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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카오스 작성시간09.03.02 결국, 백제의 역사는 '근초고왕 대에 와서야 비로소 문서로서 기록되게 되었다는 것'을 '두 사서에서 공통으로 말하고 있군'요..그런데../근초고왕 대에 와서야 비로소/..라는 것은 좀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이는데,./두 사서에서 공통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은 타당해 보입니다. 다만, 남당유고는 그 원전에 대한 언급이 없으나..백제본기는 그 원전이 '古記'라고 하고 있으므로 이 두사서가 공통성을 갖을려면,../남당유고=古記/..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다고 보입니다. 즉, 남당유고는 소위 '古記'급 사서인 셈이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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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정성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03.13 제가 당초에 기대했던 답들과는 관계가 먼 이야기들 입니다. 근초고왕때와서 사서를 기록한 것은 문자를 모르는 무식쟁이여서가 아니라, 백제에서 숨겨야 할 기록들이 많았던 이유에서 입니다. 백제는 공손씨의 연(대방)과 고구려에 끼여 있었고, 연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는 위나라와 고구려에 끼여 있었으며, 심지어 선비와도 접촉하고 있었습니다. 위나라가 공손씨를 멸망시킬 때 백제는 뒷짐지고 있었으며, 공손씨와 백제는 외적으로는 친화, 내적으로는 망해라였지요. 공손씨의 협박에 의해 굽신거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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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정성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03.13 그리고 연나라가 망하자, 위나라에게 굽신거립니다. 심지어 마한 소국이라 숨깁니다. 당연히 왕칭을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소국으로 대국에 귀부하길 청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위나라가 본 마한소국들이 백제에 의해 통제됨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위나라가 가까이 있는 백제는 무시하고 고구려로 쳐들어 갑니다. 백제가 많은 식량까지 내어주므로 철저히 속임을 당한거죠. 관구검이 고구려로 쳐들어가 동천왕을 치는데 갑자기 후방에서 수송로와 퇴로가 막히고 맙니다. 그 이전에 동천왕이 위나라의 서안평을 칠때 10만의 군사를 잃어가며 승리합니다. 전쟁에서는 승리하였지만 전략상의 실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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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정성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03.13 삼국지위지동이전의 부여전중에 의려와 의라의 기사는 서부여의 것이고 나머지는 백제의 것입니다. 위거가 곧 간위거인데, 위거가 작은 아버지 우가가 다른 마음을 품었다면 죽이고 재산을 몰수하여 관(위나라 관부)에 바칩니다. 사실 진짜로 죽인것이 아니라 재산만 바친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천왕을 공격했을 때 뒤를 친 책임을 물으려 하니까 알아서 백제가 상납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위나라의 마음을 달래지 못하자 결국 위거가 왕위에서 물러납니다. 초고왕이 아들 구수에게 선위를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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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여곤지 작성시간09.03.14 정성일 님의 글 잘읽었습니다. 남당유고에도 백제관련 내용이 많다면 좀 찾아보고 같이 검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가지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백제가 숨겨야할 내용이 많아서 기록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왜냐면 비루한 역사를 기록하지 않는 것보다 조작하여 자랑스럽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서기'를 편찬함에 있어서 이전의 기록이 없었다는 얘기는 전혀 기록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형식을 갖춘 史'가 없었던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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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정성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03.17 제가 말한 토지공사의 비문이라함은 부여곤지님이 말씀하신 동천왕벽비를 말합니다. 물론 의도하는 바는 전혀 다르지만 현재에 대중들에게는 동천왕벽비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이 비문을 해석한 이의 해설문과 저의 해석이 천양지차입니다. 제가 해석하는 주체는 백제이나, 대부분은 고구려로 해석합니다. 왜냐하면 비문에는 고구려와 백제가 동시에 등장하는데 분명히 백제가 고구려의 앞에 있습니다. 이는 비문을 쓴 주체가 고구려가 아닌 백제임을 의미합니다. 사실 비문을 풀어야만 백제의 대방이 보이고, 백제가 점유한 요서지역도 보이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