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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토론방

[삼국지위서동이전] 왜인

작성자자이수|작성시간13.06.30|조회수715 목록 댓글 9

倭人 (왜인)

 

倭人 在帶方 東南 大海之中, 依山島 爲國邑. 舊 百餘國, 漢時 有朝見者, 今 使譯 所通 三十國.

왜인(倭人)은 대방의 동남쪽 큰 바다의 가운데에 있다, 산이 많은 섬(山島)을 의지하여 나라를 이루었는데 예전에 100 여 나라가 있었다.

한(漢)나라 때에는 알현하는 자가 있었고 지금도 사역(사신과 역관)이 통하는 곳이 30국이다.

 

從郡至倭, 循海岸水行, 歷韓國, 乍南乍東, 到其北岸狗邪韓國, 七千餘里,

대방군(郡)에서 왜(倭)에 도착하려면 (서)해안을 따라 물길로 가다 한국(韓國)[마한]을 돌아, 남쪽으로 가다 다시 동쪽으로 가면, 

 

 

그(왜)의 북쪽언덕인 구야한국(狗邪韓國)[가야]에 도달한다, 거리가 7천여 리이다.

 

始度一海, 千餘里至對馬國. 其大官曰卑狗, 副曰卑奴母離.

바야흐로 하나의 바다를 건너 천여리를 가면 대마국(對馬國)[대마도]에 이른다. 그(대마도)  대관을 비구(卑狗)라 하고 그다음을 비노모리(卑奴母離)라 한다.

 

 

 

所居絶島, 方可四百餘里, 土地山險, 多深林, 道路如禽鹿徑. 有千餘戶, 無良田, 食海物自活, 乘船南北市糴.

그들이 살기는 떨어진 섬에 살지만 사방은 4백여리나 된다. 토지와 산이 험하고 깊은 숲이 많고, 길은 겨우 새가 기어다니고 사슴이 걸어 다닐만한 좁은 길이다. 호(戶) 수는 천여 호이고 좋은 밭은 없어 바다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산다. 그리고 배를 타고 남북[마한과 일본본토]으로 다니면서 장사를 한다.

 

又南渡一海千餘里, 名曰瀚海, 至一大國, 官亦曰卑狗, 副曰卑奴母離. 方可三百里, 多竹木叢林, 有三千許家, 差有田地, 耕田猶不足食, 亦南北市糴.

또 남쪽으로 바다 건너 일천리에 일명 한해(瀚海=넓고 큰 바다)를 건너면 하나의 큰 나라[일본본토]에 이른다. 역시 높은관리를 비구라 하고 그 다음을 비노모리라 한다. 사방 3백리이며, 대나무와 나무숲이 많고 집은 3천가 정도가 있으며 밭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이 밭에서 애써 농사를 지어도 그 사람들이 잘 먹고 살수가 없다. 그래서 남북으로 다니면서 장사를 해서 먹고 산다.

 

又渡一海, 千餘里至末盧國, 有四千餘戶, 濱山海居, 草木茂盛, 行不見前人. 好捕魚鰒[집해1], 水無深淺, 皆沈沒取之.

또 바다를 건너 일천여 리를 가면 말노국(末盧國)이 있다.여기에는 집이 4천여 호나 되며 산기슭을 의지하여 바다를 끼고 산다. 초목이 너무 우거져, 길을 갈 때 앞사람을 볼수가 없을 정도이다. 물고기와 전복이 잘 잡힌다. 물이 깊지 않고 얕아 자맥질하여 잡아낸다.

 

東南陸行五百里, 到伊都國, 官曰爾支, 副曰泄謨觚·柄渠觚. 有千餘戶, 世有王, 皆統屬女王國, 郡使往來常所駐.

동남쪽 육지를 따라 5백리에 이도국(伊都國)이 있는데, 관리를 이지(爾支)라 罐0�, 그 다음은 설모고(洩漠觚), 병거고(柄渠觚)가 있다. 천여호가 사는데 대대로 왕이 있다.이들은 모두 여왕국(女王國)에 속해 있어 그래서 언제나 사신이 왕래하기도 하고 여왕국에 주재해 있기도 한다.


