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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13.09.03 질문들입니다.
1. 원래 흉노선비족이라 모씨였는데, 전한시대인 한무제가 김씨라는 성을 주었다고 하는군요.
=> 한무제가 흉노인 김일제에게 김씨 성을 주는 일화를 언급하신 것 같군요. 김일제가 김씨 성을 받기 이전의 흉노족의 성씨가 '모' 씨라는 주장의 근거를 보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흉노선비족이라는 정체불명의 종족은 대체 뭡니까?
2. 후한이 성립되면서 신나라편을 든 김씨들을 압박하자 일부는 바다건너 경주로 갔고, 고구려가 낙랑을 공격하자 낙랑에 남아있던 김씨들이 또 배타고 내려오니 그곳이 경주입니다. 이때가 대략 300년경, 일단 사로국을 점령하고 뒤이어 조문국을 점령하게 되는거죠 -
답댓글 작성자 북극의눈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9.03 흉노선비족은 대단히 종류가 많습니다. 그 일파가 모용선비이구요. 이것은 좀더 연구를 해 보아야 알 수 있겠으나 문주왕이 모도라는 것은 신라왕족일 가능성이 많다는 겁니다.
예전에 문주가 신라의 1만군사를 이끌고 왔다라는 기사가 있는데, 이는 문주가 신라왕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여집니다. 신라사람이 아니면 그 당시 신라와 백제가 대립했던 시기에 어찌 군사를 1만이나 내 주었겠습니까? 저도 처음엔 이 것이 이해가 안되어 문주가 일본으로 군사원조를 가지 안았겠냐 생각했지만 모도(문주)가 신라왕족이라 생각하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김씨가 원래 모씨라 하는 것은 가설일 뿐입니다.다만 문주와 동성왕이 모씨라는 것은 -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13.09.03 => 기원전후 및 4세기 초반에 '도망치는' 자들이 해상으로 대단위의 병력을 이끌고 도주했다는 말씀이시군요? 더우기 서해안 쪽은 백제나 마한이 있었으므로 그들을 피해 가려면 연안항해도 불가능하고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채 한반도를 빙 돌아서 경주까지 이동해야 하고 말이죠. 이런 주장이 당대 역사에 대한 상식과 충돌한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3. 문주왕과 삼근왕 동성왕이 모씨입니다.
=> 근거 제시 부탁드립니다. 설마하니 문주왕의 이름이 '모도' 라고 기록된 예가 있다거나 동성왕의 이름을 '모대' 라고 기록한 예가 있다는 근거는 아니길 바랍니다. 그런 식이면 왕족인 '곤지' 는 곤씨이고 '사마'(무령왕)는 사씨여야 한다는 -
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13.09.03 한반도가 무주공산이라구요? 훗날의 중앙집권화된 고-백제-신의 강대한 영토국가가 없다는 말과, 한반도에 정치세력이 없어서 무주공산이라는 말이 같은 말이라고 오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삼한시대의 한반도에조차도 당연히 무수한 정치세력들이 있고, 절대 무주공산인 곳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한반도가 무주공산이어서 서해안에 딱히 대단한 세력이 없었다면 요동이나 낙랑에서 왔다는 김씨 집단들은 왜 미련하게 한반도를 빙빙 돌아서 경상도까지 가야 했을까요? 그냥 가까운 경기도나 충청, 전라도 쪽에 바로 정착해 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또한 미리 준비하고 원정을 떠난다면 몰라도 도망치듯 쫓겨 가는 집단이 현지의 -
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13.09.03 소국들을 쉽게 타파할 정도로 그렇게 대단한 무력을 충분히 갖고 배로 갈 수 있었다는 것도 쉽게 납득하긴 어렵습니다.
2~3세기에 삼한 소국들이 강성해져서 낙랑-대방에서도 껄끄럽게 생각했다거나, 아예 삼한 소국이 낙랑-대방과 붙은 '기리영 전투' 같은 걸 생각해도 한반도 지역을 무주공산인 양 생각하는 건 무리입니다.
