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의문으로 남았던 백제의 모씨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는 듯합니다.
옛날에 이 성씨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왕들에게는 죽어서 자손들이 제사지내주어 죽어서도 영원히 산다는 믿음이 있었죠. 그래서 순장도 하고, 고구려에서는 연호를 지정하여 왕들이나 귀족의 무덤을 지키며 제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암튼 백제와 관련하여 구이신왕을 기준으로 한성백제의 씨가 마르고 구태백제에서 왕위를 이어가는데, 비유왕 다음이 개로왕이고, 개로왕은 장수왕에 의해 시해당합니다. 그 이후 왕이 문주왕인데, 그동안 저도 깜박 속아 개로왕의 아우라고 생각했는데, 신라사를 연구하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문주왕과 삼근왕 동성왕이 모씨입니다.
이 문주왕이 온조세력에 의해 시해되자 그 아들 삼근왕이 왕위를 이어가지만 또 2년만에 온조세력인 해씨에 의해 시해되고..
동성왕는 개로왕의 아들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문주왕의 둘째아들 또는 조카뻘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이 모씨입니다. 동성왕 또한 시해당합니다.
이후 무령왕은 우씨인 곤지의 아들로 구태백제를 이어가게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쭈~욱 의자왕까지 구태백제가 백제를 다스린 것으로 보입니다.
| 19 | 구이신왕(久爾辛王) | 구이신(久爾辛) | 420년 ~ 427년 | 전지왕의 아들. | |
| 20 | 비유왕(毗有王) | 비유(毗有), 비(毗) | 427년 ~ 455년 | 구이신왕의 아들. 또는 서자 | |
| 21 | 개로왕(蓋鹵王) | 근개루왕 | 경사(慶司), 경(慶) | 455년 ~ 475년 | 근개루왕(近蓋婁王). 비유왕의 아들. |
| 22 | 문주왕(文周王) | 문주(文周), 모도(牟都), 도(都) | 475년 ~ 477년 | 문주왕(汶洲王). 개로왕의 아들, 혹은 개로왕의 동생. | |
| 23 | 삼근왕(三斤王) | 삼근(三斤) | 477년 ~ 479년 | 문주왕의 아들. | |
| 24 | 동성왕(東城王) | 동성왕[3] | 모대(牟大), 마모(摩牟), 마제(麻帝), 대(大) | 479년 ~ 501년 | 문주왕의 조카, 좌평 곤지의 아들. |
| 25 | 무령왕(武寧王) | 무령왕 | 사마(斯麻), 융(隆) | 501년 ~ 523년 | 동성왕의 아들, 혹은 곤지의 아들. |
| 26 | 성왕(聖王) | 성왕 | 명농(明襛), 명(明) | 523년 ~ 554년 | 무령왕의 아들. |
다음검색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미주가효 작성시간 13.09.03 p.s.
참고로 현대어로 1음절인 단어가 과거에 2음절이었던 예는 상당히 많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드리자면,
가히 -> 가이 -> 개(犬)
무수(ㅿ) -> 무우 -> 무
그리고 현대어에서도 말을 줄일 때 모음을 없애고 자음 위주로 줄이는 현상은 종종 발생합니다.
이녀석아 -> 인석아 (녀의 모음 'ㅕ' 생략하고 ㄴ이 앞 발음의 받침으로 삽입)
이놈아 -> 인마 (놈의 모은 'ㅗ' 생략하고 초성 ㄴ은 앞 발음의 받침으로, 종성 ㅁ 은 뒷 발음의 초성으로 삽입)
요컨대 현대어의 단음절 어휘가 있다고 하여 그것이 백제 당시에도 당연히 단음절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
작성자비사인 작성시간 13.09.03 애초에 기본 명제부터가 잘못되었습니다. 흉노와 선비는 서로 다른 계통입니다. 선비는 동호족에 포함되며, 이들은 오환과 함께 흉노의 동쪽에 있었죠. 흉노는 몽골고원에서 기원하였고, 선비는 동북평원 쪽으로 보기 때문에 계통이 다릅니다. 물론 북방민족은 피가 늘 섞이긴 하지만, 최소 동양사학에서 이야기 하는 북방민족의 계통에 대해서 대강 인지하시고 보시면 북극의눈물님의 말씀 중에서 성립이 안되는게 다수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백제 왕성 중에서 모씨가 있다는 것은 고대의 성명 개념을 인지를 못해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미주가효님께서 옳게 지적하나, 그에 대해서도 무시하듯이 넘어가는군요.
-
작성자비사인 작성시간 13.09.03 다시한번 이야기를 드리지만 북극의눈물님께서 범하는 가장 큰 오류는 기존 사학계나 고고학계에서 논의된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소화를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생각+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을 보고 역사를 판단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문에 회원분들과 마찰이 생기면, 사관의 차이라고 하거나, 약한 근거를 절대적인 것으로 신봉하면서 다른 회원분들이 말 해봤자 소용없다라는 식으로 생각이 들게 된다는 것이죠. 일단 학계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기초로 삼은 후, 그 모순점을 파악하여 문제를 지적하는게 옳은 태도인데, 기초를 쌓지 않고 그 위에 탑을 쌓으려고 하니 계속 흔들거리는 것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북극의눈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09.03 모씨가 김씨다 라는 것은 저의 섣부른 판단으로 보입니다. 이점은 잘못을 시인합니다. 제목과 내용도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백제의 문주와 삼근 동성왕이 모씨라는 것은 맞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비사인 작성시간 13.09.03 위에 올리신대로 문주왕은 모도(牟都)라고도 하며, 이는 오히려 음운학적으로 문주와 모도가 서로 말이 통하거나 유사하다는 식으로 접근해야합니다. 주몽과 추모가 그러하듯이 고대에서는 유사한 발음을 한자로 표기할 때 약간 다른 경향을 보이며, 이는 후삼국시대까지도 그러한 양상이 지속됩니다. 따라서 단지 牟자가 보인다고 해서 성으로 보면 안되는 것이죠. 동성왕도 마찬가지로 모대, 마모, 마제라고 하는게 牟자와 摩자, 그리고 麻자가 당시 음에서는 서로 통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이야기는 하기 힘들며 성으로 볼 여지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