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댓글

뒤로

태조대왕, 차대왕, 신대왕은 어떤 관계일까요?

작성자돌부처| 작성시간11.03.09| 조회수399| 댓글 10

댓글 리스트

  • 작성자 聖君 仁宗大王 작성시간11.03.09 태조왕과 차대왕은 형제이며 신대왕은 이 둘의 동생의 아들 즉 조카가 아닐까 싶네요..ㅋ 사실 태조왕과 신대왕의 나이차(42세)가 문제지 태조왕과 차대왕(24세) 혹은 차대왕과 신대왕(18세)의 나이차는 이복형제 뿐 아니라 동복형제에도 종종 나타나죠..사실 제가 믿고 있는 것은 차대왕과 신대왕이 태조왕 동생의 아들 즉 조카입니다..
  • 작성자 노하라 신노스케 작성시간11.03.09 태조왕과 차대왕은 조카관계 차대왕과 신대왕은 먼 친척관계로 생각합니다.
  • 작성자 정성일 작성시간11.03.09 고구려본기
    태조왕(궁, 47-165, 춘추119) 재위:53-146
    차대왕(수성, 71-165, 춘추95) 재위:71-165
    신대왕(백고, 89-179, 춘추91) 재위:165-179

    남당유고
    신명선제(재사, 47-121.2, 춘추74) 재위:73-112
    태조왕(궁, 68-165, 춘추98) 재위:112-146
    차대왕(수성, ? -165, 춘추?) 재위:146-165
    신대왕(백고, 121-179 춘추59) 재위:165-179
  • 답댓글 작성자 정성일 작성시간11.03.09 남당유고에는 재사의 아버지를 유리명왕 혹은 대무신왕, 어머니를 갈사왕의 딸 혹은 갈사왕의 손녀라고 합니다.
    대무신왕과 갈사왕의 손녀사이에 태어나신 분이 호동왕자이고, 시집온 시기는 갈사왕이 항복해 온 시기입니다. 고구려사초에는 재사를 호동왕자의 동생이라고 하였습니다.
    두번째설이 유리명왕과 갈사왕(해소, 추모의 동모제)의 딸 사이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갈사왕의 딸이 시집온 시기는 A.D.20년이고 딸과 해루(백제)를 보냈다고 합니다. 저는 재사를 A.D.22년생으로 추정합니다.
    남당유고에는 유리명왕의 즉위기를 10년 늘려놓았지만 유리명왕의 사망시기는 A.D.18년이 맞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정성일 작성시간11.03.09 재사의 출생시기로 추측한 서기22년은 대무신왕의 나이 19세입니다.
    남당유고에 의하면 18-28년까지와 28년 이후의 고구려와 동부여사이의 정책이 정반대로 전환합니다.
    18-28년은 동부여와 화목하는데, 28년이후에는 불목하여 대무신왕이 전쟁을 일으킵니다.
    또한 고구려본기 대무신왕기에는 동명의 구신들을 쫓아냈다고 하는데, 남당유고에는 소서노의 구신이라고 합니다.
    남당유고에 의하면 대무신왕대까지도 소서노의 구신인 백제계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큰 혼란을 느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백제가 남하하는데, 이것이 곧 가야의 건국이며, 최치원이 말한 변한은 백제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 작성자 조수아 작성시간11.03.09 다른 얘기지만 막근, 막덕이 실존했었는지 의문이 갑니다. 이름 뜻이 막근은 '부지런함이 없다'이고 막덕은 '덕이 없다'라는 뜻인데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이런 이름을 붙여줬을까 의문입니다. 또한 형제 사이에 돌림자가 사용된 예는 고구려 후기 남생 형제들 말고는 없는데 이 시기에 돌림자가 사용되었을까도 의문이 듭니다.
  • 답댓글 작성자 돌부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3.09 '막'은 '없다'와 관계 없는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막강'과 같이 오히려 강조하는 기능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어로 당시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고구려인명 가운데 奴가 들어가는 인물도 많은데 뜻이 좋지 않다고 존재를 의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존재를 의심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답댓글 작성자 조수아 작성시간11.03.09 그렇군요. 몰랐던 거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 돌부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3.09 의외로 부자지간일 것이라는 입장이 없네요...투표도 몇분 하지 않았지만...
  • 작성자 都巡檢使 楊規 작성시간11.03.09 형제지간이라고 하기에는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나죠. 단재 선생은 태조왕과 차대왕을 부자관계라 했지만, 확실한 증거도 없고, 삼국사기에 형제로 나오죠. 그래서 전 이들 간의 관계가 사촌형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차대왕과 신대왕이 태조왕의 동생이라는 것은 차대왕, 신대왕 둘 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들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자신의 가계를 태조왕에 맞추어 형제관계로 둔갑한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
카카오 이모티콘
사용할 수 있는 카페앱에서
댓글을 작성하시겠습니까?
이동시 작성중인 내용은 유지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