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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토론방

후한 초, 중기 요동의 위치(III)

작성자청골|작성시간09.07.08|조회수610 목록 댓글 4
58년을 마지막으로 후한 동, 북방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남흉노와 오환이 후한을 대신해 전쟁을 하고, 후한은 그 답례만 하면 되었으니까.
그런데 40년의 평화를 깨뜨린 것은 선비였다.

91-92년경 경기(耿夔)가 북흉노를 공격하여 깨뜨렸는데, 북흉노가 사라진 땅을 선비가 차지한 후 점차 강대하게 되었다. (和帝永元中,大將軍竇憲遣右校尉耿夔擊破匈奴,北單于逃走,鮮卑因此轉徙據其地.匈奴餘種留者尚有十餘萬落,皆自號鮮卑,鮮卑由此漸盛.)
결국 97년, 58년 이후 처음으로 선비는 후한의 요서군 비여현을 공격하였는데 이 때 요동 태수는 제융의 아들 제삼(祭參)이었다.
이 제삼(祭參)이 바로 요동군의 위치를 어렴풋이나마 알려주는 중요한 인물이다.
이제 제삼이 등장하는 문구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비교해 보자.

1. 제기
97년 (永元 九年) 8월, 선비가 비여를 침략하였는데, 요동태수 제삼이 하옥되어 죽었다. 동관기에서는 선비 천여기가 비여성을 공격하여, 관리와 백성을 죽이고 약탈하였는데, 제삼이 앉아서(아무것도 하지 않고) 막다가 패해, 하옥되어 죽었다고 하였다. (八月, 鮮卑寇肥如, 遼東太守祭參下獄死. 東觀記曰:「鮮卑千餘騎攻肥如城, 殺略吏人, 祭參坐沮敗, 下獄誅. 제기)

2. 선비전
요동선비가 비여현을 공격하였는데, 태수 제삼이 앉아서 막다가 패해, 하옥되어 죽었다 (遼東鮮卑攻肥如縣, 太守祭參坐沮敗, 下獄死.)

3. 제융전
(제융의) 아들 삼은 봉거도위 두고를 따라 종군하여, (73-75년 사이) 거사를 격파하는데 공이 있어, 요동태수가 되었다. 영원 중에 선비가 군계를 침입했는데, 삼이 앉아서 막다가 패해, 하옥되어 죽었다 (子參遂詣奉車都尉竇固, 從軍擊車師有功, 稍遷遼東太守. 永元中, 鮮卑入郡界, 參坐沮敗, 下獄死.)

이 세 기사는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사료 1과 사료 2는 요동태수 제삼이 난하 유역의 요서군 비여현(현 창려 내지는 노룡으로 추정)을 공격한 선비를 앉아서 막다가 패한 죄로 하옥되었다고 하고 있다. 만약 요동군이 우리가 알고 있듯이 요하 건너 양평(현 요양 북 70리)에 있었다고 한다면 제삼은 약 1500리 떨어진 곳의 전쟁을 쫒아가 막지 못한 죄로 하옥되어 죽었다는 희대의 불운아가 되고 만다.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절대로.

답은 사료 3 제융전에 있다. 사료 3에서는 사료 1,2 와 다르게 비여(肥如)현 대신 군계(郡界)라고 하고 있다. 여기서 군계(郡界)란 제삼이 요동태수이므로 바로 요동군계(遼東郡界)를 말하는 것이다.
이제 사료 1, 2, 3을 합하여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들 수 있다. ‘

영원 중에 선비가 요동군의 경계에 있는 비여현을 침입했는데, 요동태수 제삼이 앉아서 막다가 패해, 하옥되어 죽었다.’

요서군 비여현이 요동군과의 경계이므로 결국 요동군은 요서군과 함께 난하 가까이에 있었던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 사료는 후한 초, 중기 요동의 위치(I)에서 요동과 요서가 우북평 가까이에 있었다는 가정을 지원하고, (II)에서 언급한 고구려가 요서에 10성을 쌓을 수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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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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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밀리터리 | 작성시간 09.07.09 그렇다면.. 난하를 기점으로 한에서는 요동 요서를 언급했고 고구려는 요하의 서쪽 난하의 동쪽에 10성을 쌓아서 영향력과 영토확정을 했다고 봐야한다는거군요.. 결과적으로 그렇다면.. 요동군의 위치가 원래부터 난하를 기점으로 두는가. 아니면 만주에서 이동을 하여 옮기게되었는가의 차이가 결정적으로 남게되는 셈인가요?
  • 작성자청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7.12 지금까지 제 생각은 한이나 고구려나 모두 요하(현 요수)를 경계로 요동, 요서를 나누었다는 기존의 학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전한 때 요하 부근에 설치했던 요동군과 요서군이 어느 시점엔가 난하 부근으로 이동하였고, 이러한 상황이 후한 중기까지 유지되어 온 것으로 생각합니다.
  • 작성자나도사랑을했으면좋겠다... | 작성시간 09.07.13 평소 지명 고증에 관심은 있었으나 능력이 받쳐주지 못해 처음에만 파고들다가....몇년째 고착 상태 입니다....저...저기...미안한 말이지만..... 청골님의 글을 제 블로그등에 복사하고 싶은데.....괜찮은지요....?
  • 답댓글 작성자청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7.14 출처를 확실히 밝혀주신다면 큰 문제 없습니다. 이 사이트에서도 그런 사례를 발견한 적이 있는데, 일부분만 발췌한 후 자신의 글인 양 올리는 경우, 제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글이 전개되어, 필자로써 해명하는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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