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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을불 작성시간06.11.24 이 부분 서강대 이종욱 선생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즉 일정 Generation 이 흐른 뒤 ( 6대인가 7대인가 잘 기억이 안남) 종가를 제외한 지파(支派)는 족강(族降)이 된다고. 즉 진골은 6두품 , 그 다음은 그 아래로. 이렇지 않을 경우 지배계급의 수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니 이것은(족강은) 신라 뿐 아니라 어느 신분제 사회에도 필연적이죠. 낭혜화상의 경우는 바로 이런 경우고.. 김유신 장군 후손의 경우는 잘 모르겠는데, 역시 종가가 아닌 지파의 족강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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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을불 작성시간06.11.24 ' 강신 호족들이 국권을 잡고 서로 파당을 지어 편애함이 풍속을 이루니 (隋書)' ; 물론 고구려에 적대적인 중국측 기록으로 그것도 대 고구려 개전의 명분을 잡으려고 한 서술이긴 합니다만 고구려가 귀족제 사회였다는 것만은 알 수 있고- 이것은(귀족사회였다는 것은) 다른 기록들에서도 확인이 됩니다. 고구려 후기로 올수록 귀족의 권한이 왕권을 능가하는 경향이 있는 데, 이런 조건에서는 신분이동이 힘들기 마련이지요. 신분이동의 문은 고려때가 삼국/신라보다 넓어졌고 또한 조선왕조로 내려 오면서 더욱 넓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