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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귀거래사 작성시간11.03.11 고금을 통하여 전쟁에서 신병기가 승패를 좌우하지요. 임진왜란 초기의 참패, 동학란의 실패, 청일전쟁 등 신병기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광개토왕 시절 섬나라 일본에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말을 탈 줄도 몰랐습니다. 반면 고구려군은 항상 보기군 즉 보병과 기병의 혼성군으로 나옵니다. 또 백제 신라 가야도 강력한 기병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섬나라에서 원시적인 배를 타고 수 만명이 왔다는 것, 그것도 10여년간 수차례나...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 신라 가야를 破했다는 것,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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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귀거래사 작성시간11.03.11 비문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비문의 왜는 섬나라 일본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고구려와 싸운 왜는 기병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즉 섬나라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또 신묘년조는 왜가 아니라 고구려가 백제 신라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일본에는 3세기 후반에 히미코라는 무당이 다스리는 원시적인 나라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들이 4세기 후반에 갑자기 수만의 병을 10여년간 수차례에 걸쳐 한반도에 파병할만큼 성장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마도 그들은 현해탄 대한해협을 건너는 도중 절반은 물에 빠져 죽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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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귀거래사 작성시간11.03.11 바다건너의 원정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접경국가 간의 전쟁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비문이 과장되었다는 주장도 있어 고구려군을 2, 3만 이었다고 해도 왜도 이에 버금가는 군세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원시적인 배로 수만의 병력, 무기, 적어도 열흘치의 식량, 이부자리 및 야전텐트 등을 운반했다는 얘긴데, 글쎄요. 그게 가능했을까요? 도대체 그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막대한 인적 손실도 감수해야 하는 그런 전쟁에 참여할만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비문의 해석은 어디까지나 현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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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쥬르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3.11 갑자년(404년) 대방계 전투는 비문에 기록된 것으로만 보면 그다지 대규모의 전투는 아닙니다. 말그대로 해적들의 노략질 정도일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사태가 커지니까 광개토왕이 평양에 내려온 김에 왕당군을 움직여 직접 토벌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죠. 왕당군 규모가 크지는 않죠. 그리고 기록에 연선이라는 말이 있는걸로 보아 누군가가 배를 동원하긴 했을겁니다. 고구려가 육지로 닿아있는 대방계에 배를 타고 갈 필요는 없었을테니 연선의 주체는 왜가 되어 왜가 배를 타고 건너온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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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성일 작성시간11.03.11 광개토대왕비 신묘년조의 해석은 주어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크게 달라질 수 있으며, 현재 판독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현재까지 새로운 발견되지 않은 사서가 나오지 않는 한 영원히 오리무중이 아닐까 합니다.
참고로 남당유고 신라사초를 보면 백제가 왜와 화통하여 해마다 이민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신묘년 이래로 도해한 왜가 백제와 신라를 지배했다는 해석은 남당유고와 전혀 다른 부분입니다.
남당유고의 기록대로대로 수-수십년간 백제로 왜인들이 몰려왔다면 그 수가 수만-수십만에 육박하였을 것입니다.
이 때에 영토를 잃은 백제인들이 고구려로 혹은 신라로 달아났다고도 합니다. -
작성자 귀거래사 작성시간11.03.11 신묘년에 섬나라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 신라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고 치고 그래서 한반도남부에 임나일본부를 두고 2백년간 지배했다고 치고 그로부터 1세기도 더 지난 백제 성왕 시절, 가야제국 즉 임나일본부가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성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하고 오경박사를 보내면서 왜군의 파병을 요청합니다. 그것도 숙식이나 모든 보급은 백제가 제공한다는 조건이었지요. 즉 용병입니다. 그때 야마토정권이 파병한 규모가 1천명입니다. 섬나라 왜는 413년에 중국 동진에 조공했지만 국가로서 인정을 못 받았어요. 아무런 관위도 받지 못합니다. 그런 섬나라에서 1만이 넘을 대군을 391년에 파병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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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귀거래사 작성시간11.03.11 정말 신묘년에 섬나라 왜가 백제 신라를 격파했고 임나일본부가 있어서 200년간 섬나라 왜가 한반도남부를 지배했다면 임나일본부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성왕의 요청이 아니더라도 구원군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때야말로 거국적인 파병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반도에 파병한 병력은 1천명입니다. 그것도 위기에 처한 임나일본부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백제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하긴 그 1천명의 파병이라는 것도 과연 역사적 사실이었는지 지극히 의심스럽지만요. 때문에 나는 신묘년의 섬나라 왜의 대군 渡海는 비문을 잘 못 해석한 것이며 임나일본부는 허구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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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기= 작성시간11.03.11 이희진 교수가쓴 "전쟁의 발견"에서는 실제적인 신라 VS 왜의 전쟁의 주체는 일본이었지만
이는 외교적으로 백제 + 왜 + 가야 vs 신라 의 전쟁에 고구려의 개입으로 해석하고 있더군요
"백제"는 한반도 남부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신라"의 성장을 저지해야 하고 왜는 대륙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신라가 방해가 되니 백제와 왜의 동맹이 형성되었으며, 당시의 백제의 영향략 아래 있던 가야의 "임나가라"에 왜의 전초기지를 설치하게 되었답니다.
신라는 이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임나가라"를 정벌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가야"와의 전쟁으로 확전되니...
어쩔수 없이 고구려에 지원요청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해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