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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10.09.13 단군조선 때에 자명종(自鳴鐘), 양우계(量雨計), 측풍계(測風計) 등이 발명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낙랑국에서 자명고라는 오버테크놀로지의 소산을 만들어 냈다는 게 이상할 건 없는 것 같습니다.... 라는 건 농담이고,
일단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이야기는 하나의 설화로 발전한 이야기 같습니다. 핵심적 내용은 호동왕자를 통해 계략을 써야 할 정도로 낙랑국이 고구려 입장에서 쉽게 점령할 대상은 아니었다는 것이고, 그 핵심적인 이유에 자명고가 있었던 것이니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고구려 입장에서 낙랑을 정벌하는 장애물을 한꺼번에 묶어 상징하는 게 자명고라 보아야겠지요. 자명고가 상징하는 게 어떤 물건(건물, 무기 등)일 -
답댓글 작성자 정성일 작성시간10.09.14 27년 갑인(AD54) 4월 호동(好童)태자가 군사를 이끌고 동쪽을 순수하며 사냥하다가, 미행하여 최리(崔理)의 새 도읍〈압구〉에 이르러 최리의 딸과 사이좋게 사귀었다. 그녀는 호동을 위해 고각(鼓角, 군중에서 호령할 때 쓰는 북과 나팔)을 망가뜨려 맞이하였다. 왕이 거느린 대군은 옥저〈이고리〉로부터 바다를 건너 그 도읍을 빼앗고 최리의 내외를 사로잡아 돌아왔으며, 그 땅은 죽령군(竹岺郡)으로 삼았다. 낙랑(樂浪)은 시길(柴吉)로부터 4세 80여년 만에 나라가 없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