東南至奴國百里, 官曰兕馬觚, 副曰卑奴母離, 有二萬餘戶. 東行至不彌國百里, 官曰多模, 副曰卑奴母離, 有千餘家. 南至投馬國, 水行二十日, 官曰彌彌, 副曰彌彌那利, 可五萬餘戶.

동남으로 백리에 노국(奴國)이 있는데 관리를 사마고(兕馬觚) 그 다음으로 비노모리가 있다. 집수가 2만여호이다. 동쪽으로 백리에는 불미국(不彌國)이 있어 관리를 다모(多模)라 하고 그 다음은 역시비노모리가 있다. 이곳에는 집수가 천여가이다. 남쪽으로 투마국(投馬國)이 있어 바다로 2십일을 간다. 관리를 미미(彌彌)라 하고, 그 다음으로 미미나리(彌彌那利)가 있다. 이곳은 집수가 5만여호나가 된다.

 

南至邪馬壹國[집해2], 女王之所都, 水行十日, 陸行一月. 官有伊支馬, 次曰彌馬升, 次曰彌馬獲支, 次曰奴佳, 可七萬餘戶.

自女王國以北, 其戶數道里可得略載, 其餘旁國遠絶, 不可得詳.

남쪽으로 야마대국(邪馬壹國)이 있다. 이곳은 여왕이 있는 곳으로 바다로 10일을 가고 다시 육지로 한달을 가야 도달한다. 관리를 이지마(伊支馬)라 하고 다음을 미마승(彌馬升), 또 다음을 미마획지(彌馬獲支),노가지(奴佳鞮)가 있다,이곳에는 인가가7만여호이다.

이 여왕국으로부터 북쪽에 있는 나라의 호수와 길을 가히 얻어 기록한 것인데 그 나머지 주변의 나라는 너무 멀고 외져서 자세히 알 길이 없다.

 

次有斯馬國, 次有已百支國, 次有伊邪國, 次有都支國, 次有彌奴國, 次有好古都國, 次有不呼國, 次有姐奴國, 次有對蘇國, 次有蘇奴國, 次有呼邑國, 次有華奴蘇奴國, 次有鬼國, 次有爲吾國, 次有鬼奴國, 次有邪馬國, 次有躬臣國, 次有巴利國, 次有支惟國, 次有烏奴國, 次有奴國, 此女王境界所盡. 其南有狗奴國, 男子爲王, 其官有狗古智卑狗, 不屬女王. 自郡至女王國萬二千餘里.


그 나라들은 차례로 사마국, 이백지노국,이사국, 도지국, 미노국, 호고도국, 불호국, 저노국, 대소

국, 소노국, 호읍국, 화노소노국, 귀국, 위오국, 귀노국, 야마국, 궁신국, 읍리국, 지유국, 오노국, 노국,등이 있는데, 이것으로 여왕국의 국경은 끝난다.


그 남쪽에 구노국(狗奴國)이 있는데 이곳은 남자가 왕으로 있다. 관리를 구고지비구(狗古智卑狗)라 하는데 이들은여왕에게 소속되지 않는다.여기서 여왕국까지는 만이천여 리이다

 

 

