아들에게서도 나오시는가?
그렇습니다. 성령은 아들에게서도 나오십니다.
동방교회는 성령이 성자에게서도 영원히 나오신다는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영원히 나오신다’를 우리는 받아들인다.
The Holy Ghost(Spirit) s proceeding from the Father and the Son.
아들에게서에 해당하는 라틴어 원문은 ‘아들에게서도’ 곧 ‘휠리오꾸’(Filioque)라는 한 단어로 족하다. 이 ‘성령의 영원한 나오심’에 관한 라틴어 원문은 ‘아이테르네’
(aeterne) ‘영원히’이고, ‘에스트 프로세덴스’(est procedens=is proceeding)로 ‘계속 나오신다’이다.
성령이 영원히 계속적으로 나오신다는 교리를 믿는다면,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시고, 또 계속 오신다고 가르쳐야 한다. 성령이 계속 나오심은 자기 백성에게 오시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문답 8. ‘휠리오꾸베’ 곧 “성령이 아들에게서도 나오신다”는 교리에 관한 성경의 증거가 별로 없지 않는가?
그 증거들은 많습니다. 신조는 한두 곳의 증거만 들었으나 실은 성경 여러 곳에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친히 증거하실 것이요:(요 5:26)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너희는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이라고 하신 것, 요 7:37-38의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신 것, 부활 후 숨을 내쉬며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주신 것, 계시록 22:1-2의 어린양이 보좌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의 강물 등등 성령이 아들에게서도 나오신다는 교리에 관한 성경의 증거들이 많고 확실하다.
문답 9. 성령은 영원히 계속 나오시는가?
그렇습니다. 성령은 영원히 계속 나오십니다!
영원히라는 것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시무종이다. 신학적인 용어로 ‘프로셋시오 아이테르나’ 곧 ‘영원히 나오심’이다
‘성령 오심의 연속성’에 관한 성령은 한결같이 오순절에 보혜사 성령에 관한 증거로 일관된다. 요한복음 15:26의 ‘나오신다’의 원어 ‘에크포류에타이’에 근거한 ‘영원한 나오심’((processio aeterna)으로 현재형이다. 곧 오순절에 오신 보혜사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계속 나오신다. 지금도 성령은 계속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셔서 우리에게 내려오신다.
문답 10. 성령께서는 왜 계속 나오시는가?
성령이 계속 나오시는 것은 성령의 본질적인 속성이고 또 우리 속으로 오셔서 영원히 거처를 같이 하시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보혜사 성령이 우리 속으로 오셔서 ‘내주하시는 것’ ‘우리와 함께 거처를 같이하시는 것’을 성령의 불이 타오르는 것처럼 원하신다. 불꽃 같은 보좌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의 불은 구속의 은혜를 입은 마음속을 온전히 점령하시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주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뜻이다.
성부와 성자께서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거처를 같이하시는 길은 보혜사 성령이 우리 속으로, 우리 마음속으로 오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로 계속 찾아오셔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고 지금도 자신을 나다내신다. 성령은 은혜로 찾아오셔서 은혜로 우리와 함께, 우리 속에 거하신다.
문답 11. 오순절 성령이 사도들을 포함한 120명 성도들에게 강림하신 일도 ‘하나님의 나타나심’ 곧 ‘신현’에 속하는가?
그렇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일은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120명 성도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영원히 자기 백성들 속에 내주하시는 신현에 속합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오신 일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으로 하나님은 계속 자기 백성에게 오시기를 원하신다. 계시의 3대 방편은 예언(말씀)과 이적 및 신현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이 신현이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영광이 시내산에 나타날 때 매우 두려워했고 하나님께서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셨다. 가까이 오면 반드시 죽임을 당한다.
신약시대의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말씀이 육신이 되셨으므로 우리 속으로 들어오실 수 없었다. 그러므로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은 아무리 신약시대라 할지라도 우리 성도들이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아버지의 영이고 아들의 영인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와 거처를 같이 하신다.
문답 12. ‘성령이 아들에게서도 나오신다’는 ‘휠리오꾸베’ 교리는 삼위 일체 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가?
