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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토론방

광개토태왕 이후 숙군성을 지속적으로 차지하였을까요?

작성자★明治好太王★|작성시간07.09.10|조회수975 목록 댓글 33

역사 부도를 보면 고구려는 광개토태왕 이후로 숙군성을 지속적으로 차지한 것으로 표기 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당시의 숙군성은 용성의 동북쪽으로 대릉하 중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광개토태왕 이후 숙군성은 제가 찾지 못한 까닭인지 기록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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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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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사랑해요.대한민국. | 작성시간 07.09.17 북제의 553년도 거란 원정은 돌궐 때문에 단기간에 그치지 않았나요? 거기에는 기록도 없지만 고구려의 압박도 한 몫했을거라고 생각드네요 거기에 숙군성의 역할이 중요했을지도 모를일이죠(사실 고구려의 요서에서의 활동기록은 대부분이 산재되어 있습니다 산재되어 있다는 것은 고의로 기록을 없애다가 실수로 남겼다는 것을 의미하는거겠죠) 게다가 상황으로 봤을 때 북제의 거란 원정은 무모한 감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실패가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서 일부 지역에 북조는 영주를 설치하여 군현지배를 했는데 고구려가 이를 방관하거나 하지는 않았겠지요 고구려도 군현을 설치했음 했지 안했을리는 없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사랑해요.대한민국. | 작성시간 07.09.17 영주에 비견될 만한 군현을 설치했을 가능성도 있지요 완충지대는 무력충돌을 피하기 위한 중간지점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북위라면 몰라도 고구려에게는 완충지대가 아닙니다 고구려는 지속적으로 공략한 반면 북위는 주변 요건이 안 되서 고구려에 항의 밖에 못하는 수준에 그쳤지만요 그래서 북조의 숙군성 공격 기록이 없을 가능성이 크단 겁니다
  • 작성자한단인 | 작성시간 07.09.10 그리고 역사님. 완충지대의 의미를 혹시 모르시는 겁니까? 제가 댓글에서 고구려가 군현지배 포기를 했고 직접지배를 받는 일반민을 퇴각시켰다고 했으나 거란인 등의 부용세력으로 활용했다는 언급을 한 것이라면 간접지배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비슷한 의미인 셈입니다. 제가 본문에서 언급한 완충지대의 의미는 무인지대를 의미하는게 아닙니다. 문맥의 의미를 분명히 파악하고 반론을 제기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댓글에서 언제 역사님이 언급하시는 '고정 관념적 투영'적 사고를 언급했나요? 요서 지역을 무인지대로 지배흔적이 아예 없다라는 식으로 지레 짐작하신 건 아니신지? 오히려 그런 사고가 고정관념이라 생각됩니다만
  • 답댓글 작성자역사님 | 작성시간 07.09.11 오해 없으시길. 위글은 한단인님의 반론글 보다는 일반인들의 오해 수준을 말한것입니다.(.한단님의 ... 인구 공동화작업이 실시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쪽 왕조도 북방민족을 그냥 미개하거냐 노략질적 부족으로,그리고 자신들이 통치 받은 경우에는 당연한 자기 역사로??,우리 역시도 단순한 북방의 고구려를 중심으로 주변 세력정도로만 언급하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북방 유목민족에 대한 특히 우리에게는 선비나 거란은 분명 깊게 연구 해볼 소재임에 환기 시킨 내용이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역사님 | 작성시간 07.09.11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깊어 진다면 고구려의 대외관계나 위치,통치 방식등에 많은 소득이, 나아가 우리 고구려사를 지키기 위한 완전한 우리 소유 개념으로 현실적으로 갈수 없다고 해도 최소한 역사의 완충지 역할을 해 줄것으로 보입니다.북방 유목민족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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