男子無大小皆黥面文身. 自古以來, 其使詣中國, 皆自稱大夫. [집해3] 夏后少康之子封於會稽, 斷髮文身以避蛟龍之害. 今倭水人好沈沒捕魚蛤, 文身亦以厭大魚水禽, 後稍以爲飾. 諸國文身各異, 或左或右, 或大或小, 尊卑有差. 計其道里, 當在會稽·東冶之東. 其風俗不淫, 男子皆露, 以木緜招頭. 其衣橫幅, 但結束相連, 略無縫. 婦人被髮屈, 作衣如單被, 穿其中央, 貫頭衣之. 種禾稻·紵麻, 蠶桑·緝績, 出細紵·縑緜. 其地無牛馬虎豹羊鵲. 兵用矛·楯·木弓. 木弓短下長上, 竹箭或鐵鏃或骨鏃, 所有無與儋耳·朱崖同. 倭地溫暖, 冬夏食生菜, 皆徒跣. 有屋室, 父母兄弟臥息異處, 以朱丹塗其身體, 如中國用粉也. 食飮用籩豆, 手食. 其死, 有棺無槨, 封土作. 始死停喪十餘日, 當時不食肉, 喪主哭泣, 他人就歌舞飮酒. 已葬, 擧家詣水中澡浴, 以如練沐. 其行來渡海詣中國, 恆使一人, 不梳頭, 不去蟣蝨, 衣服垢汙, 不食肉, 不近婦人, 如喪人, 名之爲持衰. 若行者吉善, 共顧其生口財物[집해4], 若有疾病, 遭暴害, 便欲殺之, 謂其持衰不謹.


이곳에서는 남자는 애 어른 없이 모두 얼굴에 문신(文身)을하는데 옛날부터 내려온 것이다. 그 나라 사신이 중국에 이르러 스스로를 대부(大夫)라 칭했다 한다.하(夏)나라 소강(少康)의 아들을

회계(會稽-월越나라의 도읍지가 된 곳,절강성 소흥시)땅에 봉하였는데그는머리를 깍고 문신을 함으로써 교룡(蛟龍)의 해를 피한 일이 있었다.


이제 왜(倭)의 사람들이 물 속에 들어가 물고기와 전복,조개를 잘 잡는데 이때몸에 문신을 하여 큰 물고기와 바닷짐승이 싫어하게하기 위함이며 후에 점점 꾸미게 된 것이다.


여러 나라의 문신하는 기법은 각각 달랐다. 혹은 왼쪽에 하기도 하고 혹은 오른쪽에 하기도 하며 크고 작은 것도 각각이다. 그러나 이들은 문신의 위치 대소를 가지고 신분의 높고 낮음을 구별한다.


길의 이(里=리)수를계산하는 것은회계(會稽)동쪽으로 기준을 삼는다. 그들의 풍속은 음란하지 않고, 남자들은 모두 상투를 틀고 무명수건으로 머리를 감싼다.옷은 폭이 넓은 옷감을 서로 이어서 걸치는데 바느질 하지 않는다.


부인들은 머리를 올려 묶고 홑옷을 걸치는데 통채로 옷을 지어 중앙에 구멍을 뚫고 머리부터 옷을

입는다. 오곡과 벼를 가꾸어 먹을줄 안다. 또 누에를 처서 비단을 짜고 삼을 심어 베를 짠다.그래서 가는 모시와 비단이 생산된다.


그 곳에는 소와 말, 호랑이, 표범, 양,까치 같은 것은 없다. 병기로 창과 방패, 목궁을 쓰는데 목궁은 아래는 짧고 위가 길다. 대나무 화살에 쇠나 혹은 뼈로 화살촉을 만들어 꽂는다.


이곳 왜의 땅은 몹시 따뜻해서 겨울 여름없이 싱싱한 나물을 먹을수 있다.그들은 모두 신발을 신지 않는다.집이 있어부모형제가 함께 살지만 거처는 다르다.몸에는 주단(朱丹=붉은 색의 흙, 朱砂)을 발라 마치 중국에서 얼굴에 분을 바르는 것과 같다.


음식은 변두(籩豆=제사때 쓰는그릇)를 사용하고 손으로 밥을 먹는다. 사람이 죽으면 관이 있으나

곽은 없이 흙으로 무덤을 만든다.사람이 죽으면 십여일 동안 시체를 집에 두는데 이때는고기를 먹지 않는다.이 동안상주는 곡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술을 마신다. 장사를 마치면 온집안 식구가 물속에 들어가 목욕을 한다.마치 목욕하는 훈련과 같다.


