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댓글

뒤로

'대무신왕'과 '대주류왕'에 대한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깊은 이야기'의 견해

작성자광개토태왕| 작성시간09.02.13| 조회수523| 댓글 14

댓글 리스트

  •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9.02.13 일찍이 단재도 <조선상고사> 에서 같지는 않지만 다소 비슷한 주장을 했지요. 잠깐 인용해 보면, "무, 주류, 무휼은 모두 '무뢰' 로 읽을 것으로 우박이란 뜻이고 신神 의 뜻인데, ... 武神 은 시호로 쓰고 무휼은 이름으로 쓴 건 (삼국사기) 본기의 망령된 판단이다. 이제 여기서는 .... '대무신' 을 대주류' 로 쓴다 "
  •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9.02.13 그런데 과연 초기의 고구려에서 '치우' 를 무신으로 섬기는 신앙이 있었을지부터 먼저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건 가치평가나 좋아하고 싫어하고(호불호)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확인' 의 문제지요. 고구려에서 치우숭배사상이 있었다고 볼 근거가 따로 있는지요?
  • 답댓글 작성자 광개토태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02.13 그렇죠. 본문서 제가 '가치 평가나 호불호 여부를 배제한다'고 한 것은 '그에 대해서 제가 할 말이야 따로 있지만 그걸 적으면 본문의 논지에서 좀 멀어질 것 같기에 여기서는 굳이 적지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의미가 좀 잘못 전달된 것 같군요^^; 질문에 대해서 답변드리자면... 미주가효 님도 아시겠지만 현재로서는 치우숭배사상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만한 고구려 관련 기록이나 유물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뿌샘의 저 추측은 논리적으로는 잘 들어맞아도 '추측'이나 '가설'로 남는 것이죠.
  • 답댓글 작성자 광개토태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02.13 그렇지만 뿌샘의 위와 같은 추측은 '치우'가 모든 사료에서 '치우'로만 적히지는 않았을 가능성을 언급한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치우(蚩尤)'는 그 한자어 뜻이 부정적인 데서 짐작할 수 있듯 당시 중원인의 입장에서 특정한 외국 단어를 가차하여 표기한 것이었을텐데, 그렇다면 비중원계 민족-그것이 예맥족이든 묘족이든-은 蚩尤가 아닌 다른 한자어를 가차해서 표기하였을 가능성, 가령 '주류'로 적혔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겁니다. 아울러 '치우'가 '황제'와 싸운 특정한 사람의 이름이 아닌, '단군'과 같은 직책이나 칭호였을 가능성도 열어둘 수 있겠지요.
  • 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9.02.13 설명 감사합니다. / 다른 논의를 해 보고 싶군요. 보통 '大' 가 높이려는 의미에서 추가한 것이라 보므로 결국 무신왕이 되는데, 보통 '무신+왕' 이라고 보는 듯합니다. 광개토님이 말씀하신 그 뿌리 강사(제가 '선생' 이라 부르는 건 제 스스로 인정한 사람에 한합니다. 뿌리 강사의 글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이해 바랍니다)도 무신+왕으로 보는 견해의 하나일 겁니다. 그런데 저는 어쩌면 '무 + 신왕' 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근거는 <삼국사기> 의 낙랑왕 최리가 호동왕자를 보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최리는 호동을 보고 '그대는 북국 신왕(神王)의 아들이 아닌가' 라고 하는데,
  • 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9.02.13 이는 '신왕' 이라는 말이 대왕, 태왕 등과 같이 왕을 높여 부르는 단어로 쓰였다는 의미이므로 대무신왕의 '신왕' 은 유리명왕, 문자명왕의 '명왕' 이나 광개토경평안호태왕의 '호태왕' 혹은 '태왕' 과 같은 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럴 경우 대무신왕은 [대 + 무 + 신왕] 으로 구분해야 하며, 존칭을 다 생략한 이 왕의 호칭은 결국 '무왕' 이 될 것 같습니다. 대무신왕은 대해주류왕으로도 불리는데, '해' 는 성씨이므로 추모왕, 유리왕처럼 이름만으로 부른다면 주류왕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혹시 '주류 = 무' 라는 어떤 대응관계가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무' 가 대무신왕의 이름이고 추모왕, 유리왕의
