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갖고있던 자료입니다. 한번 보시고 평을 해주시길..
1. 고구려의 군사 제도.
-초창기 고구려의 군사 제도는 왕의 직속 군사들과 나부의 대가들이 이끄는 군사들이 동원되어 전투에 참가했다. 나부의 대가들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면 그 성과를 왕과 함께 나누어 가졌으며, 때로는 왕에게 포상으로 식읍을 받거나, 정복한 지역의 조세와 공납을 징수하는 특권을 누렸다. 이처럼 군사활동=경제적 혜택(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이었기에 고구려 초기에는 전투만을 전문으로 하는 전투귀족단이 존재했다.
하지만 왕권이 강화되면서 그리고 전쟁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각 나부에 속한 군사들도 왕 휘하로 들어오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광개토태왕이 왕 직할 군대인 왕당(王幢)을 이끌고 정복 전쟁에 나서거나 자신의 군대를 관군(官軍)이라고 부르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참고로 백제 같은 경우 근초고왕 무렵 군대가 왕 휘하로 편성되게 된다.) 광개토대왕 이후 고구려 군사조직이 나부 차원에서 국가적 차원으로 관리된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 군대를 지휘하는 무관은 5위 관등인 위두대형 이상이 임명되는 대모달(大模達) 혹은 대당주(大幢主)가 있으며 이들 아래로 7위 관등인 대형 이상이 임명되는 말객(末客)이 있어 1000명을 지휘했으며 그 아래로는 당주(幢主)가 있어 100명의 군사를 지휘했다. 고구려의 군대 편제는 몽골군의 백호장, 천호장제와 같이 10단위 편제가 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며 대모달(혹은 대당주)는 10000명 정도의 병력을 지휘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고구려의 중앙군이나 지방군이 어떻게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료는 없지만 대략 중앙군은 백제가 각 부에서 500명의 군사를 차출하여 중앙군을 구성한다는 것을 예로 볼 때 고구려도 이와 비슷하게 중앙군을 구성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며 지방군은 군관구적인 성격이 짙다고 생각된다.
2. 고구려의 군사들..
-중장기병: 중장기병은 고구려=중장기병이라고 될 정도로 가장 유명한 병종이다. 은빛으로 빛나는 미늘 갑옷을 받쳐 입은 수천의 중장기병들이 돌진해오는 모습은 얼마나 장엄한가. 고구려라는 나라의 이미지와 찰떡 같이 어울리는 병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여기서 서론은 끝내고 중장기병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해 보겠다. 중장기병은 말부터 사람까지 온통 갑옷으로 중무장을 한다. 갑옷은 주로 미늘갑옷으로 가죽편에 철판을 댄 미늘을 가죽끈으로 이어 붙인 것이다. 여기에 투구, 목가리개, 손목과 발목까지 내려덮는 갑옷을 입으면 그야말로 그 위엄과 뽀대는 상당할 것이다. 여기에다가 발에는 강철 스파이크가 달린 신발을 싣는다. 물론 말에게도 두터운 갑옷을 입혀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이들의 무기는 길이 5.4m에 무게 6~9kg 정도의 삭(?)이라는 이름의 기병용 장창과 곧은 환두대도가 주무기이다. 이 중 환두대도는 끝이 뭉툭한 것이 많은데 이것은 끝을 무겁게 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치고 베기 위함이었다. (참고로 이 시대의 환두대도의 단면은 삼각도‘▽’라고 한다. 삼각도는 가장 초기적인 형태의 칼날 구조이며 단조가 쉽고 절삭력이 뛰어나다. 대신 구조적으로 취약하다는 문제가 있다.)
이들의 역할은 두말할 필요 없이 막강한 충격력으로 적의 진형을 완전 와해시키는 것이다. 물론 완전 뒤처리 하는 것은 중장보병들이고 도망병을 추격하는 것은 경기병들이지만 적 진형의 붕괴의 시발점은 이들이 전담하는 셈이다. (물론 중장기병 혼자 멋지게 돌진하는 그런 무식한 일은 존재치 않는다.)
이렇게 좋은 중장기병이지만 문제는 관리가 무진장 까다롭다는 것이다. 일단 갑옷을 연결하는 가죽끈은 기름칠을 매일 해주지 않으면 끊어질 수 있으니까 이를 관리해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게다가 말이라는 동물도 자고 먹어야 하니 말을 관리해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게다가 중장기병을 구성하는 귀족들의 각종 잡일을 도와주어야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이 모든 게 돈으로 직결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평민은 중장기병을 하는 일이 드물었고 귀족들이 중장기병을 전담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너무 비용이 많은 드는 병종이었기에 숫자가 무진장 많은 편이 아니었다. 다만 고구려가 풍부한 철과 질이 좋은 명마 산지를 확보하고 있었기에 타국에 비해 우월한 중장기병 전력을 가지고 있었을 따름이었다.(물론 수나라와 당나라와의 전쟁에 돌입하면 이와 같은 우위도 상실하게 된다. 참고로 당태종 무렵 태복소경 장만세의 공에 힘입어 당은 무려 70만 6천필에 달하는 말을 보유하고 있었다.)