그들이 사신으로 바다를 건너 중국에 갈때는항상머리에 빗질하지 않고, 이나 서캐도 잡지 않아서

의복이 더러운 사람 하나를 데리고 간다.이사람은고기도 먹지 않고 여자도 가까이 하지

않아서 마치 상을 치르는 사람과 같다.이 사람을 지최(持衰=상옷 최,약할 쇠)라고 한다.

그 일행에 만일 좋은 일이 있으면그 사람에게 재물을 주고 만일 일행중에 병이 나거나 해를 입는 일이 있으면 그 지최라는 사람이 행동을 잘못했다 해서 죽이려 한다.

 

 

出眞珠·靑玉其山有丹其木有柟·杼·豫樟·櫪·投橿·烏號·楓香其竹篠·桃支有薑·橘·椒·蘘荷不知以爲滋味有獼猴·黑雉其俗擧事行來有所云爲輒灼骨而卜以占吉凶先告所卜其辭如令龜法視火坼占兆其會同坐起父子男女無別人性嗜酒[一] 見大人所敬, 但搏手以當跪拜. 其人壽考, 或百年, 或八九十年. 其俗, 國大人皆四五婦, 下戶或二三婦. 婦人不淫, 不妒忌. 不盜竊, 少諍訟. 其犯法, 輕者沒其妻子, 重者滅其門戶. 及宗族尊卑, 各有差序, 足相臣服. 收租賦. 有邸閣國, 國有市, 交易有無, 使大倭監之. 自女王國以北, 特置一大率, 檢察諸國, 諸國畏憚之. 常治伊都國, 於國中有如刺史. 王遣使詣京都·帶方郡·諸韓國, 及郡使倭國, 皆臨津搜露, 傳送文書賜遺之物詣女王, 不得差錯. 下戶與大人相逢道路, 逡巡入草. 傳辭說事, 或蹲或跪, 兩手據地, 爲之恭敬. 對應聲曰噫, 比如然諾.


이곳에는 진주와 푸른 옥이 나고 산에는단사(丹砂)가 난다, 이곳에서는 매화나무(柟염=매화나무

염),상수리나무(杼서=상수리나무 서),예장나무(豫樟예장),가죽나무(杼櫪서력),박달나무(橿강)가 나고 또 오호(烏號)라는 활이 난다. 풍향도 난다. 대나무로는 가는대(筱竿소간=가는대 소. 낙싯대

간)와 살대 (桃支도지=대나무 도)가 난다. 또 생강(姜=생강 강)과 도라지(桔길=도라지 길), 산초(椒초=후추 초)와 생강의 일종인 양하(蓑荷)가 난다 그러나 이런것들이 맛을 내는 것인줄 알지 못한다.원숭이 와 검은 꿩도 있다.


그 지방 풍속을 보면 무슨일이 있으면뼈를 불태워 길흉을 점치는데 그 법이 거북점과 같아서 불빛을 보고 그 조짐을 알아낸다.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앉는데 부자간이나 남녀의 차이가 없다. 그 곳 사람들은 몹시 술을 좋아한다.


[위략에 그들의 풍속은 정확히 올바른 사시(四節期)를 알지 못하고 다만 봄이면 밭 갈고 가을이 되면 거두어 들이는 것으로서 일년으로 계산한다고 했다.]


어른을 공경 한다는 것이 겨우 손을 마주잡고 꿇어앉아절하는 것 뿐이다. 이들은 매우 오래 살아서 혹 백년을 넘겨사는 사람도 있고 또팔 구십세를 사는 사람도 있다.

(일본인들이 옛 부터 장수하는 것 같다)

또 그 나라의 상층사람들은 여자를사 오명을 데리고 살고하층 백성이라도 이 삼명의 여자를 데리고 산다. 여자들은 음란하지 않고, 질투를 하지 않는다. 도둑이 없고, 송사가 적다.


