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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고구려의 연합 가능성은 없었을까?

작성자다물청년| 작성시간07.08.21| 조회수417| 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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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 티얼 작성시간07.08.16 님은 위에서 백제가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다며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신라의 이중적 미래지향성에 대해서는 너그럽군요?
  • 답댓글 작성자 ★明治好太王★ 작성시간07.08.16 그런데 백제를 멸망했다고 신라가 바로 남방의 새로운 강자가 됐다고 볼 수 있을까요? 당시 백제 지역은 유명무실한 웅진도독부만 있었을 뿐 고구려, 백제, 신라 왜, 당등이 각축전을 벌이던 지역이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티얼 작성시간07.08.16 무전신현님, 제가 가만히 살펴봤는데 무전신현님은 지금 역사 전체를 알고있는 자신과 긴박한 정치, 군사적 흐름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7세기 당시를 살던 연개소문을 동급으로 비교하시는 우를 범하시는 것 같군요,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 시대에 예측하기 힘들어 보여도 전혀 예측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쉽게 결론을 내리시는 겁니까? 긴박한 시대를 살던 당시 사람에게 여유롭게 그 모든 흐름을 지켜보고 있는 자신과 똑같은 안목을 요구하는 것은 일종에 오만이라고 생각되는군요.
  • 답댓글 작성자 티얼 작성시간07.08.16 도대체 무슨 근거와 사료로 연개소문을 그렇게 쉽게 평가하시는 겁니까? 연개소문의 전체 일대기가 담긴 기록이라도 보신 겁니까? 어떻게 그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결론을 내실 수 있습니까? 정치적 위상이 다른 김유신이랑 연개소문을 비교하는 이유는 또 뭡니까? 님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모든 사실을 확정하고 제멋대로 제단하는 겁니까?
  • 답댓글 작성자 ★明治好太王★ 작성시간07.08.16 반드시 경험이 있어야 전략이 뛰어나다는 논리는 광개토태왕을 통해서 그리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개토태왕은 18세에 즉위하자마자 뛰어난 전략을 선보여 여러 전장에서 항상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일각에서는 고국양태왕 말년 전쟁 기록은 광개토태왕이 했다고 합니다. 연개소문은 이십대 중후반에 권력을 잡은 것으로 추정되며 대당대전 전에도 신라를 직접 공격할 만큼 나름 야전 경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연개소문에 대한 기록이 김유신 열전 처럼 열전히 소상했으면 연개소문 집권전 활약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明治好太王★ 작성시간07.08.16 그리고 그가 강경파의 우두무리 역할을 한 것으로 보면 여러 전장을 누볐다는 추정을 해도 무리는 없을 듯 싶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明治好太王★ 작성시간07.08.19 전투 경험이 후계자 문제와 어떤 상관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연개소문의 신라 공격은 단군한 무력시위가 아니라 성 두개를 빼앗은 대대적이라면 대대적인 공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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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 티얼 작성시간07.08.16 강대국과 약소국의 정치논리가 다르시다는 부분은 아예 고려도 않 하신 듯 하군요. 하긴, 국가 최고 지도자와 일개 장군을 동급으로 비교하시는 행위 자체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만-_-
  • 작성자 다물청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7.08.16 원래 발제한 주제와는 달리 연개소문에 대한 성토나 옹호로 초점이 바뀐 것 같습니다. 암튼 백제 입장에서는 줄을 잘못 서서 망한 건가요?(결과적으로 고-당 전쟁 최후의 승자가 당나라가 되었으니...) 고구려 또한 운이 정말 없군요. 토번이 665~668년 사이에 한 10년만 앞당겨서 발흥을 하든지 연개소문이 670년대 중반까지만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반대로 신라는 운이 좋은 케이스군요. 나당 전쟁 당시에는 토번의 발흥으로 당나라가 전력을 기울일 수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결과를 놓고 보면 신라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것일까요? 아니면 신라의 저력이라고 해야 될까요?
  • 답댓글 작성자 다물정신 작성시간07.08.17 저력이라고 인정되려면; 국가간 전면전의 결과,. 혹은 그에 준할 만한 국가 대 국가의 건곤일척의 승부의 결과 정도여야 할 텐데 신라의 경우야 그런쪽 보다는 확실히 어부지리 쪽이라 볼 수 있으니 ^^; 역시 천운이라 해야 할까요...
  • 작성자 다물정신 작성시간07.08.17 저랑 닉도 비슷한 ^^; 글쓴님 하시고자 하는 의도는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아니나; 제가 생각해 보기엔 역시 -_- 이미 신라는 관산성 전투 이후 백제에게도, 그 이후 고구려와의 지속적인 영토 분쟁으로 인해 고구려에게도 동맹의 신용을 완전 잃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고/백 동맹이야 주적 나/당이라는 뚜렷한 공동의 적이 있었고 고구려 입장에선 국력도 한수위고 해양입지의 지세를 봐서도 괜찮은 백제를 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겠죠.. 더군다나 백제 멸망 시기의 정세는 (비록 굳건하진 않아도) 이미 나/당의 합세라는 불리한 조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라의 입장에서도 입장 요리조리 바꿔 당 버리고 고구려를 택하느니
  • 작성자 다물정신 작성시간07.08.17 그대로 당과의 연합으로 밀고 나가는 게 손해없는 장사일 게 뻔했으니 (백제도 멸망한 이런 대세상 고구려와 당 간의 격차를 실감했겠죠..) 동맹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고 밖에 할 수 없죠.. 무엇보다 고구려 입장으로선 적대시하는 당을 돕는 신라니 동맹을 제의할 마음도 없고, 제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지도 않았겠죠; 저였더라도 그랬을 듯..^^;;
  • 작성자 라이센스 작성시간07.08.17 이 얘기는 수차례 나왔던것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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