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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토론방

고구려 멸망이후 요동의 소고구려는 왜 독립국형태를 취하면서 다시 고구려 부흥을 하지 못했는가?

작성자밀리터리 나그네|작성시간07.11.03|조회수523 목록 댓글 4

고구려의 발견에서 보장왕의 손자였던가요? 아들이었던가요? 소고구려를 세워서 반독립국적인 형태를 유지했다가 발해에 통합됩니다.

전 이 소고구려가 왜 독립국으로 발전하지 못했는가? 왜 고구려 부흥을 이루지 못했는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동지역의 경우 인구착출이 크다고 봐야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인구가 그런대로 존재했는데다가 오랫동안 고구려 영토였던만큼 고구려인들의 인식이나 고구려 부흥에 대한인식등이 강했고 귀족층도 어느정도 확보가 되어있었을거라 봅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소고구려는 독립국으로 나아갈수 있었다고 판단됩니다. 하지만 왜 안했을까요?

 

3차 고당전쟁이후 당이 고구려 점령에서도 계속적으로 저항을 받은데다가 당의 국력도 많이 쇠약해져있는 상태인만큼 소고구려가 독립국으로서 활동하면서 고구려 부흥을 재시작했다면.. 오히려 발해이전에 벌써 고구려 왕족이 다시 고구려를 세웠을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반독립국적인것을 영유했다는건 외부적인 결합부족이나 군사력적인 부족일까요? 솔직히 저는 반독립국적인 형태를 유지했다는것에 대해서 불만입니다. 발해의 경우에도 건국초기 고구려인들이 세웠고 소고구려는 오히려 발해지역보다 발전된 곳이면 발전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의 주요지역이니까요.. 그런지역에서 고작 반독립국적 형태만을 유지했다는건.. 뭔가 납득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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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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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이사르씨 | 작성시간 07.11.03 제가 알기론 소고구려는 안녹산의 난으로 당의 요동지배가 무너진 틈을 타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걸로 압니다. 서쪽에는 당과 동쪽에는 발해... 당시에는 인구도 많이 줄어 들었고, 탁 트인 지형에 방어가 어렵고 사방이 적인 상황에서는 국력이 강해지기 힘들죠. 이런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당이든 발해든 인접국과는 우호관계를 맺고 있었야 했을 겁니다.
  • 작성자한단인 | 작성시간 07.11.04 납득이 안된다고 하시지 말고 왜 그들은 그렇게 발전할 수 없었는가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런지요? 반독립국인 형태가 불만이라고 하시는 것은 결론을 미리 정해놓구서 당대인을 가름하는 결정론적 사고입니다.
  • 작성자한단인 | 작성시간 07.11.04 참,, 그리고 소고구려국에 대한 연구는 학계에서 그리 많이 축적된 편이 아닙니다. 기록도 적은 편이고,, 단지 발해보다는 건국이 빨랐으며 발해의 속국형태로 편입되었다가 발해의 중앙지배력이 약화되면서 또다시 반독립상태로 남았다가 발해보다 몇년 뒤에 거란에 편입된 걸로 나옵니다.
  • 작성자고려대인 | 작성시간 07.11.04 그 상황에서야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 아니겠습니까? 애초부터도 당의 부용국으로 시작한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당나라에 악공을 바쳤다는 기록이 나오는 걸로 압니다. 보덕국이 왜 독립국으로 나아가지 못했냐는 소리하고 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당, 아니면 발해에 흡수통합될 수 밖에 없는 처지일 수 밖에요. 태생부터가 자력으로 나라를 얻은 게 아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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