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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토론방

Re:Re: 7세기 초.중엽때 삼국인구는?

작성자연개소문1|작성시간05.08.09|조회수241 목록 댓글 8

궁금한 부분입니다..
별 아는 자료는 없고 추측인데..
고구려.백제.신라 합쳐 1000만은 족히 되지 않앗을까 생각됩니다.(본인 생각..추측일뿐)

삼국사기 기록대로라면
고구려 69만 7000여호
백제 76만여호
신라....등등

당시에 가족제도나 평균수명을 자세히 알수는 없으나..
고구려 69만7000여 곱 평균 1가구 4명일때= 278만+&
1가구 4.5명일때= 313만+_
1가구 5명일때 = 345만+_

백제
76만여호 1가구 4명= 304만
1가구 4.5명= 342만
1가구 5명= 380만

신라....등등 했을때
라는 등식으로 1000만추청 합니다만..
사실 삼국인구1000만 그리 불가능한 인구는 아니라고 봅니다.

당시 중원 수나라문제(양제) 전성기때 5000만..
당나라태종(세민이)때 4500만이라고 잃고 들었습니다. (현재 중국인구 13억+& )

어느분 말대로 당시에 오늘날 처럼 인구센서스 조사가 활발하거나 정확하게 이루어졌을수는
힘들고.. 더군다나 대외활동이 잦앗을 고구려. 백제의 유동인구들..
그리고 고구려에 속민으로 잇던 다수의 거란과 말갈족들이 이 호수에 들어갔는지 안들어갓는지.. 안들어 갔다면.. 더 많았을것이라 봅니다.
본인은 안 들어갔다고 믿는편입니다만..

거란의 경우 삼국이 망한후 훗날 10세기 고려에 침입할때 80만대군이 쳐들어 왓던일등..
당시 고려는 가동병력이 40여만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 임진년때 16세기말에 조선인구가 600여만으로 들었읍니다만

인구 1000만 오늘날 서울인구만 1200만이 넘습니다.
1890년대 말 2000만 동포 단결운운하며 애국지사중 어느분이 말햇으며..
불과 1960-70년대 3000만 인구거론이 사회적으로 나왓으며
현재 4500만입니다. 그것도 북한제외(2500만 내외)
불과 100년만에 남북한의 인구는 100년전보다 5000만 내외가 늘었습니다.

서울의 면적은 삼국이 차지한 영토에 수백분의 일에 지나지 않지요.
쉽게 표현해 지금의 서울인구정도(1000만 내외)가 그 당시에
한반도 남북.. 만주.연해주.. 왜에 까지 분포해서 활동을 했다고 보면 ...글쎄

그러다가 7세기 중엽 고구려. 백제의 멸망과 더불어 대대적 인구이동이 있었다 봅니다.
고.백의 상당수의 인구가 당에 포로로 잡혀가거나 또는 전쟁중에 죽거나 상해를 입고
한편으로 적지않은 인구가 왜(일본)으로 상당기간 건너갓을것이라 봅니다.

또한 북으로 거란과 말갈은 떨어져 나가고 고구려 멸망이후 30여년후 발해(대진)건국이후
발해의 인구는 독립되어 있다 200여년 뒤 발해멸망후 상당수의 발해인 말갈인들이 거란의 요에 편입되거나 귀화.복속 또는 별도로 독립국가나 부족등으로 흩어져 수백년간
이어져 왔을것이라 봅니다. .... 개인 추론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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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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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한단인 | 작성시간 05.08.09 물론,,실제로 여러 변수를 생각하면 1500만 정도가 맞겠지요.
  • 작성자麗輝 | 작성시간 05.08.10 흐음. 1,500만이라. 상당히 많이 보시는군요. 저는 고구려 영토의 인구는 700만 정도에, 부용세력의 인구까지 합해서 고구려 전성기 인구는 1,000만을 크게 넘지 않았다고 봅니다. 1,500만이면 북위의 인구와 맞물리는데 솔직히 저는 그 정도까지는 회의적이거든요.
  • 작성자한단인 | 작성시간 05.08.10 아,,오해하시는 거 같은데 삼국 다 합쳐서 1500만 정도로 생각하는 거죠.
  • 작성자麗輝 | 작성시간 05.08.10 아하~저는 삼국 다 합치면 그보다 많이 보고 있는데...흐음...암튼 인구 문제가 좀 민감하긴 하군요. 부정확하구요...
  • 작성자연개소문1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5.08.10 어쨌든 통일?신라기 고려조 조선조보다 훨씬 많앗던것은 사실로 의견이 모아지는군요.. 그 만던 선조들은 다 어디로 흩어져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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