만일 법을 범하는 자가 있으면 그중에 죄가가벼운자는 그 처자를 죽이고 죄가무거운 자는 그 집안이나 가문까지 모두 멸해버린다. 귀하고 천함에 차이가 있으니 웃 사람에게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세금을 거두고 각각 집을 지니고 살며 곳곳에 시장이 있다.이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은대왜(大倭)를 시켜이를 감독한다. 여왕국의 북쪽에 특별히 큰 기관 하나를 두어서 여러 나라를 감독한다.모든 나라들은 이 기관을 몹시두려워 하고 꺼린다.이도국(伊都國)은 나라 안에 자사(刺史)를 두어다스린다.


왕이 경도나 대방군 그밖의 여러 한국에 사신을 보낸다. 왜국에 사신으로 갔을때는 보내는 문서나 물건들을 모두 여왕에게 바치는데 하나도 틀림이 없이 해야 한다.


하층 백성들이길에서 어른을 만나면 길가에 비켜선다. 전하는 말로는웅크리고 있거나혹은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땅을 짚어 공경하는 표정을 갖는다. 묻는 말에 대답할 때는 애(噫=대답소리 애)! 하고 소리를 내는데 이것은 그렇다는 뜻이다.

 

 

其國本亦以男子爲王, 住七八十年[집해5], 倭國亂, 相攻伐歷年, 乃共立一女子爲王, 名曰卑彌呼, 事鬼道, 能惑衆, 年已長大, 無夫壻, 有男弟佐治國. 自爲王以來, 少有見者. 以婢千人自侍, 唯有男子一人給飮食, 傳辭出入. 居處宮室樓觀, 城柵嚴設, 常有人持兵守衛


이 나라는 본래부터 남자를왕으로 삼어 왔었는데 칠 팔십년이 지난뒤에 나라가 어지러워 지자 몇해동안 서로 공격하고 싸워왔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여자로 왕을 삼고 비미호(卑彌呼)라고 불렀다.


이 여왕은 귀신을섬겨 온 나라 백성을 반하게 만들었다. 성인이 되어도 남편을 맞아들이지 않고 오직남자 동생 하나가 있는데 그가 여왕을 도와서 나라를 다스린다. 그는 왕이 된지 여러해가 되었건만 그의 얼굴을 본 자가 몇사람 없다. 계집종 천명이 그를 모시고 있고 그중에 유일하게 남자 한사람이 있어 음식을 갖다 올리고 말을 전하면서 출입한다. 궁실누각에 거처하며 성책이 견고하게 설치되어있고 사람들이 언제나 병기를 가지고 수위한다.

 

 

女王國東渡海千餘里復有國皆倭種又有侏儒國在其南人長三四尺去女王四千餘里又有裸國·黑齒國復在其東南船行一年可至參問倭地絶在海中洲島之上或絶或連周旋可五千餘里.


여왕국에서 바다를 건너 동쪽으로 일천여 리를 가면 거기에 또 나라 하나가 있는데 이것도 모두 왜의 종족이다. 또 수유국(侏儒國)이란 나라가 남쪽에 있는데 그곳 사람들은 키가 삼 사척이다. 이 나라는 여왕국에서 거리가 사천여 리가 된다.


또 나국(裸國)과 흑치국(黑齒國-당나라때 백제출신 장군 흑치상지黑齒常之·630∼689의 출신지 그의 선조가흑치에 封해졌다, 중국 최남단 광시(廣西) 장족 자치구 ) 등의 나라가 그 동남쪽에 있고 이곳은 배를 타고 일년이나 간다. 이 나라는 모두 왜국 땅으로 바다 가운데 섬으로 혹 연해 있기도 하고 혹 끊어져 있기도 하다. 이곳은 주위가 오천여 리나 된다.

