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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토론방

자명고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작성자聖君 仁宗大王|작성시간10.09.11|조회수430 목록 댓글 12

자명고라는 북이 존재했을 수도 있고..

 

세상에 이런 일이 이런 프로에서도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자주 나오는데..

 

스스로 치는 북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없었다고 본다면..

 

제가 보았던 여러 역사책에서는 자명고의 존재를 고구려가 그만큼 낙랑을 어렵게 정복했다고 해석하지만..

 

이건 좀 단순한 듯 싶고..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요..

 

예전 자명고라는 드라마에서는 자명고를 자명공주로 했던데..

 

뭐 상상하는 거야 자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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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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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聖君 光海君 | 작성시간 10.09.14 한나라가 낙랑을 빼앗겼다가 살수이남을 회복했다는 얘기가 그말인것 같네요
  • 작성자정성일 | 작성시간 10.09.14 남당유고 고구려사초 대무신제기
    二十七年 甲寅 四月 好童太子将兵東巡獵 微行至崔理新都〈鴨口〉 與理女交好 女為之 破鼓角 而迎 王師大軍 自沃沮〈尼古里〉浮海而入 拔其都 虜崔理夫妻而歸 以其地為竹岺郡 樂浪自柴吉四世八十餘年 而國除
  • 답댓글 작성자정성일 | 작성시간 10.09.14 27년 갑인(AD54) 4월 호동(好童)태자가 군사를 이끌고 동쪽을 순수하며 사냥하다가, 미행하여 최리(崔理)의 새 도읍〈압구〉에 이르러 최리의 딸과 사이좋게 사귀었다. 그녀는 호동을 위해 고각(鼓角, 군중에서 호령할 때 쓰는 북과 나팔)을 망가뜨려 맞이하였다. 왕이 거느린 대군은 옥저〈이고리〉로부터 바다를 건너 그 도읍을 빼앗고 최리의 내외를 사로잡아 돌아왔으며, 그 땅은 죽령군(竹岺郡)으로 삼았다. 낙랑(樂浪)은 시길(柴吉)로부터 4세 80여년 만에 나라가 없어진 것이다.
  • 작성자돌부처 | 작성시간 10.09.14 너무 '자명고'라는 것에 얽매이는것 같습니다. 어쩌면 실제로는 단순히 공주가 몰래 성문을 열어준 행위만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 작성자역사정의남 | 작성시간 10.09.19 이런 가정은 어떨까요? 최리는 뛰어난 호동을 사위로 삼고싶어, 진실되게 혼사를 추진했는데... 사랑에 눈이 먼 낙랑
    공주가 자명고라고 불리는 낙랑의 뛰어난 점술가를 죽임으로 해서, 나라가 적의 공격에 대비하지 못해 멸망하게 되었다. PS 자명고를 앞서 말씀하신것처럼, 낙랑국이 봉화대 운영에 남달랐기 때문에 그 앞선 봉화통신 수단을
    일컫는 것일수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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