그렇습니다. 성령이 아버지에게서 나오심과 동시에 아들에게서도 나오신다는 교리는 삼위 하나님 사이의 구별을 확실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동질성을 드러내므로, 삼위 하나님이 ‘하나’임을 가장 명백하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성자 하나님에게서도 나오신다는 것은 성부와 성자를 구별하는 것은 물론, 성부와 성자가 서로 동등한 위격임과 성부와 성자는 동질임을 증거한다. 또한 성자를 성부의 양자로 보는 양자론, 곧 아리안 이단, 또는 ‘역동적 단일신론’의 미혹을 막아주며 성자가 성부와 비슷한 분이라는 유사론으로 기울어질 수 없게 한다.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시기 때문에 종속적 위치에 있지 않나 하는 숙제를 다니엘서 7:9-10절에서 성령의 영광과 요한계시록 22:1-2절에서 성령이 성부와 성자 하나님의 영광도 동등이심을 보여주심으로 해결해준다.
문답 13.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신 일은 대표의 원리가 적용되는 단회적 사건인가?
아닙니다. 대표는 항상 한 분이어야 하나, 오순절에는 120명이나 되기 때문에, 대표의 원리가 적용되는 단회적 사건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은 ‘단지 한 번만’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나 다른 역사적 사건들, 특히 성경의 모든 사건들은 ‘단회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신약에서는 ‘단번에’ 해당하는 단어가 둘 있는데, ‘하팍스’와 ‘에화팍스’이다. 이 중 에화팍스는 ‘단지 한번’으로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에만 해당되는 특수한 개념이다.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하신 대속의 원리와 한 사람의 속죄로 많은 사람들의 죄를 속죄한다는 대표의 원리를 함께 내포하는 단어이다.
그러나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한 사건에 대하여 성경은 그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대표의 원리가 적용된다는 뜻의 ‘하팍스’나 ‘에화팍스’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사도들이나 사도들을 포함한 120명의 초대교회가 오순절에 모든 교회를 대표하여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다.
문답 14. 오순절에 성령이 사도들을 포함하여 120명에게 임하신 일은 유일한 사건인가?
유일한 사건입니다. 열두 사도들을 포함하여 주님의 부활과 승천을 직접 목격한 120명의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오순절에 처음으로 보내신 일,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한 일,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던 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한 일은 사도행전에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사건입니다.9행 1:9-15, 2:1-4)
문답 15.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특이하다는 것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가?
승천하신 주님께서 오순절에 열두 사도들과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그 아우들을 포함한 자기 백성에게 성령을 보내심으로, 120명의 초대교회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각 나라 방언으로 하나님이 크신 일들 곧 주님께서 이루신 유일한 구속의 그 큰 은혜를 찬양한 일은 역사적으로 단지 한번 일어난 특이한 사건이었습니다.(행 1:13-1, 26, 2:1-13)
문답 16.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성령강림의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유일한 사건인가?
그렇습니다. 영광의 주님에게서 나오시는 성령강림의 시작은 오직 한 번뿐이므로, 유일성을 지닌 사건입니다.
무슨 일이든, 시작은 오직 한 번뿐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성령오심의 유일한 시작으로 그 후에 계속 영속된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내포하는 절묘한 개념이다.
문답 17. 오순절 성령강림이 특수한 사건이면서 그 시작이 유일하다면 그 후에도 계속 오시는가? 그렇다면 유일성과 연속성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가? 연속성에 관한 성령의 증거가 있는가?
유일성과 연속성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연속성에 관한 성경의 증거는 너무 막중하여 감당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역사상 단지 한 번만 유일하게 일어난 특수한 사건이면서도, 그 후에 ‘같은’ 동질의 성령이 계속 오셨고, 지금도 계속 오신다. 교회, 곧 성령을 받은 그 사도들이나 사도들과 함께 성령을 받은 초대교인들 안에 성령이 영원히 계시기 때문에, 이들이 증거하는 복음을 듣고 처음으로 믿어 새신자가 된 사람들에게는 성령이 위로부터, 성부와 성자에게서 새롭게 오심으로 충만하게 된다. 이러한 일이 계속됨으로 성령은 교회 안에 항상 내주하시는 것이다.
문답 18. 예전들을 통해서 성령이 우리에게 온다는 생각이 옳지 않은가?
옳지 않습니다. 성경에 예전들을 통해서 성령을 받는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교회는 사제들이 신자의 이마에 기름을 바르는 의식을 통해서 성령이 전수되어, 주입된다고 하나 이 예전은 성경과는 거리가 멀다. 성령은 사도들의 기도와 안수를 통해서 성령이 직접 위로부터 교인들에게 임하신다.
