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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토론방

百濟書記(백제서기)

작성자정성일|작성시간09.02.26|조회수1,039 목록 댓글 13

百濟書記(백제서기)


百濟者 大神水之義也 百濟俗重武 而不修文 且多忌諱 故久無史 至近肖古王時 高興始作史 曰書記

백제란 대신수(大神水, 大神은 인류를 비롯한 우주만물의 창조자)의 뜻이다. 백제의 속(俗, 관습, 대중적인 것)은 무(武)를 중요시 하고, 문(文, 글자, 문서, 책, 여기서는 史書의 의미로 쓰였다)를 정리하지 않았으며, 또 기휘(忌諱, 꺼리고 싫어하다, 여기서는 숨기다의 의미로 쓰였다)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 연유로 오랫동안 사서가 없었는데, 근초고왕(近肖古王)때 이르러 고흥(高興)이 처음으로 사서를 짓고 서기(書記)라고 이름 지었다.

≪비교≫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 30년 기사

古記云 “百濟開國已來 未有以文字記事 至是得博士高興 始有書記” 然高興未嘗顯於他書 不知其何許人也

고기(古記)에는 말하기를 “백제는 나라를 창건한 이래 문자로 사건(事)을 기록함이 없었다. 이 때에 이르러 박사(博士) 고흥(高興)을 얻어 비로소 서기(書記)를 갖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고흥은 일찍이 다른 책에는 나타나지 않는 연유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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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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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정성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3.13 삼국지위지동이전의 부여전중에 의려와 의라의 기사는 서부여의 것이고 나머지는 백제의 것입니다. 위거가 곧 간위거인데, 위거가 작은 아버지 우가가 다른 마음을 품었다면 죽이고 재산을 몰수하여 관(위나라 관부)에 바칩니다. 사실 진짜로 죽인것이 아니라 재산만 바친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천왕을 공격했을 때 뒤를 친 책임을 물으려 하니까 알아서 백제가 상납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위나라의 마음을 달래지 못하자 결국 위거가 왕위에서 물러납니다. 초고왕이 아들 구수에게 선위를 하는 것이죠.
  • 답댓글 작성자정성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3.13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중에서 유독 백제왕들만 일찍 죽습니다. 그만큼 백제의 위치가 왕노릇하기 힘들었다는 뜻입니다. 백제는 대방고지에서 일어났는데, 지금의 통설은 한강을 대방고지라고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죠. 자신들의 설이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고 덤비고 있지요.
  • 작성자부여곤지 | 작성시간 09.03.14 정성일 님의 글 잘읽었습니다. 남당유고에도 백제관련 내용이 많다면 좀 찾아보고 같이 검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가지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백제가 숨겨야할 내용이 많아서 기록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왜냐면 비루한 역사를 기록하지 않는 것보다 조작하여 자랑스럽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서기'를 편찬함에 있어서 이전의 기록이 없었다는 얘기는 전혀 기록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형식을 갖춘 史'가 없었던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 작성자부여곤지 | 작성시간 09.03.14 그리고 토지공사의 비문이라하심은 '동천왕벽비'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저도 자세히 본적은 없지만 참고토록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정성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3.17 제가 말한 토지공사의 비문이라함은 부여곤지님이 말씀하신 동천왕벽비를 말합니다. 물론 의도하는 바는 전혀 다르지만 현재에 대중들에게는 동천왕벽비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이 비문을 해석한 이의 해설문과 저의 해석이 천양지차입니다. 제가 해석하는 주체는 백제이나, 대부분은 고구려로 해석합니다. 왜냐하면 비문에는 고구려와 백제가 동시에 등장하는데 분명히 백제가 고구려의 앞에 있습니다. 이는 비문을 쓴 주체가 고구려가 아닌 백제임을 의미합니다. 사실 비문을 풀어야만 백제의 대방이 보이고, 백제가 점유한 요서지역도 보이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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