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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토론방

정주 농경 국가의 병력 동원률

작성자데우스엑스마키나|작성시간09.12.16|조회수520 목록 댓글 12

사회의 성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고/중세 국가의 동원 능력은 근대 산업 국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말할 나위도 없이 주민을 상시 관리할 수 있는 행정 체계나 효율적인 동원을 위한 교통 통신망 등이 미비했기 때문이죠.

 

산업화 초기만 가더라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당시(1812) 프랑스 제국군의 규모는 약 60만 명, 그중에 점령지 출신을 제외한 순수 프랑스인 병력은 30만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 프랑스 인구가 적게 잡아도 2000만 명은 되는 듯하니 동원률은 2%도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러시아 쪽은 더욱 심해서 3~4000만 명의 인구로 30만 군대도 꾸리지 못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동원되었던 전장은 2차 세계 대전 중의 동부 전선, 즉 독-소 전역이었습니다. 당시 나치 독일은 총 인구 약 7000만 명 가운데 800만 명을 병력으로 차출했고, 이에 맞서는 소련은 총 인구 약 1억 8000만 명 가운데 1200만 명을 군대에 징집할 수 있었습니다. 양국의 동원률은 각각 11% 6% 내외였던 셈입니다. 이렇듯 130년만에 근대 국가의 동원 능력은 다섯 배 이상 늘었습니다. 물론 산업화 덕분입니다.

 

아무래도 전근대 정주 농경 국가에서 나폴레옹 시대의 동원률을 크게 넘어서기는 힘들다고 봐야겠죠. 근대 산업 국가의 동원률에 맞먹는 기록이 나타나는 경우에 대해서는 일단 해당 국가의 인구 집계부터 의심해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겁니다. 말기의 고구려를 분열기 국가의 군벌 집단과 비교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논의라고 보고요.

 

그렇다고 "강병이 30만이었다"는 대문예의 말만 가지고 고구려 인구가 최소 얼마는 되었을 것이다 단정짓는 것도 개운찮은 구석이 있습니다. 전후 맥락을 고려해 볼 때 과장된 발언이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7세기 고구려가 과연 전형적인 농경 사회였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고, 특히 고-당 전쟁 당시 고구려에 부용된 말갈병 15만 명의 존재는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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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역사님 | 작성시간 09.12.16 그리고 고구려 농업에 대해서는 김용만님의 글도 참조<고구려의 경우 요동성에 비축된 군자곡만 50만석, 개모성과 같은 작은 성에도 10만석의 식량이 있었다. 물론 이것은 당나라의 전공을 과장하기 위한 것일 수 있으나, 조선과 비교해 보면 고구려의 변방에 위치한 성에서 축적된 군량의 규모가 엄청난 것임을 알 수 있다. >
  • 답댓글 작성자역사님 | 작성시간 09.12.16 물론 데우님의 말씀처럼 농업 생산력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이고 신빙성 있는 데아타 연구와 확보를 갖춘다면 고구려의 농업력이나 인구에 대한 추정에 좀 더 설득력을 높일 것입니다.
  • 작성자데우스엑스마키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2.16 고구려에 복속된 종족은 부여뿐만 아니라 읍루 말갈 등도 있죠. 고구려의 영향권에 놓여 있던 지역 중 상당 부분은 후의 여진-만주족의 거주지로서 유목민은 아니더라도 목축 수렵 채취 등의 비중이 높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고구려 시대에도 경작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 오해하실 수 있는데 저도 기본적으로 고구려가 정주 농경 사회였음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런 모습이 전 지역에 걸친 것일까 하는 데에는 다소 의문이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明治好太王 | 작성시간 09.12.17 당연히 전 지역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래도 말갈족들의 주거지인 연해주 근방은 목축, 수렵, 채취 등의 비중이 강했을 것이며 서요하쪽은 유목 등의 비중이 더 높았겠지요.^^
  • 작성자지수신 | 작성시간 09.12.31 생산력 뿐 아니라 국가시스템도 동원력의 개념에 포함될 수 있겠지요. 수나라의 경우 2차 여수전쟁때 대략 5천만 안쪽의 인구로 전투병만 113만명을 동원했습니다. 보급부대 등 부수인원 합쳐 3~4백만이었다고 하죠. 주워듣기로 17세기 독일의 라이프니츠였던가요 근대유럽의 지식인들도 "중국의 국가시스템을 배워야한다"고 했을 정도임을 상기할 필요는 있겠지요. 동아시아 국가들의 동원체제는 타문명권에 비해 비교적 일찍 발전했던 듯 합니다. 고려 인구를 4~5백만쯤으로 잡고 중국과 대등한 동원력을 가졌다고 보면 30만의 군대를 유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더군다나 공격이 아닌 방어 입장이라면 더더욱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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