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고구려 토론방

'대무신왕'과 '대주류왕'에 대한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깊은 이야기'의 견해

작성자광개토태왕|작성시간09.02.13|조회수679 목록 댓글 14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깊은 이야기(줄여서 흔히 '뿌샘'이라고 칭합니다)'라는 책 1권에 이와 관련한 언급이 있습니다. 이 책은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역사교육과 학생이라면 반드시 보다시피 하는 참고서인데, 고조선 시대나 삼국시대 같은 고대사 부분의 경우는 나름대로 '폭넓은' 스펙트럼을 반영하려고 한 노력이 눈에 띕니다. 가령 고조선 부분에서는 놀랍게도 '치우'를 언급하고 있는데-이에 대한 가치 평가나 호불호 여부는 배제하도록 하겠습니다-뿌샘은 이 '치우'라는 말의 의미를 분석하면서 <광개토태왕비문>과 <삼국사기>에 각각 고구려 3대 왕으로 등장하는 '대무신왕'과 '대주류왕'이 동일 인물이라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대무신왕과 대주류왕에서 다른 글자는 '무신(武神)'과 '주류(朱留)'입니다. 뿌샘은 이 무신과 주류를 동일 어휘의 서로 다른 표기라고 설명합니다. 즉, '무신(武神)'은 '전쟁의 신'이라는 뜻을 지닌 순 고구려말 어휘를 한자의 뜻을 살려 표기한 것이고, '주류(朱留)'는 그 어휘를 소리나는 대로 쓴 것이라는 주장이죠. 다시 말해 '주류'라는 말 자체가 고구려어로 전쟁의 신, 무신이라는 뜻이었다고 보는 겁니다. 뿌샘은 여기서 더 나아가 '주류'가 '치우'와 음이 통한다고 설명합니다. 치우와 주류 모두 '무신'이라는 뜻을 지닌 동일 단어의 다른 표기라는 것이죠. 뿌샘은 '추', '치우', '주류' 등이 고대 예맥계 사회에서 무예가 출중하고 군사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칭호였으며, <삼국사기>의 '대무신왕'이 <광개토태왕비문>에서 '대주류왕'으로 적힌 이유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물론 위의 견해는 '뿌샘'의 견해입니다. 저는 실존 여부나 계승 여부가 불확실한 '치우'라는 존재(그것이 <환단고기>의 '자오지환웅'과 같은 특정한 개인이건, 아니면 '단군', '주몽'과 같이 비범한 지도자를 칭하는 일반명사이건)를 섣불리 한국사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중국 학계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으로 비중원지역의 역사를 자국화하고 왜곡하는 현실에서 뿌샘의 견해는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미주가효 | 작성시간 09.02.13 명치님의 글이 제게 향한 것인지, 광개토님에게 향한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제게 향한 것이라 보고 일단 답을 드리자면, 광개토대왕릉비에 대무신왕을 지칭하는 표현은 그저 '대주류왕' 이라는 단어일 뿐 뭔가 대단한 수식어들이 주렁주렁 달린 게 아닙니다. 왜 광개토대왕릉비에 대주류왕만 온갖 수식어를 다 붙였다고 보시는지 모르겠네요. ('대' 자 하나 붙었을 뿐... ^^) // 그리고 이름 + 왕 을 붙이는 건 초기국가에서 자주 나타났던 일로 보입니다. 백제 초기왕도 '온조왕' 하는 식이었고, 신라의 경우에도 거서간, 이사금, 마립간 등을 '왕' 으로 옮기면 초기 왕들은 '이름 + 왕' 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사서든, 금석문이든)
  • 답댓글 작성자미주가효 | 작성시간 09.02.13 수식어가 있었다 해도 '모즉지 매금왕' 의 예처럼 존칭의 '지' 자 하나 붙는 정도의 간단한 경우 뿐, 후대의 고구려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장지명+업적+치세+호(미칭)+태왕] 식의 수식어 주렁주렁 붙은 단어는 아직 출현하지 않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明治好太王 | 작성시간 09.02.13 아, 저는 미주가효님의 댓글에 답댓글을 달았기 때문에 구분을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었는데, 지금 보니 햇갈릴 여지도 있네요.^^; 순간 광개토태왕비의 대주류왕을 대무신왕으로 착각하여 온갖 수식어를 다 붙였다고 표현하였군요.ㅠ 아무튼 시조인 추모왕과 유류왕은 말 그대로 이름+왕(추모왕은 모두루총에서 성자가 붙지만)일 뿐인데, 그에 비해 왜 대주류왕만 유독 '대'자가 붙었을까 하는 의문에서 드린 질문입니다. 단순하게 볼 수도 있는 것을 어쩐지 좀 과민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고구려의 [장지명+업적+치세+호(미칭)+태왕]시호 제도는 모두루총과 삼국사기의 내용으로 보아 고국양태왕 대에 이뤄졌다고 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광개토태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2.14 추모왕이나 유류왕과 달리 대무신왕에게만 대, 신과 같은 존칭어가 붙은 이유에 대해서 이해해보자면, 개국 이래 부여에 대해서 약세만을 보여오던 고구려가 반전의 계기를 얻은 시점이 대무신왕의 통치기간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고구려 왕실 자체가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만큼, 부여를 극복하는 것, 혹은 부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고구려 왕실로서는 중요한 과제였겠지요. 대무신왕은 완벽하지는 못하더라도 이 과제를 상당 부분 달성했고, 그랬기에 앞의 두 왕에게 없는 미칭이 수여된 것이 아닐까요?
  • 작성자kamando | 작성시간 09.02.14 고구려 국초에는 주로 장지명/미칭중 하나만이 시호로 부여되었는데 (민중왕 모본왕은 모두 장지명/국조왕등은 미칭 )대주류는 장지명이며 대주류왕의 장지인 대수촌원과 동일한 다른 표기라고 볼수 있읍니다 대무신왕의 표기는 고구려 중기 최초로 장지명과 미칭이 처음출현하는 고국원왕 ( 국강상 성태왕) 에서 처음 볼수 있으며 소수림왕의 율령반포를 통해 이같은 시호 제정이 격식으로 정해진것이 아닐까 추정됩니다 대주류는 대수촌원 이며 소수림왕의 다른이름이 소해주류왕이란 기록에서 알수 있듯이 대주류는 매장지를 의미할뿐이며 대무신왕이란 소수림왕의 시호법제정에 따라 다시 붙여진 업적형 시호라 할수있다라고 추정해봅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