 

 

景初二年六月, 倭女王遣大夫難升米等詣郡, 求詣天子朝獻, 太守劉夏遣吏將送詣京都. 其年十二月, 詔書報倭女王曰:「制詔親魏倭王卑彌呼, 帶方太守劉夏遣使送汝大夫難升米·次使都市牛利奉汝所獻男生口四人, 女生口六人·班布二匹二丈, 以到. 汝所在踰遠, 乃遣使貢獻, 是汝之忠孝, 我甚哀汝. 今以汝爲親魏倭王, 假金印紫綬, 裝封付帶方太守假授汝. 其綏撫種人, 勉爲孝順. 汝來使難升米·牛利涉遠, 道路勤勞, 今以難升米爲率善中郞將, 牛利爲率善校尉, 假銀印靑綬, 引見勞賜遣還. 今以絳地交龍錦五匹[二]·絳地縐粟罽十張·蒨絳五十匹·紺靑五十匹, 答汝所獻貢直. 又特賜汝紺地句文錦三匹·細班華罽五張·白絹五十匹·金八兩·五尺刀二口·銅鏡百枚·眞珠·鉛丹各五十斤, 皆裝封付難升米·牛利還到錄受. 悉可以示汝國中人, 使知國家哀汝, 故鄭重賜汝好物也.」


경초 2년(위 명제 238년경)6월에 왜국 여왕이 대부 난두미(難升米)등을 보내서 군에 와서 천자를

뵙고 물건을 바치겠다고 청하자 이에 태수 유하(劉夏)가 사신을 보내서 서울에 가서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해 12월에 천자가 조서를 내려 여왕에게 회신 하기를 이제 조서를 써서 친위왜왕(親魏倭王) 비미호에게 알리노라 지금 대방태수 유하가 사신을 보내와서 너희 대부 난두미와 부사 도시우리가 갖다 바치는 남자 4명과 여자 6명, 반포 두필을 받았다. 너희 나라는거리가 몹시 먼데도 사신을 보내 물건을 바쳐왔으니 이는 오로지 너의 충성스런 마음으로 알고 너를 귀엽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너를 친위왜왕으로 삼는다.그리고 금으로 만든 인과 붉은 빛 인끈을 봉해서 대방태수에게 보내는 것이니 너희는 힘써 효도하고 잘 순종토록 하라. 너희가 보낸 사신 난두미와 도시우리는 길이 먼데 수고가 많았기로 이제 난두미로 솔선중랑장을 삼고 도시우리는 솔선교위를 삼아 인과 인끈을 주어 불러보고 위로한 다음 돌려 보내는 바이다.그리고 강지교룡금(絳地交龍錦) 오필과 강지추속계(絳地約粟罽) 십장,청강(蒨絳) 오십필,감청(紺青) 오십필을 주어 너희가 바쳐온 공물에 답 하는 것이다.


또 특별히 너에게 감지구문금(紺地句文綿) 삼필과 새반화개(細班華罽) 오장,백견(白絹) 오십필,금 팔냥,오척도(五尺刀) 두자루,동경(銅鏡) 일백개,진주와 연단(鉛丹=붉은 색 납가루)각 오십근씩을 모두포장하여 난두미와 도시우리에게 주어 돌려 보내는 터이니 너희는 이를 갖다가 너희나라 사람들에게 일일이 보여주어서 우리나라가 너희를 아끼는 뜻을 알도록 하라. 그래서 정중하게 이같은 좋은 물건을 너희에게 하사하는 바이다.라고 했다.


정시 원년에 태수 궁준(弓遵)이 건중교위 제준(梯俊)를 보내서 조서와 인수를 가지고 왜국에 가서 왜왕을 뵙고 아울러 금맥(金帛=금과 비단)과 금계(錦罽=양탄자),칼,동경,채물(采物)등을 하사하였다. 이에 왜왕은 표문을 올려 조서와 물건을 내린 은혜에 회답해 왔다.


정시4년(위 애제243년경) 왜왕은 다시 사신으로 대부 이성기(伊聲耆)와 액사구(掖邪狗)등 8인을 보내서 포로 몇명과 왜금, 강청겸, 금의,맥포, 단목,단궁시 등을 바쳐왔다. 이에 액사구등에게 한결같이 솔선중랑장의 벼슬을 주고 인수를 주었다. 다음 6년에 조서를 내려 왜국의 난두미와 황동(黃幢)에게 인수를 주었다.


