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리스트
-
작성자 비사인 작성시간13.06.30 해당 글들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중국정사조선전에 기재되어 있는 내용들이며, 관련 글들은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주석과 함께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것을 가져오신 듯 한데, 한자를 한글로 읽으면서 잘못 읽은게 더러 보이네요. 구사한국(狗邪韓國)이라 읽었는데, 이는 주로 구야한국으로 읽고 있습니다. 이는 같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실려있는 변진구야국(弁辰狗耶國)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오늘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금관가야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부분들을 주의하셔서 읽길 바라며, 아무래도 본래의 책이나 사이트를 직접 보시는 게 더 도움이 되실겁니다.
-
답댓글 작성자 자이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7.01 맨처음에 구야한국(전기)->임나가라(중기)->금관가야(후기)로 바뀐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임나가라에 대해서는 당시 중국과 왜5왕에는 별개로 보기도 하고..
광개토왕비에서도 저는 강하게 별개로 쓰인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임나가라 종발성>을 임나가라의 종발성에 이르러..
보통 이렇게 해석을 하는데.. 혹시 <임나와 가라에 이르러, 따라서 성을 함락하니> 라고 볼수도 있지않나 생각됩니다.
그 당시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는 국가로 인정을 하지만 임나(왜와 관련하여)와 가라는 나라로 여기지 않아서 <종발성>도 성이름이 아닌 그냥 <어떤 성을 함락하였다> 정도의 의미가 있지않나 생각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 비사인 작성시간13.07.01 가라는 일반적으로 가야연맹체의 맹주국이었던 금관가야나 대가야로 보고 있습니다. 임나와 가라라고 쓰인 경우에는 임나를 금관가야, 가라를 대가야로 봅니다. 그 이유는 우륵이 지은 12곡이 12국을 말하는데, 여기에서 상가라도를 대가야, 하가라도를 금관가야로 보기 때문이죠. 또한 이를 남가라로 보고 있습니다. 가야가 존재하던 당시 가야라는 명칭보다는 오히려 가라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보이고 있죠. 광개토왕릉비문에서 나오는 임나가라를 하나로 보는 것은, 이때 금관가야가 큰 피해를 입고 대가야는 피해를 덜 입어서 향후 맹주국으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임나가라는 금관가야 자체를 가리킨다고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