문답 19. 오순절에 성령이 교회에 부어진 후부터는 성령이 교회로부터 나오신다는 말이 옳지 않은가?
옳지 않습니다. 교회란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므로 사람으로부터 성령이 나오실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성령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에게서 나오신다는 ‘휠리오꾸베’ 교리, 곧 1500년 이상이나 공교회가 믿어온 교리에 어긋나므로 비성경적이고, 비교리사적 사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답 20. 성령이 신비적 몸으로부터 나오신다는 주장은 옳지 않은가?
옳지 않습니다. 신비적 몸은 교인들을 가리키므로, 결국 교인들로부터 성령이 나오신다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비성경적이고, 종교개혁의 복음주의에 어긋납니다.
네덜란드의 신학자요, 칼빈주의자였던 아브라함 카이퍼는 “성령이 오순절에 교회에 부어진 후로는 신비적 몸으로부터 성령이 흘러나온다. 오순절에 성령을 단번에 부어진 후, 신비적 몸에 저장되어 있다가 각 가정으로 공급된다.” 주장한다. 그러나 바빙크는 교회 또는 신비적 몸이란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므로 카이퍼의 주장은 믿는 사람들에게서 성령이 나오는 것이되므로 이단사상이라고 평가한다.
문답 21. 오순절 성령이 한 번 교회에 쏟아 부어진 후로는 교회 안에 성령이 항상 계시므로 성찬시에 떡을 먹음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교제하고, 포도주를 마심으로 성령을 마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성찬시에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몸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피가 쏟아진 것을 기념함은 물론, ‘성령으로’ 그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성령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성령으로’마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평소 성령과의 교통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성령을 직접 마실 수 있습니다.
문답 22.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시고, 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고 하실 때, 사도 요한은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는데(요 7:37-39), 성령을 어떻게 받으며, 어떻게 마시는가?
성령을 어떻게 받느냐는 것은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우나, 오히려 성령을 마시는 것이 곧 성령을 받는 것이라고 함이 쉬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어떻게 우리 속으로 들어오시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곧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음으로 성령과의 교통이 이루어진다. 교통이란 교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답 23.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라는 말씀음 무슨 뜻인가?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계속 나오시는데, 왜 성령이 아직 계시지 않으셨나?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승천하사 성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는 영광을 받으시기 전에는 영광의 보혜사 성령을 보내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를 감찰하시는 성령이 어디든지 보편적으로 계신다. 구약시대에도 성령이 역사하셨지만, 오순절에 오신 영광의 성령과 같은 보혜사 성령은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전에는 오지시 아니했으므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라고 하였다.
문답 24. 성령이 계속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시는데, 어찌하여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계시지 않는가?
성령은 계속 나오시지만, 예수께서 못박히신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내려오셔서 영원히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문답 25. 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성령을 받도록 성부 하나님께 구하시면, 우리는 기도를 아니해도 되는가?
아닙니다. 우리도 열심히 간절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지만(행 1:4-5), 사도들과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님의 아우들을 포함한 120명의 성도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행 1:4)
안수는 단순한 수단이었고,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림으로 성령을 받는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성도들 스스로 기도함으로 성령을 받는다.
문답 26.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계시는 영광의 주께서 참으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가? 다른 보혜사를 보내리라고 말씀하신 주님 자신도 보혜사이신가?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요 14:16)고 말씀하셨으므로 주님 자신도 보혜사이십니다. 보혜사란 ‘대언하시는 분’ 또는 ‘간구하시는 분’이란 뜻이므로, 우리를 위하여 대언하시며, 간구하시며, 변중하시는 것이 주님의 본질적인 속성입니다.(요일2:1).
문답 27.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하나님 앞에서 누가 참소하며, 참소하는 자의 결국은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참소하고 이와 동시에 마귀가 밤낮 주야로 하나님을 향하여 형제들을 참소하나, 그 결국은 영원한 벌을 받습니다.
성경에서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참소하는 갈대아 사람들(단 3:8-13), 다니엘을 참소하는 총리들과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들(단 6:7), 욥을 하나님 앞에서 참소하는 사단(욥 1:9-10), 복음을 순종치 않는 불신자들을 참소하는 사단(계 12:7-12)이 있다.
