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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토론방

말갈-여진, 거란이 고구려의 ‘정통후예’인가?

작성자밸틴|작성시간08.01.17|조회수820 목록 댓글 11
말갈 혹은 여진, 만주족이 고구려의 후예중 하나라는걸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일부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보다 더 정통계승자인지 모르겠습니다.

고구려, 발해 멸망이후 만주지역 상황, 그와 고구려인들의 인식간의 상관성 때문입니다.



1.
김용만 선생님의 저서 고구려의 발견에 따르면 고구려의 만주영토-그중에서도 직접통치지역은 요동평야, 요동반도 남단, 국내성 지역, 부여지역, 간도지역으로 구분됩니다. 그런데 이들 지역의 행보-발해 멸망이후의 행보가 전부 ‘제각각’이라서 그렇습니다.

높은 생산력덕에 거란, 여진, 만주족의 중심지로 재기한 요동평야와 요동반도 남단
주로 북방 유목민족에게 장악됨

반면 낮은 생산력 때문에 무주공산이 되버리고 만 국내지역, 그리고 부여지역.

오랜기간 무주공산으로 있었지만 일시적으로 여진족과 만주족의 서진 발진기지가 된 간도


발해멸망후 고구려의 만주지역상황이 이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진족은 주로 동만주-간도와 동류송화강유역, 흑룡강, 목단강, 우수리강 유역에 퍼져살았다는게 문제입니다.

여진족의 신화중에 어느 부부가 세 마리 용과 싸워 승리해 세상을 완성한다는 신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마리 용은 각각 백두산, 송화강, 흑룡강을 다스리는 용으로 나옵니다. 여진족, 혹은 만주족의 주 터전이 동만주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주서부는 유목민족이나 한족에게, 동부는 여진-만주족에게, 가운데 국내, 부여지역은 무주공산-이런 상황에서 여진족이 과연 고구려의 정통후예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구려인들이 자신들의 발상지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여겼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2.
고구려왕들 시호는 무덤이 있는 장소+생전의 업적+(호)태왕 이란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중 맨앞에 무덤이 있는 장소를 표기할 정도라면 그들이 얼마나 묻히는 곳을 중시했는지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오늘날 남아있는 무덤이 거의 국내지역 아니면 평양지역에만 남아있는 점, 더구나 평양에 동명왕릉을 만들고도 졸본까지 가서 추모왕의 진짜능에 제사를 지낸적 까지 있는 점이 그 증거입니다.

그런데 고구려인들의 이런 생각은 다른 데서도 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건국신화는 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가 강림한 웅심산이 압록강 유역(연구에 따르면 졸본성-오녀산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입니다. 이는 결국스스로를 천손의 후예로 여긴 고구려인들에게 국내지역은 신성한 땅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투르크인들이 남긴 퀼테킨 비문, 돈황문서, 비잔티움 기록을 보면 보쿨리, 무구리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고구려를 가리키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 단어들은 ‘맥구려’혹은 ‘맥국(國)’으로 풀이됩니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건 고구려인들이 자신들의 나라는 본래 ‘맥족의 나라’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나라이름으로 정체성을 확실히 할 정도면 고구려 내에 많은 이민족이 있었다는 의미
(2)그것은 한편으로 맥족의 땅, 압록강 유역은 결국 고구려땅에서 중요한땅-여러민족들을 다스리는 제국의 발상지로써 신성한 곳이란 의미에 도달하게 됩니다.

로마제국에서 이탈리아는 제국의 발상지이자 제국의 ‘본국’으로 대우받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랬던 덕에 지금도 이탈리아인들은 로마제국의 직계후예로 인식 받고 있습니다.
고구려시대에 이런식으로 발상지와 점령지를 행정적으로 구분했는지는 기록이 없어 확실하지 않지만 고구려인들이 추모왕을 신격화 시키는 과정에서 그들의 발상지를 성역화 시켰음은 분명합니다.



