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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토론방

광개토왕비문과 왜

작성자쥬르센|작성시간11.03.10|조회수345 목록 댓글 10
광개토왕비문 신묘년조에 보면
왜가 백제 신라를 속국으로 만들만큼
강한 세력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광개토왕비문만 놓고 보자면
고구려가 왜를 왜이렇게 강한 세력으로 적어놨는지
납득이 갈만도 합니다.

그 이유는 광개토왕비문 갑자년(영락14년)조의 기록 때문인데요,
여기서 왜가 직접 대방까지 처들어옵니다.

한강을 바다정도로 알고있던 고구려인들은 
진짜 바다 넘어 왜국의 실상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르고
막연하게 어떠한 추상적인 관념을 갖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머나먼 섬나라 왜가 대방까지 직접 처들어오니
그 추상적인 관념이 왜는 강하다라는 사실로 구체화되는 것이지요.

사실 이때 대방에서의 전투는 백제의 의도가 개입되어 백제의 지원하에 이루어진 것이라
크게보면 고구려와 백제 전쟁의 한 과정인데

여기서 백제의 역할은 
왜가 지원군으로 참여한 다른 백제의 전투처럼 백제가 지휘하는게 아니라
말그대로 길만 내준것 같습니다.
왜가 직접 고구려와 싸운 것이지요.

그러니까 광개토왕비문에 왜랑 싸운것마냥 기록되어 있지요.
(보통은 광개토왕비문에는 광개토왕시기 고구려가 각 세력과의 관계에서 있었던 마지막 장면이 서술되어있는 것으로 보지요. 백제와의 관계에서 있었던 마지막 장면은 이미 영락6년조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영락14년조의 기록은 고구려인들이 백제가 개입했다는 것을 눈치채었어도 전투대상은 왜라고 생각하고 왜와의 관계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
왜가 고구려로 직접 처들어온 이 사건 때문에 신묘년조에 왜가 강하게 적힌걸지도 모릅니다.

어쨋든 이후 일본서기에 장수왕 즉위초로 추정되는 시기에 고구려에서 왜로 온 사신이 오오키미 앞에서 무례한 내용의 '교서'을 읽는 장면이 나타나있는데 이는 고구려인들이 정말 왜가 강한가 확인하러 간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해뜨는 나라의 천자 운운하는 사신때문에 왜의 실상이 궁금해진 수나라가 왜에 사신을 보낸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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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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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성일 | 작성시간 11.03.11 광개토대왕비 신묘년조의 해석은 주어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크게 달라질 수 있으며, 현재 판독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현재까지 새로운 발견되지 않은 사서가 나오지 않는 한 영원히 오리무중이 아닐까 합니다.
    참고로 남당유고 신라사초를 보면 백제가 왜와 화통하여 해마다 이민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신묘년 이래로 도해한 왜가 백제와 신라를 지배했다는 해석은 남당유고와 전혀 다른 부분입니다.
    남당유고의 기록대로대로 수-수십년간 백제로 왜인들이 몰려왔다면 그 수가 수만-수십만에 육박하였을 것입니다.
    이 때에 영토를 잃은 백제인들이 고구려로 혹은 신라로 달아났다고도 합니다.
  • 작성자귀거래사 | 작성시간 11.03.11 신묘년에 섬나라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 신라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고 치고 그래서 한반도남부에 임나일본부를 두고 2백년간 지배했다고 치고 그로부터 1세기도 더 지난 백제 성왕 시절, 가야제국 즉 임나일본부가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성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하고 오경박사를 보내면서 왜군의 파병을 요청합니다. 그것도 숙식이나 모든 보급은 백제가 제공한다는 조건이었지요. 즉 용병입니다. 그때 야마토정권이 파병한 규모가 1천명입니다. 섬나라 왜는 413년에 중국 동진에 조공했지만 국가로서 인정을 못 받았어요. 아무런 관위도 받지 못합니다. 그런 섬나라에서 1만이 넘을 대군을 391년에 파병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 작성자귀거래사 | 작성시간 11.03.11 정말 신묘년에 섬나라 왜가 백제 신라를 격파했고 임나일본부가 있어서 200년간 섬나라 왜가 한반도남부를 지배했다면 임나일본부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성왕의 요청이 아니더라도 구원군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때야말로 거국적인 파병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반도에 파병한 병력은 1천명입니다. 그것도 위기에 처한 임나일본부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백제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하긴 그 1천명의 파병이라는 것도 과연 역사적 사실이었는지 지극히 의심스럽지만요. 때문에 나는 신묘년의 섬나라 왜의 대군 渡海는 비문을 잘 못 해석한 것이며 임나일본부는 허구라고 봅니다.
  • 작성자=원기= | 작성시간 11.03.11 이희진 교수가쓴 "전쟁의 발견"에서는 실제적인 신라 VS 왜의 전쟁의 주체는 일본이었지만
    이는 외교적으로 백제 + 왜 + 가야 vs 신라 의 전쟁에 고구려의 개입으로 해석하고 있더군요
    "백제"는 한반도 남부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신라"의 성장을 저지해야 하고 왜는 대륙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신라가 방해가 되니 백제와 왜의 동맹이 형성되었으며, 당시의 백제의 영향략 아래 있던 가야의 "임나가라"에 왜의 전초기지를 설치하게 되었답니다.
    신라는 이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임나가라"를 정벌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가야"와의 전쟁으로 확전되니...
    어쩔수 없이 고구려에 지원요청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해석이었습니다.
  • 작성자=원기= | 작성시간 11.03.11 이때 고구려가 투입된 5만군대는 왜의 군대가 강력하다기 보다는 전쟁을 일찍이 종결하기 위한 심리전이라고 판단하더군요, 실제적으로 왜는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도망하였고 순식간에 임나가라도 투항하였고 백제도 개입할 생각을 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면서 광개토대왕의 판당늘 고수의 품격이라고 판단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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