-경기병: 중장기병의 그늘에 가려 빛을 받지 못한 자들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보병과 경기병이다. 전투에서 중장기병은 저리 가라할 정도로 중요한 일을 전담하면서 중장기병의 화려함에 눌려 보병과 경기병은 빛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사실 말하자면 중장기병은 전체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상당히 적은편이고 그리고 실제 전투에서 중장기병의 담당 파트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 비율 면은 위에서 설명했고 실제 전투로 넘어가 보겠다. 뭐~ 고대의 전차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돌파력!! 중장기병의 자랑이다. 하지만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중장기병은 말이나 사람 가릴 것 없이 철로 된 갑옷을 뒤집어쓰고 있다. 솔직히 방어면과 뽀대면에서는 이익이 되겠지만 과연 갑옷을 입은 사람+마갑을 입은 말이 어느 정도의 기동력을 발휘하겠는가? 물론 충격 전술 같이 단시에 적의 진형을 박살내는 작전에서는 유리하겠지만 속도를 요하는 작전투에서는 중장기병은 그야말로 쑥맥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레그니차 전투에서 헨리크 2세가 지휘하는 유럽 연합군의 주력은 중장기병이었다. 하지만 이를 상대한 몽골군의 주력은 경기병이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몽골군이 승리했다.)
이런 중장기병의 최대 단점을 보완하는 병종이 바로 경기병이다. 경기병은 비록 두터운 갑옷은 입지 않아 방어면에서는 상당히 떨어지지만 무거운 갑옷을 입지 않았기에 그들의 기동력은 고대의 어느 병종들 중에서 최고를 자랑한다. (몽골군 하루 진격 속도가 70km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임무는 매우 다양했다. 수색, 정찰, 적진교란, 전진돌파와 대형파괴, 추격 등을 전담했다. 하지만 중장기병의 자랑인 적진돌파와 충격작전을 감행할 수 없기에 전투 시 경기병은 중장기병이 돌격을 엄호하고, 적진의 측면과 후면으로 돌아서 뛰어난 사격 솜씨로 적진을 교란하고 대형을 허무는데 일조했다.
-중장보병: 말이라는 동물을 이용하기 전 인류가 최초로 구성한 병종은 바로 보병이었고 이 보병에서 한 차원 업그레이드 한 것이 바로 이 중장보병이다. 하지만 중장보병 역시 중장기병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병종이다. 사실 중장기병이 무너뜨린 대형을 완전히 청소하는 것은 바로 이들의 몫이다. 비록 병사 개개인의 무예 솜씨는 떨어지는 축에 속하지만 이들의 결집력은 중장기병의 돌파력을 이겨낼 정도로 막강하다. 잘 훈련된 밀집보병들은 막강한 중장기병들도 두려워하는 존재이다. 게다가 보병의 장점은 어느 지형에서도 활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병이 활동이 제한된 산악 지대도 보병들은 자유자제로 다닐 수 있다.
고구려의 중장보병들은 상의만 미늘갑옷을 입었으며 방패(육각형 모양 혹은 원형)와 창(장창이나 갈고리 창)과 창으로 무장했다.
-경보병: 아마 인류 역사상 최초로 나타난 병종일 것이다. 이들의 역할은 전투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사역. 예를 들어 진지를 구축한다거나 아님 적이 설치한 방해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 이는 곧 이들의 신분이 중장보병, 경기병, 중장기병 등에 비해 낮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경보병의 주력은 도끼로 무장한 도부수들이다.
-궁수: 활하면 한민족, 한민족하면 활 아니겠는가? 그만큼 활은 우리 민족과 많은 관련을 맺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활은 예로부터 최고의 활로 인정해 주었고, 우리나라의 건국 영웅들도 은근히 활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고구려의 추모왕과 조선 태조 이성계). 게다가 고구려에서는 건국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고 부를 정도로 활 잘 쏘는 사람을 우러러 보았다. 고구려의 활은 맥궁(貊弓)이라고 불리며 기병용은 80cm이고 보병용은 120~127cm 정도 됬다. 이들은 갑옷은 입긴 입었으되 보병과 달리 양쪽 팔에는 갑옷이 없는 일종의 나시형 갑옷을 입었고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투구는 쓰지 않았다.
3. 고구려군의 규모.
-고구려군의 규모가 확실히 어느 정도라고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고구려 멸망 무렵 총병력이 30만 명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 쯤 되지 않을까 추정된다. 물론 이 30만 명도 고구려가 끌어낼 수 있는 총 병력일 것이다. 그렇다면 고구려가 안정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어느 정도일까?