8년에는 태수 왕기가 와서 보고 하기를 왜국의 여왕 비미호화 구노국(狗奴國)의 남왕 비미궁호소(卑彌弓呼素) 사이에 불화가 생겨 왜국에서는 재사(載斯) 오월(烏越)을 보내서 그들의 서로 공격하는 모양을 보고 했다고 한다.이에 중국에서는 색조연사(塞曹掾史) 장정(張政) 등을 보내서 황동에게 조서를 내려 난두미에게 벼슬을 주고 화친하도록 타일렀다.


비미호가 죽자 크게무덤을 만들어 직경이 백여보나 되게 한 다음 여기에 노비 백여명을 순장했다.

비미호의 뒤를 이어 다시 남왕을 세웠으나 온 나라 사람들이 여기에 복종하지 않고 저희들 끼리 서로 싸우고 죽여서 이때 죽은 사람만도 천여명이나 되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하는 수 없이 비미호의 일가 딸이 되는 대여(壹與)를 세웠다.


이때 대여의 나이는 겨우 13세였는데 비로소 나라안의 인심이 조용해 졌다.이때 장정등이 대여를 타이르는 글을 보냈더니대여는 왜국의 대부 솔선중랑장 액사구등이십명을 보내와서 남녀 포로삼십명과흰구슬 오천개, 청대구주(靑大句珠) 두장, 이문잡금(異文雜錦) 이십필을 바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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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비사인 | 작성시간 13.07.01 가라는 일반적으로 가야연맹체의 맹주국이었던 금관가야나 대가야로 보고 있습니다. 임나와 가라라고 쓰인 경우에는 임나를 금관가야, 가라를 대가야로 봅니다. 그 이유는 우륵이 지은 12곡이 12국을 말하는데, 여기에서 상가라도를 대가야, 하가라도를 금관가야로 보기 때문이죠. 또한 이를 남가라로 보고 있습니다. 가야가 존재하던 당시 가야라는 명칭보다는 오히려 가라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보이고 있죠. 광개토왕릉비문에서 나오는 임나가라를 하나로 보는 것은, 이때 금관가야가 큰 피해를 입고 대가야는 피해를 덜 입어서 향후 맹주국으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임나가라는 금관가야 자체를 가리킨다고 보죠.
  • 답댓글 작성자비사인 | 작성시간 13.07.01 일본이 중국에 보낸 국서를 보면 아시듯이 거기에서는 또 임나와 가라가 별개로 쓰입니다. 그래야 6개국이든 7개국이든 될 수 있으니 말이죠. 그래서 제가 자이수님의 추정 또한 맞긴 하지만, 워낙 이 문제가 복잡한지라 말을 아낀 것입니다. 구야국에서 가라국으로 변한 것은 고고학적 자료와 서로 비교하여, 좀 더 이전에 비해서 더 강성해지고 무덤이 규모도 커진 것과 연관시켜서 보고 있기도 하니 참고 바랍니다.
  • 작성자자이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7.01 (自倭)背急追 至任那加羅 從拔城 城卽歸服 安羅人戌兵 (拔)新羅城 (鹽)城 倭寇大潰 城(內)」
    ==>
    왜의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와 가라에 이르러, 따라가 성을 함락하니, 성(城)이 곧 항복하였다.
    이렇게 해석이 되야 뒤에 나오는 <성이 곧 항복하였다>와 말이 이어지지 않나 생각됩니다.
  • 작성자감내 | 작성시간 13.08.08 학운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열정 어린 글 공부하고 있습니다. <위지>라고 한 자료는 흔히 그렇게 통용해 왔는데
    앞으로 <위서>라 하심이 옳을 듯합니다. <위지>란 책은 없기에 그러하지요.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문운을 빌며.
  • 답댓글 작성자자이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8.08 그렇군요 앞으로 <위서>라 하게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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