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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토론방

396년 백제 정벌 이후 고구려-백제 관계에 대해서 문득 드는 생각.

작성자쥬르센|작성시간11.04.18|조회수286 목록 댓글 3

 

7년(398) 봄 2월에 진무를 병관좌평으로 삼고, 사두(沙豆)를
좌장(左將)으로 삼았다. 3월에 쌍현성(雙峴城)을 쌓았다. 가을
8월에 왕이 장차 고구려를 치려고 군사를 내서 한산 북쪽의 목책에
이르렀다. 그 날 밤에 큰 별이 병영 안에 떨어져 소리가 났다. 왕이
이를 심히 꺼리어 [정벌을] 곧 중지하였다. 9월에 서울
사람들[都人]을 모아 서쪽 돈대[西臺]에서 활쏘기를 익히게
하였다.

 

8년(399) 가을 8월에 왕이 고구려를 치고자 하여 군사와 말들을
크게 징발하였다. 백성들은 전역(戰役)에 시달려 신라로 많이
도망하니 호구가 줄었다.

 

-삼국사기 25권 백제본기 아신왕

출처:네이트 한국학

---

 

보시다시피 아신왕의 항복으로 귀결되는 396년 고구려의 대대적인 백제 정벌 이후에도

백제는 계속 고구려를 치려고 했습니다.

다만 실현되지는 못하죠.

이후 5세기 초에는 대체로 고구려와 백제간 충돌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400년 이후 백제는 왜를 움직여 몇차례 고구려와 그 세력권을 공격합니다.

 

흔히 396년 아신왕의 항복 선언이 일시적인 것이였을뿐 효력이 없다고들 하는데

백제가 5세기 초까지 고구려를 직접 공격하지 못하고

왜를 이용하는것으로 보아

백제 내부의 상황과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인한 국력소모 문제도 있었겠지만

아신왕의 항복 선언도 어느정도 효력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광개토왕비문의 내용으로보아 고구려에서도 왜가 독자적으로 움직였다기 보다는 백제와 엮이였다는 것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고구려가 백제를 응징하지 않는 것으로보아 백제가 이점을 노린것 같습니다.

만약 고구려에서 백제를 꾸짖고 책임을 물으면 왜에게 책임을 전가해버리면 부담을 덜수 있죠.

 

실제로 일본서기에는 고구려 왕이 교(敎)를 내려 왜왕을 꾸짖는 장면이 나타나있습니다.

당시 고구려가 왜를 꾸짖을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최인호 작가는 이것을 장수왕의 백제 공격에 앞서 백제에게 간섭하지 말라는 선언이라고 했지만

왜와의 격전이 있었던 시기와 가까운 시기에 일어난 것으로 보아

왜가 백제를 도운것에 대해 꾸짖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장수왕의 백제 공격은 5세기 후반의 일로

왜왕을 꾸짖은 5세기 초와는 시기적으로 멀리 떨어저 있습니다. 약 반세기정도 차이가 나지요.

 

간단요약

396년 아신왕의 항복 선언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였다. 백제의 군사력을 묶어두는데에 있어 어느정도 효력을 발휘했다.백제는 아신왕의 항복 선언이 군사력을 움직이는데에 있어 제약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왜를 움직여 고구려를 방해했다.

 

덧붙임:아신왕의 항복 선언이 백제가 군사를 움직이는데에 제약으로 작용하는 요소였다면 위에 인용한 기사에서 백제가 군사를 움직이는 모습은 무엇이냐고 할수있겠는데 어차피 고구려 공격은 실행되지 않았으므로 백제측의 탈선시도로 볼수도 있겠습니다. 뭐 결국 탈선은 하지 못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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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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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귀거래사 | 작성시간 11.04.18 396년 광개토왕은 아신왕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王弟 및 대신들을 인질로 잡고 개선합니다. 이때 광개토왕이 요구한 것은 물론 도발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겠지만 왜와의 손을 끊으라는 것이었고 백제는 어쩔 수 없이 이 요구조건을 받아 들인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왜는 先王 즉 근초고왕과의 약속을 지키라고 백제에 압력을 넣습니다. 이에 아신왕은 선왕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약속하면서 396년 태자 전지를 왜로 보낸 것이라고 봅니다. 즉 아신왕은 고구려와의 항복문서를 채 잉크가 마르기 전에 파기해버린 것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쥬르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4.18 광개토왕비문에 '영락(永樂) 9年(399년) 기해(己亥)에 백잔(百殘)이 맹서를 어기고 왜(倭)와 화통하였다.'(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이라고 나와있기는 합니다만 맹서의 한 조항을 어겼다는 것이지 맹서 자체가 무효화되었다는건 아닙니다.
  • 작성자귀거래사 | 작성시간 11.04.18 그냥 맹세의 한 조항을 어겼다고 가볍게 볼 일이 아닙니다. 왜와의 손을 끊으라는 것은 항복문서의 핵심 중의 핵심 요구사항이었고 바로 그것을 담보하기 위하여 광개토왕은 인질을 잡은 것이라고 봅니다. 영락9년 기해에 백잔이 왜와 화통했다고 있는 것은 과거 396년의 일을 언급한 것이지 399년 영락 9년에 백제가 왜와 화통했다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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