고국원왕부터 광개토태왕과 장수왕 무렵을 기준으로 보면 고국원왕 12년 고국원왕은 전연의 모용황이 침입하지 총 병력 5만(남로에는 4만, 북로에는 1만 배치)를 동원했으며 고국원왕 30년에는 군사 2만을 동원하여 백제를 치나 실패한다. 광개토태왕이 즉위한 다음해인 9월에 군사 4만을 동원하여 백제의 북쪽 지역을 공격하였고, 영락 10년에는 군사 5만을 내어 신라를 구원하며 영락 17년에 다시 군사 5만을 동원하여 후연을 공격한다. 그리고 장수왕 63년에는 군사 3만을 동원하여 백제의 수도를 함락시키고, 개로왕을 죽인다. 이렇게 볼 때 고구려가 안정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2만~5만 사이로 볼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저 병력이 모두 전투 병력인지? 아니면 수송 부대가 함께 편성되어 있는지 이다. 만약 저 병력 모두가 전투 병력이라면 수송부대는 전투 부대와 비슷한 규모로 편성되므로 고구려는 최소 4만에서 10만에 이르는 병력을 동원한 셈이 된다. 물론 거기까지 알기에는 본인의 내공이 심각하게 딸리므로 패스하도록 하겠습니다..
-고구려군은 어떻게 편성되었을까? 여기서의 편성은 보병과 기병이 어떻게 편성되었냐는 것이다. 전에도 올렸고 그리고 나중에 따로 글을 보니 대체적으로 기병과 보병 비율은 1:3으로 편성 되었다고 의견이 합일되는 것 같았다. 따라서 여기서도 그 의견을 따르도록 하겠다. 그렇다면 여기서 즐거운 무책임한 계산으로 돌입해 보도록 하겠다. 그렇다면 광개토태왕이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동원한 5만 병력을 중심으로 보병과 기병의 수를 파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기병의 수는 약 1만 2천기 정도 되고 보병의 수는 약 3만 6천명 정도 됩니다. (간단하죠.) 그리고 기병 내에서 중장기병과 경기병의 비율은 대략 어떻게 되었을까요? 진짜 가까운 사례로 금나라와 조선이 있는데 이 두 나라 모두 중장기병과 경기병(조선의 경우 기창과 기사입니다.)의 비율을 2:3으로 해두었더군요. 그것을 적용해 보면 (대략 무책임;;) 중장기병은 약 5천기 정도이고 경기병은 약 7500기 정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병의 경우 중장보병은 11250명 그리고 경보병은 15750명, 마지막으로 궁병은 9000명 정도로 편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악 3호분에서 중장보병, 경보병, 궁병의 비율은 5:7:4 입니다..) 중장보병의 수가 좀 적은데 그 이유는 이 당시에 갑옷이나 무기류는 각자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비싼 갑옷 같은 무기들은 좀 부유한 평민들이나 마련했을 것이고 그리고 이 당시 대부분 평범한 평민들은 그냥 도끼하나 들고 갈 수 밖에요..
*출처: 김용만 著 ‘고구려의 발견’, 임용한 著 ‘전쟁과 역사 -삼국편-’ 김부식 著 ‘삼국사기’ 역사스페셜 6권 ‘전술과 전략 그리고 전쟁 베일을 벗다’, 김기웅 著 ‘무기와 화약’, 고구려의 무기체계와 병종(논문), 민승기 著 ‘조선의 무기와 갑옷들’, 이윤섭 著 ‘天下의 中心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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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밀리터리 나그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6.12.05 데프콘에서 퍼온것이 아닌것으로 압니다만... 제 기억으로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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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밀리터리 나그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6.12.05 그런가요? 잘 모르겠군요... 오래된 자료라서요... 그냥 이 글이 있길래 다 싸그리 선택해서 보관중이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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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ZARD 작성시간 06.12.05 다시 보니깐 다는 아니고 '3. 고구려군의 규모. '이라고 된 부분은 제가 뎁콘카페에서 玄武라는 닉넴으로 쓴 부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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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麗輝 작성시간 06.12.06 잠깐 지나다가다 눈에 띄는 곳이 있군요. 먼저 중장기병의 구성원에 대해서 귀족이 전담했을 것이며, 그 이유로 옆에서 잡일해줄 사람도 필요하고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중장기병의 비율이 눈에 띄게 증가한 4세기 이후로는 상비군으로서의 중장기병을 육성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귀족의 사병으로서 중장기병 운용은 아니었다고 보입니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이유로 해서 중장기병은 귀족만의 전유물이었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고구려군의 규모에서도 왕당이라고 불리는 중앙 상비군 이외의 군사력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으므로...이런 부분까지 심도있게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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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밀리터리 나그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6.12.06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