문답 28. 간악한 말로 남을 헐뜯어 없는 죄도 있는 것처럼 윗사람에게나, 하나님에게 고해 바치는 참소를 하지 않도록 특별히 경계한 말씀이 성경 어디에 또 있는가?
사도 바울은 특히 교회의 장로나 감독의 직분을 맡은 분들의 부인과 늙은 여자들에게 참소치 말도록 가르쳤습니다. 참소는 말세인들의 특징 중 하나이므로, 일반 교인들도 이를 특히 경계해야 합니다.
문답 29. 사랑과 평화, 온유와 인내의 열매를 맺게 하는 복음을 쫒는 성도들이 왜 핍박을 받는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 특히 가장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들이 핍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과 일반 종교가 서로 화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핍박을 받아도 이를 참고 견디어 이기는 신자에게는 오히려 하늘의 상급이 크고 또 핍박하는 자가 은혜로 회개하면, 하나님께 더욱 영광이 됩니다.
사단이 그 배후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지극히 정상적이다.
문답 30. 말세에 성도들이 환난과 핍박을 당할 때에 가장 가까운 친구는 누구인가?
교회 안에 그 누군가가 가깝게 접근하여 도와주는 성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첫째는 하늘에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며 대언하시는 주님이 가장 멀리 있으면서도 가장 가까운 친구이시고, 둘째는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 영과 더불어 ‘밥바’, ‘아버지’라 부르짖으며, 우리가 연약하여 빌 바를 알지 못할 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우리 영과 더불어 간구하시고, 높아진 이론들을 물리치시며, 변증하시는 보혜사 성령이 가장 가까운 친구입니다. 이같이 그는 나를 위하여 탄식하시고, 간구하시며, 대변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대언하시며, 간구하시는 보혜사이시다. 또한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셔서 우리를 도우신다.
문답 31. 사도시대와 ‘지금’이라는 신약시대가 동일한 은혜의 시대인가? 세대주의란 무엇인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라는 그 지금은 지금도 여전히 그 ‘지금’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뜻에 따라 사람들이 순종하는 여부를 시험하는 시대가 에덴으로부터 천년왕국과 신천신지에 이르기까지, 지나치게 여러 시대로 번거롭게 나누어진 것처럼 가르지는 것을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라고 한다. 구약과 신약은 본질적으로 같은 은혜의 언약이면서 그 적용방법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 성경에 근거한 언약의 참된 뜻이다.
문답 32. 오순절 성령과 동일한 성령이 사도시대에만 오셨고 오늘날에는 그 같은 일이 없다는 생각도 일종의 세대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오순절에 오신 성령과 같은 동질의 성령이 과연 ‘지금도’우리에게 오시는가?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이 모든 육체에 세상 끝날까지 부어진다”고 역설합니다. 모여든 수많은 청중에게 베드로 사도가 설교한 그 증거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오순절 성령오심이 누구에게나 임한다는 보편성과 어느 시대나 계속 오신다는 연속성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순절 성령과 동일한 성령의 은혜가 사도시대에만 있었다는 것은 동일한 은혜시대를 둘로 나누는 것이므로, 스스로 세대주의임을 드러내는 셈입니다.
문답 33. 사도시대와 그 후 시대에 오순절 성령이 동일하게 임하신다면, ‘사도시대’라는 말도 할 필요가 없는가?
사도시대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사도시대란 문자 그대로 사도들이 살아 있던 시대이므로, 매우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초석이 놓여지는 시대이고 또 기록되어야 할 말씀이 종결되는 시대이므로, 사도시대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께서 몸된 교회의 초석을 견고하게 놓으시고자 열두 사도를 세우시고, 사도 바울을 부르신 것이다.
문답 34. 반석과 열두 초석위에 세워지는 성전은 어떠한 자재로 지어져야만 신령한 집이 되는가?
산 돌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터를 닦거나, 산 돌 같은 반석 위에 다른 이질적 자료로 지어지는 성전은 결코 신령한 집이 될 수 없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력을 시험하는 때가 옵니다.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그 공든 노력이 불타면 해를 받습니다. 오직 산 톨로써 집을 지어야 살아 있는 성전이 되어 영원한 집이 됩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이 교회의 반석이시다. 따라서 우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는데 쓰임을 받아야 한다.