로마제국의 사례와 고구려인들의 정신세계로 보면 여진족이나 거란족이나 한국인이나 전부 고구려의 정통후예는 아닙니다. 여진족은 한때 고구려의 속민이었고, 일부는 고대한국인에서 직접 갈라져 나왔지만 동만주와 (근대에는)요동지역에 무게중심을 두었을 뿐이고,
거란족은 요동과 요서지역, 몽골고원지역에 거점을 둔 몽골어를 쓴 국가였을 뿐이고, 한국인은 비록 국내성을 형식적으로 ‘소유’하고 있었지만 역시 압록강이남까지만 경영했을뿐입니다. 다만 한국인은 한때 수도로 번영했던 평양을 지금까지 차지했기 때문에, 고려이래 역사인식계승(大신라는 고구려와 함께싸웠던 당사자이므로 계승인식이 없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신라, 가야, 백제, 마한, 조선, 고려와 고구려의 문화적 유사성 때문에 여진족과 거란족보다 더 나은 상황이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일부사람들이 여진족을 단순히 고구려의 ‘정통후예’로 인식한건 그냥 만주란 땅을 평면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주내 수많은 지역의 상황이 제각각이었는데도 이런걸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냥 거란, 여진족이 다 차지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이 무조건 고구려의 정통후예로 인식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거기다 고구려인들의 정신세계까지 고려하지 않았으니 더욱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구려인들이 자신들의 발상지를 신성화시켰는데, 평양은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말했듯이 평양은 수도가 있던, 고분이 밀집된 지역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는 발상지가 아니었습니다. 이런곳으로 이사를 간다는 것은 태왕스스로 신으로 부터 이어받은 혈통과 신성성을 포기하겠다는 의미인데 어떻게 해결을 하고 수도를 옮겼는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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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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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한단인 | 작성시간 08.01.18 음..이건 이건 밸틴님 글과는 상관없는 사족입니다만 언급해야할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인간은 계속 이동합니다. 그건 국가형성기 이전부터 먹고 살기위해 행한 인류의 본능입니다. 국가가 성립된 이후에 인간의 이동은 통제를 맞았습니다만, 국가가 붕괴되면 사람들은 또다시 이동을 거듭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원초적 영역으로서 '영토'가 강조되는 것은 다분히 목적론 적인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즉, 원초적으로 한국인의 땅, 중국인의 땅, 일본인의 땅, 이탈리아인의 땅, 독일인의 땅, 만주족의 땅을 운운하는 것은 사실 무의미한 얘기란 것입니다. 계속 이동하는 걸요?
  • 작성자밸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1.18 뒤에서 우리가 좀더 정통후예에 가깝다고 이야기 한걸 말씀하신거군요. 당위성 기제로 사용하는건 위험하다는 의견은 받아드리겠습니다만, 문화상의 유사성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고구려중심부의 문화는 여진, 거란보다는 동시대 한반도남부지역 국가나 이후 한국국가들과 유사하지 않습니까. 거기다 고려황실과 귀족들쪽이 주로 황해도출신-즉, 고구려 유민의 후예라 자연스레 계승의식이 형성된것인데 이런것들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요.
  • 작성자밸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1.18 정통문제를 들먹인 이유가 일부입장-재야사학과 일부한국인들의 주장- 여진이 고구려의 정통후예, 우리는 그냥 신라의 후예라는 주장에대해 반박하기 위해서 였다는걸 밝혀둡니다.
  • 작성자신농 | 작성시간 08.01.18 재야 쪽에서 그런 주장이 있었군요. 참 못말려서.. 밸틴 님께서 하신 말씀이 곧 김한규 교수의 요동사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 되기도 합니다. 요동사로 묶기에는 고조선, 고구려가 요, 금, 청보다는 고려, 조선과 더 가깝다는 것이지요. 사실 요, 금사를 일종의 방계로 파악한다면 모를까, 한국사로 포함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미 발해를 끝으로 갈라졌다고 보아야 하겠죠.
  • 작성자신농 | 작성시간 08.01.18 금나라를 건국한 동북여진들은 고구려시대 물길-흑수말갈의 후예로 생각됩니다. 고구려의 일원이기는 했지만 고구려의 핵심세력은 아니었지요. 요, 금이 고구려 내지 발해 계승의식을 가졌던 것은 사실 고구려가 동방 지역의 강국이었다는 이미지를 의식한 측면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발해여진 동본일가"라는 말도 정치적 성격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 계승의식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밸틴님의 지적처럼 고구려의 후예는 고려-조선 쪽으로 이어졌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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