  • 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9.02.13 예와 같이 3대왕까지는 왕의 '이름' 으로 왕을 불렀으리라 봅니다. (광개토대왕릉비에는 추모왕-유류왕-대주류왕으로 표기) 대무신왕의 '무' 가 이름이라면 이는 결국 '무휼' 과 연결될 것입니다. 남은 건 앞의 글에서 밝힌 대로 무휼과 주류의 연결관계뿐이겠네요. 이게 제 생각입니다. // 이와 관련하여 지적하고 싶은 건, '명왕' 과 더불어 '신왕' 도 불교에서 나오는 불교식 왕호로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즉, 초반에는 추모왕, 유류왕, 주류왕(무왕) 등으로 불리다가 후대에 불교식 왕호를 올려 유리명왕, 무신왕 등으로 불린 것이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 明治好太王 작성시간09.02.13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21대 군주인 문자명왕을 문자왕 혹은 명치호왕(삼국유사에서는 명리호왕)이라고 한다고 했는데, 아마도 고구려 21대 군주의 정식 칭호는 미상(장지명)+문자(업적?)+명치 혹은 명리(치세)+호(미칭)+태왕이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드릴 것이 있는데, 광개토태왕비에서는 대주류왕만 온갖 수식어를 다 붙이고 추모왕과 유류왕만 이름+왕으로만 기재하였을까요?
  • 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9.02.13 헉... 명치님과 글이 중첩되어 꼬리말 하나 날아간 듯. ㅠㅠ / 참고로 대무신왕이 '대+ 무 + 신왕' 이라면 '무신'이라는 단어가 반드시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유리명왕을 유리왕이라고 하듯, 대무신왕을 '대무왕' 이나 '신왕' 이라고 하는 기록도 있어 소개합니다. 大武王[주:名無恤琉璃王子....號神王母松妃墓在大獸村原] -<歷代總要>
  • 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9.02.13 명치님의 글이 제게 향한 것인지, 광개토님에게 향한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제게 향한 것이라 보고 일단 답을 드리자면, 광개토대왕릉비에 대무신왕을 지칭하는 표현은 그저 '대주류왕' 이라는 단어일 뿐 뭔가 대단한 수식어들이 주렁주렁 달린 게 아닙니다. 왜 광개토대왕릉비에 대주류왕만 온갖 수식어를 다 붙였다고 보시는지 모르겠네요. ('대' 자 하나 붙었을 뿐... ^^) // 그리고 이름 + 왕 을 붙이는 건 초기국가에서 자주 나타났던 일로 보입니다. 백제 초기왕도 '온조왕' 하는 식이었고, 신라의 경우에도 거서간, 이사금, 마립간 등을 '왕' 으로 옮기면 초기 왕들은 '이름 + 왕' 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사서든, 금석문이든)
  • 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9.02.13 수식어가 있었다 해도 '모즉지 매금왕' 의 예처럼 존칭의 '지' 자 하나 붙는 정도의 간단한 경우 뿐, 후대의 고구려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장지명+업적+치세+호(미칭)+태왕] 식의 수식어 주렁주렁 붙은 단어는 아직 출현하지 않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明治好太王 작성시간09.02.13 아, 저는 미주가효님의 댓글에 답댓글을 달았기 때문에 구분을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었는데, 지금 보니 햇갈릴 여지도 있네요.^^; 순간 광개토태왕비의 대주류왕을 대무신왕으로 착각하여 온갖 수식어를 다 붙였다고 표현하였군요.ㅠ 아무튼 시조인 추모왕과 유류왕은 말 그대로 이름+왕(추모왕은 모두루총에서 성자가 붙지만)일 뿐인데, 그에 비해 왜 대주류왕만 유독 '대'자가 붙었을까 하는 의문에서 드린 질문입니다. 단순하게 볼 수도 있는 것을 어쩐지 좀 과민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고구려의 [장지명+업적+치세+호(미칭)+태왕]시호 제도는 모두루총과 삼국사기의 내용으로 보아 고국양태왕 대에 이뤄졌다고 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 광개토태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02.14 추모왕이나 유류왕과 달리 대무신왕에게만 대, 신과 같은 존칭어가 붙은 이유에 대해서 이해해보자면, 개국 이래 부여에 대해서 약세만을 보여오던 고구려가 반전의 계기를 얻은 시점이 대무신왕의 통치기간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고구려 왕실 자체가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만큼, 부여를 극복하는 것, 혹은 부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고구려 왕실로서는 중요한 과제였겠지요. 대무신왕은 완벽하지는 못하더라도 이 과제를 상당 부분 달성했고, 그랬기에 앞의 두 왕에게 없는 미칭이 수여된 것이 아닐까요?
  • 작성자 kamando 작성시간09.02.14 고구려 국초에는 주로 장지명/미칭중 하나만이 시호로 부여되었는데 (민중왕 모본왕은 모두 장지명/국조왕등은 미칭 )대주류는 장지명이며 대주류왕의 장지인 대수촌원과 동일한 다른 표기라고 볼수 있읍니다 대무신왕의 표기는 고구려 중기 최초로 장지명과 미칭이 처음출현하는 고국원왕 ( 국강상 성태왕) 에서 처음 볼수 있으며 소수림왕의 율령반포를 통해 이같은 시호 제정이 격식으로 정해진것이 아닐까 추정됩니다 대주류는 대수촌원 이며 소수림왕의 다른이름이 소해주류왕이란 기록에서 알수 있듯이 대주류는 매장지를 의미할뿐이며 대무신왕이란 소수림왕의 시호법제정에 따라 다시 붙여진 업적형 시호라 할수있다라고 추정해봅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
카카오 이모티콘
사용할 수 있는 카페앱에서
댓글을 작성하시겠습니까?
이동시 작성중인 내용은 유지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