문답 35. 산 돌로 지어지는 성전으로 들어오면 자동적으로 성령을 받을 수 없는가?
예배당을 성당(聖堂)이라고 하는 로마교는 예전주의(禮典主義)를 표방하기 때문에, 주교가 집혜하는 예전(견진성사)에 참여하면, ‘자동적으로’ 성령을 받는다고 하나. 그 성경적 근거로 삼는 사도행전 8장의 사마리아 교회에서 일어난 일과는 정면으로 대립됩니다.
예전을 통하여 은혜가 주입되고, 죄사함을 받는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한 죄 사함과 항상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성령을 성자 하나님께서 보내신다는, 카톨릭 공교회의 ‘휠리오꾸베’ 교리에 어긋난다.
문답 36. 성령이 아들에게서도 나오신다는 교리는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의 저수지 비유로 설명하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는가?
카이퍼의 저수지 비유는 성령이 오순절에 120명의 초대교회 교인들 속에 쏟아부어져, 성령이 이들로부터 장차 믿을 모든 성도들에게 공급되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이것은 카이퍼 자신도 예상치 못했던 이단사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오순절 성령이 신비적 몸에 쏟아 부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독일 관념주의의 영향을 받은 카이퍼는 이 신비적 몸을 구체적 교회로 생각지 않고, 신비스럽고, 막연한 ‘신비적 몸’(misti다 lichaam)으로만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문답 37. 아브라함 카이퍼의 저수지 비유는 에스겔 선지가 말한 바(겔 47장) 생명수 샘물이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비유와 일치하는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에스겔서의 비유는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처음에는 일천 척을 척량하니 무릎에, 다음에는 허리에, 마지막으로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물이 되었습니다(겔 47:1-5). 그러나 카이퍼의 비유는 처음에는 오순절에 소낙비같이 성령이 쏟아져 저수지와 같은 신비적 몸, 곧 성전에 충만하게 넘치다가 날이 갈수록 점점 줄어져 나중에는 각 가정마다 수도 파이프로 연결해 겨우 해갈하는 정도하고 합니다. 따라서 에스겔서의 경우는 물고기가 많을수록 강물이 점점 더 넘치는 반면, 카이퍼의 경우는 물고기가 120명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무한한 성령이 다 쏟아부어진 것처럼 말하고 또 성도들이 많을수록 점점 그 분량이 감소되므로, 그 차이는 큽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성령이 오순절에 ‘단번에’ 쏟아부어졌을 뿐 아니라, 심지어 ‘모든 때와 모든 사람을 위하여’부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120명이나 고넬료 가정 위에 성령이 임하신 것은 결코 대표의 원리가 적용될 수 없거니와, 120명이나, 사도들이나, 고넬료로부터 성령이 계속 나오신다고 생각했다면 이것은 성령이 사람에게서 나오시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단을 면할 길이 없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시며 120명에게는 120명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만큼만 성령이 부어진다.
문답 38. 성령이 나오심이 신플라톤주의의 유출 사상과 같은가?
결코 같지 않습니다. 주후 3세기부터 로마를 중심으로 중세의 사상계를 지배했고, 기독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신플라톤주의의 우주관은 ‘그 하나’(to hen, 一者)인 광명한 ‘빛’ 곧 ‘최고선’으로부터 만물이 단계적으로 유출되면서 우주가 형성되었다는 것, 빛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어두워진다는 것, 마지막 물질은 악하므로, 다시 단계적으로 되돌아가 만물의 근본이신 빛을 바라보는 것, ‘본질을 통한 신에의 관상’ 곧 ‘본질적인 자아의 명상을 통해서 신을 관상(觀象)하는 신비주의는 중세의 기독교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성경과는 정면으로 대립되는 사상이다.
성령의 나오심은 이러한 신비적 유출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에게서 나오시는 성령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나오시는 성령은 우리의 마음속으로 바로 직접 오셔서 내주하시며, 성경에 약속된 성령은 그리스도의 무한한 은혜로 위로부터 우리에게 오신다.
문답 39. 물질을 탐하는 것이 우상숭배와 같은 죄라면 물질이 악하지 않는가?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 3:5)라는 말씀과 같이 과연 탐심은 큰 죄입니다. 탐심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한 사도 바울을 위시하여 우리는 일상생활에 이웃의 물건이나 아내를 탐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계명에도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고 했습니다(출 20:17).
