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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신라, 북연 구원시 태도

작성자明治好太王| 작성시간11.06.01| 조회수92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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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쥬르센 작성시간11.06.01 덤으로 고구려가 부여를 구원할때의 태도도 논해보심이 어떨런지...
  • 답댓글 작성자 明治好太王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6.01 혹시 모두루 묘지명 관련해서 하신 말씀이신지요?
  • 답댓글 작성자 쥬르센 작성시간11.06.01 ㅇㅇ
  • 답댓글 작성자 明治好太王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6.02 우선 저는 염모의 활동시기를 고국원왕이 아닌 서천왕 연간으로 추정합니다. 본 게시판의 5702번 글에서 이에 대해 자세히 쓴 바 있습니다. 사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당시 고구려가 북부여에 대해 성지 말고도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기록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에 고구려의 태도가 어땠을 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바가 없는데, 이번 기회에 생각을 좀 해봐야 겠군요. 혹 따로 생각해보신 것이 있으신지요?^^
  • 작성자 삼한 작성시간11.06.04 '북연이 고구려의 속국이었다면 왜 바로 구원하지 않았을까'라는 주장의 반론이군요. 그런데 마지막 문단을 보면 모든 북연의 영토가 완전히 넘어간 것처럼 기술하셨는데 용성을 기준으로 용성의 동쪽은 완전히 고구려의 영역이 된 것으로 보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답댓글 작성자 明治好太王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6.05 저도 그러한 주장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편인데,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장수태왕 대로 보지 않고 안장태왕 대로 보고 글을 쓴 바 있습니다. 본 게시판의 5695번 글을 찾아서 보시면, 도움이 되실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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