이 이야기를 조금 구체적으로 보자면,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한전' 에 의하면 후한 환제, 영제(2세기 중후반) 때부터 한의 소국들이 강성해져서 낙랑, 대방이 이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桓靈之末, 韓濊彊盛, 郡縣不郡縣不能制, 民多流入韓國) -
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13.09.03 ..... 북극의눈물님, 사마가 일본어로 '시마'(섬, 島)에 해당한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마' 의 뜻을 무엇인지를 논의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두 글자 이름들이 나올 때 그 첫 글자를 성씨로 보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왜 엉뚱하게 사마의 뜻이 섬이라는 이야기를 하십니까?
우리는 백제어를 정확히 재구성하지 못합니다. 백제어가 신라어와 비슷했다손 치더라도 방언의 문제도 있으니 모든 어휘의 음가가 같았을 리는 없지요. 백제어로 섬을 '섬' 이라고 단음절로 발음할 수도 있지만 일본어 시마처럼 2음절로 발음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이 명확치 않다면 일단 2음절로 -
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13.09.03 p.s.
참고로 현대어로 1음절인 단어가 과거에 2음절이었던 예는 상당히 많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드리자면,
가히 -> 가이 -> 개(犬)
무수(ㅿ) -> 무우 -> 무
그리고 현대어에서도 말을 줄일 때 모음을 없애고 자음 위주로 줄이는 현상은 종종 발생합니다.
이녀석아 -> 인석아 (녀의 모음 'ㅕ' 생략하고 ㄴ이 앞 발음의 받침으로 삽입)
이놈아 -> 인마 (놈의 모은 'ㅗ' 생략하고 초성 ㄴ은 앞 발음의 받침으로, 종성 ㅁ 은 뒷 발음의 초성으로 삽입)
요컨대 현대어의 단음절 어휘가 있다고 하여 그것이 백제 당시에도 당연히 단음절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
작성자 비사인 작성시간13.09.03 애초에 기본 명제부터가 잘못되었습니다. 흉노와 선비는 서로 다른 계통입니다. 선비는 동호족에 포함되며, 이들은 오환과 함께 흉노의 동쪽에 있었죠. 흉노는 몽골고원에서 기원하였고, 선비는 동북평원 쪽으로 보기 때문에 계통이 다릅니다. 물론 북방민족은 피가 늘 섞이긴 하지만, 최소 동양사학에서 이야기 하는 북방민족의 계통에 대해서 대강 인지하시고 보시면 북극의눈물님의 말씀 중에서 성립이 안되는게 다수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백제 왕성 중에서 모씨가 있다는 것은 고대의 성명 개념을 인지를 못해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미주가효님께서 옳게 지적하나, 그에 대해서도 무시하듯이 넘어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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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사인 작성시간13.09.03 다시한번 이야기를 드리지만 북극의눈물님께서 범하는 가장 큰 오류는 기존 사학계나 고고학계에서 논의된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소화를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생각+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을 보고 역사를 판단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문에 회원분들과 마찰이 생기면, 사관의 차이라고 하거나, 약한 근거를 절대적인 것으로 신봉하면서 다른 회원분들이 말 해봤자 소용없다라는 식으로 생각이 들게 된다는 것이죠. 일단 학계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기초로 삼은 후, 그 모순점을 파악하여 문제를 지적하는게 옳은 태도인데, 기초를 쌓지 않고 그 위에 탑을 쌓으려고 하니 계속 흔들거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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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비사인 작성시간13.09.03 위에 올리신대로 문주왕은 모도(牟都)라고도 하며, 이는 오히려 음운학적으로 문주와 모도가 서로 말이 통하거나 유사하다는 식으로 접근해야합니다. 주몽과 추모가 그러하듯이 고대에서는 유사한 발음을 한자로 표기할 때 약간 다른 경향을 보이며, 이는 후삼국시대까지도 그러한 양상이 지속됩니다. 따라서 단지 牟자가 보인다고 해서 성으로 보면 안되는 것이죠. 동성왕도 마찬가지로 모대, 마모, 마제라고 하는게 牟자와 摩자, 그리고 麻자가 당시 음에서는 서로 통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이야기는 하기 힘들며 성으로 볼 여지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