그러나 이웃의 아내나 물질이 악할 수 없는 것처럼, 만물 자체는 악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심지어 만물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고,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합니다. 이에 반하여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고 하는 고행주의는 귀신의 가르침을 좇는 일이므로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물질 자체가 악하지 않고,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이라면, 물질을 얼마든지 가져도 좋은가 하는 물음이 나올 수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탐심을 삼가라고 한다.
문답 40. 탐심이 어떻게 우상숭배가 되며, 그 뿌리는 언제부터인가?
피조물을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사모하다가 섬기면 우상숭배가 되는 것처럼 물질이나 사람을 탐하는 것은 비록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우상숭배와 같이 마음속으로부터 탐하는 것이므로,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탐심의 뿌리는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먹지 말라고 하신 명령을 어기고 탐심으로 선고가 악을 알게 하는 금지된 시과를 먹었을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하와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니, 아담도 먹었습니다(창 3:6). 하와가 겪은 시험을 함께 한 아담에게도 금지된 실과가 탐스럽게 보여, 쉽게 받아 먹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답 41. 저희들끼리 선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모든 사람이 전적으로 부패했는가?
해적들이나 강도들은 저희들끼리 단합이 잘되고, 어떤 나라와 그 백성들은 저희들끼리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경우가 있을 정도입니다. 일본사람들은 정직하고 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으나. 기독교인은 일본 전인구의 1프로밖에 되질 않고, 대부분 사신을 섬기며, 신사를 참배하고, 각양 우상숭배하는 일에 일치 단결합니다.
반대로 우리 민족은 단합은 잘 되지 않으면서도 조상숭배에는 유별나, 모두 이심전심으로 한 마음이 되니 하나님 앞에서는 일본이나 우리 모두 전적으로 부패되었으므로, 어느 정도 부패되엇는지조차도 모를 정도로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일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온 땅 위의 인간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므로, 성경은 말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고 합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했다. 칼빈의 교리로 전전무능이다.
칼빈주의의 오대교리를 네덜란드의 국화인 TULIP으로 간단하게 표현한다.
T : Total Inability (전적무능)
U : Unconditional Election (무조건적 선택)
L : Limitted Attornment (제한된 속죄)
I : Irresistible Grace (불가항력적 은혜)
P : Perseverance of the Saints (성도들의 오래참음)
문답 42. 사람이 그 지성을 통해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소위 카메로의 지성개입설이란 무슨 뜻인가?
지성개입설이란 진리의 말씀이 들려올 때, 성령이 먼저 사람의 지성을 감동시키면, 그 지성을 통해서 감정이나, 의지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심령 전체가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견해인데, 성령께서 지성과 의지 및 감정을 동시에 직접 변화시킨다는 도르트 신조에 어긋나는 잘못된 주장입니다.
강력한 성령의 직접적 역사가 아니고는 심령 전체의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성경의 한결같은 가르침이다.
문답 43. 성령이 성경 ‘말씀과 더불어’ 또는 ‘말씀을 가지고’가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것이 옳은 생각이 아닌가?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성경적인 증거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말씀과 더불어’ ‘말씀을 가지고’ 또는 ‘말씀으로써’ 역사하신다는 증거는 성경에 분명합니다.
‘말씀을 통하여’는 루터교 신학의 입장이고, ‘말씀으로써’는 칼빈주의 신학의 입장이다. ‘복음의 말씀이 그 수단으로 쓰이면서’ 성령이 우리의 심령에 ‘직접’ 역사하신다는 ‘말씀을 가지고’, ‘말씀으로써’ 성령이 직접 역사하신다는 것을 강조하며, 또 반드시 직접 강력하게 역사해야만, 전적으로 부패된 인간의 마음에 큰 변화를 일으킨다.
문답 44. 안수를 통해 성령이 성도에게 전달되는 경우, 안수하는 자의 영이나, 그 안에 있는 성령에게서 성령이 나오시는 것이 아닌가?
아닙니다. 성령은 ‘어떤 인격체의 손을 통해서’ 안수를 받는 사람의 속에 직접 임하시면서 어떤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십니다. 이 경우 성령이 위로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하나님에게서 나오셔서 안수하는 ‘그 사람과 더불어’가 아니고, ‘그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이것은 안수를 받는 사람 속에 성령이 위로부터 내려오셔서 영원히 내주하시는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성령은 항상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십니다.
문답 45. 제사장이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들이 범한 모든 죄를 고백하고 그 죄를 넘길 때, 어디에 안수하며 무엇을 예표하는가?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사람이 없는 광야로 보냅니다(레16:20-22). 이것은 세상 죄를 대신 지고 가실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예표하는 것으로서(요 1:29) 우리의 죄를 저 멀리 광야로 사라지게 하신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문답 46. 누구든지 송아지나 수양이나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그의 죄가 번제물에게 넘어가는가? 이것은 온 백성을 위한 속죄제를 드리는 경우에도 적용되는가?
누구든지 송아지나 수양이나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그의 죄가 번제물에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제사장이 그 번제물의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리는 속죄의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에게 열납되어, 그의 죄를 대속하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출 29:10,15,19 ; 레 1:2-11, 3:2,8,13, 4:4,15,24,29,33, 8:14,18-19,22)
이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온 백성을 위한 속죄제를 드리는 경우에도 적용됩니다.
문답 47. 어떠한 직분의 임직에 안수하는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이미 성령의 감동을 받은 자를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위탁하거나(민 27:18-23, 신 34:9) 교회의 목사나 집사의 직분을 맡기거나(행 6:6, 딤전 4:14), 선교사를 파송할 때 안수함으로(행 13:3), 직분의 임직이 확정됩니다.
문답 48. 축복하기 위한 안수는 누가 하는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축복하기 위하여 손을 들거나 안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주 예수께서 어린 아이들에게 안수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창 14:18-20, 27:21-29, 31:55; 레 9:22-24,; 민 6:23-27;마19:13-15; 막 10:16).
문답 49. 안수를 통해서 성령을 받을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사도요한과 베드로의 안수를 통해서 사마리아 교인들에게, 또 사도 바울의 안수를 통해서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처럼 (행 8:17, 9:12-17, 19:6), 사도들이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의 안수를 통해서 성령을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답 50. 안수를 통해서 이미 받은 은혜를 불일 듯이 할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이 안수함으로 하나님께서 디모데 속에 있는 은사를 다시 붙일 듯 하게 하신 것처럼,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사람의 안수로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의 속에 있는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딤후 1:6)
문답 51. 육신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안수할 때, 주위 사람들이 믿음으로 함께 기도하면 권능이 크게 나타나는가?
그렇습니다. 병자나 그 주위 사람들이 믿음으로 이에 화합하면, 권능이 크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막 6:5, 7:32. 8:23-25; 눅 13:13; 행 28:8).
안수는 병자로 하여금 성령의 능력이 나타남으로 치유함을 얻었다는 믿음을 가지게 하고 이로써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하는 수단이 된다.
성령이 성부 하나님에게서만 아니고 성자 하나님에게서도 영원히 나오신다는 휠리오꾸베 교리의 성경적 증거는 많다. 오순절 하루만이 아니고 그 후 계속, 사도시대는 물론이고 오늘날에도 오순절에서와 같은 동질 동등한 성령이 위로부터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다.
나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믿고 이 은혜에 근거한 불 같은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여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성령의 내주와 성령과의 교통으로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신령한 복을 누리자.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와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아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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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목자와 양 작성시간 13.12.09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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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들내음 작성시간 14.06.03 차영배(차용베이)교수님이 성령론 강의 하실 때는 반드시 입에 버큼이 나오지요
아주 열정적으로 하시다가
"아차 나봐라 내가 오늘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우리마누라가 오늘은 제발 조용 조용히 하라고 했는데
내가 또 깜박했네" 하시면서 당분간 조용하시다가 역시 또 - - -
그리고 저(들내음장로)는 그 어른의 모습을 본따서 지금까지 까운을 입지 않습니다 하하하하 -
답댓글 작성자agas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6.03 차박사님 강의가 새롭네요.
저도 벗어버릴까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들내음 작성시간 14.06.03 agaser 종교개혁가들이 맨 먼지 한 일이 그것을 벗어버린 일인데 오늘날 그 개혁가들의 후예들이 그것을 다시 주워다 입는 다는 것이 별로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천주교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요 -
작성자나는? 작성시간 15.01.31 귀한 진리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